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세상 사회를 향한 이 노선의 우려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2.09.29
(안내문)

이 노선 핵심 교인들에게 개인적으로 한 번씩 소식을 전합니다. 이 노선의 사회관은 이미 잘 정리 되고 확고하게 전해 져 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통째로 바뀌는 전환기니 공회의 신앙 내면과 함께 공회의 대사회적 교훈도 공회인들에 의하여 함께 전환이 되는 면을 봅니다. 고기 먹는 중은 중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산 속의 체험 시설로 바뀐 불교에게 육식 문제는 문제가 될 것도 없듯이 공회는 공회의 노선과 교훈이 있는데 그 내용이 바뀌면 껍데기 공회야 붙들고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사회에 대한 발언은 오해 소지가 참으로 많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 글을 통해 몇 가지 당부를 드렸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다 할 수 없고 그래도 최소한의 개념은 설명해야 책임을 벗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적습니다. 어떤 글은 공사석에 꼭 같이 외칠 것이 있고, 어떤 발언은 공사석을 구별해야 할 것도 있는데 이 글은 공석에서도 해야 할 말이고, 그 구체적 이야기는 사석에서 하고 있습니다.



(사회를 보는 이 노선)

1. 공회 노선을 연구하며

여러 면으로 공회를 살피고 있습니다. 이 노선에서 성경을 바로 배워 그대로 살려고 각오하고 죽도록 달려 간 사람들이 이 노선에는 많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좀 지나고 상황이 몇 번 바뀌고 나니 남은 사람이 없다 할 정도입니다. 대부분은 이 노선을 스스로 버린 경우입니다. 외부적으로 보면 환경에 떠 밀렸거나 원치 않게 그렇게 되었다 하는데 이 노선은 그런 개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자유성의 원리에 의하여 본인이 판단하고 좋아서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알고 먹은 것입니다. 하와나 뱀 때문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자기 결정이었습니다. 변명을 하면 돌아 올 수 없습니다.



2. 세상에 대한 판단

우리의 판단은 신앙은 물론 세상까지도 함께 판단해야 합니다. 세상을 껍데기요 그릇으로 주셨으니 세상이 잘못 되면 그 안에 신앙이 담기지 않습니다. 신앙 판단은 하늘의 것이니 어려워서 더듬고 가야 하는 초등학생 수준과 자세를 견지해야 하나, 세상은 우리가 발로 밟고 사는 곳이어서 세상에 대한 판단은 등잔 밑과 내 주변만 잘 살피면 단번에 파악이 됩니다. 그리고 그 평가는 이미 배운 하늘의 것으로 들여 대면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아득히 내려다 보고 그들의 스승 노릇을 해야 합니다. 신앙 판단은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 너무 많으나 세상 판단은 손바닥 보듯이 쉽습니다.

이 홈의 '활용자료' 게시판에는 '사전'류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예화 사전과 메모 사전에는 이 노선의 오늘 세상을 향한 많은 교훈들이 있습니다. 잠언서와 전도서만 해도 넘치겠지만 우리가 어리고 어두워 우리 현실에 직접 관련 있는 사례를 설명하므로 신앙의 참고가 되게 했습니다.



3. 세상 판단의 의미

우리는 몇 되지 않고 약합니다. 강한 장수가 있을 때는 전후좌우 사방천지 안팎을 모두 막아 내며 전진을 했는데 우리는 각자 한 몸을 겨우 가눌지조차 걱정입니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죽지만 낭떠러지에 발을 잘못 디뎌도 죽습니다. 큰 것은 큰 대로 조심하고 작은 것도 그 작은 것의 결과가 신앙의 끝장을 향할 때는 큰 것만큼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 판단은 세상을 사는 이들 중에서도 우리와 같거나 나은 이들이 있습니다. 만일 세상 판단이 잘못 되면 참으로 아쉽게도 이 복음을 받은 효력은 그 판단의 잘못 된 구멍으로 다 새어 나갑니다. 물 샐 틈 없이 다 막는 것은 우리 힘으로 흉내도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까지를 하고 나면 나머지는 능력이 역사하여 해결합니다.



4. 급변하는 세상, 함께 변하는 공회

과거 세상은 세상 나름대로 좀 대충 균형을 잡고 있었는데 세상 그마저도 뒤집어 져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세상 기준으로 봐도 세상은 말세입니다. 남은 때가 얼마 되지 않으므로 사탄이 동원 가능한 것을 다 내 보내고 있습니다. 다 벗고 설치는 것들이 이 세상의 머리가 되고 나머지는 끌려서 따라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회 유지도 어렵고 자기 신앙 하나 지키기도 어려운데 세상 문제까지 전선을 형성한다면 아예 이 신앙을 포기해야 할 정도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 하나라도 찬반 없는 것이 없고 그 찬반 하나에 전문가 그룹 전체의 평생을 걸고 대를 이어 토론해도 결론을 맺지 못하는데 우리가 그들 중에 한 쪽의 최고 전문가가 된다 해도 그런 늪에서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토론 중에 우리가 우리 신앙에 틀렸거나 우리 신앙을 대적하려고 우회하는 편을 들게 된다면 우리의 신앙은 이 노선의 아까운 인재들이 판단을 실패해서 전반기 인생의 성공을 후반기에서 다 패전한 결과처럼 될 것입니다.



5. 앞으로 발표할 글들

영안이 밝지 못해서 더 명확하게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받은 범위를 생각하며 할 말은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노선이 지금 끝장이 나든지 아니면 세월 속에 고스란히 사탄의 입에 넣어 주든지 결과는 같을 것입니다. 말한다고 고치거나 바꿀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으나 최소한 책임은 다해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30대 정도라면 이미 자기 판단이 선 분들이어서 어렵겠지만 자라 나는 이들이 세상과 신앙 싸움이 아니라 세상과 세상 싸움에서 지고 그 패전이 신앙 싸움은 해 볼 것도 없는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을 지금처럼 슬슬 지켜 볼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세상이 나이 많은 이들은 무조건 파 묻으라고 20여 년을 가르쳤는데 그 말 속에 가정마다 부모라는 존재와 가치를 함께 묻어 버렸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세상 이야기인데 세상이 세상 이야기를 해도 바로 이 대목을 두고는 우리가 그냥 지켜 볼 수 없습니다. 과거 세상은 이런 면을 두고는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켰습니다. 지금 세상은 세상을 유지하는 최저 선과 마지막 선을 다 허물고 있습니다. 우리의 투쟁 대상은 아니지만 우리가 당하고 있어야 할 문제는 아닙니다. 부모의 가치를 허는 것을 지켜 보면 부모의 가치가 헐리면서 이 노선의 지킬 외벽이 함께 헐립니다. 이 노선은 현실주의입니다.



6. 지혜로운 접근

세례요한을 비판하신 목사님을 알며, 또 만류를 해도 외치다가 가신 목사님을 봤는데, 실력 없는 제가 벌대로 설칠 일은 아닙니다. 비록 다는 아니라 해도 그래도 방어막은 몇 가지 있습니다. 세상 그들의 말로 그들을 막는 방법입니다. 바울이 사두개인과 바리새교인이 섞여 있는 것을 보고 부활을 언급했고 그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말았습니다.

이 노선은 직접 싸울 일은 아니나 그렇다고 피하기도 곤란할 때 세상의 찬반 양론들에게 자기들의 과거와 현재를 스스로 비교하게 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합니다. 이 노선은 조선을 점령한 일본에게 일본의 조선 침략 첫 날에 약속한 것과 이후 통치 과정을 비교하며 둘 중에 어느 것이 옳은지를 질문했고, 교회 전체적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이 노선에 대해 그들은 아무 조처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개떼처럼 양 쪽으로 나뉘어 싸우는 전쟁 통에 신앙 전념의 이 노선이 개입할 일은 없고 그럴 리도 없으나 이 노선의 신앙 강좌를 위해 더러 말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럴 때 이 곳은 우익에게 그들이 한 말을 가지고 스스로 돌아 보며 과연 잘하고 있는지 살펴 보라 할 것이고, 좌익에게는 그들의 전향한 선배와 후배 사이에 우선 내부적으로 하나의 결론을 낸 다음에 대화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기다릴 터이니 단일안을 먼저 제시해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각각 어디서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 금방 나올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록 타락한 세상이나 그 세상에 묻어 둔 우리의 참고할 것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고 그 것을 신앙에 유익하게 활용하지 세상의 어느 한 곳에 파묻혀 개떼 싸움을 하는 중에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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