테스트-구남단2

옷차림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0.07.06
김현봉 목사님은
남자들에게 머리를 밀고 무명 천에 검은 먹을 먹인 단색을 입게 했고 여자들도 검정 색 무명의 치마 저고리에 쪽 머리였습니다. 가장 흔하고 구하기 쉽고 싼 옷감이 당시는 무명 천이었고, 검정 색으로 맞춘 것은 생활의 단순과 경건에 유리했기 때문이며 머리 모양에도 아예 신경을 쓰지 말도록 한 것입니다.

요즘 온 나라가
여자 아이들을 손 댄 이야기로 뉴스를 도배하다 시피 하고 있습니다. 잇따라 법 규정이 강화 되고 전국의 초등 학교에 CCTV를 장치한다고 하며 여자 아동들이 위험할 수 있는 곳에는 경찰의 정기 순찰을 시키고 있습니다.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내용들이 사건 보도라는 이름으로 계속 반복 되다 보니까 아이들까지도 사건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예사로 입에 담고 있습니다. 귀신이 온 나라를 이 문제로 다 삼켰다고 생각합니다. 뉴스가 떠들면 타 오르는 불길에 휘발유를 들이 붓는 꼴이고 그렇다고 삼키는 불길을 그냥 두고 볼 수도 없습니다.



세상 꼴을 보며
비록 김현봉 목사님처럼 극단적으로 나가지는 않지만 외부에서 보면 이 노선의 평상 생활은 1960년대의 김현봉 목사님 신앙 노선의 생활 분위기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도 한국교회의 보수정통 신학의 주류를 자처하는 이들은 김현봉 목사님을 '탁발'이라는 자극적 표현을 동원하며 이단으로 비판하지만, 그 분을 그렇게 비판하는 신학자와 신학교와 그 교단과 그 교회에 소속한 여성도들의 옷 차림은 몸을 파는 집 여성들인지 구별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1960년대 서울 거리의 교인들에게 경건과 검소와 신앙의 긴장을 강하게 뇌리 박아 놓은 김현봉 목사님, 오늘도 몇십 명 정도의 교인이 당시를 재현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그렇게 약화가 되어 있어 안타깝습니다. 아현동교회가 오늘까지 서울 시내에서 당시처럼 가장 큰 교회로 유지 되고 그들의 생활이 서울의 골목마다 쉽게 보였더라면 오늘 이런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명백해 지는 현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적절히 조절한다고 하다가 세상에 다 뻐져 버렸습니다. 세상도 그렇고 교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차라리 이단이나 사이비나 이상하다는 비판을 받을지라도 오늘 이 미친 세상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더 위험한 시절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 표시가 너무 강하니까 이 노선의 경건, 근검절약, 긴장의 생활, 옷차림 하나까지 조심에 조심을 더했던 것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여자 아동이나 여성에 대한 범죄가 봇물이 터지고 있을까? 우선 여자들이 어린 아이부터 온 몸을 다 드러 내지 못해서 광분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에게 보라고 벗었지 설마 여자들에게 보라고 벗지는 않았을 터, 또한 남의 남자들에게 보라고 벗어 대고 있지 서로 매일 보는 제 남자에게 보라고 벗어 던지고 거리를 활보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결혼 한 여자들이 백주 대낮에 벗고 설쳐도 잡ㄴ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 터인데 자기 어린 딸 아이들까지 홀딱 벗기거나 온 몸이 다 드러나 보이도록 찰싹 달라 붙는 옷을 입혀 온 거리에 활보를 시키고 있으니, 이런 먹잇감들이 사방에 돌아 다니고 있는데도 만일 대규모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와 말세 모든 남자들이 다 천사라는 말이 성립해야 할 것입니다.
TV에서 인터넷에서 거리의 광고에서 온갖 종류의 책과 상품 표지에서 여자 벗은 그림과 남자 자극하는 것에 사태가 났으니 이 나라 온 남자들이 잔뜩 독이 올라 눈에 핏발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핏발이 서게 만들었는가? 바로 여자들입니다. 당해도 싸다 소리가 열백 번은 더 나옵니다.



세상 지저분한 분위기 속에서
세상이 뭐라 하든 말든, 교계가 뭐라 하든 말든, 주변 성도나 이웃이 뭐라 하든 말든 신앙인이란 하나님 앞에 조심에 또 조심을 그리고 경건에 또 경건을 더하며 긴장하고 믿는 것이 기본 신앙입니다. 옷차림과 행동을 조심했더라면 유사 이래 타락한 인간 세계에 그런 범죄가 없었던 적은 없었으나 이렇게까지 극심하여 소돔 고모라보다 더 심하게 되는 일에 교회도 그 세상 속의 일부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앙 홈들의 디자인도 교회들의 찬양도 청년들의 율동도 주일학생들의 무용까지도 이렇게 예배 안에까지 세상의 모든 음란이 차고 넘치는 시절을 탄식하며 이 노선 우리 다 함께 더욱 긴장하며 이런 때에는 마24장 말씀처럼 그만 시온산으로 달음질해서 가야 할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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