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교회 성장의 둔화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2.10.29
1980년대까지 가파르게 올라 가던 교회의 부흥 성장 지표가 1990년대를 정점으로 확실하게 둔화 되며 후퇴하고 있다는 것은 각종 외부의 수치와 함께 주변에서 심각하게 체감 됩니다.
여러 이유 중에 경제적 이유를 하나 느끼고 있습니다. 수도권 순회 때문에 도심 지역을 며칠 동안 계속 머물며 많은 것을 절감합니다. 저는 1975년까지는 시골에만 살았기 때문에 세상 물정을 몰랐습니다. 1976년 1 년 동안 서울의 광화문에 살면서 천지개벽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1989년까지 부산에 살았는데 76년에 1 년 서울을 살아 본 경험 때문에 비록 지방에 살고 있어도 늘 수도권의 수준과 내용이 머리에 남아 있었고 각종 생활과 세상을 보는 시야에 있어서 부산에만 산다는 이유로 서울을 몰라서 생기는 문제는 없었습니다.
1989년부터 여수의 바닷가 어촌 마을에만 살았지만 한 번씩 부산이나 서울을 방문해도 1976년에 살아 본 서울의 경험과 이후 살아 본 부산의 경험 때문에 시골 목회자라도 제 세상 지식과 수준과 평가는 전국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해도 불편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고향 교회여서 명절이나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서울과 전국 각지에서 여러 형태로 성공한 인생을 사는 분들이 사택을 방문하게 될 때 또는 연구소 등의 업무로 외부 세계를 접할 때 느낀 것입니다.
그런데 1990년대를 지나 가면서부터 제가 아주 시골 사람이 되어 요즘 도시 돌아 가는 것을 너무 모른다고 느낄 때가 생겨 났고 이 현상은 갈수록 심해 져서 2000년 경에 이르자 앞이 잘 안 보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경제 수준, 세상의 발달이 감을 잡을 수 없을 만큼 급변했던 것입니다.
상상 못할 단기간에 발달, 특히 편의와 경제적 폭발적 변화...
그렇습니다. 이런 면이 이 정도로까지 좋아 졌다면 이제 한국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어 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찾아야 할 사람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또 교회마다 과거 습관이나 여가 선용 등의 이유 등으로 머물면 머물지 과거 교인으로서 교회를 머물 이유가 없어 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난하고 고통 받고 죽을 고생해도 앞이 보이지 않던 시절에 이 나라 교회는 교회가 잘 먹고 잘 살고 마음 편하게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전했고 이런 기능이 복음에는 일부 있기 때문에 복음의 본질과 더 중요한 것은 뒤로 묻어 놓고 세상 생활 대책 면만 교회의 거의 전부인 듯 앞 세웠습니다. 그래서 순복음교회를 대표라 할 수 있는 식으로 한국교회는 기형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넘치게 누렸습니다.
이제는 오늘 불신 세상 이 나라에 산다는 것은 어제 교회가 약속했거나 실제 그 꿈을 이루어 주던 것 그 이상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회, 예수, 성경, 천국, 은혜... 이런 것을 빼고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세상이 스스로 세상 사람을 잘 살고 웃고 넘치도록 해 주려 했으나 힘이 없었을 때 과도기를 맡았던 단체였고 이제 세상이 자립을 해서 넘치게 해 주고 있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용도 폐기가 되어야 합니다.
일제 해방과 6.25 전시의 구국과 이후 허기 진 이 나라를 먹이던 시기에는 실제 미국의 존재는 우리에게 절박했습니다. 70년대를 거치며 이제 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는 미국보다 중국과 교역이 더 커진 정도입니다. 세계 10 대 국가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이 나라의 값이 치솟습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50년대의 미국이라는 단어와 아주 달라 집니다. 그 때는 필수요 생사였고 이제는 선택이며 활용의 대상일 뿐입니다.
한미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스스로 세상에게 교회의 존재 목적을 어떻게 전했던가? 천국이 아니라 세상을, 말씀이 아니라 물질의 복을, 진리가 아니라 성공의 결과만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세상이 되었고 세상은 교회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도 더 이상 이 나라 교회를 찾을 이유가 없고, 또 교회 안에 머무는 이들도 이제 의리나 습관이나 여러 얽힌 것 때문에 주저하기는 하나 언제든지 기회만 오면 이 참에 그냥! 세상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매 현실, 늘 배웁니다.
이 노선, 그 오랜 세월에 어떤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 길로만 걸었습니다. 그래서 외형조차 거의 바꾼 것이 없습니다. 내용은 갈수록 더 엄하게 하고 싶습니다. 한 주님과 한 성경을 가지고 하나의 천국에 가기는 가게 될 터이나 이왕이면 좀 낫고 빠르고 좋고 유익한 길을 만나게 된 은혜를 또 한 번 느껴 봅니다.
여러 이유 중에 경제적 이유를 하나 느끼고 있습니다. 수도권 순회 때문에 도심 지역을 며칠 동안 계속 머물며 많은 것을 절감합니다. 저는 1975년까지는 시골에만 살았기 때문에 세상 물정을 몰랐습니다. 1976년 1 년 동안 서울의 광화문에 살면서 천지개벽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1989년까지 부산에 살았는데 76년에 1 년 서울을 살아 본 경험 때문에 비록 지방에 살고 있어도 늘 수도권의 수준과 내용이 머리에 남아 있었고 각종 생활과 세상을 보는 시야에 있어서 부산에만 산다는 이유로 서울을 몰라서 생기는 문제는 없었습니다.
1989년부터 여수의 바닷가 어촌 마을에만 살았지만 한 번씩 부산이나 서울을 방문해도 1976년에 살아 본 서울의 경험과 이후 살아 본 부산의 경험 때문에 시골 목회자라도 제 세상 지식과 수준과 평가는 전국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해도 불편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고향 교회여서 명절이나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서울과 전국 각지에서 여러 형태로 성공한 인생을 사는 분들이 사택을 방문하게 될 때 또는 연구소 등의 업무로 외부 세계를 접할 때 느낀 것입니다.
그런데 1990년대를 지나 가면서부터 제가 아주 시골 사람이 되어 요즘 도시 돌아 가는 것을 너무 모른다고 느낄 때가 생겨 났고 이 현상은 갈수록 심해 져서 2000년 경에 이르자 앞이 잘 안 보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경제 수준, 세상의 발달이 감을 잡을 수 없을 만큼 급변했던 것입니다.
상상 못할 단기간에 발달, 특히 편의와 경제적 폭발적 변화...
그렇습니다. 이런 면이 이 정도로까지 좋아 졌다면 이제 한국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어 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찾아야 할 사람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또 교회마다 과거 습관이나 여가 선용 등의 이유 등으로 머물면 머물지 과거 교인으로서 교회를 머물 이유가 없어 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난하고 고통 받고 죽을 고생해도 앞이 보이지 않던 시절에 이 나라 교회는 교회가 잘 먹고 잘 살고 마음 편하게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전했고 이런 기능이 복음에는 일부 있기 때문에 복음의 본질과 더 중요한 것은 뒤로 묻어 놓고 세상 생활 대책 면만 교회의 거의 전부인 듯 앞 세웠습니다. 그래서 순복음교회를 대표라 할 수 있는 식으로 한국교회는 기형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넘치게 누렸습니다.
이제는 오늘 불신 세상 이 나라에 산다는 것은 어제 교회가 약속했거나 실제 그 꿈을 이루어 주던 것 그 이상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회, 예수, 성경, 천국, 은혜... 이런 것을 빼고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세상이 스스로 세상 사람을 잘 살고 웃고 넘치도록 해 주려 했으나 힘이 없었을 때 과도기를 맡았던 단체였고 이제 세상이 자립을 해서 넘치게 해 주고 있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용도 폐기가 되어야 합니다.
일제 해방과 6.25 전시의 구국과 이후 허기 진 이 나라를 먹이던 시기에는 실제 미국의 존재는 우리에게 절박했습니다. 70년대를 거치며 이제 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는 미국보다 중국과 교역이 더 커진 정도입니다. 세계 10 대 국가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이 나라의 값이 치솟습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50년대의 미국이라는 단어와 아주 달라 집니다. 그 때는 필수요 생사였고 이제는 선택이며 활용의 대상일 뿐입니다.
한미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스스로 세상에게 교회의 존재 목적을 어떻게 전했던가? 천국이 아니라 세상을, 말씀이 아니라 물질의 복을, 진리가 아니라 성공의 결과만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세상이 되었고 세상은 교회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도 더 이상 이 나라 교회를 찾을 이유가 없고, 또 교회 안에 머무는 이들도 이제 의리나 습관이나 여러 얽힌 것 때문에 주저하기는 하나 언제든지 기회만 오면 이 참에 그냥! 세상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매 현실, 늘 배웁니다.
이 노선, 그 오랜 세월에 어떤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 길로만 걸었습니다. 그래서 외형조차 거의 바꾼 것이 없습니다. 내용은 갈수록 더 엄하게 하고 싶습니다. 한 주님과 한 성경을 가지고 하나의 천국에 가기는 가게 될 터이나 이왕이면 좀 낫고 빠르고 좋고 유익한 길을 만나게 된 은혜를 또 한 번 느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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