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자료의 분산 보관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0.10.09
1. 조선왕조실록의 4 곳 분산 보관
태조 이성계로부터 5백 년의 조선왕조 역사가 일지로 기록 된 것을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합니다. 왕도 생전에 열람할 수 없게 되었고 그 자료가 소중하여 전국의 4 곳에 분산 배치를 하여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전쟁까지를 거치면서도 오늘까지 남아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5백 년의 왕조 일기가 이렇게 다 남아 있는 사례를 찾기 어려우니 오늘날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서울 옆의 강화도에서부터 전주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분산 된 실록들은 임진왜란 때 전주 외의 3 곳이 다 불에 타 버렸고, 다시 필사하여 4 곳에 나눈 것이 이괄의 난에 또 3 곳의 서고가 다 불에 탔는데 역시 1 곳이 남아서 다시 4 곳으로 필사 되고 분리 보관 되어 내려 오고 있습니다.
2. 백영희 설교 자료의 CD 작업
백 목사님의 설교는 편의상 5천 개라고 부릅니다. 녹음 테이프로 있던 것이 1990년대에 CD로 전환 되어 오늘은 5천 개 설교 음성을 복사하는데 1 시간이면 됩니다. 그렇게 편리하게 사용하게 되기까지 처음에 CD로 옮길 때는 5천 개 시간을 그대로 다 지켜 보며 확인까지 해야 하고 컴퓨터로 옮겨 진 자료가 다시 변환을 통해 5천 개 CD로 바뀌는 과정은 당시 기술로는 하루 3 개 작업이 어려웠습니다. 이 홈에서 2 명의 직원이 수고하여 약 10 년 걸려 CD로 만들었습니다.
CD 작업 처음에는 CD 1 개 가격이 자그마치 2만 원이었고 뒤에는 1천 원으로 내려 오고 나중에는 7백 원이 되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CD 1 개가 20만 원 할 때는 샘플용으로 2 개만 구입하고 구경만 했으나 CD가 2만 원으로 내려 왔을 때부터 연구회는 음성 전체를 데이타화 할 시기로 보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개당 2만 원할 당시 백 목사님 테이프 전체를 자료화 하려면 CD 가격 1억 원과 인건비 1억 원이었습니다. 1 세트를 만들면 2억 원이고 2 세트 만들면 3억 원인데, 2 세트로 만들고 분산 보관하려 시작했으나 CD 가격의 급락으로 경비는 절감 되었으나 시골 교회 하나가 몇억을 각오하고 시작한 것은 여러 면에서 하나님의 은혜였고 그 시도와 그 노력과 그 결실 때문에 사라 져 가는 한 시골 교회는 현재 일일이 설명하면 믿지도 않을 만큼 또 자랑이 지나 쳐 넘어 지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2 명의 직원이 오랜 세월 무료로 봉사했고 2 명의 다른 직원은 교통비와 점심 값 정도를 받으며 수고했습니다. 무료로 봉사한 분들은 지금 경제와 가정과 신앙의 복을 많이 받았고 그 내막 역시 설명하기 곤란할 정도입니다. 말씀을 담은 여호와의 궤가 석 달을 머문 오벳에돔 가정에 복이 내렸는데 이 노선 설교 자료를 보관하고 전하는 일에 수고한 이들이 특별하게 복을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 같습니다.
3. 설교 자료 5천 개의 분산 보관
백 목사님 사후 이 홈은 주소지에 있던 5천 개 테이프를 3 세트 복사하여 부산에 2 곳과 서울 1 곳에 분산 배치하여 원래 있던 부산의 목회연구소와 이 홈 그리고 그 3 곳, 총 5 곳에 테이프가 분산 배치 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10 년 간 작업한 CD 자료 2 세트를 오늘 총공회 모든 교회들이 가장 편리하게 그리고 실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타 공회에 제공해 드렸습니다. 지역도 이 나라 중앙에 있고 대외적으로 공회를 대표할 만한 규모이기 때문에 여러 면으로 볼 때 이 홈과 직접 관련 있는 교회나 단체보다 더 좋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0 년간 수고한 분들의 인건비는 요즘 월 최저 월급 80만 원을 친다면 1억 원입니다. 부자들에게 1억 원은 쉬운 돈일 수 있고 또 완전 데이타화가 된 오늘에는 이 CD 자료 일체가 공회 차원의 비치용 자료로서 의미를 가지는 정도가 될지 몰라도, 이 홈은 이 자료에 담긴 내용의 가치성은 언급할 것도 없이 다 아는 것이나 이 자료가 자료화에 이르기까지 10 년의 세월을 통해 아낌 없이 수고한 시골 교회 몇 명의 이름 없는 교인들을 기억하여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잘 사용 되기를 바라며, 혹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어느 날의 어떤 상황에서 그 자료가 필요하게 될 때 귀하게 역할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태조 이성계로부터 5백 년의 조선왕조 역사가 일지로 기록 된 것을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합니다. 왕도 생전에 열람할 수 없게 되었고 그 자료가 소중하여 전국의 4 곳에 분산 배치를 하여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전쟁까지를 거치면서도 오늘까지 남아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5백 년의 왕조 일기가 이렇게 다 남아 있는 사례를 찾기 어려우니 오늘날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서울 옆의 강화도에서부터 전주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분산 된 실록들은 임진왜란 때 전주 외의 3 곳이 다 불에 타 버렸고, 다시 필사하여 4 곳에 나눈 것이 이괄의 난에 또 3 곳의 서고가 다 불에 탔는데 역시 1 곳이 남아서 다시 4 곳으로 필사 되고 분리 보관 되어 내려 오고 있습니다.
2. 백영희 설교 자료의 CD 작업
백 목사님의 설교는 편의상 5천 개라고 부릅니다. 녹음 테이프로 있던 것이 1990년대에 CD로 전환 되어 오늘은 5천 개 설교 음성을 복사하는데 1 시간이면 됩니다. 그렇게 편리하게 사용하게 되기까지 처음에 CD로 옮길 때는 5천 개 시간을 그대로 다 지켜 보며 확인까지 해야 하고 컴퓨터로 옮겨 진 자료가 다시 변환을 통해 5천 개 CD로 바뀌는 과정은 당시 기술로는 하루 3 개 작업이 어려웠습니다. 이 홈에서 2 명의 직원이 수고하여 약 10 년 걸려 CD로 만들었습니다.
CD 작업 처음에는 CD 1 개 가격이 자그마치 2만 원이었고 뒤에는 1천 원으로 내려 오고 나중에는 7백 원이 되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CD 1 개가 20만 원 할 때는 샘플용으로 2 개만 구입하고 구경만 했으나 CD가 2만 원으로 내려 왔을 때부터 연구회는 음성 전체를 데이타화 할 시기로 보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개당 2만 원할 당시 백 목사님 테이프 전체를 자료화 하려면 CD 가격 1억 원과 인건비 1억 원이었습니다. 1 세트를 만들면 2억 원이고 2 세트 만들면 3억 원인데, 2 세트로 만들고 분산 보관하려 시작했으나 CD 가격의 급락으로 경비는 절감 되었으나 시골 교회 하나가 몇억을 각오하고 시작한 것은 여러 면에서 하나님의 은혜였고 그 시도와 그 노력과 그 결실 때문에 사라 져 가는 한 시골 교회는 현재 일일이 설명하면 믿지도 않을 만큼 또 자랑이 지나 쳐 넘어 지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2 명의 직원이 오랜 세월 무료로 봉사했고 2 명의 다른 직원은 교통비와 점심 값 정도를 받으며 수고했습니다. 무료로 봉사한 분들은 지금 경제와 가정과 신앙의 복을 많이 받았고 그 내막 역시 설명하기 곤란할 정도입니다. 말씀을 담은 여호와의 궤가 석 달을 머문 오벳에돔 가정에 복이 내렸는데 이 노선 설교 자료를 보관하고 전하는 일에 수고한 이들이 특별하게 복을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 같습니다.
3. 설교 자료 5천 개의 분산 보관
백 목사님 사후 이 홈은 주소지에 있던 5천 개 테이프를 3 세트 복사하여 부산에 2 곳과 서울 1 곳에 분산 배치하여 원래 있던 부산의 목회연구소와 이 홈 그리고 그 3 곳, 총 5 곳에 테이프가 분산 배치 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10 년 간 작업한 CD 자료 2 세트를 오늘 총공회 모든 교회들이 가장 편리하게 그리고 실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타 공회에 제공해 드렸습니다. 지역도 이 나라 중앙에 있고 대외적으로 공회를 대표할 만한 규모이기 때문에 여러 면으로 볼 때 이 홈과 직접 관련 있는 교회나 단체보다 더 좋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0 년간 수고한 분들의 인건비는 요즘 월 최저 월급 80만 원을 친다면 1억 원입니다. 부자들에게 1억 원은 쉬운 돈일 수 있고 또 완전 데이타화가 된 오늘에는 이 CD 자료 일체가 공회 차원의 비치용 자료로서 의미를 가지는 정도가 될지 몰라도, 이 홈은 이 자료에 담긴 내용의 가치성은 언급할 것도 없이 다 아는 것이나 이 자료가 자료화에 이르기까지 10 년의 세월을 통해 아낌 없이 수고한 시골 교회 몇 명의 이름 없는 교인들을 기억하여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잘 사용 되기를 바라며, 혹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어느 날의 어떤 상황에서 그 자료가 필요하게 될 때 귀하게 역할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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