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사진의 얼굴로 본 내면의 신앙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1.11.06
시내를 나갈 일이 있습니다. 광고 선전 사진이 곳곳에 넘칩니다. 모두가 환하게 웃는 얼굴입니다. 매장에 설치한 TV 프로그램에서도 웃음이 넘칩니다. 유심히 봤지만 무거운 주제가 거의 없습니다.
최근에 1950년대 사진 한 장 때문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1953년에서 1955년 사이에 찍은 사진인데 이 사진에 따라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님이 개척한 교회의 설립 연대가 나오며 거기에 따라 애양원교회와 미국의 남장로교 선교부와 사모님 사이에 얽힌 많은 비화가 드러 날 것입니다.
그런데 1950년대의 사진은 한결같이 무겁습니다. 이 것은 그 어느 교단의 당시 사진을 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해방 전후, 전쟁 전후, 고픈 배를 움켜 지고 기도하던 시기입니다. 사회적으로도 모든 것이 무거웠습니다. 그 때는 유행가에도 인생 철학이 짙게 베어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지금은 천안함 사건에 연평도 포격에 북핵 실험처럼 국가의 안위가 뿌리 채 뽑힐 사안이 생겨도 TV에서는 밑도 끝도 없이 접시 물보다 더 얕은 수준의 우스꽝스런 말과 행동만 이어 집니다. 세상도 교회도 예전에는 무겁고 지금은 가볍기를 이루 말도 못하겠습니다. 교회마다 홈 페이지 전면에 목회자 사진이나 교회 행사 사진이 많으나 한결 같이 해 맑게 웃는 유치원의 아동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한 쪽은 즐겁고 기쁜데 가볍고
한 쪽은 무겁고 눌렸으나 속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신앙이며 어느 것이 우리의 길일까?
일부로 무거운 것처럼 분위기를 잡는다면 외식이나 자연스럽게 묻어 나고 속에 들어 있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 난 것이 무겁다면 이는 인생의 가치와 영생이 현실에 매여 있음을 알 때 나타 나는 현상입니다. 국내 칼빈신학 최고봉이라는 노학자의 사진이 치아를 전부 드러 내고 만면에 웃음을 담은 모습입니다. 다 이렇게 살고 싶고 모두가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
그 사진을 보며 또 1950년대 어느 교회 사진을 나란히 놓고 한 마디 했습니다. 이 사진은 신앙이 스쳐 지나 가 본 흔적도 없고, 이 쪽은 믿는 사람들이라고. 50년대 한국 교회는 곳곳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 시절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놓은 것이 이 나라 모든 교회들의 그 시기 사진입니다. 그리고 오늘 교계는 교회가 없고 예배가 없고 신앙이라는 것을 구경도 할 수 없는 시기입니다. 그 모습이 오늘 교회들의 사진에 그대로 드러 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요상한 때를 만났습니다. 기이한 일들을 대량으로 보고 있습니다.
얼굴은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창입니다. 창 안으로 들여다 본 소감을 적었습니다.
최근에 1950년대 사진 한 장 때문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1953년에서 1955년 사이에 찍은 사진인데 이 사진에 따라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님이 개척한 교회의 설립 연대가 나오며 거기에 따라 애양원교회와 미국의 남장로교 선교부와 사모님 사이에 얽힌 많은 비화가 드러 날 것입니다.
그런데 1950년대의 사진은 한결같이 무겁습니다. 이 것은 그 어느 교단의 당시 사진을 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해방 전후, 전쟁 전후, 고픈 배를 움켜 지고 기도하던 시기입니다. 사회적으로도 모든 것이 무거웠습니다. 그 때는 유행가에도 인생 철학이 짙게 베어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지금은 천안함 사건에 연평도 포격에 북핵 실험처럼 국가의 안위가 뿌리 채 뽑힐 사안이 생겨도 TV에서는 밑도 끝도 없이 접시 물보다 더 얕은 수준의 우스꽝스런 말과 행동만 이어 집니다. 세상도 교회도 예전에는 무겁고 지금은 가볍기를 이루 말도 못하겠습니다. 교회마다 홈 페이지 전면에 목회자 사진이나 교회 행사 사진이 많으나 한결 같이 해 맑게 웃는 유치원의 아동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한 쪽은 즐겁고 기쁜데 가볍고
한 쪽은 무겁고 눌렸으나 속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신앙이며 어느 것이 우리의 길일까?
일부로 무거운 것처럼 분위기를 잡는다면 외식이나 자연스럽게 묻어 나고 속에 들어 있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 난 것이 무겁다면 이는 인생의 가치와 영생이 현실에 매여 있음을 알 때 나타 나는 현상입니다. 국내 칼빈신학 최고봉이라는 노학자의 사진이 치아를 전부 드러 내고 만면에 웃음을 담은 모습입니다. 다 이렇게 살고 싶고 모두가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
그 사진을 보며 또 1950년대 어느 교회 사진을 나란히 놓고 한 마디 했습니다. 이 사진은 신앙이 스쳐 지나 가 본 흔적도 없고, 이 쪽은 믿는 사람들이라고. 50년대 한국 교회는 곳곳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 시절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놓은 것이 이 나라 모든 교회들의 그 시기 사진입니다. 그리고 오늘 교계는 교회가 없고 예배가 없고 신앙이라는 것을 구경도 할 수 없는 시기입니다. 그 모습이 오늘 교회들의 사진에 그대로 드러 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요상한 때를 만났습니다. 기이한 일들을 대량으로 보고 있습니다.
얼굴은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창입니다. 창 안으로 들여다 본 소감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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