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신앙 세계에서 기술을 접할 때는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2.02.18
/초기화면/총공회/발언/ 게시판에 오늘 올려 진 글의 문답을 통해 큰 깨우침과 큰 지혜와 큰 경각을 받았습니다.
(발언 A)
>> 교인98 님이 쓰신 내용 <
:
: 예전 백목사님 생전 말씀 증거 때마다 많은 교인들이 필기를 하고 어떤 이들은 몰래
: 스피커가 나오는 곳 밑에서 여러개의 소형마이크를 연결하여 녹음을 하는 진풍경을
: 볼수가 있었습니다.
: 녹음한 것을 다시 틀어 필기를 하기도 새김질을 한 것 같습니다.
: 나아가 녹음을 허락하고, 목회설교록이 나오면서 재독의 여건이 좋아졌습니다.
: 또 인터넷으로 백목사님의 설교와 설교록과 필기하신 것을,
: 또는 설교하신 것을 요약을 하거나, 정리를 하거나, 한페이지로 요약정리를 하거나 하는
: 많은 활동과 수고로 인해 더 많은 접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습니다.
:
: 이렇게 귀한 조건이 되었음에도 개인적으로 활용면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 다행히도 이 귀한 노선과 복음의 말씀을 더 현실에서 백목사님의 목회설교록을 적용시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종의 인도와 설교가 있어서 참 감사하게 됩니다.
:
: 그래도 주신 귀한 자료를 통한 새김질은 계속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발언 B)
: 500여 년 전에 성경
: 필사 시대가 끝나고 성경 인쇄 시대가 열렸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이 누구든지 성경을
: 직접 소유하고 읽게 된 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지는 것만 가지고
: 복이라 하기는 이르고 성경을 마음대로 읽게 된 그 자체가 무조건 복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필사 시대는 성경책을 보고 읽는 것은 너무 어려웠으나 그 때문에 성경에 대한 앙망과
: 집중력은 극대화 되어 접하는 몇 말씀을 붙들고 시대를 감당하는 극진한 종들이 많이
: 나왔습니다. 반면에 인쇄 시대를 맞아 성경책은 누구나 가지지만 그 속에 내용은 수박
: 겉핥기 식으로 상대하게 되었고 아무나 가졌고 언제든지 읽을 수 있다는 그 복이 들어서
: 성경을 접하는 우리 모두를 방심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성경을 경홀히 여기게 만들었으며
: 이 자세 때문에 성경 인쇄 시대는 보이는 성경은 넘쳐 나지만 볼 수 없는 성경 신앙은
: 실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 성경에 비할 수는 없으나 원리는 같습니다. 70년대까지는 설교 필기 시대였고 80년대에
: 접어 들며 설교록 시대가 열렸고 90년대부터는 전산 자료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를
: 맞아 설교록 내용의 신앙 활용은 과거 선배들과 비교하면 비교가 될 수 없도록 폭증
: 되었으나 설교 내용이 자기를 만들어 가는 구원 활용에는 엄청난 손실을 갖게 되었습니다.
: 인터넷과 컴퓨터를 통해 활용해야 할 것은 하고, 한 글자씩 적어 가며 새길 것은 그렇게
: 해야 신앙과 신학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 있는 생명과 그 활용이 극대화가 될 터인데 한
: 쪽으로 치우 칠까 걱정입니다.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면 공회는 인터넷과 컴퓨터를
: 포기하여 편의성을 손해 볼지라도 교훈의 한 조각을 붙들고 자신을 만들어 가는 일을 붙듭니다.
: 윗글의 깨우침에 감사하며 이 홈의 직원으로서 좋은 권면을 이 곳을 찾는 모든 분과
: 함께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신앙 세계는 세상과 달라서 필사 세계든 인쇄 세계든 컴퓨터 세계든 본질적으로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바로 사용하고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발달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심부름할 때 더 멀리 더 빠르게 하도록 주신 선물이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빠르고 효력 있는 선물은 그 선물을 잘못 알고 잘못 사용하게 되면 화도 그만큼 커집니다. 그래서 그 어떤 것이든 세상 것은 그 자체로는 화와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선물이라는 표현은 할 수 있습니다. 선물이라는 표현은 사용에 따라서는 화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홈의 순 기능을 말한다면 효율일 것입니다. 이렇게 어두운 말세에 그 어떤 진리의 빛이든 바로 찾아 바로 들이 댈 수가 있다는 점과 이 복음을 전하는 속도와 분량에 있어서는 정말 굉장합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에 살아 역사하고 있었다면 세계 전부를 단숨에 뒤 집어 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주지 않으시기로 했기 때문에 그 시기에는 이런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가 사람만 되면 우리를 통해 나가는 복음은 한량이 없도록 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탄식이 무엇일까?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효력이 있도록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 하나님을 기술이 아니라 말이 아니라 마음 깊은 속에 들어 앉아 있는 인격을 기울여 가까이 하는 것을 기뻐하실까? 분명히 후자입니다. 기술 면에서는 아무리 손해를 보고 늦다 해도 하나님께 제대로 붙들리는 사람이 되어 지기만 하면 하나님의 솜씨는 그 까짓 것 순식간에 다 해치웁니다. 이미 주신 기술과 이 시대 환경은 소중하게 잘 활용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심은 오로지 하나님을 향해야 하는데 바로 이 면을 위해서는 컴퓨터보다는 종이로 된 성경이, 그리고 그 성경은 읽기 보다는 쓰기가 낫고, 그 보다는 암송이 더 낫습니다.
예배도 실시간을 활용하여 불가피할 때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야 하나, 정상적으로 말한다면 실시간보다는 차를 타고 예배당을 가야 낫고 차보다는 발로 걸어 가는 것이 낫습니다. 예배당에 가서도 안락 의자보다는 딱딱한 나무 의자가 낫고 그보다는 앉아서 보는 것이 낫고 그보다는 꿇어 앉는 것이 좋은데 이 것은 자기의 건강 형편까지를 고려해서 연보해야지 아나니아 삽비라 꼴이 나면 안 되는 면이 있습니다.
이 홈의 편리함을 붙들면서도 필사본 시대의 종들보다 더 두렵고 떨림으로 긴장하고 조심하며 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 떨고 있는 우리를 만드기를 소원하며.
(발언 A)
>> 교인98 님이 쓰신 내용 <
:
: 예전 백목사님 생전 말씀 증거 때마다 많은 교인들이 필기를 하고 어떤 이들은 몰래
: 스피커가 나오는 곳 밑에서 여러개의 소형마이크를 연결하여 녹음을 하는 진풍경을
: 볼수가 있었습니다.
: 녹음한 것을 다시 틀어 필기를 하기도 새김질을 한 것 같습니다.
: 나아가 녹음을 허락하고, 목회설교록이 나오면서 재독의 여건이 좋아졌습니다.
: 또 인터넷으로 백목사님의 설교와 설교록과 필기하신 것을,
: 또는 설교하신 것을 요약을 하거나, 정리를 하거나, 한페이지로 요약정리를 하거나 하는
: 많은 활동과 수고로 인해 더 많은 접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습니다.
:
: 이렇게 귀한 조건이 되었음에도 개인적으로 활용면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 다행히도 이 귀한 노선과 복음의 말씀을 더 현실에서 백목사님의 목회설교록을 적용시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종의 인도와 설교가 있어서 참 감사하게 됩니다.
:
: 그래도 주신 귀한 자료를 통한 새김질은 계속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발언 B)
: 500여 년 전에 성경
: 필사 시대가 끝나고 성경 인쇄 시대가 열렸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이 누구든지 성경을
: 직접 소유하고 읽게 된 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지는 것만 가지고
: 복이라 하기는 이르고 성경을 마음대로 읽게 된 그 자체가 무조건 복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필사 시대는 성경책을 보고 읽는 것은 너무 어려웠으나 그 때문에 성경에 대한 앙망과
: 집중력은 극대화 되어 접하는 몇 말씀을 붙들고 시대를 감당하는 극진한 종들이 많이
: 나왔습니다. 반면에 인쇄 시대를 맞아 성경책은 누구나 가지지만 그 속에 내용은 수박
: 겉핥기 식으로 상대하게 되었고 아무나 가졌고 언제든지 읽을 수 있다는 그 복이 들어서
: 성경을 접하는 우리 모두를 방심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성경을 경홀히 여기게 만들었으며
: 이 자세 때문에 성경 인쇄 시대는 보이는 성경은 넘쳐 나지만 볼 수 없는 성경 신앙은
: 실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 성경에 비할 수는 없으나 원리는 같습니다. 70년대까지는 설교 필기 시대였고 80년대에
: 접어 들며 설교록 시대가 열렸고 90년대부터는 전산 자료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를
: 맞아 설교록 내용의 신앙 활용은 과거 선배들과 비교하면 비교가 될 수 없도록 폭증
: 되었으나 설교 내용이 자기를 만들어 가는 구원 활용에는 엄청난 손실을 갖게 되었습니다.
: 인터넷과 컴퓨터를 통해 활용해야 할 것은 하고, 한 글자씩 적어 가며 새길 것은 그렇게
: 해야 신앙과 신학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 있는 생명과 그 활용이 극대화가 될 터인데 한
: 쪽으로 치우 칠까 걱정입니다.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면 공회는 인터넷과 컴퓨터를
: 포기하여 편의성을 손해 볼지라도 교훈의 한 조각을 붙들고 자신을 만들어 가는 일을 붙듭니다.
: 윗글의 깨우침에 감사하며 이 홈의 직원으로서 좋은 권면을 이 곳을 찾는 모든 분과
: 함께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신앙 세계는 세상과 달라서 필사 세계든 인쇄 세계든 컴퓨터 세계든 본질적으로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바로 사용하고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발달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심부름할 때 더 멀리 더 빠르게 하도록 주신 선물이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빠르고 효력 있는 선물은 그 선물을 잘못 알고 잘못 사용하게 되면 화도 그만큼 커집니다. 그래서 그 어떤 것이든 세상 것은 그 자체로는 화와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선물이라는 표현은 할 수 있습니다. 선물이라는 표현은 사용에 따라서는 화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홈의 순 기능을 말한다면 효율일 것입니다. 이렇게 어두운 말세에 그 어떤 진리의 빛이든 바로 찾아 바로 들이 댈 수가 있다는 점과 이 복음을 전하는 속도와 분량에 있어서는 정말 굉장합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에 살아 역사하고 있었다면 세계 전부를 단숨에 뒤 집어 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주지 않으시기로 했기 때문에 그 시기에는 이런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가 사람만 되면 우리를 통해 나가는 복음은 한량이 없도록 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탄식이 무엇일까?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효력이 있도록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 하나님을 기술이 아니라 말이 아니라 마음 깊은 속에 들어 앉아 있는 인격을 기울여 가까이 하는 것을 기뻐하실까? 분명히 후자입니다. 기술 면에서는 아무리 손해를 보고 늦다 해도 하나님께 제대로 붙들리는 사람이 되어 지기만 하면 하나님의 솜씨는 그 까짓 것 순식간에 다 해치웁니다. 이미 주신 기술과 이 시대 환경은 소중하게 잘 활용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심은 오로지 하나님을 향해야 하는데 바로 이 면을 위해서는 컴퓨터보다는 종이로 된 성경이, 그리고 그 성경은 읽기 보다는 쓰기가 낫고, 그 보다는 암송이 더 낫습니다.
예배도 실시간을 활용하여 불가피할 때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야 하나, 정상적으로 말한다면 실시간보다는 차를 타고 예배당을 가야 낫고 차보다는 발로 걸어 가는 것이 낫습니다. 예배당에 가서도 안락 의자보다는 딱딱한 나무 의자가 낫고 그보다는 앉아서 보는 것이 낫고 그보다는 꿇어 앉는 것이 좋은데 이 것은 자기의 건강 형편까지를 고려해서 연보해야지 아나니아 삽비라 꼴이 나면 안 되는 면이 있습니다.
이 홈의 편리함을 붙들면서도 필사본 시대의 종들보다 더 두렵고 떨림으로 긴장하고 조심하며 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 떨고 있는 우리를 만드기를 소원하며.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