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교회 분열에 대한 복 된 시각 하나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2.07.28
오늘 새벽 설교 중에 잠깐 예화를 들었습니다.

1989년 3월 18일에 현재 근무하는 교회로 부임을 했습니다. 부임 첫 주일 오후 예배 후에 교회 회의가 있었습니다. '누가 보내서 왔는가?'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이 제일 먼저 나왔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왔나 봅니다. 오늘은 주일이고 내일 아침에 바로 가겠습니다.' 이 것이 현재 교회와 첫 대화였습니다. '조사님을 싫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청한 일이 없다는 말이지요. 좋으니 그냥 계시면 됩니다.' 그렇게 시작한 목회지가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다음 주일은 전체 교인이 좋은 분위기에서 지냈고 예배 후 교회에서 제일 급한 곳을 심방해야 한다는 말씀들이 계셔서 애양원 입구 마을의 차진일 어른 댁에 첫 심방을 갔습니다. 3월 마지막 주일 오후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전기에서 애양원의 제일 중요한 직책을 맡은 총무과장 차 장로님의 집안인데 5대 종손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 길과 저녁 퇴근할 때 반드시 5대 조상들을 모신 방에 가서 마치 살아 계신 분을 대하듯 인사하고 하루 일을 말씀 드리는 분입니다. 일찍 대학을 졸업하고 철도청에 근무하다 철도청 대한통운 영업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원인을 알지 못하는 전신 마비가 시작 되어 하반신부터 서서히 말라 가고 있었습니다. 오랜 병고 끝에 교회를 찾은 것입니다.

심방 예배를 간단히 드리고 나자 첫 인사를 하십니다. 어릴 때 손양원 목사님 셋째 아들과 친구여서 교회도 몇 번 다녔습니다. 5대 종손에 평생 살며 교회를 다닌 적은 없었으나 지금도 새벽에 애양원의 종소리를 그냥 듣지 않았습니다. 믿을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는데 이 차 씨 동네 5대 종손으로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밑에 여동생은 자기 교회로 가자고 매일 조르지 막내 여동생도 자기 교회로 가자 하지 앞 집에 있는 형수는 지금 이 교회로 가자 하지 지금 제 가족과 바로 옆 집에만 해도 교회 5 곳이 둘러서 서로 가자 합니다. 이 작은 시골 동네에 교회가 이렇게 많이 갈라 져서 서로 경쟁하며 사람 하나를 데려 가려고 하지 않았다면 저는 마음만 있지 결국 교회를 다니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그 분께 '참 복이 있습니다. 교회가 분열 되고 추한 모습이 보인다고 모두들 외면하는데 이 시골에 한 교회가 5개로 6개로 쪼개져서 싸우는 모습 속에서 구원의 길을 보시고 오히려 감사를 하시다니 죄송할 뿐이고 그리고 감사할 뿐입니다.'

집회까지 참석하셨고 그 해 10월에 돌아 가셨습니다. 애양원 바로 앞의 달섬에 안장했고 전형적인 옛날 상여 매고 장례를 하되 교회 장으로 치렀습니다. 제가 온 지 6 개 월만에 돌아 가셨는데도 모친과 부인과 온 가족이 교회를 잘 출석했고 지금도 부인은 교회 집사님입니다. 돌아 가실 때까지 서서히 온 몸이 마비 되어 가는 상황이어서 참으로 고통스러워야 하는데 늘 평안을 가졌고 마지막 임종 때는 102 장 찬송을 함께 부르면서 2 - 3 절을 통과할 때 평안하게 고요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모친은 아들을 살리고자 교회를 출석했다 덧 없이 보냈다고 신앙을 포기할 생각을 수 없이 했으나 마지막 찬송하던 그 입술을 잊지 못해 잘 믿고 교회 장례로 가셨습니다.



교회의 분열, 시골 바닷가 작은 한 마을에서 갈갈이 찢겨 분립하되, 강단에 교인들이 올라 가서 목회자를 끌고 내려 오는 일들이 교회마다 다 있었던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들은 모두 차고 넘쳤었습니다. 지금은 마을의 절반 이상이 공항 확장으로 이주해 버리고 일반 시골처럼 되어 이제는 급속도로 비어 가고 있으나 1990년대까지도 교회들마다 자리를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차진일 어른이 하신 말씀이 그러했습니다. 이 작은 시골에 교회가 하나뿐이었으면 전도를 했겠습니까? 이 작은 시골에 한 집안에서 2 - 3 개로 3 - 4 개로 나뉘어 져 교회를 다니니까 집집마다 차를 갖다 대고 한 사람이라도 데려 가려고 난리였고 그래서 나같은 사람이 교회를 가기까지 한 것입니다.

처음 부임하여 마을 사정을 전혀 모르는 제게 친절하게 감동스럽게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교회 분열로 인해 발생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그렇게 새기고 계셨습니다. 그 분은 공직에서 철도청과 그 독점 수송업체를 맡아 왔던 분이고 독점 체제가 깨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지켜 본 분입니다. 사회 상식에 타고 난 좋은 마음씨에 손양원 목사님이 전도해 놓은 복음의 복 된 기본 자세를 가졌던 분입니다.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음성, 자세, 표현 그 말씀 하나까지.

원망과 분함과 지탄이 넘쳐 나는 시대, 이 노선의 우리로서는 아무리 둘러 봐도 감사할 것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이 될 때마다 늘 기억하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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