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극단적으로 맞지 않아 고통하는 부부에게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2.02.29
저희 교회 게시판에 올려 본 내용입니다.
제목: 극단적인 부부의 이야기
일시: ◎ 2012/2/29(수)
총공회에는 전국에 몇 개의 지방공회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 지방공회에는 백 목사님 생전에 장로님을 단 1 명만 세웠습니다. 부부 교사로 사셨습니다. 가슴 아프게도 지금은 부부가 통합측 교단에서 그 지역의 제일 잘 나가는 교회의 중심 장로님 권사님이 되어 계십니다. 부인 권사님은 보기 드문 '똑똑하고 당찬' 공회 집사님이셨고 남편 장로님은 경찰서 앞에서 제일 큰 여관집 자제며, 잘 나가는 목욕탕도 경영했던 분입니다. 지금도 이 분들 마음에는 이 땅 위에 백 목사님과 같은 분이 없고, 그 분께 받은 은혜를 새기며 평생 산다 하십니다.
권사님은 장로님을 전도했고, 어느 날 신앙의 사람으로 만드셨고, 그 지역의 지방공회에 단 1 명 장로님으로 세웠습니다. 제가 전화를 하면 남편 장로님은 아내와 대화하라면서 전화를 그대로 넘겨 줍니다. 성격이 불 같고 스스로 대학을 다닐 때 주먹을 쓰고 다녔다 하셨는데 이렇게 가정적이었나 하여 놀랐습니다. 그 사연입니다.
젊은 날에, 남편이나 아내나 한 쪽이 너무 강해서 또는 양 쪽이 함께 너무 강해서 고통 받는 분들이 계신다면 하나님 주신 인생의 훗날과 먼날과 오랜 세월 후를 참고해 보시라고 올렸습니다. 며칠 간 우리는 마태복음 5장 31절 이하의 말씀에서 부부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예가 됩니다.
우리 교인 전부에게 가정과 부부의 은혜를 구하며
오늘도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분들께
사회 올림
---------------------------------------------------------------------------
깐깐이를 갈아엎은 무덤덤이
꼬장꼬장 따지는 아내와 단순하게 넘기는 무덤덤한 남편이 인생 천칭에 올랐습니다. 둘은 만나면서부터 의견 다툼이 일었어요. 남편 주장은 강하고 아내 생각은 인정받지 못하여 수평을 이루지 못했어요. 아내 의견은 늘 허공에서 버둥거리기 일쑤였지요.
결혼 전 데이트할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밀려나오는 버스터미널 앞을 지나다가 남자가 갑자기 눈꼬리를 치켜세웠어요. 남자 옆에 바짝 붙어 걸으라는 신호를 보냈는데, 여자는 인파에 휩쓸려 사이가 뜨고 말았어요. 한참을 가다 거리가 좁혀졌고 여자는 왜 남자가 뿔이 났으며 눈에 불똥이 튀는지 알 수가 없었지요. 삐진 남자는 전혀 말을 하지 않고 한나절쯤 지나서야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어졌어요. 어이없고 답답한 여자는 따지려다 말고 그냥 넘어갔지요. 이러는 것이 사랑하는 남녀에겐 별 문제될 것 같지 않았지요.
47년을 함께 살았어요. 아내는 남편과 생각이 달라도 양보하며 살았어요. 아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단순한 남편은 으레 그러려니 하며 대수롭잖게 생각했지요. 성질이 급하고 완벽주의인 남편은 아내보다 자기 생각이 우선이었으니까요.
처녀시절에는 누구에게 지지 않던 아내였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다가는 욱하고 치받는 남편 때문에 집안이 시끄러워질까 싶고,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아내는 따지다가 못돼먹은 여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서 참다 참다 가슴에 멍이 들고 말았지요. 남편의 목소리 톤이 조금만 올라가도 속이 뒤집어지는 울화병이 생긴 거였어요. 억울해서 악이 받혀 팔짝팔짝 뛰는데도 남편은 꿈쩍을 하지 않았어요. 눈물을 흘려야 여자 맛이 난다는 남편의 말은 도대체 경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요. 발악을 하며 옳고 그름을 따져도 소용없는 것을 안 아내는 차분한 목소리로 울화가 치미는 감정을 남편에게 호소해보았지만, 여자 형제가 드문 가부장적 집안에서 떠받들어진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지요.
중년이 돼서야 아내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읽었어요.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덜 힘들었을까요? 억울해하던 아내는 그 책을 읽은 뒤에야 “생판 다른 별에서 온 까닭이야!” 라고 자위할 수 있었지요.
그러던 남편이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내를 이기고야 마는 남편 역시 힘들지 않았겠어요. 가정의 평온이 깨지고 속이 상한 아내가 심장병이 나서 자주 앓아눕자 남편은 가까이 놓여 있는 성경책을 읽게 되었어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오묘하게 지으신 창조주에 대해 궁금한 남편은 성경말씀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갔지요. 비로소 세상을 보는 심안이 열리고 자연만물에서 창조주의 신비한 솜씨를 느꼈지요. 그것들과 어울려 살면서 넘어지고 일어서는, 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람들의 실례들을 접하면서 남편은 과거에 무심히 보아왔던 사람들과 당면한 현실에 견주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지요.
피조물 중에 사람으로 살아야 할 바른 길이 보이고, 그 길을 바르게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신을 알고 ‘인생살이의 지혜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큰 기쁨을 맛보았지요.
먼저는 아내가 자기 몸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난산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태어난 자식들을 보면서 아내를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깨달았을까요. 부부가 살면서 온전히 하나로 합쳐지는 비밀을 눈치 챘을까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꼬장꼬장하던 아내는 시시때때로 갈아엎는 남편의 담금질과 쟁기질로 껍데기사람은 파헤쳐지고 속에 숨쉬고 있던, 창조의 본성대로 남편을 돕는 배필로서 살아가지 않고는 견뎌낼 수가 없었지요. 그것은 자신의 마음밭에 뿌려지는 문제의 씨앗이 건조하든 습하든, 그 날씨가 궂든 좋든 상관없이 ‘창조주의 뜻’인 내조(內(내)助(조))의 힘이 뿌리내리고 싹이 나 잎이 돋고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안 것입니다. 그제야 부담스러우면서도 기쁘게 살 만했지요. 아내는 남편에게서 무시당한다는 선입견이 사라지고 새로이 눈을 떴지요. 남편의 듬직한 면모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남편은 시대적으로 상처 입은 상흔을 지녔을 수 있고,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 아내는 “역시, 악(자기중심, 이기심)을 가지고 있는 내가 누구를 비난한다는 말인가.” 하고 깊이 자각했지요. 남편이 ‘멋지고 좋은 남자’로 완벽하길 바라는 자신의 집착에 있었던 것을 안 것입니다.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남편을 유치하게 보고 오만한 자신의 틀 속에 가두려했던 것을요.
아내는 속에 내주(內住)하신 창조주의 끝없는 사랑을 느끼고, 때때로 측은히 용서해주시어 힘을 차리는 자신을 보았어요. 그분이 이미 용서하신 자신과 남편의 약한 인간성을 때때로 용서하면서 사람 사랑하는 법을 배웠지요. 창조주가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대우하신 까닭을 안 남편은 47년 인생살이에 순응하며 온유한 성품으로 변해갔습니다.
가정을, 가정의 질서를 창조의 근본 질서로 깨달은 아내는 자신을 사랑했기에 알게 모르게 담금질해준 남편을 존경하게 되었지요. 창조주를 알고, 자신을 여자로 지으신 목적과 그 빈틈없는 삶의 질서가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47년을 함께 부대끼는 동안 부부애는 물론 ‘사람은 넘어지면서 남을 넘어뜨리고, 다시 일어서면서 남도 일으켜준다.’는 인간애를 터득한 것입니다.
제목: 극단적인 부부의 이야기
일시: ◎ 2012/2/29(수)
총공회에는 전국에 몇 개의 지방공회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 지방공회에는 백 목사님 생전에 장로님을 단 1 명만 세웠습니다. 부부 교사로 사셨습니다. 가슴 아프게도 지금은 부부가 통합측 교단에서 그 지역의 제일 잘 나가는 교회의 중심 장로님 권사님이 되어 계십니다. 부인 권사님은 보기 드문 '똑똑하고 당찬' 공회 집사님이셨고 남편 장로님은 경찰서 앞에서 제일 큰 여관집 자제며, 잘 나가는 목욕탕도 경영했던 분입니다. 지금도 이 분들 마음에는 이 땅 위에 백 목사님과 같은 분이 없고, 그 분께 받은 은혜를 새기며 평생 산다 하십니다.
권사님은 장로님을 전도했고, 어느 날 신앙의 사람으로 만드셨고, 그 지역의 지방공회에 단 1 명 장로님으로 세웠습니다. 제가 전화를 하면 남편 장로님은 아내와 대화하라면서 전화를 그대로 넘겨 줍니다. 성격이 불 같고 스스로 대학을 다닐 때 주먹을 쓰고 다녔다 하셨는데 이렇게 가정적이었나 하여 놀랐습니다. 그 사연입니다.
젊은 날에, 남편이나 아내나 한 쪽이 너무 강해서 또는 양 쪽이 함께 너무 강해서 고통 받는 분들이 계신다면 하나님 주신 인생의 훗날과 먼날과 오랜 세월 후를 참고해 보시라고 올렸습니다. 며칠 간 우리는 마태복음 5장 31절 이하의 말씀에서 부부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예가 됩니다.
우리 교인 전부에게 가정과 부부의 은혜를 구하며
오늘도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분들께
사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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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이를 갈아엎은 무덤덤이
꼬장꼬장 따지는 아내와 단순하게 넘기는 무덤덤한 남편이 인생 천칭에 올랐습니다. 둘은 만나면서부터 의견 다툼이 일었어요. 남편 주장은 강하고 아내 생각은 인정받지 못하여 수평을 이루지 못했어요. 아내 의견은 늘 허공에서 버둥거리기 일쑤였지요.
결혼 전 데이트할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밀려나오는 버스터미널 앞을 지나다가 남자가 갑자기 눈꼬리를 치켜세웠어요. 남자 옆에 바짝 붙어 걸으라는 신호를 보냈는데, 여자는 인파에 휩쓸려 사이가 뜨고 말았어요. 한참을 가다 거리가 좁혀졌고 여자는 왜 남자가 뿔이 났으며 눈에 불똥이 튀는지 알 수가 없었지요. 삐진 남자는 전혀 말을 하지 않고 한나절쯤 지나서야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어졌어요. 어이없고 답답한 여자는 따지려다 말고 그냥 넘어갔지요. 이러는 것이 사랑하는 남녀에겐 별 문제될 것 같지 않았지요.
47년을 함께 살았어요. 아내는 남편과 생각이 달라도 양보하며 살았어요. 아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단순한 남편은 으레 그러려니 하며 대수롭잖게 생각했지요. 성질이 급하고 완벽주의인 남편은 아내보다 자기 생각이 우선이었으니까요.
처녀시절에는 누구에게 지지 않던 아내였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다가는 욱하고 치받는 남편 때문에 집안이 시끄러워질까 싶고,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아내는 따지다가 못돼먹은 여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서 참다 참다 가슴에 멍이 들고 말았지요. 남편의 목소리 톤이 조금만 올라가도 속이 뒤집어지는 울화병이 생긴 거였어요. 억울해서 악이 받혀 팔짝팔짝 뛰는데도 남편은 꿈쩍을 하지 않았어요. 눈물을 흘려야 여자 맛이 난다는 남편의 말은 도대체 경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요. 발악을 하며 옳고 그름을 따져도 소용없는 것을 안 아내는 차분한 목소리로 울화가 치미는 감정을 남편에게 호소해보았지만, 여자 형제가 드문 가부장적 집안에서 떠받들어진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지요.
중년이 돼서야 아내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읽었어요.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덜 힘들었을까요? 억울해하던 아내는 그 책을 읽은 뒤에야 “생판 다른 별에서 온 까닭이야!” 라고 자위할 수 있었지요.
그러던 남편이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내를 이기고야 마는 남편 역시 힘들지 않았겠어요. 가정의 평온이 깨지고 속이 상한 아내가 심장병이 나서 자주 앓아눕자 남편은 가까이 놓여 있는 성경책을 읽게 되었어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오묘하게 지으신 창조주에 대해 궁금한 남편은 성경말씀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갔지요. 비로소 세상을 보는 심안이 열리고 자연만물에서 창조주의 신비한 솜씨를 느꼈지요. 그것들과 어울려 살면서 넘어지고 일어서는, 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람들의 실례들을 접하면서 남편은 과거에 무심히 보아왔던 사람들과 당면한 현실에 견주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지요.
피조물 중에 사람으로 살아야 할 바른 길이 보이고, 그 길을 바르게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신을 알고 ‘인생살이의 지혜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큰 기쁨을 맛보았지요.
먼저는 아내가 자기 몸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난산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태어난 자식들을 보면서 아내를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깨달았을까요. 부부가 살면서 온전히 하나로 합쳐지는 비밀을 눈치 챘을까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꼬장꼬장하던 아내는 시시때때로 갈아엎는 남편의 담금질과 쟁기질로 껍데기사람은 파헤쳐지고 속에 숨쉬고 있던, 창조의 본성대로 남편을 돕는 배필로서 살아가지 않고는 견뎌낼 수가 없었지요. 그것은 자신의 마음밭에 뿌려지는 문제의 씨앗이 건조하든 습하든, 그 날씨가 궂든 좋든 상관없이 ‘창조주의 뜻’인 내조(內(내)助(조))의 힘이 뿌리내리고 싹이 나 잎이 돋고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안 것입니다. 그제야 부담스러우면서도 기쁘게 살 만했지요. 아내는 남편에게서 무시당한다는 선입견이 사라지고 새로이 눈을 떴지요. 남편의 듬직한 면모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남편은 시대적으로 상처 입은 상흔을 지녔을 수 있고,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 아내는 “역시, 악(자기중심, 이기심)을 가지고 있는 내가 누구를 비난한다는 말인가.” 하고 깊이 자각했지요. 남편이 ‘멋지고 좋은 남자’로 완벽하길 바라는 자신의 집착에 있었던 것을 안 것입니다.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남편을 유치하게 보고 오만한 자신의 틀 속에 가두려했던 것을요.
아내는 속에 내주(內住)하신 창조주의 끝없는 사랑을 느끼고, 때때로 측은히 용서해주시어 힘을 차리는 자신을 보았어요. 그분이 이미 용서하신 자신과 남편의 약한 인간성을 때때로 용서하면서 사람 사랑하는 법을 배웠지요. 창조주가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대우하신 까닭을 안 남편은 47년 인생살이에 순응하며 온유한 성품으로 변해갔습니다.
가정을, 가정의 질서를 창조의 근본 질서로 깨달은 아내는 자신을 사랑했기에 알게 모르게 담금질해준 남편을 존경하게 되었지요. 창조주를 알고, 자신을 여자로 지으신 목적과 그 빈틈없는 삶의 질서가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47년을 함께 부대끼는 동안 부부애는 물론 ‘사람은 넘어지면서 남을 넘어뜨리고, 다시 일어서면서 남도 일으켜준다.’는 인간애를 터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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