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유대인이 아니어서 아쉬웠던 마음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2.07.08
1. 주일 저녁 기도회
주일 저녁 6시 30분에 애양원의 바닷가로 야외 기도회를 가고 있습니다. 24 년째입니다. 애양원의 대외 선전 문구에도 어느 교회는 매 주일 저녁마다 손양원 목사님 묘소에서 기도회를 한다고 표시해 놓은 것을 봤습니다. 저희 교회입니다. 최근 국고 일백 억 원이 투입 되어 깨끗하게 단장을 마쳤고 그림같은 곳에서 그 넓고 넓은 곳에 저희들만 기도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희만 지금까지 그렇게 사용했으니 막대한 돈이 투입 되어 그렇게 단장 된 것은 당연히 저희 교회 기도회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 다른 이유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왜 그 많은 돈이 그렇게 사용 되었는지? 꾸며 놓은 것을 보면 아무리 봐도 도저히 이해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저희를 보고 그렇게 하셨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한 쪽은 겉을 붙들고 자랑하고 한 쪽은 숨어서 속으로 잡고 감사하는데 서로 지향하는 곳이 다르니 한 장소를 사용해도 마찰이 없고 불편이 없습니다.
오늘 저녁 기도회 참석자는 아이들까지 다 합하여 100여 명이 될 듯 싶습니다. 순천에 개척한 교인들도 함께 하는 숫자입니다. 최근 좀 줄었다가 다시 회복 된 것 같아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주일 새벽, 주일학교나 연경회, 주일 오전과 오후 예배와 권찰회까지를 다 참석하고 밤 기도회까지 나오려면 힘 겨울 것이나 이렇게 좋은 시절에 영육에 모든 것을 넘치게 주시는데 어렵다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신앙도 환경도 다 다른 교인들을 군대나 학교처럼 한꺼번에 묶어 움직이려 한다면 부작용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애 터지는 마음은 있다 해도 참석을 두고는 주일 저녁 기도회 참석은 될 수 있는 대로 그냥 지켜 보는 편입니다.
전국의 교회들이 탐방 1번으로 삼는 곳 중에 하나지만 그 분들은 모두 관광지로 거쳐 가고, 애양원 교회는 그들의 교회 이름도 옛날에 바꿨고 그냥 아이디어 상품으로나 운영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오늘도 애양원 병원에서는 주일인데도 음악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일 개념도 없어 진 지 오래 되었고 교단이 통합이니 이런 말을 꺼 내는 것도 사실 실례가 될 정도일 것입니다.
이 글의 앞 부분에 이런 생활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홈은 '백영희 신앙노선'에서 세워 진 또 하나의 교회입니다. 장소를 함께 할 수 없는 교회여서 제가 목회하는 교회의 형편을 말씀 드림으로 주일과 주일 저녁의 기도회의 분위기를 소개하여 어느 곳에 계시든 각자 주일과 함께 주일 저녁의 기도회라는 의미를 찾아 보시라는 뜻입니다.
2. 오늘 기도 중에
성경에는 수도 없이 많은 위대한 성자들이 나오는데 그 선지 사도 전부는 유대인들입니다. 아브라함부터 헤아리다 보면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알아서 그들을 택하고 육체의 이스라엘로 불러 택한 유일한 백성으로 삼으셨으니 우리는 그렇게 알 뿐이지 그 선택에 대해 불평하고 이의를 할 사안이 아닙니다. 거저 부러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왜 이 부러움을 우리에게 느끼게 하셨을까? 기도 중에 그들과 우리를 비교 좀 해 보았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주님 오실 때까지 기간이 약 2천 년입니다. 구약의 2천 년을 유대인들만 택한 백성으로 구원의 대상이며 그들 중에서만 신앙의 인물들이 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신약이 시작 되면서 첫 지도자들이었던 12 사도만 유대인들이지 그 이후부터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2천 년의 신약 역사가 모두 비유대인이 중심이고 역사에 위대한 성자와 성녀와 의인들이 다 구약의 유대인들이 이방인으로 부르던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유대인에게 2천 년의 기회를 주셨고 우리에게 2천 년의 기회를 주셨으니 우리라고 손해 볼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수 많은 민족으로 구성이 되었고 구약의 유대인은 단일 민족이니 민족 차원에서 본다면 그들은 여전히 우리 한국 교회를 포함한 그 어떤 민족과 비교해도 비교 될 수 없는 탁월한 복을 받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또 하나의 말씀이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구약에 제일 큰 자는 세례 요한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가장 어린 신앙의 사람이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받은 지 이제 130여 년이 된 우리 한국교회 교인도 유대인과 비교하면 우리의 출발선이 불리해서 그들보다 항상 못할 신세는 아니라는 결론을 가졌습니다.
내가 방심하고 내가 죄를 짓고 내가 부족해서 그렇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유대인과 나를 비교할 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근본적으로 그들을 따라 잡을 수가 없고 그들에게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실망할 일은 아닙니다.
3. 이 곳을 교회로 삼은 분들이 계셔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이 홈을 운영해 왔으나 앞으로는 이 곳에서 목회하는 담임 목회자로서 이 곳을 교회로 삼는 분들에게 실제 교회 생활에서 필요한 내용으로 소개하고 싶었고 앞으로 그런 일들이 이 게시판을 통해서는 자주 표시할 것으로 생각 됩니다.
평화의 시기와 함께 영육의 풍요가 이렇게 오랜 시기 계속하여 넘쳤던 시기는 에덴동산 이후로 오늘까지 거의 그 사례를 찾아 보기 어려우니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로서 이 곳을 교회로 삼는 분들께 우리가 사는 시대 형편을 바로 인식하는 것이 급하고 중하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은혜와 평강을 기도 드리며
주일 저녁 6시 30분에 애양원의 바닷가로 야외 기도회를 가고 있습니다. 24 년째입니다. 애양원의 대외 선전 문구에도 어느 교회는 매 주일 저녁마다 손양원 목사님 묘소에서 기도회를 한다고 표시해 놓은 것을 봤습니다. 저희 교회입니다. 최근 국고 일백 억 원이 투입 되어 깨끗하게 단장을 마쳤고 그림같은 곳에서 그 넓고 넓은 곳에 저희들만 기도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희만 지금까지 그렇게 사용했으니 막대한 돈이 투입 되어 그렇게 단장 된 것은 당연히 저희 교회 기도회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 다른 이유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왜 그 많은 돈이 그렇게 사용 되었는지? 꾸며 놓은 것을 보면 아무리 봐도 도저히 이해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저희를 보고 그렇게 하셨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한 쪽은 겉을 붙들고 자랑하고 한 쪽은 숨어서 속으로 잡고 감사하는데 서로 지향하는 곳이 다르니 한 장소를 사용해도 마찰이 없고 불편이 없습니다.
오늘 저녁 기도회 참석자는 아이들까지 다 합하여 100여 명이 될 듯 싶습니다. 순천에 개척한 교인들도 함께 하는 숫자입니다. 최근 좀 줄었다가 다시 회복 된 것 같아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주일 새벽, 주일학교나 연경회, 주일 오전과 오후 예배와 권찰회까지를 다 참석하고 밤 기도회까지 나오려면 힘 겨울 것이나 이렇게 좋은 시절에 영육에 모든 것을 넘치게 주시는데 어렵다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신앙도 환경도 다 다른 교인들을 군대나 학교처럼 한꺼번에 묶어 움직이려 한다면 부작용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애 터지는 마음은 있다 해도 참석을 두고는 주일 저녁 기도회 참석은 될 수 있는 대로 그냥 지켜 보는 편입니다.
전국의 교회들이 탐방 1번으로 삼는 곳 중에 하나지만 그 분들은 모두 관광지로 거쳐 가고, 애양원 교회는 그들의 교회 이름도 옛날에 바꿨고 그냥 아이디어 상품으로나 운영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오늘도 애양원 병원에서는 주일인데도 음악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일 개념도 없어 진 지 오래 되었고 교단이 통합이니 이런 말을 꺼 내는 것도 사실 실례가 될 정도일 것입니다.
이 글의 앞 부분에 이런 생활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홈은 '백영희 신앙노선'에서 세워 진 또 하나의 교회입니다. 장소를 함께 할 수 없는 교회여서 제가 목회하는 교회의 형편을 말씀 드림으로 주일과 주일 저녁의 기도회의 분위기를 소개하여 어느 곳에 계시든 각자 주일과 함께 주일 저녁의 기도회라는 의미를 찾아 보시라는 뜻입니다.
2. 오늘 기도 중에
성경에는 수도 없이 많은 위대한 성자들이 나오는데 그 선지 사도 전부는 유대인들입니다. 아브라함부터 헤아리다 보면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알아서 그들을 택하고 육체의 이스라엘로 불러 택한 유일한 백성으로 삼으셨으니 우리는 그렇게 알 뿐이지 그 선택에 대해 불평하고 이의를 할 사안이 아닙니다. 거저 부러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왜 이 부러움을 우리에게 느끼게 하셨을까? 기도 중에 그들과 우리를 비교 좀 해 보았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주님 오실 때까지 기간이 약 2천 년입니다. 구약의 2천 년을 유대인들만 택한 백성으로 구원의 대상이며 그들 중에서만 신앙의 인물들이 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신약이 시작 되면서 첫 지도자들이었던 12 사도만 유대인들이지 그 이후부터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2천 년의 신약 역사가 모두 비유대인이 중심이고 역사에 위대한 성자와 성녀와 의인들이 다 구약의 유대인들이 이방인으로 부르던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유대인에게 2천 년의 기회를 주셨고 우리에게 2천 년의 기회를 주셨으니 우리라고 손해 볼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수 많은 민족으로 구성이 되었고 구약의 유대인은 단일 민족이니 민족 차원에서 본다면 그들은 여전히 우리 한국 교회를 포함한 그 어떤 민족과 비교해도 비교 될 수 없는 탁월한 복을 받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또 하나의 말씀이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구약에 제일 큰 자는 세례 요한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가장 어린 신앙의 사람이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받은 지 이제 130여 년이 된 우리 한국교회 교인도 유대인과 비교하면 우리의 출발선이 불리해서 그들보다 항상 못할 신세는 아니라는 결론을 가졌습니다.
내가 방심하고 내가 죄를 짓고 내가 부족해서 그렇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유대인과 나를 비교할 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근본적으로 그들을 따라 잡을 수가 없고 그들에게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실망할 일은 아닙니다.
3. 이 곳을 교회로 삼은 분들이 계셔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이 홈을 운영해 왔으나 앞으로는 이 곳에서 목회하는 담임 목회자로서 이 곳을 교회로 삼는 분들에게 실제 교회 생활에서 필요한 내용으로 소개하고 싶었고 앞으로 그런 일들이 이 게시판을 통해서는 자주 표시할 것으로 생각 됩니다.
평화의 시기와 함께 영육의 풍요가 이렇게 오랜 시기 계속하여 넘쳤던 시기는 에덴동산 이후로 오늘까지 거의 그 사례를 찾아 보기 어려우니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로서 이 곳을 교회로 삼는 분들께 우리가 사는 시대 형편을 바로 인식하는 것이 급하고 중하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은혜와 평강을 기도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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