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북한의 개척을 앞 두고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2.07.24
세계 최강국 틈새에서 한국이 지나 온 날들은 하루도 편한 적이 없었습니다. 대개의 세월은 중국이 누르고 있는 바람에 억울한 세월은 많아도 그 형국 자체가 오래 가면서 그 나름대로의 안정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1백 년의 격변은 수백 년만에 한 번 있을 일들이 연이었습니다.

저처럼 6.25 직후 세대는 세상 이야기를 듣고 기억할 때부터 박 대통령 한 분만 대통령이었고 그 사실은 변치 않을 줄 알았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체제가 그러했을 것이고 남한과는 더 비교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5공의 출발로 남한은 변동을 느꼈고 그리 되어 왔으나 북한은 김정일로 이어 지면서 오랜 훗날은 몰라도 당장의 변화는 더욱 불가능하다고 느껴 졌습니다. 이제 3대로 이어 지면서 북한의 급변은 오늘 일어 난다 해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놀랄 소식으로 와 닿을 것 같지 않습니다.


바벨론 70 년의 세월은 구약이었고 오늘은 신약이지만 굳이 그 70 년의 의미를 오늘에도 맞춰 보고 싶었습니다. 신사참배 탄압의 본격화인 1939년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2009년이 되고 해방이 된 1945년의 소련 공산당 치하에 들어 간 세월부터 잡는다면 2015년입니다. 1950년 전쟁 전까지는 그래도 북한에 거의 모든 교회들이 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2020년을 잡아도 70 년에 끼워 맞출 수는 있고, 북한에 모든 교회가 철저하게 없어진 1953년 전쟁 종료 시점으로 잡는다면 2023년까지 잡아도 넉넉합니다. 2009년부터 2023년 사이에 북한이 개방 되고 개척 활동이 재개 된다면 바벨론 70 년을 숫자적으로 잡고 역산하며 하나님의 뜻을 살펴도 충분히 그 의미는 새길 만합니다.

지금은 한참 그 가운데 있습니다. 이 기간의 급변이 남북의 통일을 중립국으로 만들고 북한에는 우리가 개척을 해야 할 시기가 온다는 것은 공회 내에서는 1945년 이전부터 알고 기다려 온 시절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북한의 개척은 그 동안 각 공회 별로 노력하고 입에 올렸던 해외 선교와는 그 차원이 다릅니다. 아직까지도 공회의 해외 선교에 대해서는 과연 그 선교가 필요했는지를 두고 저는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타 교단들의 선교 활동이 넘치고 공회는 내부적으로 이 노선 존립이 가능한지를 심각하게 걱정할 시기입니다. 또 공회가 활발히 움직인다 해도 공회의 주력과 사명은 국내 교계를 상대로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제시하는 일입니다. 신학교 교수들이 학생들과 전도를 다닌다고 본 강단을 비울 정도라면 교수가 아니라 전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내에 넘치는 교회, 해외 선교 현장에도 넘쳐 나는 한국 교회, 공회는 그들 교회 중에 하나인가 아니면 그들 교회들을 향해 믿어 갈 길을 보여 주는 것이 공회의 사명일까?

공회 노선의 생존의 희망조차 포기할 현 상황에서 공회가 그 내부와 공회 주변과 한국 내 교계와 한국 내 공회 교회들이 세워 져야 할 곳들을 두고 바로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박윤철 목사님과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목사님은 일제 시기는 물론 해방 후까지도 중국 내 조선인 교회에서 지도자로 활동하시고 여동생 등 가족들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중국의 개방을 맞았습니다. 박 목사님이 중국 선교에 나선다면 마치 공회가 도평 집회 장소 건너 편 남산교회를 철수했다가 1970년대에 다시 재개척을 들어 간 것과 같은 상황일 것입니다.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왜 공회 내부의 존립과 공회 교회들의 개척 안정조차 불안한 상태에서 모두들 해외로 나가는지 대단히 염려 되는 일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 하신 말씀에서 '땅 끝'만을 봤지 '예루살렘'과 '유다'는 보지 못한 이유라는 생각입니다.

북한은 우리에게 '사마리아'와 같은 입장입니다. 만일 북한이 개방 된다면 '사마리아'가 '유대' 지역이 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공회가 선교 이름이 아니라 국내 개척지를 상대하는 차원에서 바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철수했다가 재개척에 들어 갔던 남산교회와 같은 경우입니다.


북한에 개척이 시작 될 날을 두고 공회의 개척 자세는 무엇일까? 타 교단들은 쌀이나 의료품을 전달하면서 미리 인맥을 쌓아 둡니다. 그 것은 불신 사회의 살아 가는 방식이고 교회가 할 일은 아니며 공회로서는 힘도 없지만 걸어 온 길이 아닙니다. 우리는 개척의 길이 열리는 그 날을 소망하며 기도하며 오늘에 충실하다가 그 날을 주면 그 날 일은 그 날에 시작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인들 개인적으로는 북한의 개방이 이루어 지면 사업과 직장 환경의 대변화가 일어 날 것이므로 교회보다는 생활 여건의 급변에 대해 미리 준비할 일이 많습니다. 교회는 잘 나가든지 엉망이든지 교회이기 때문에 이제 말씀 드린 원칙에 철저해야 하지만 개인은 교회 차원과는 신앙의 성격이 다르고 신앙이 어린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독일이나 베트남의 통일을 살펴, 남북의 경우 통일이 될 때 엄청나게 생길 신종 사업이나 사업 확장 분야도 있고, 여러 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기회는 앞에서 준비하면 머리카락 휘 감아 잡듯이 쉽고, 기회는 순간을 놓치면 '어~' 하다가 그냥 구경만 하고 끝이 나는 것입니다. 해방 전후, 전쟁 전후, 혁명 전후 등 우리는 짧은 기간에 수 없는 급변을 목격했고 그 기회에 세계적 기업이나 세계적 기록을 세운 일들을 많이 봤고 또 그런 숫자만큼 아깝게 없어 진 분야나 인물들도 많이 봤습니다. 자연계시를 통해 우리가 걸어 갈 공회적 시야를 청합니다. 공회 교인들은 개인적으로 자기 직종과 생활과 여러 관련 내용을 가지고 북한을 우리에게 현실로 주실 때를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는 시기입니다.


예를 들면, 보일러 시공을 하는 분들이라면 북한 개방과 함께 정부나 대기업이 뻗칠 사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으나 북한의 모든 주택들에 보일러 시공은 필연적일 것이고 20여 년을 걸쳐 여러 형태의 국가 예산 집행과 민간의 지원 활동이 겹쳐 대대적인 보수 공사나 신규 설비 사업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초기에는 북한 주민이 노동자로 남한 사업가는 기술로 맡아 진행 될 것이나 이 기술은 단순하기 때문에 3 - 4 년 정도만 지나면 북한의 단순 노동자들이 보일러 설비 기술자로 활동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회에 보일러 시공을 전문하는 교인이라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어떤 자료를 미리 들여다 보고 있으면 될지, 그 사업의 구상은 어렵지 않을 것이고 그 실현 역시 자기에게 주어 진 현실 차원에서 지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자체에는 보일러 구매력이 없을 것이나 정부나 공공사업 또는 사회적 지원 차원의 사업은 대규모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 사업은 그 성격이 대기업이 손을 댈 수 없습니다. 공회 교인들 중에는 그 쪽의 기술자들이 많습니다. 통일이 개시 되는 그 날, 바로 바로 북한 사업을 착수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이들보다 조금 빠르게 조금 유리하게 잘 해 드린다면 이런 생활 속에 소리 없는 전도가 공회 교회 개척으로 바로 이어 질 것입니다. 그 분야는 1945년 해방 직후와 1953년 전쟁 직후 이상의 급변처럼 될 것입니다.

교사가 되려는 꿈을 가진 학생들이라면 북한의 통일과 개방에서 가장 급증 될 과목은 영어일 것입니다. 타 과목은 북한의 기존 교사를 재교육하는 정도로 재활용하게 될 것이나 영어는 북한에서 그 자격증도 적을 것이고 그 실력을 재활용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북한으로 들어 가는 교사 자격증이 많다면 여러 가지 유인책도 쏟아 질 것이고 남한 내의 교사 확충도 이어 질 것입니다. 건설 토목 쪽은 전반적으로 한량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육로를 통해 중국을 자유롭게 들어 갈 수 있다면 그 때의 중국 선교는 '사마리아' 정도로 다가 올 것입니다. 지금, 차분히 그 날을 실감하며 준비할 때입니다. 이 홈은 부공3을 통해 작년부터 양성원 공부에 먼저 주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공회 교회의 일반 중심 교인이나 내일은 북한에 개척을 위해 들어 가야 할 목회자가 되거나 아니면 북한에 들어 갈 분들이 비운 교회를 맡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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