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민족성, 공회성 - 자연계시와 그 관철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2.03.22
3월 12일부터 한 주간 청년들을 위해 강의가 있었습니다. 좀 특별한 자리여서 신앙 이야기는 빼고 세상 살아 가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불신자나 중들을 모아 놓았다 해도 반발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세상, 그 세상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심층 분석을 하다 보면 저절로 이 세상을 만든 주인의 이야기는 나올 수밖에 없고, 그 이야기를 차분하게 분석하면 저절로 성경 진리의 길에 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평균 수준의 일반인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살펴 보았습니다.
그 중에 임진왜란의 전시를 두고 일본과 우리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일본은 대장의 말에 목숨을 걸고 따릅니다. 임무에 실패하면 자결이란 흔합니다. 우리는 죽여 달라고 펄펄 뛰지만 임무 실패로 죽는 사람은 조선 말기 나라를 내어 줄 때도 전국에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 키기 전에 섬나라 전국에 흩어 진 세력들 사이에 통일전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힘도 길렀고 또 많은 무장들이 확보 되었습니다. 그들의 전쟁은 적의 머리만 잡으면 그 것은 끝이 납니다. 그래서 장기의 왕 잡기처럼 진행을 합니다. 적의 본부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성주를 잡으면 되는데 이런 사고방식으로 조선을 치고 들어 와서 준비 되지 않은 조선을 한 달만에 서울까지 치고 올라 갔고 서울과 경복궁을 차지하면 전쟁은 끝이 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서울과 왕궁이 함락 될 직전에 왕은 야밤에 몇 명만 데리고 버선 발로 냅다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서울과 왕궁을 점령하면 왕은 거기서 지키다 손을 들고 나와야 하는 것이 일본의 법인데 그들은 조선을 몰랐습니다. 왕이 급하면 도망을 가는 것이고 더 급했으면 신의주를 건너 중국에라도 도망 갈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급하면 살 연구를 하기 때문에 평소에 그렇게 무방비했습니다. 일본은 성주가 왕성을 내 주는 것은 목숨을 내 놓고 지키는 임전무퇴 방식입니다. 그러니 일본은 평소 준비가 철저했고 매사에 미리 목숨을 걸었고 사소한 임무 실패에도 자기 배를 갈라 죽는 것을 멋 있게 생각했으니 후진국인데도 급속히 국력을 길렀고 전투마다 무시무시한 돌격 정신으로 적의 심장부를 요절 냈습니다. 우리는 왕부터 급하면 튀면 되니까 빠질 뒤를 열어 놓았으니 사전에 왕과 신하가 목숨을 걸 분위기조차 형성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의 시작은 왜군이 서울을 점령하여 그들 사고방식으로는 이제 왕이 항복하러 오는 절차만 남았다고 생각할 바로 그 즈음부터입니다. 온 나라가 요절이 나고 전국이 유린을 당해서 치욕스럽게 왜병 17만명으로부터 더 이상 나갈 곳이 없게 된 위기, 절벽, 그 벼랑에 서게 되자 비로소 이제 몸 풀기 warming up에 들어 갑니다. 관군은 궤멸을 당해 여수에 소수 병력만 남았으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데 죽기 일보 직전이 되자 전국의 의병들이 나서기 시작했고 그리고 관군도 여야를 초월해서 서서히 이제 반격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7 년을 지리하게 이어 가고 결국 왜병은 도주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꼭 죽을 때가 되고 막판에 몰리고 끝장이 나고 전멸을 당해야만 준비에 들어 가고 이제 정신을 차리게 되는가. 왜군의 치밀한 준비와 목숨을 거는 평소의 사명감과 단병접전의 필사적 돌격 정신을 본 받아 평소 미리 긴장을 좀 하면 안 되는가. 그리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패전을 하게 되면 임란 때처럼 재기를 바라고 흩어 져서 다시 기회를 엿 보며 세력을 결집해서 끈질기게 차고 일어 나서 기어코 인내로 승리하면 어떻겠는가?
세상은 일본처럼 화끈하게 치고 들어 가서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끝장을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만은 인간이 움직여 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리 할 수 없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며 자가 수정을 통해 몇 번이고 다시 일어 서고 재기해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그 강의의 내용을 가지고 수강하는 분들께 평소의 방심, 평소의 안일, 평소의 대충 정신, 평소의 배 부른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하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임란 직전가지 여당과 야당의 당파 싸움을 두고는 끝장을 보지만 외부에서 들어 오는 적을 보는 눈은 그렇게 없었던 조상들인데 우리가 바로 그 조상들의 자손들이니 우리의 공사를 막론하고 어디에서인들 우리가 그러지 않겠는가, 청년의 시기에 좋은 때를 제발 방심 말고 냉정하게 정밀하게 치밀하게 자신의 길을 살피고 한 걸음씩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 강의 내내 저는 속으로 공회의 역사와 현실을 보며 깊이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기어코 임란 전처럼 온 공회와 이 노선이 씨가 마르도록 그렇게 나가고 벼랑 끝에 서야만 그 때서야 이제 몸을 풀고 의병 수준의 재기를 시작할 것인가. 이스라엘의 구약 역사도 우리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민족적 와해 직전에 가게 되자 그 때부터 신들린 듯 의인들이 쏟아 져 나왔고 구사일생으로 본국에 회귀합니다.
주후 70년에 로마군에 완전히 초토화가 되고 유럽을 비롯한 세계 전역에 떠돌이 신세가 되면서 역사에 없는 처참한 꼴을 철저히 당한 뒤부터는 유대인들의 단결력과 긴장 그리고 지혜는 오늘의 세계를 소수 민족 몇 명이 다 잡고 운영한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되었습니다.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가?
불치병에 걸려야 술 담배를 끊을 것인가?
집구석이 완전히 망해서 다리 밑에 거지가 되어야 비로소 출발하겠는가?
이 노선의 우리를 보며 조선의 분열 역사, 미련한 내부 투쟁, 참으로 무지한 외부 전쟁에 대한 준비,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 해도 너 미워서 내가 더 손해를 봐도 모른 척 하는 등의 갖가지 아쉬움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꼭 소망이라는 것이 있다면 제대로 다 무너 지고 처참하게 되어 지면 그 때는 없어져 사라 질 민족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여 일어 설 것이니 이 나라 이 민족을 두고는 평소에 또는 좋을 때는 동정할 가치가 없듯이 공회 역시 그런 것인가? 꼭 그렇게 이 나라 세상 민족성의 단점만을 고수해야 하는가?
최근의 사회 현상을 봐도 6.25 전쟁을 겪은 나라이며 보릿 고개를 불과 엊그제 넘긴 나라가 맞는지 천번만번 믿어 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민족의 역사를 살펴 보면 너무나 당연한 하나의 기복 추세일 뿐입니다. 문제는 이 노선 신앙의 세계까지 그리 되어야 하겠는가? 예레미야 애가의 심정으로 지난 주간 강의를 돌아 봤습니다.
그 중에 임진왜란의 전시를 두고 일본과 우리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일본은 대장의 말에 목숨을 걸고 따릅니다. 임무에 실패하면 자결이란 흔합니다. 우리는 죽여 달라고 펄펄 뛰지만 임무 실패로 죽는 사람은 조선 말기 나라를 내어 줄 때도 전국에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 키기 전에 섬나라 전국에 흩어 진 세력들 사이에 통일전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힘도 길렀고 또 많은 무장들이 확보 되었습니다. 그들의 전쟁은 적의 머리만 잡으면 그 것은 끝이 납니다. 그래서 장기의 왕 잡기처럼 진행을 합니다. 적의 본부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성주를 잡으면 되는데 이런 사고방식으로 조선을 치고 들어 와서 준비 되지 않은 조선을 한 달만에 서울까지 치고 올라 갔고 서울과 경복궁을 차지하면 전쟁은 끝이 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서울과 왕궁이 함락 될 직전에 왕은 야밤에 몇 명만 데리고 버선 발로 냅다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서울과 왕궁을 점령하면 왕은 거기서 지키다 손을 들고 나와야 하는 것이 일본의 법인데 그들은 조선을 몰랐습니다. 왕이 급하면 도망을 가는 것이고 더 급했으면 신의주를 건너 중국에라도 도망 갈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급하면 살 연구를 하기 때문에 평소에 그렇게 무방비했습니다. 일본은 성주가 왕성을 내 주는 것은 목숨을 내 놓고 지키는 임전무퇴 방식입니다. 그러니 일본은 평소 준비가 철저했고 매사에 미리 목숨을 걸었고 사소한 임무 실패에도 자기 배를 갈라 죽는 것을 멋 있게 생각했으니 후진국인데도 급속히 국력을 길렀고 전투마다 무시무시한 돌격 정신으로 적의 심장부를 요절 냈습니다. 우리는 왕부터 급하면 튀면 되니까 빠질 뒤를 열어 놓았으니 사전에 왕과 신하가 목숨을 걸 분위기조차 형성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의 시작은 왜군이 서울을 점령하여 그들 사고방식으로는 이제 왕이 항복하러 오는 절차만 남았다고 생각할 바로 그 즈음부터입니다. 온 나라가 요절이 나고 전국이 유린을 당해서 치욕스럽게 왜병 17만명으로부터 더 이상 나갈 곳이 없게 된 위기, 절벽, 그 벼랑에 서게 되자 비로소 이제 몸 풀기 warming up에 들어 갑니다. 관군은 궤멸을 당해 여수에 소수 병력만 남았으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데 죽기 일보 직전이 되자 전국의 의병들이 나서기 시작했고 그리고 관군도 여야를 초월해서 서서히 이제 반격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7 년을 지리하게 이어 가고 결국 왜병은 도주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꼭 죽을 때가 되고 막판에 몰리고 끝장이 나고 전멸을 당해야만 준비에 들어 가고 이제 정신을 차리게 되는가. 왜군의 치밀한 준비와 목숨을 거는 평소의 사명감과 단병접전의 필사적 돌격 정신을 본 받아 평소 미리 긴장을 좀 하면 안 되는가. 그리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패전을 하게 되면 임란 때처럼 재기를 바라고 흩어 져서 다시 기회를 엿 보며 세력을 결집해서 끈질기게 차고 일어 나서 기어코 인내로 승리하면 어떻겠는가?
세상은 일본처럼 화끈하게 치고 들어 가서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끝장을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만은 인간이 움직여 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리 할 수 없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며 자가 수정을 통해 몇 번이고 다시 일어 서고 재기해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그 강의의 내용을 가지고 수강하는 분들께 평소의 방심, 평소의 안일, 평소의 대충 정신, 평소의 배 부른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하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임란 직전가지 여당과 야당의 당파 싸움을 두고는 끝장을 보지만 외부에서 들어 오는 적을 보는 눈은 그렇게 없었던 조상들인데 우리가 바로 그 조상들의 자손들이니 우리의 공사를 막론하고 어디에서인들 우리가 그러지 않겠는가, 청년의 시기에 좋은 때를 제발 방심 말고 냉정하게 정밀하게 치밀하게 자신의 길을 살피고 한 걸음씩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 강의 내내 저는 속으로 공회의 역사와 현실을 보며 깊이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기어코 임란 전처럼 온 공회와 이 노선이 씨가 마르도록 그렇게 나가고 벼랑 끝에 서야만 그 때서야 이제 몸을 풀고 의병 수준의 재기를 시작할 것인가. 이스라엘의 구약 역사도 우리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민족적 와해 직전에 가게 되자 그 때부터 신들린 듯 의인들이 쏟아 져 나왔고 구사일생으로 본국에 회귀합니다.
주후 70년에 로마군에 완전히 초토화가 되고 유럽을 비롯한 세계 전역에 떠돌이 신세가 되면서 역사에 없는 처참한 꼴을 철저히 당한 뒤부터는 유대인들의 단결력과 긴장 그리고 지혜는 오늘의 세계를 소수 민족 몇 명이 다 잡고 운영한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되었습니다.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가?
불치병에 걸려야 술 담배를 끊을 것인가?
집구석이 완전히 망해서 다리 밑에 거지가 되어야 비로소 출발하겠는가?
이 노선의 우리를 보며 조선의 분열 역사, 미련한 내부 투쟁, 참으로 무지한 외부 전쟁에 대한 준비,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 해도 너 미워서 내가 더 손해를 봐도 모른 척 하는 등의 갖가지 아쉬움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꼭 소망이라는 것이 있다면 제대로 다 무너 지고 처참하게 되어 지면 그 때는 없어져 사라 질 민족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여 일어 설 것이니 이 나라 이 민족을 두고는 평소에 또는 좋을 때는 동정할 가치가 없듯이 공회 역시 그런 것인가? 꼭 그렇게 이 나라 세상 민족성의 단점만을 고수해야 하는가?
최근의 사회 현상을 봐도 6.25 전쟁을 겪은 나라이며 보릿 고개를 불과 엊그제 넘긴 나라가 맞는지 천번만번 믿어 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민족의 역사를 살펴 보면 너무나 당연한 하나의 기복 추세일 뿐입니다. 문제는 이 노선 신앙의 세계까지 그리 되어야 하겠는가? 예레미야 애가의 심정으로 지난 주간 강의를 돌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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