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국기 문제와 구호 역사

구남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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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작성일
2010.10.24
1. 국기에 대하여 '배례'

- 의미

허리를 숙여 국기에게 절하라는 명령입니다. 사람이 자기보다 위 사람에게 경의를 표시하는 것인데 사람이 국기라는 물건에게 절을 한다면 제 정신이 아니거나 아니면 미신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 공동체 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으나 그 나라가 내 세운 표시판에다 어른에게 절하듯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 역사

미개했던 조선 왕조 시대도 아니라 근대화가 진행 되던 1948년의 해방 후에 이렇게 황당하기 그지 없는 일을 정부가 법 제도로 만들어 놓게 된 이유는 바로 일본 제국에게 알게 모르게 세뇌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세계 점령을 위해 자기 군인들을 전쟁터에 내 보낼 때 인간의 생애 본능을 초월할 수 있도록 세뇌 교육을 시켰는데 그 방법이 바로 태양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다 죽으면 죽어서도 신사에 귀신이 되어 영존 불멸의 호국 영령이 된다는 참으로 해괴한 논리였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인간이 한 번은 죽는 것인데 생명을 돌아 보지 않고 적을 향해 돌진을 하게 되어 만일 살면 살아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자자손손 영광과 혜택을 누리게 되고 만일 죽으면 신사에 호국영령이 되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신으로 대접을 받게 된다는 미신으로 최면을 걸어 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태양신을 흰 천에 그려 일장기라 하고 일본은 태양신이 지키는 태양신의 나라이며 그 일장기를 들고 달리면 총알이 피해 가든지 죽으면 그 태양신의 아래 호국신이 된다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그들은 일장기 앞에 절을 할 때는 나라를 위한 애국심의 표시 정도가 아니라 불교인이 부처 앞에 절하는 종교의식이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독립하자 일본인들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억울함과 일본의 세계화의 비결에 부러웠던 우리 정부는 일본이 만든 일제식 방법을 도입하여 우리 나라 국기에게 우리도 절을 시키고 그 구호는 '예배'라는 단어와 같은 '배례'라고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단군 종교의 교주를 지낸 안호상이라는 초대 문교부 장관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항일 애국자였으나 그가 그토록 미워했던 일본의 맹신법을 그대로 배끼되 다만 일본의 태양신 대신에 조선의 국조 단군을 그 자리에 올려 단군신을 만들 목표를 향해 우선 국기에 허리를 90도로 굽혀 절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 신앙 문제

해방 후 한국 교회는 일제 신사참배 환란을 막 거쳐 나온 뒤였고, 비록 독립한 조국이지만 일제 신사참배와 같은 방법으로 애국을 하라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단호하게 거부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불신자도 일제 때 태양신과 신사와 일장기에게 절했으며 또 그들의 평소 불교나 다른 미신의 방식을 알고 그런 종교 의식이 생활화가 되어 있었으므로 국기에 대한 배례란 불신자가 볼 때도 종교인으로서는 종교를 바꾸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2. 국기에 대하여 '주목'

- 의미

나라의 표시인 국기를 만들고 그 국기를 보면서 온 국민이 같은 마음으로 단결과 노력과 애국을 결심한다면 이는 대단히 좋은 방법입니다. 국기가 나라와 사회를 하나로 묶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은 신앙에 충돌이 없고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도 죄 되지 않는 이상 살고 있는 그 사회와 국가의 제도를 따라야 하고 존중해야 하며 세금과 각종 의무를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 침입니다. 다만 그 애국심의 표시가 과거 미개할 때는 일반 수준 이상으로 강조를 해야 집권하는 왕이나 독재자에게 유리하므로 늘 애국심과 그 이상의 종교나 미신적 요소가 있는지를 구별할 문제입니다.


- 역사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 되고 국기 배례 문제가 전국적으로 발생하게 되자 교계는 일제히 과거 일제 신사참배와 같은 국가 미신의식이라며 반대했습니다. 문제는 각종 사회 행사에서는 알아서 빠지거나 대충 눈치껏 할 수가 있는데 전국의 학교는 학교장과 교사에 의하여 학생들이 군대처럼 장악 되는 곳이고 학생들은 나이나 신앙이나 연륜에서 너무 어리고 아침마다 계속 되는 전체 조례에 빠질 수도 없고 표시가 잘 나기 때문에 엄청 난 환란에 들게 되었습니다. 즉 국기배례 문제는 학생들의 환란이었습니다.

그러나 문교부 장관이 앞에서 말한 단군 종교 신봉자이고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히틀러까지 눈 여겨 본 인물이어서 강골로 밀어 붙이고 있었습니다. 교계는 처음에 반대를 했으나 신사참배 때처럼 결국 거의 다 무너 졌고 고신에서는 교단적으로는 반대했으나 학교를 간 학생들이 그 환란을 이긴다는 것은 드물었고 1 년 정도가 지나게 되자 별반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정부 고위층을 만나 반대 운동을 하려 했으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주무부처인 문교부 장관은 훗날 단군종교 교주가 되는데 단군종교는 기독교를 서양 외래 종교로 보고 반발로 만들어 진 민족 종교입니다. 이 참에 아예 기독교를 마음껏 패 대고 싶었을 인물이었습니다. 문교부 장관이 요동치 않자 전국 교회들은 아닌 줄 알면서도 내나 일제 말기 신사참배 때 탄압 앞에 결국 무너 졌듯이 국기 배례 문제에서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백 목사님은 개명교회에서 위천교회로 이동을 했고 그 때가 1949년 7월이었습니다. 백 목사님이 지도하던 위천교회 주일학생들은 국기배례를 목숨 걸고 반대하되 그 반대가 집단 거부로 나타 나면서 1950년 도지사에게 보고가 되고 그 도지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측근이어서 좌우 극단 충돌의 위기 속에 남한 안의 핵심 기독교인들이 억울하게 박해를 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판단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국기배례는 국기에 대한 '주목'으로 바뀌고 그 표시도 오른 손을 왼 가슴에 얹는 것으로 결정 됩니다. 정말 감격적인 순간이었고 이 나라 그 몇 달 후에 터질 6.25에서 부산까지 함락을 당하고도 남을 정도였는데 목숨을 부지하고 오늘의 세계 10대 강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된 배경에는 이런 역사적 전환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지 않았던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 신앙 문제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공직자 그리고 모든 대소사의 국가 행사에 지금도 우리 나라에는 국기에 대한 애국심의 표시를 할 때 오른 손을 왼 가슴에 얹는 감격스런 모습이 60 년째 이어 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 그리고 그 전임 대통령이 자신들의 애국 표시 방법의 역사를 알고 있을까? 모를 것 같습니다. 사회역사를 공부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런 표시 방법이 예전에도 있었던가?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오른 손을 왼 가슴에! 나의 모든 행위를 이 끓어 오르는 심장에 대고 이 나라를 하나님의 보우 아래 운영하겠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단군 종교의 맹신가 장관이 애국을 앞 세워 일제 잔당 식으로 국기를 상대하여 애국을 맹세하게 하되 허리를 숙이게 하여 미신 맹신으로 이 나라를 망치려던 이 나라 독립 초기, 그 위험했던 시기가 변하여 비록 불신 나라지만 이 나라 이 사회가 입으로는 애국가의 '하나님이 보우하사'를 외치며 오른 손은 왼 가슴에 얹는 것이 종교색을 떠난 것 같지만 실은 그 애국가의 내용과 과거 미신을 탈피하게 된 것이 기독교의 외침이었기 때문에 전후를 놓고 읽으면 이 나라는 6.25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이후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는 복을 받아야 마땅할 초석을 다졌던 것입니다.




3. 국기에 대한 '경례'

- 의미

사람이 사람에게 예를 표하며 아래 사람은 위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당연한데 나라는 국민들이 모두 힘을 합해 떠 받쳐야 할 대상이므로 나라의 표시가 되는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하자는 것입니다. 과거 해방 직후의 '배례'는 그 단어가 예배니까 국기를 신으로 상대하라는 명령이었으나 '경례'는 높은 분으로 알고 모시자는 뜻이어서 낮아 지기는 한참 낮아 졌습니다. 신이 인간으로까지 내려 왔지만 여전히 국기는 인간이 사용하는 물건이고 서로가 구별하며 뜻을 모으는 데 사용하는 방법이지 국기가 사람 대접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역사

1948년 8월 15일에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기에 대한 배례'가 시행 되었고 1950년 4월 25일에 국기에 대한 '주목'으로 제도가 바뀐 상태로 이 나라는 전쟁을 치르고 전후 복구 사업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가 한계를 맞고 1960년에는 4.19로 나라가 뒤집어 집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철저한 기독교인이었는데 교회가 그를 등에 업고 못할 짓을 많이 했고 하나님은 정권에 손을 떼 버렸습니다. 건국 초기의 숱한 수고와 공로는 다 묻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때려 죽일 원수가 되어 있으나 우리는 믿는 사람이므로 잘못한 것과 잘한 것은 엄연히 구별해야 합니다.

4.19 후의 일시 혼란과 이후에 박정희 대통령의 5.16 군사 혁명이 일어 났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방향이 잡히고 기반이 다져 진 이 나라가 철저하게 불교 우대 정책을 펼쳤던 박 대통령에 의하여 열등 국가가 우등 국가로 변신하는 시기입니다. 일본에서 배운 생사 일도 양단의 정신과 원래 타고 난 강골과 가난한 배경 때문에 한 맺힌 인물입니다. 당연히 온 국가를 휘어 잡고 오로지 국가의 부흥 발전을 위해 온 국민을 군인화 시켰습니다. 사회의 중요 직책은 전부 군인들이 틀어 쥐고 전쟁을 거친 군인 정신으로 돌진했고 이 과정에서 군인들의 국기에 대한 경례 방식은 사회 전체를 그렇게 하도록 일순간에 바꾸어 놓았습니다.

원래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도 국기 배례 문제가 국기에 대한 주목으로 바뀔 때 예외 조항을 달았습니다. 군인과 경찰은 모자를 착용해야 하는 전투 집단의 특성상 모자 앞 창 끝에 손을 붙인다고 했는데 이는 한국의 군인 문화가 있어서가 아니라 미국에서 온 미군들의 결정이었습니다. 해방 전이며 6.25 직전이었던 당시 상황에서 우리 나라의 군인은 미군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미국식으로 창설하고 있었고 경찰은 해방 후 좌익의 반란으로 군인들과 함께 제주도나 여수 순천 또는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전투를 수행하던 시기였습니다. 복장 무기에서 구호 훈련 방법 하나까지 군은 완전히 미군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군을 만든 미군들은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 와서 이어 져 온 청교도의 군인 습관과 신앙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미군들이 그들 성조기에 대하여 경례라는 구호와 손으로 모자 창에 닿게 하며 표시를 하는 것은 우상이나 종교나 미신이나 그 어떤 신앙에 문제가 될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들 사상이 철저하게 기독교적이었으므로 단지 그들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군인의 결의와 자신들이 목숨 바쳐 지킬 그 나라의 가치를 향한 자기 결심이며 존중심이었습니다.

일반 사회는 막 독립한 이승만 정권이 운영하고 있었고 일반 사회인들은 종교적 미신적 행습과 사상이 전제가 되어 있어서 국기에 대하여 배례든 경례든 다 문제였으나 군인과 경찰은 미군이 제도화를 시켰고 무장과 훈련을 담당하고 작전까지 지도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국기 경례는 미국식 즉 우리의 신앙 상식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승만 정부의 국기 배례 때나 주목 때나 상관 없이 그냥 처음부터 늘 국기에 대한 표시가 그대로 이어 졌고 특히 전쟁 3 년을 거치며 수 많은 군인이 죽고 나라를 지키는 과정에서 군인의 정신과 자세는 그들의 경례 방식 하나까지 국가를 지키며 전쟁에서 이겨야 하는 전투 정신으로 날이 서 있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혁명 후 일반 사회까지도 국기에 대한 '주목'을 군인들의 방법인 '경례'로 바꾸게 됩니다.

내용을 바로 알면 군인들의 국기 경례는 죄 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 세계의 방식이었지만 이 나라의 당시 사회적 생각으로는 과거 국기 배례와는 차원이 낮고 다르다 하나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뭔가 그 국기에 대한 인식이 일반 표식 차원이 아닌 상태에서 사람에게 표시하는 경례를 국기에게 한다는 점에서 신앙인들은 역시 거부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경례의 표시도 군인들은 모자를 쓴 상태에서 과거처럼 늘 그렇게 했고 일반인들에게는 허리를 숙이게 했습니다. 여기에서 해방 후 미군의 전통에서 내려 오던 군인들의 경례라는 표시와 구호가 일반 사회인들에게는 허리를 숙이는 표시와 경례라는 구호가 합하며 묘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믿는 사람으로서 머리나 몸을 숙이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나 구호는 군인들의 경례라는 구호가 그들 세계의 역사와 의미가 달랐기 때문에 우리는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나 일반 교인들에게도 경례라는 구호가 늘 꺼림칙했습니다.


- 신앙 문제

교리적으로 본다면 상대가 뭐라고 말을 하든지 믿는 사람은 자기 신앙에 따라 자기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됩니다. 그 일을 교인으로 최선을 다했다면 된 것입니다. 원래 국가가 규정을 바꾸어 '주목'으로 해 두고서 '경례'라고 말한 것부터가 잘못입니다. 그들의 그 잘못 된 국기의례 진행 과정에서 교인들은 원래 주목이었으나 나는 나대로 주목의 표시만 하고 애국심은 나대로의 애국심을 가지면 된다 하여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군대의 경우 창설 때부터 미군이 가르 쳐 오늘까지 이어 져 왔으니 '경례'라는 구호와 모자에 손을 대거나 총으로 표시를 하는 것은 신앙 전통인 것이고, 이를 오해한다면 그 것은 일반 사회의 잘못 된 인식인데 우리가 그들의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또 그들로 하여금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주어 진 힘과 범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데까지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평소 모든 말씀을 엄하게 지켜 살되 신앙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 대는 모습으로 살게 되면 그런 내가 군인으로서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하는 표시는 그들 눈에도 저 것은 우상이나 종교나 미신이나 국기를 인간으로 상대하지 않는 사연이 있을 것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또 학생의 경우는 앞에서 경례라는 구호가 나올 때 속으로 그 구호는 주목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원래 방식인 주목에 맞추어 주목 표시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른 손을 왼 가슴에 얹으면 됩니다. 만일 신앙이 좀 더 활발하고 열심이라면 경례라는 구호는 국기의례 순서 진행에 틀린 것이니 그 순서에서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4. 현 우리 사회 여건에서

이제는 일반 애국자라는 사람들도 국기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아무렇게나 팽개 치는 세상이되었고, 우리 사회 한 편에서는 국기를 친미파의 표시며 북한 동포를 고통스럽게 만든 미제국주의 앞잡이의 표식이라 해서 내 놓고 국기를 모독하고 있는데도 손을 대지 않고 있습니다. 한 편으로 일반 사회가 비판을 한다 해도 여전히 이 나라 사회의 종교 주력은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2계명의 우상 차원에서 국기 문제를 가지고 싸우거나 고민할 시기는 이미 지나 갔습니다.

지금 우상은 휴대폰이며 컴퓨터며 인기 탈랜트나 가수며 주먹 센 친구나 공부 잘하는 학생이나 좋은 직장이 우리에게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화장과 옷 차림과 입에서 나오는 노래와 마음은 세상 불신자들이 전부 우상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게 기울어 지면서 국기 경례는 우상 숭배라고 떠들면 듣는 사람조차 국기를 누가 신이라 하는가, 누가 국기를 인격체라고 하는가 라고 하면서 광인 취급을 하는 시기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술 담배가 오늘 시대에 다른 중독보다 덜 위험해도 여전히 교회가 금하면서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국기 배례나 국기 경례에 담긴 역사적 죄 문제를 잘 알고 인식하면서 동시에 오늘의 우상, 오늘의 국기 배례나 경례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삼키고 있는지를 살펴 오늘 우리 시대의 2계명 문제에 목숨을 걸어야 하되, 여전히 이 나라에는 아직도 국기 경례라는 문제나 배례라는 문제가 완전히 사라 지지는 않았으므로 긴장하고 조심하며 자기 신앙에 따라 각자 자기가 지킬 선을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무조건 남북은 통일을 시켜 놓고 봐야 한다는 무조건 통일주의는 불신 사회로서는 말할 수 있으나 교회는 그런 주장과 응집에 한 발 빠져서 지켜 보는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교회가 덮어 놓고 합해 놓으면 무조건 지상낙원이 이루어 질 것으로 생각하고 활동하는 것은 과거 해방 후에 안호상 문교부 장관이 속에 단군 종교 사상을 가지고 일제식 국기 배례를 시켰던 그 섬뜩한 미신적 위험을 그대로 수용하는 꼴이 됩니다. 사례를 들자면 많으나 전체 방향만 서론적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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