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시련과 연단 [사진]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0.12.18
마당에 새 몇 마리를 놓아 기르고 있습니다. 이 노선은 취미 생활이라는 개념이 없고 뭔가를 좀 배우고 싶고 또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새들은 원래 사람의 손에서 나고 자랐으므로 자연을 직접 맞아 보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나고 살아 온 과거의 주인과 달리 저는 이들을 다른 모습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품격은 있으나 좀 건방 진 것이 흰 색의 문조
비단에 수 놓은 듯 화려하나 가벼운 것이 금화조
노란 색이나 붉은 색을 가진 유명한 새가 카나리아입니다.
십자매도 있었으나 너무 시끄럽고 어지러워 다른 집에 드렸습니다.
4월에 사 왔고 마당 한 쪽에 우리를 만든 다음 최대한 야생 조건으로 길렀습니다. 여름을 지내면서 두 종류의 새들이 6 마리의 새끼들을 부화했고 새끼들은 자연 속에서 날개짓을 배우고 먹이를 혼자 먹을 수 있도록 잘 자랐습니다. 여러 생각을 가지고 몇 주일학생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잘 있는지, 장난감이 되었는지, 아마 몇 마리는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새들을 기준으로 보면 제 손에 있는 것이 복이겠으나 제 기준에서는 그 새들의 안위나 행복 자체보다 내가 더 사랑하는 주일학생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학생들을 위해 새들을 나눠 주었습니다. 새들이 그들의 손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죽을지라도 그 자체가 학생들에게 필요한 학습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중에는 악령과 죄와 사망이 들어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새들은 제게 오자 바로 꿈 같은 봄 날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새는 습기가 악몽인데 봄 날을 즐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끝 없이 이어 지는 장마철이 있었고
장마철을 견딘 새에게 다시 무더위가 닥쳤으니 새는 체온 식히는 데는 고통이 많습니다.
올해는 태풍이 많았고 한반도 본토를 상륙할 때 이 곳은 태풍의 가장 강한 첫 순간을 정면으로 받는 곳입니다. 바람에 나는 새에게 태풍은 육상 동물과 다른 차원의 환란이 됩니다. 따로 해 줄 조처가 없어 자연 속에서 맞도록 했습니다.
온 지 6 개 월이 지나면서 겨울로 접어 들었습니다. 처음 몇 차례 추위는 예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번 주간에는 한파 주의보까지 나온 가운데 3 일 간의 제대로 된 첫 추위를 만났습니다. 전등으로 보온 장치를 일부 해 주려고 생각을 했다가 주인의 배려와 새들의 자생력의 한계 사이에서 고민한 끝에 그냥 맞서 보기로 했습니다. 이 새들이 이 번 겨울을 야외에서 스스로 견딜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바깥의 일반 온도가 영하 5 도인데 겨울 바람을 그대로 맞기 때문에 영하 10 도의 추위가 될 듯합니다. 새들에게 준 물 통에 물이 바닥까지 다 얼어 있어서 돌로 깨 내야 했습니다. 이 곳은 이렇게 추운 곳이 아닌데 매서운 추위가 닥친 것입니다.
추위의 첫 날 아침에 새들이 살았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헤아려 보니까 7 마리가 다 있습니다.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 매일 아침에 이들의 생존과 건강 상태를 지켜 보며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믿는 사람을 지켜 보는 심정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이 겨울의 시련이 새들에게는 자연 속에서 자신들을 만들어 가는 마지막 단계의 훈련입니다. 이미 주인이 주는 먹이 외에도 자생 풀의 잎과 열매를 함께 먹고 둥지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실력을 갖췄습니다.
주님이
산울을 둘러 놓고
과수원을 만들어 열매를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가르 치셨습니다.
제가
야외에 우리를 만들고
최대한 자연 상태를 제공하며 스스로 시련을 견디고 연단을 받는 새들을 지켜 보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배웁니다.
글로 적어 내려 가려면 한도 없을 것 같습니다.
배우는 입장과 가르 치는 입장, 사랑을 받는 입장과 사랑하는 입장...
글로 적어 놓을 수 없는
제 마음이 자칫 다 쏟아 져 내려 버릴 그 직전에 서서
더 이상 새들에게 마음을 줬다가는 하나님께서 돌아 서실까 하여 아슬아슬하게 조절하고 있습니다.
품격은 있으나 좀 건방 진 것이 흰 색의 문조
비단에 수 놓은 듯 화려하나 가벼운 것이 금화조
노란 색이나 붉은 색을 가진 유명한 새가 카나리아입니다.
십자매도 있었으나 너무 시끄럽고 어지러워 다른 집에 드렸습니다.
4월에 사 왔고 마당 한 쪽에 우리를 만든 다음 최대한 야생 조건으로 길렀습니다. 여름을 지내면서 두 종류의 새들이 6 마리의 새끼들을 부화했고 새끼들은 자연 속에서 날개짓을 배우고 먹이를 혼자 먹을 수 있도록 잘 자랐습니다. 여러 생각을 가지고 몇 주일학생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잘 있는지, 장난감이 되었는지, 아마 몇 마리는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새들을 기준으로 보면 제 손에 있는 것이 복이겠으나 제 기준에서는 그 새들의 안위나 행복 자체보다 내가 더 사랑하는 주일학생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학생들을 위해 새들을 나눠 주었습니다. 새들이 그들의 손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죽을지라도 그 자체가 학생들에게 필요한 학습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중에는 악령과 죄와 사망이 들어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새들은 제게 오자 바로 꿈 같은 봄 날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새는 습기가 악몽인데 봄 날을 즐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끝 없이 이어 지는 장마철이 있었고
장마철을 견딘 새에게 다시 무더위가 닥쳤으니 새는 체온 식히는 데는 고통이 많습니다.
올해는 태풍이 많았고 한반도 본토를 상륙할 때 이 곳은 태풍의 가장 강한 첫 순간을 정면으로 받는 곳입니다. 바람에 나는 새에게 태풍은 육상 동물과 다른 차원의 환란이 됩니다. 따로 해 줄 조처가 없어 자연 속에서 맞도록 했습니다.
온 지 6 개 월이 지나면서 겨울로 접어 들었습니다. 처음 몇 차례 추위는 예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번 주간에는 한파 주의보까지 나온 가운데 3 일 간의 제대로 된 첫 추위를 만났습니다. 전등으로 보온 장치를 일부 해 주려고 생각을 했다가 주인의 배려와 새들의 자생력의 한계 사이에서 고민한 끝에 그냥 맞서 보기로 했습니다. 이 새들이 이 번 겨울을 야외에서 스스로 견딜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바깥의 일반 온도가 영하 5 도인데 겨울 바람을 그대로 맞기 때문에 영하 10 도의 추위가 될 듯합니다. 새들에게 준 물 통에 물이 바닥까지 다 얼어 있어서 돌로 깨 내야 했습니다. 이 곳은 이렇게 추운 곳이 아닌데 매서운 추위가 닥친 것입니다.
추위의 첫 날 아침에 새들이 살았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헤아려 보니까 7 마리가 다 있습니다.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 매일 아침에 이들의 생존과 건강 상태를 지켜 보며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믿는 사람을 지켜 보는 심정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이 겨울의 시련이 새들에게는 자연 속에서 자신들을 만들어 가는 마지막 단계의 훈련입니다. 이미 주인이 주는 먹이 외에도 자생 풀의 잎과 열매를 함께 먹고 둥지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실력을 갖췄습니다.
주님이
산울을 둘러 놓고
과수원을 만들어 열매를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가르 치셨습니다.
제가
야외에 우리를 만들고
최대한 자연 상태를 제공하며 스스로 시련을 견디고 연단을 받는 새들을 지켜 보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배웁니다.
글로 적어 내려 가려면 한도 없을 것 같습니다.
배우는 입장과 가르 치는 입장, 사랑을 받는 입장과 사랑하는 입장...
글로 적어 놓을 수 없는
제 마음이 자칫 다 쏟아 져 내려 버릴 그 직전에 서서
더 이상 새들에게 마음을 줬다가는 하나님께서 돌아 서실까 하여 아슬아슬하게 조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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