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발전의 효용은 무한인가?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2.02.11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경제 원리에는 많아 질수록 좋아 지는 것이 많아 지다가 너무 많아 지게 되면 좋아 지는 것이 더 이상 올라 가지 않고 오히려 내려 오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배 고픈 사람이 밥을 한 숟가락씩 먹을 때마다 기쁨은 올라 가는데 한 그릇을 넘고 두 그릇을 먹게 되면 포만감을 느끼며 그 기쁨은 절정이 되나 그 이상을 먹으면 이제 사료를 먹듯 먹지 기쁨은 없어 집니다. 더 먹이면 고문이 될 것입니다.
물질효용체감의 법칙
경제의 원리는 사실 모든 물질에 적용 되는 원칙입니다. 물론 경제 법칙의 본질은 모든 물질에 해당 된다는 것은 상식인데 어디까지가 물질이냐는 것은 논란의 대상입니다. 공산주의는 정신 세계까지 모두가 물질이라고 주장하니 세상의 근본칙으로 보고 자본주의는 종교를 인정하기 때문에 물질이 아닌 분야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효용체감의 법칙은 이 세상 모든 분야에 무조건 다 해당 된다는 언급은 피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이니 당연히 우리 눈으로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만든 것은 영계와 우주이며 우주는 물질로 만들었고 영계는 영물로 되어 있습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물질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의 모든 것은 종교까지를 포함해서 물질입니다. 경제 학자들은 경제 법칙으로 물질효용체감의 법칙을 말하나 우리는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물질이고 물질은 우리가 죄를 지은 순간부터 하나님의 추가 은혜가 주어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한계효용의 법칙에 해당 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종교가 주는 기쁨과 사상과 도덕처럼 최고의 것으로부터 가장 저급에 있는 경제적 분야까지 다 마찬 가지입니다.
말세를 휘감는 대유행
6천 년 세계 역사를 통해 인류의 삶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았고 앞 세대와 후 세대가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백 년 전의 그 부엌이 향후 또 다른 수백 년이 아니라 수천 년을 그대로 갔고 오늘도 생존한 분들이 그 끝자락을 볼 수 있었던 정도로 미개 고대 사회는 발전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세 마지막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갑자기 세상은 굉음을 내며 발전이라는 기관차를 출발 시켰습니다. 그 발전은 산업혁명이라는 단어와 함께 어느 한 나라에서 시작했고 한 분야에서 일부를 상대로 시작을 했는데 주변이 슬슬 물 들고 따라 하더니 어느 한 순간 전 세계 모든 이들이 다 휩싸였고 내리막에 탄력을 충분히 받은 지금은 이제 미친 듯이 달리고 있습니다.
과거 세상은 '발전'이라는 이름에서 뒤 쳐지며 부럽게 쳐다 보거나 신기한 듯 구경을 하는 것은 끝 났으나 지금의 상황은 '발전'이라는 이름에 한 순간만 늦어 져도 세계적 기업이 망하고 한 나라가 희망 없이 전락하며 개인적으로는 처참한 몰골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런 전체 분위기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교회든 사회든 그 어느 사람이든 모든 분야에서 모든 사람의 정신을 '발전'에다 모아 놓고 다 삼켜 버렸습니다. 그 뒤에는 귀신이 배를 잡고 웃고 즐기며 승리의 웃음을 날리고 있습니다. 과거 그 어떤 무기나 방법으로도 삼키지 못했던 교회와 신앙까지 다 삼켰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배당을 새로 짓고 새로운 내부 시설과 각종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으로 발전을 삼고 그 발전에 교회의 생사와 흥망이 달린 줄 아는 정도요 이를 위해 전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 하나님과 진리와 신앙의 본래 추구하던 천국은 어느 덧 사라 져 버렸습니다. 중들이 사월초파일에 손님을 더 많이 끌어 모으려고 삼겹살 구이판을 벌이는 일이 있다면 불교로서는 자기 종교를 불 태운 것이라 하겠는데 교회는 지금 확실하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신앙도 세상도 발전이라는 단어 앞에 맥을 추지 못하고 넋을 잃고 자기 정신을 다 빼앗기고 그 것에게 홀린 듯이 따라 가고 있습니다.
각종 생활 편의 시설을 봅니다.
- KTX 고속철
이 나라 반도 제일 끝인 여수에서 서울까지 3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비행기로 1 시간이면 되지만 서민에게는 경제 부담이 커서 긴급한 일이 아니면 타기 어렵고 부자들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위험하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낫습니다. 말하자면 비상 수단이지 일상 생활은 아닙니다. 그런데 고속철도가 개통 되자 땅에 붙어서 달리는 안정과 안전이 담보 되고 경제적으로는 서민도 부담 없이 이용하게 되었는데 이 것의 속도가 문제입니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으나 우리를 기준으로 본다면 더 이상 발전은 부작용이 많아 지면서 전체 손익을 계산한다면 손해가 되겠다고 절감합니다.
시골의 시부모가 서울의 며느리 집을 가고 싶으면 간다고 연락하고 아무리 빨라도 3 시간은 여유를 줘야 하지 않을까? 현재 기술로 KTX를 1 시간에 주파하게 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아침 5시면 일어 나는 시골 부모가 만일 아침에 일어 나서 불쑥 손주가 보고 싶다 해서 7시에 KTX를 타고 8시에 도착한다며 서울로 나선다면? 며느리는 9시까지 자다가 10시에나 집을 치우기 시작할 터인데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어디 숨 쉴 틈이라도 좀 줘야지.
- 휴대폰
지금 휴대폰은 더 작아 지겠지만 손가락의 크기 때문에 더 이상 줄이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만일 음성 인식이 되는 방법으로 더 이상 작게 만들 수 있다면 앞으로도 더 줄어 들겠지만 생활 기준에서 본다면 현재처럼 이 정도 크기는 되어야 들고 다니며 손으로 운동을 하고 그 손가락이 자판이라도 쳐야 뇌 활동이라도 될 수 있을 것인데, 숨 소리를 인식하고 과거 손으로 움직이던 것이 다 대체가 된다면? 점점 그렇게 편리해 진다면 마지막에는 기계와 기술들이 인간은 없어 져도 된다고 말할 것이며 그런 말이 나오기 전에 인간은 스스로 자기 존재의 붕괴와 스러 짐을 느끼지도 못하고 사그라 질 것입니다.
논들에 나간 뒤에라도 몇 시간은 자기 정신을 차리고 숨을 쉬어야 할 터인데 휴대폰이 들어서 노에 나간 부모까지 불러 댑니다. 이렇게 쉴 틈이 없으니 생각할 틈이 없고 생각이 깊게 들어 갈 여지가 없으니 인간이 얕아 집니다. 인생이 가벼워 지고 인격이 없어 져서 온 세상이 지식을 배운 지성인으로 가득 찬 대신에 인간은 없고 짐승만 남아 난 꼴입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고속철과 휴대폰과 자가용과 인터넷 때문에 세상은 갈수록 더러워 져서 이제는 희망 없는 나락에 굴러 떨어 졌으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로 받고 또한 물질은 잘 사용하면 선물이고 잘못 사용하면 화가 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든 발전 된 세상 것을 가지고 신앙에 극도로 잘 활용하고자 합니다. 실제 오늘의 이 환경이면 역사 6천 년에 가장 믿기 좋고 복음운동을 극도로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발전을 위해 갈급을 느낀다면 큰 일입니다. 지금까지 주신 발전만 해도 우리 세대뿐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자기의 신앙과 복음운동을 위해서는 더 이상이 필요가 없다고 느껴 집니다.
통신과 정보와 교통과 지식과 생활에 이르기까지 현재 이 수준에서 이제 만족하고 모든 역량은 하나님을 향하고 주변을 심방하는 일에 주력할 시점으로 봅니다. 누가복음 12장의 부자처럼 곡간을 헐고 또 크게 짓고 새로 짓고 자꾸 마련하다가 한 번밖에 없는 세상을 허송한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절박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의 생활이 너무 풍요로워 하나님까지 잊고 세상을 즐기느라고 미쳐 있습니다.
신학교가 세상 학교를 흉내 내어 죽은 신앙을 양산하고 있는데 모르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쓸 수도 없고 쓸 필요도 없는 돈을 마련하고 쓰느라고 신앙을 팔고 있습니다.
현재 예배당이면 무엇으로 더 좋게 할 수도 없는데 헐고 또 새로 짓고 있습니다.
성경도 이만하면 아쉬운 것이 없는데 번역과 인쇄체와 종이와 겉포장을 바꾸고 있습니다.
아직도 넉넉히 쓸 수 있는 차와 가전제품과 주택 실내 장식을 공연히 바꾸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정도만 공부해도 세상 사는 데는 충분하고 넘치는데 중등 고등을 공부합니다.
소용 없는 일에 인생의 시간과 정력 전부를 쏟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주신 정도면 넘칩니다. 이제는 세상을 향한 모든 것을 중단하고 죽자껀 믿음에만 질주할 시점입니다. 시대적으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이 지혜와 결단을 하지 못하고 여전히 발전이 필요하다 생각한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느림의 미학이니 자연주의니 하는 죽은 지식에 현혹 되지 말고
우리는 천국에 소망을 가진 신앙인이니 우리를 심각하게 돌아 봐야 할 때입니다.
경제 원리에는 많아 질수록 좋아 지는 것이 많아 지다가 너무 많아 지게 되면 좋아 지는 것이 더 이상 올라 가지 않고 오히려 내려 오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배 고픈 사람이 밥을 한 숟가락씩 먹을 때마다 기쁨은 올라 가는데 한 그릇을 넘고 두 그릇을 먹게 되면 포만감을 느끼며 그 기쁨은 절정이 되나 그 이상을 먹으면 이제 사료를 먹듯 먹지 기쁨은 없어 집니다. 더 먹이면 고문이 될 것입니다.
물질효용체감의 법칙
경제의 원리는 사실 모든 물질에 적용 되는 원칙입니다. 물론 경제 법칙의 본질은 모든 물질에 해당 된다는 것은 상식인데 어디까지가 물질이냐는 것은 논란의 대상입니다. 공산주의는 정신 세계까지 모두가 물질이라고 주장하니 세상의 근본칙으로 보고 자본주의는 종교를 인정하기 때문에 물질이 아닌 분야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효용체감의 법칙은 이 세상 모든 분야에 무조건 다 해당 된다는 언급은 피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이니 당연히 우리 눈으로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만든 것은 영계와 우주이며 우주는 물질로 만들었고 영계는 영물로 되어 있습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물질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의 모든 것은 종교까지를 포함해서 물질입니다. 경제 학자들은 경제 법칙으로 물질효용체감의 법칙을 말하나 우리는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물질이고 물질은 우리가 죄를 지은 순간부터 하나님의 추가 은혜가 주어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한계효용의 법칙에 해당 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종교가 주는 기쁨과 사상과 도덕처럼 최고의 것으로부터 가장 저급에 있는 경제적 분야까지 다 마찬 가지입니다.
말세를 휘감는 대유행
6천 년 세계 역사를 통해 인류의 삶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았고 앞 세대와 후 세대가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백 년 전의 그 부엌이 향후 또 다른 수백 년이 아니라 수천 년을 그대로 갔고 오늘도 생존한 분들이 그 끝자락을 볼 수 있었던 정도로 미개 고대 사회는 발전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세 마지막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갑자기 세상은 굉음을 내며 발전이라는 기관차를 출발 시켰습니다. 그 발전은 산업혁명이라는 단어와 함께 어느 한 나라에서 시작했고 한 분야에서 일부를 상대로 시작을 했는데 주변이 슬슬 물 들고 따라 하더니 어느 한 순간 전 세계 모든 이들이 다 휩싸였고 내리막에 탄력을 충분히 받은 지금은 이제 미친 듯이 달리고 있습니다.
과거 세상은 '발전'이라는 이름에서 뒤 쳐지며 부럽게 쳐다 보거나 신기한 듯 구경을 하는 것은 끝 났으나 지금의 상황은 '발전'이라는 이름에 한 순간만 늦어 져도 세계적 기업이 망하고 한 나라가 희망 없이 전락하며 개인적으로는 처참한 몰골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런 전체 분위기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교회든 사회든 그 어느 사람이든 모든 분야에서 모든 사람의 정신을 '발전'에다 모아 놓고 다 삼켜 버렸습니다. 그 뒤에는 귀신이 배를 잡고 웃고 즐기며 승리의 웃음을 날리고 있습니다. 과거 그 어떤 무기나 방법으로도 삼키지 못했던 교회와 신앙까지 다 삼켰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배당을 새로 짓고 새로운 내부 시설과 각종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으로 발전을 삼고 그 발전에 교회의 생사와 흥망이 달린 줄 아는 정도요 이를 위해 전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 하나님과 진리와 신앙의 본래 추구하던 천국은 어느 덧 사라 져 버렸습니다. 중들이 사월초파일에 손님을 더 많이 끌어 모으려고 삼겹살 구이판을 벌이는 일이 있다면 불교로서는 자기 종교를 불 태운 것이라 하겠는데 교회는 지금 확실하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신앙도 세상도 발전이라는 단어 앞에 맥을 추지 못하고 넋을 잃고 자기 정신을 다 빼앗기고 그 것에게 홀린 듯이 따라 가고 있습니다.
각종 생활 편의 시설을 봅니다.
- KTX 고속철
이 나라 반도 제일 끝인 여수에서 서울까지 3 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비행기로 1 시간이면 되지만 서민에게는 경제 부담이 커서 긴급한 일이 아니면 타기 어렵고 부자들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위험하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낫습니다. 말하자면 비상 수단이지 일상 생활은 아닙니다. 그런데 고속철도가 개통 되자 땅에 붙어서 달리는 안정과 안전이 담보 되고 경제적으로는 서민도 부담 없이 이용하게 되었는데 이 것의 속도가 문제입니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으나 우리를 기준으로 본다면 더 이상 발전은 부작용이 많아 지면서 전체 손익을 계산한다면 손해가 되겠다고 절감합니다.
시골의 시부모가 서울의 며느리 집을 가고 싶으면 간다고 연락하고 아무리 빨라도 3 시간은 여유를 줘야 하지 않을까? 현재 기술로 KTX를 1 시간에 주파하게 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아침 5시면 일어 나는 시골 부모가 만일 아침에 일어 나서 불쑥 손주가 보고 싶다 해서 7시에 KTX를 타고 8시에 도착한다며 서울로 나선다면? 며느리는 9시까지 자다가 10시에나 집을 치우기 시작할 터인데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어디 숨 쉴 틈이라도 좀 줘야지.
- 휴대폰
지금 휴대폰은 더 작아 지겠지만 손가락의 크기 때문에 더 이상 줄이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만일 음성 인식이 되는 방법으로 더 이상 작게 만들 수 있다면 앞으로도 더 줄어 들겠지만 생활 기준에서 본다면 현재처럼 이 정도 크기는 되어야 들고 다니며 손으로 운동을 하고 그 손가락이 자판이라도 쳐야 뇌 활동이라도 될 수 있을 것인데, 숨 소리를 인식하고 과거 손으로 움직이던 것이 다 대체가 된다면? 점점 그렇게 편리해 진다면 마지막에는 기계와 기술들이 인간은 없어 져도 된다고 말할 것이며 그런 말이 나오기 전에 인간은 스스로 자기 존재의 붕괴와 스러 짐을 느끼지도 못하고 사그라 질 것입니다.
논들에 나간 뒤에라도 몇 시간은 자기 정신을 차리고 숨을 쉬어야 할 터인데 휴대폰이 들어서 노에 나간 부모까지 불러 댑니다. 이렇게 쉴 틈이 없으니 생각할 틈이 없고 생각이 깊게 들어 갈 여지가 없으니 인간이 얕아 집니다. 인생이 가벼워 지고 인격이 없어 져서 온 세상이 지식을 배운 지성인으로 가득 찬 대신에 인간은 없고 짐승만 남아 난 꼴입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고속철과 휴대폰과 자가용과 인터넷 때문에 세상은 갈수록 더러워 져서 이제는 희망 없는 나락에 굴러 떨어 졌으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로 받고 또한 물질은 잘 사용하면 선물이고 잘못 사용하면 화가 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든 발전 된 세상 것을 가지고 신앙에 극도로 잘 활용하고자 합니다. 실제 오늘의 이 환경이면 역사 6천 년에 가장 믿기 좋고 복음운동을 극도로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발전을 위해 갈급을 느낀다면 큰 일입니다. 지금까지 주신 발전만 해도 우리 세대뿐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자기의 신앙과 복음운동을 위해서는 더 이상이 필요가 없다고 느껴 집니다.
통신과 정보와 교통과 지식과 생활에 이르기까지 현재 이 수준에서 이제 만족하고 모든 역량은 하나님을 향하고 주변을 심방하는 일에 주력할 시점으로 봅니다. 누가복음 12장의 부자처럼 곡간을 헐고 또 크게 짓고 새로 짓고 자꾸 마련하다가 한 번밖에 없는 세상을 허송한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절박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의 생활이 너무 풍요로워 하나님까지 잊고 세상을 즐기느라고 미쳐 있습니다.
신학교가 세상 학교를 흉내 내어 죽은 신앙을 양산하고 있는데 모르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쓸 수도 없고 쓸 필요도 없는 돈을 마련하고 쓰느라고 신앙을 팔고 있습니다.
현재 예배당이면 무엇으로 더 좋게 할 수도 없는데 헐고 또 새로 짓고 있습니다.
성경도 이만하면 아쉬운 것이 없는데 번역과 인쇄체와 종이와 겉포장을 바꾸고 있습니다.
아직도 넉넉히 쓸 수 있는 차와 가전제품과 주택 실내 장식을 공연히 바꾸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정도만 공부해도 세상 사는 데는 충분하고 넘치는데 중등 고등을 공부합니다.
소용 없는 일에 인생의 시간과 정력 전부를 쏟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주신 정도면 넘칩니다. 이제는 세상을 향한 모든 것을 중단하고 죽자껀 믿음에만 질주할 시점입니다. 시대적으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이 지혜와 결단을 하지 못하고 여전히 발전이 필요하다 생각한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느림의 미학이니 자연주의니 하는 죽은 지식에 현혹 되지 말고
우리는 천국에 소망을 가진 신앙인이니 우리를 심각하게 돌아 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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