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이 시대의 가룟 유다 - 교회 내의 진보 좌파 성향이 조심할 일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3.03.13
연구실/일반자료/3198번 '차별금지법' - 2013.3.13.' 내용 때문에 적습니다.
1. 세상의 정치, 그 교회와 기본 관계
- 한 길을 가다 보면
수 많은 학생들이 등교 길을 함께 갑니다. 끝까지 한 학교로 가기도 하나 중간에 여러 학교로 나뉘어 집니다. 세상과 교회가 같은 말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한 길을 함께 가는 듯 보일지라도 어디까지나 교회와 세상은 원수며 남남입니다.
- 요즘 우리 사회를 기준으로 본다면
여당 - 보수 - 우파 - 반공 - 국방 안보 - 경제 발전
야당 - 진보 - 좌파 - 공산 - 군대 해산 - 나눠 먹기
이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남한 사회의 현황 때문에 아직 극단적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움직이는 방향은 무조건 매사에 그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이 사회적 모습이 현 상태로는 교회에도 그대로 적응이 되고 있습니다.
교단 색채가 보수적일수록 사회적으로는 보수 여당과 하나 되고 진보 좌파 야당을 반대하며
교단이 진보적일수록 사회의 진보 좌파 야당과 하나 되어 교회와 세상의 보수를 비판합니다. 보수 교단 지도자들의 언행과 이 사회 보수당의 언행, 이 사회의 야당 진보 좌파들의 발언과 교회의 진보 좌파의 발언은 아주 빼닮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지금 현재에만 유효하지 늘 유효한 상황은 아닙니다.
- 역사에서 살펴 본 교회와 세상의 관계
아직은 우리 사회가 보수 여당 쪽이 교회를 덜 탄압하고, 진보 야당이 교회를 더 탄압을 하는 구도여서 교회의 정통 보수주의와 사회의 보수 여당이 거의 모든 면에서 동지처럼 보이고 있지만, 보수 여당이 야당 진보 세력을 제압하고 강력하게 독주를 하게 되면 그 때는 진보 좌파의 교회 탄압과 그 항목들은 다르지만 역시 교회를 바로 한 손에 틀어 쥐고 숨통을 끊어 버리는 모습을 갖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이 노선처럼 진정한 신앙유일주의 교회들은 어느 쪽이든 사회의 좌우와 보수 진보다 서로 싸울 때는 차라리 숨이라도 좀 쉬게 되나 한 쪽이 독주를 하면 생사를 걸어야 하는 환란은 꼭 같이 오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의 교회들은 그 사회가 보수 여당이 독주하면서 로마 시대는 초대교회의 환란이 일어 났고 대영제국에서는 청교도들의 미국 탈출 문제로 이어 졌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신약 2천 년 전체 역사를 통해 보수 여당의 독주가 1900여 년을 계속했고 이 시기의 교회는 교회가 교회답게 살아 있는 표시는 늘 '개혁' '저항' '반발' '좌파'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부터 당시 유대 사회에 대해 극좌파의 수괴였습니다. 루터 칼빈의 종교개혁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보수주의 교회나 신학교에는 연혁이나 설립 정신을 적을 때 항상 '개혁주의' '개혁교' '개혁'이라는 단어들이 쏟아 내는 것입니다.
- 한반도 현재 상황
오늘 20세기와 21세기 1백여 년만 가지고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서구와 한국의 사회들의 경우는 보수 여당이라는 이름은 신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진보 좌파라는 이름이 붙게 되면 교회를 형사 처벌을 하고 예배당 재산을 몰수할 수 있는 법령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그 진보 좌파의 본부 내지는 논리 제공을 하고 있는 본산은 과거 공산주의 국가이며 서방에서는 이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 서방이 확실하게 공산 국가를 향해 내 놓을 수 있는 선전이 '자유'이고 그 자유라는 구호 때문에 교회가 오래 세월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서방 세계도 한국도 보수주의가 득세를 하고 안정적으로 돌아 서게 되면 세상을 거머 쥐기 위해 교회를 통제하게 되고 이럴 때 진정한 교회는 생사 건 투쟁으로 돌아 서야 합니다. 또한 서방 세계가 공산주의와 맞설 때에 말했던 자유는 서방 세계식의 자유주의가 무르 익게 되면 썩는 것이고 썩게 되면 어느 정도까지 썩게 되는? 죄 짓는 자유와 타락 탈선하는 자유가 건전한 자유보다 더 창궐하게 되고 결국은 바로 믿으려는 교회는 단합 되고 뭉쳐 진 사회에 의해 또 다른 종류의 탄압을 받게 됩니다.
2. 차별 금지법의 발톱
어미 양 잡아 먹은 이리가 어미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아이들을 잡아 먹으려 현관을 두드렸을 때 새끼들의 생존 여부는 신중하고 지혜로움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새끼들로서는 문을 빨리 열어 주는 것은 죽음으로 달려 가는 길이고 만사 의심하고 조심하는 것이 생존을 담보합니다. 일단 목소리가 다릅니다. 목소리야 험한 세상에 세끼를 먹여 살리느라고 애미의 시장바닥 장사 과정에서 목이 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땅바닥에 이리의 꼬리가 보였습니다. 이런 것을 단초라 힌트라 합니다. 이런 것을 파악하는 것은 눈치라고도 합니다.
앞에는 차별금지를 내 세웠습니다. 새끼 양을 보호하겠다며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런 법을 만들자며 패거리를 지은 이들의 이름을 쭈욱 살펴 보니까 평양 말만 나오면 도와 주자고 난리를 부리는 이들로 가득찼습니다. 교회 중에서 보수주의 교회를 못 잡아 먹어 치를 떠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이 여당을 잠깐 할 때 고신 교단은 그들이 이미 먹었다가 뱉어 낸 정도입니다. 그 때 마음 먹었으면 끝장 날 상황인데 그들대로 지혜롭게 한다고 맛만 보여 주고 말았습니다.
무슨 차별을 금지하는가? 성경이 금지하여 교회가 금지해야 마땅하고 그렇게 가르쳐야 마땅한 것을 금지하는 법입니다. 북한을 돕는 방법은 인민군이 되어 총칼을 들고 뛰어 내려 오는 방법도 있고, 간첩이 되어 남한에 와서 정보를 빼 돌리는 방법도 있고, 남한에 있으면서 북한을 옹호하는 방법도 있고, 북한과는 아무 관계도 없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오로지 남한에 좋지 않은 것만 퍼트리고 남한이 힘을 못 쓰게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제일 뒤의 방법이 제일 탄로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애국을 위해 그렇게 한다면 목소리까지 높일 수 있습니다. 이들과는 보이 않는 전쟁을 해야 하고, 총을 든 이들과는 보이는 전쟁을 해야 하는데 현재처럼 남한이 월등하게 앞 서 있을 때는 보이는 적은 무시해도 되나 볼 수 없는 적이 치명적입니다. 이 설명은 우리가 신세를 지고 있는 남한 사회의 보수주의 입장에서 본 설명입니다. 문제는 우리처럼 이 사회에 신세를 지는 교회의 입장입니다.
교회가 성경 그대로 가르치면 국가가 처벌을 하겠다며 법을 만드려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반대하고 나서면 이 사회의 진보 좌파들은 이 사회 내의 보수주의 정통 교회는 그들과 세상 정치적 이해관계를 두고 원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늘 보이지 않게 교회의 생명을 끊으려 노력할 것이고 그 노력은 교회가 종교 단체라는 면이 있어 눈에 보이지 않게 평소 손을 볼 기회를 노리다가 어느 날 결정적으로 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미 해방 후 북한에서 일어 났던 일이 바로 견본입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한국의 보수 교회들은 일제히 이 사회의 여당 편을 들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1900여 년 동안 교회가 당한 것은 진보 좌파가 아니라 보수 우파에게 당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모두 혼동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3. 우리에게 닥친 상황
공공장소에서 전도했다가 체포 되었는 사례, 허가 없이 예배로 모였다 해서 예배당 사용 금지 문제 등이 이 곳의 '/연구실/발언/3262, 3283, 3268번 글에 그 사례를 모아 제공해 놓고 있습니다.
미국은 공산주의 국가가 손을 댈 수 없는 단계입니다. 이 나라는 자유를 앞 세워 공산주의를 굴복 시킨 나라입니다. 보수 우파가 확고하게 국가를 쥐게 되자, 그 다음에는 썩는 것입니다. 그 썩는 과정이 자유를 더욱 창궐하게 만들어 누리게 해서 안 되는 자유까지 보장을 하고 그 결국은 우리의 신앙 자유에 칼을 정면에서 치켜 든 상황입니다. 남한은 미국처럼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지금 그 꼴이 되어 갑니다. 북에서는 아직 지구에서 사라 질 20세기 공산주의의 끝자락이 죽기 전에 몸부림을 치고 있고 남에서는 미국처럼 공산주의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한 상황에서 맞고 있는 자유 이름의 또 다른 비자유적 조처를 닮는다며 차별금지법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번에는 이 법이 통과 되지 않을지 모르나 세상의 전체 추세로 보면 배가 고프면 별별 짓을 다하나 배가 부르게 되면 배 부른 짓을 하게 되고 그래서 또 망하는 그런 순서가 돌고 도는 것처럼 차별금지법이라는 교회 멱살잡는 법은 몇 번이고 시도 되다가 결국은 통과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계시록은 성경 마지막 기록이면서 이 세상 마지막을 제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 마지막의 최종 현상은 세상의 단합입니다. 무슨 짓을 하든 세상은 야바위 노름꾼들이 서로 짜고 손님과 주인으로 위장하여 지나 가는 손님들의 돈을 털어 먹는 것과 같습니다. 여야도, 진보 보수도, 공산주의 자본주의도, 좌우파 그 어느 쪽이라 해도 일시적으로는 교회에 동행하는 듯이 보일 수 있으나 마지막에는 뒤로 하나가 되어 교회를 삼킬 것입니다.
이 번 차별법을 보면서 그런 역사적, 또는 말세 전반적 시야를 먼저 바닥에 깔아 놓고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가 가는 한 현상을 지켜 봐야 합니다. 멋 모르고 차별 금지법을 교계가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가는 작은 미끼를 던져 큰 것을 낚는 데 걸립니다. 교계의 대처는 오래 전에 희망이 없습니다. 이 노선의 특별한 시야만이 소망일 듯합니다.
저도 이런 시야는 가져 본 적도 없었고 가질 수도 없었으나 백 목사님께 가까이 살며 배워서 알게 되었습니다. 훗날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함께 말세를 맞아야 할 신앙의 몇몇 동지들이 있다면 이런 글이 들어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적어 놓습니다.
4. 현재 교회 내의 진보 좌파
여야와 보수 진보와 좌우의 개념은 한 쪽이 무조건 다 옳고 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 내에는 절대 기준 성경이 있기 때문에 좌우든 진보 보수든 그 무엇이든 항상 명확하게 판단을 할 수가 있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그리고 국내의 교계에서 진보를 부르 짓는 인물이나 운동은 하나도 빼지 않고 모조리 성경을 부인합니다. 성경을 모조리 부인한다는 말은 66 권 내용 전부를 부인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절대 기준으로 정확무오하다고 믿는 여기에 단 한 번이라도 단 한 가지라도 믿지 못할 것이 있다고 바람을 빼 버리는 경우입니다.
보수는 기득권을 가졌다는 말이고 무조건 썩게 되어 있습니다. 이 썩은 것을 고친다고 양의 탈을 뒤집어 쓰고 그 속에는 새끼 양을 잡아 먹을 이리들이 들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라는 국내 제일 유명한 교회의 목사님 학위 문제나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의 범죄 문제와 전국의 유명 교단 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을 세상 언론과 교회 내 좌파 진보주의들이 총 동원 되어 짓밟아 대고 있는데, 이 교회 지도자들의 죄가 없다거나 그들을 잘한다는 등으로 비호를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 노선은 평소 그런 분들을 사실 교회 취급도 하지 않을 정도로 상대해 왔으나 교회 내의 '자유주의' '진보' '좌파' 이름이 붙은 이들이 교회의 보수주의가 만든 죄가 있다며 들고 일어 나는 것은 예수님 판 가룟 유다의 짓입니다.
보수 정통 교회의 잘못은 보수 정통 교회 스스로 목숨 걸고 처결해야 할 사안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 세상과 교회 내 자유주의자들이 그 기회에 교회를 아예 끝장을 낼 기회로 삼고 동행하고자 한다는 것을 잊으면, 보수 정통 교회 내에서 진정으로 교회를 살려 보려고 운동한 이들은 자기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한 '가룟 유다' 이름이 자기들 머리 위로 떨어 질 책임을 생각하며 언행해야 합니다.
1. 세상의 정치, 그 교회와 기본 관계
- 한 길을 가다 보면
수 많은 학생들이 등교 길을 함께 갑니다. 끝까지 한 학교로 가기도 하나 중간에 여러 학교로 나뉘어 집니다. 세상과 교회가 같은 말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한 길을 함께 가는 듯 보일지라도 어디까지나 교회와 세상은 원수며 남남입니다.
- 요즘 우리 사회를 기준으로 본다면
여당 - 보수 - 우파 - 반공 - 국방 안보 - 경제 발전
야당 - 진보 - 좌파 - 공산 - 군대 해산 - 나눠 먹기
이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남한 사회의 현황 때문에 아직 극단적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움직이는 방향은 무조건 매사에 그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이 사회적 모습이 현 상태로는 교회에도 그대로 적응이 되고 있습니다.
교단 색채가 보수적일수록 사회적으로는 보수 여당과 하나 되고 진보 좌파 야당을 반대하며
교단이 진보적일수록 사회의 진보 좌파 야당과 하나 되어 교회와 세상의 보수를 비판합니다. 보수 교단 지도자들의 언행과 이 사회 보수당의 언행, 이 사회의 야당 진보 좌파들의 발언과 교회의 진보 좌파의 발언은 아주 빼닮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지금 현재에만 유효하지 늘 유효한 상황은 아닙니다.
- 역사에서 살펴 본 교회와 세상의 관계
아직은 우리 사회가 보수 여당 쪽이 교회를 덜 탄압하고, 진보 야당이 교회를 더 탄압을 하는 구도여서 교회의 정통 보수주의와 사회의 보수 여당이 거의 모든 면에서 동지처럼 보이고 있지만, 보수 여당이 야당 진보 세력을 제압하고 강력하게 독주를 하게 되면 그 때는 진보 좌파의 교회 탄압과 그 항목들은 다르지만 역시 교회를 바로 한 손에 틀어 쥐고 숨통을 끊어 버리는 모습을 갖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이 노선처럼 진정한 신앙유일주의 교회들은 어느 쪽이든 사회의 좌우와 보수 진보다 서로 싸울 때는 차라리 숨이라도 좀 쉬게 되나 한 쪽이 독주를 하면 생사를 걸어야 하는 환란은 꼭 같이 오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의 교회들은 그 사회가 보수 여당이 독주하면서 로마 시대는 초대교회의 환란이 일어 났고 대영제국에서는 청교도들의 미국 탈출 문제로 이어 졌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신약 2천 년 전체 역사를 통해 보수 여당의 독주가 1900여 년을 계속했고 이 시기의 교회는 교회가 교회답게 살아 있는 표시는 늘 '개혁' '저항' '반발' '좌파'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부터 당시 유대 사회에 대해 극좌파의 수괴였습니다. 루터 칼빈의 종교개혁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보수주의 교회나 신학교에는 연혁이나 설립 정신을 적을 때 항상 '개혁주의' '개혁교' '개혁'이라는 단어들이 쏟아 내는 것입니다.
- 한반도 현재 상황
오늘 20세기와 21세기 1백여 년만 가지고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서구와 한국의 사회들의 경우는 보수 여당이라는 이름은 신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진보 좌파라는 이름이 붙게 되면 교회를 형사 처벌을 하고 예배당 재산을 몰수할 수 있는 법령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그 진보 좌파의 본부 내지는 논리 제공을 하고 있는 본산은 과거 공산주의 국가이며 서방에서는 이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 서방이 확실하게 공산 국가를 향해 내 놓을 수 있는 선전이 '자유'이고 그 자유라는 구호 때문에 교회가 오래 세월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서방 세계도 한국도 보수주의가 득세를 하고 안정적으로 돌아 서게 되면 세상을 거머 쥐기 위해 교회를 통제하게 되고 이럴 때 진정한 교회는 생사 건 투쟁으로 돌아 서야 합니다. 또한 서방 세계가 공산주의와 맞설 때에 말했던 자유는 서방 세계식의 자유주의가 무르 익게 되면 썩는 것이고 썩게 되면 어느 정도까지 썩게 되는? 죄 짓는 자유와 타락 탈선하는 자유가 건전한 자유보다 더 창궐하게 되고 결국은 바로 믿으려는 교회는 단합 되고 뭉쳐 진 사회에 의해 또 다른 종류의 탄압을 받게 됩니다.
2. 차별 금지법의 발톱
어미 양 잡아 먹은 이리가 어미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아이들을 잡아 먹으려 현관을 두드렸을 때 새끼들의 생존 여부는 신중하고 지혜로움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새끼들로서는 문을 빨리 열어 주는 것은 죽음으로 달려 가는 길이고 만사 의심하고 조심하는 것이 생존을 담보합니다. 일단 목소리가 다릅니다. 목소리야 험한 세상에 세끼를 먹여 살리느라고 애미의 시장바닥 장사 과정에서 목이 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땅바닥에 이리의 꼬리가 보였습니다. 이런 것을 단초라 힌트라 합니다. 이런 것을 파악하는 것은 눈치라고도 합니다.
앞에는 차별금지를 내 세웠습니다. 새끼 양을 보호하겠다며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런 법을 만들자며 패거리를 지은 이들의 이름을 쭈욱 살펴 보니까 평양 말만 나오면 도와 주자고 난리를 부리는 이들로 가득찼습니다. 교회 중에서 보수주의 교회를 못 잡아 먹어 치를 떠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이 여당을 잠깐 할 때 고신 교단은 그들이 이미 먹었다가 뱉어 낸 정도입니다. 그 때 마음 먹었으면 끝장 날 상황인데 그들대로 지혜롭게 한다고 맛만 보여 주고 말았습니다.
무슨 차별을 금지하는가? 성경이 금지하여 교회가 금지해야 마땅하고 그렇게 가르쳐야 마땅한 것을 금지하는 법입니다. 북한을 돕는 방법은 인민군이 되어 총칼을 들고 뛰어 내려 오는 방법도 있고, 간첩이 되어 남한에 와서 정보를 빼 돌리는 방법도 있고, 남한에 있으면서 북한을 옹호하는 방법도 있고, 북한과는 아무 관계도 없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오로지 남한에 좋지 않은 것만 퍼트리고 남한이 힘을 못 쓰게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제일 뒤의 방법이 제일 탄로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애국을 위해 그렇게 한다면 목소리까지 높일 수 있습니다. 이들과는 보이 않는 전쟁을 해야 하고, 총을 든 이들과는 보이는 전쟁을 해야 하는데 현재처럼 남한이 월등하게 앞 서 있을 때는 보이는 적은 무시해도 되나 볼 수 없는 적이 치명적입니다. 이 설명은 우리가 신세를 지고 있는 남한 사회의 보수주의 입장에서 본 설명입니다. 문제는 우리처럼 이 사회에 신세를 지는 교회의 입장입니다.
교회가 성경 그대로 가르치면 국가가 처벌을 하겠다며 법을 만드려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반대하고 나서면 이 사회의 진보 좌파들은 이 사회 내의 보수주의 정통 교회는 그들과 세상 정치적 이해관계를 두고 원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늘 보이지 않게 교회의 생명을 끊으려 노력할 것이고 그 노력은 교회가 종교 단체라는 면이 있어 눈에 보이지 않게 평소 손을 볼 기회를 노리다가 어느 날 결정적으로 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미 해방 후 북한에서 일어 났던 일이 바로 견본입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한국의 보수 교회들은 일제히 이 사회의 여당 편을 들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1900여 년 동안 교회가 당한 것은 진보 좌파가 아니라 보수 우파에게 당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모두 혼동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3. 우리에게 닥친 상황
공공장소에서 전도했다가 체포 되었는 사례, 허가 없이 예배로 모였다 해서 예배당 사용 금지 문제 등이 이 곳의 '/연구실/발언/3262, 3283, 3268번 글에 그 사례를 모아 제공해 놓고 있습니다.
미국은 공산주의 국가가 손을 댈 수 없는 단계입니다. 이 나라는 자유를 앞 세워 공산주의를 굴복 시킨 나라입니다. 보수 우파가 확고하게 국가를 쥐게 되자, 그 다음에는 썩는 것입니다. 그 썩는 과정이 자유를 더욱 창궐하게 만들어 누리게 해서 안 되는 자유까지 보장을 하고 그 결국은 우리의 신앙 자유에 칼을 정면에서 치켜 든 상황입니다. 남한은 미국처럼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지금 그 꼴이 되어 갑니다. 북에서는 아직 지구에서 사라 질 20세기 공산주의의 끝자락이 죽기 전에 몸부림을 치고 있고 남에서는 미국처럼 공산주의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한 상황에서 맞고 있는 자유 이름의 또 다른 비자유적 조처를 닮는다며 차별금지법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번에는 이 법이 통과 되지 않을지 모르나 세상의 전체 추세로 보면 배가 고프면 별별 짓을 다하나 배가 부르게 되면 배 부른 짓을 하게 되고 그래서 또 망하는 그런 순서가 돌고 도는 것처럼 차별금지법이라는 교회 멱살잡는 법은 몇 번이고 시도 되다가 결국은 통과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계시록은 성경 마지막 기록이면서 이 세상 마지막을 제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 마지막의 최종 현상은 세상의 단합입니다. 무슨 짓을 하든 세상은 야바위 노름꾼들이 서로 짜고 손님과 주인으로 위장하여 지나 가는 손님들의 돈을 털어 먹는 것과 같습니다. 여야도, 진보 보수도, 공산주의 자본주의도, 좌우파 그 어느 쪽이라 해도 일시적으로는 교회에 동행하는 듯이 보일 수 있으나 마지막에는 뒤로 하나가 되어 교회를 삼킬 것입니다.
이 번 차별법을 보면서 그런 역사적, 또는 말세 전반적 시야를 먼저 바닥에 깔아 놓고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가 가는 한 현상을 지켜 봐야 합니다. 멋 모르고 차별 금지법을 교계가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가는 작은 미끼를 던져 큰 것을 낚는 데 걸립니다. 교계의 대처는 오래 전에 희망이 없습니다. 이 노선의 특별한 시야만이 소망일 듯합니다.
저도 이런 시야는 가져 본 적도 없었고 가질 수도 없었으나 백 목사님께 가까이 살며 배워서 알게 되었습니다. 훗날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함께 말세를 맞아야 할 신앙의 몇몇 동지들이 있다면 이런 글이 들어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적어 놓습니다.
4. 현재 교회 내의 진보 좌파
여야와 보수 진보와 좌우의 개념은 한 쪽이 무조건 다 옳고 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 내에는 절대 기준 성경이 있기 때문에 좌우든 진보 보수든 그 무엇이든 항상 명확하게 판단을 할 수가 있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그리고 국내의 교계에서 진보를 부르 짓는 인물이나 운동은 하나도 빼지 않고 모조리 성경을 부인합니다. 성경을 모조리 부인한다는 말은 66 권 내용 전부를 부인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절대 기준으로 정확무오하다고 믿는 여기에 단 한 번이라도 단 한 가지라도 믿지 못할 것이 있다고 바람을 빼 버리는 경우입니다.
보수는 기득권을 가졌다는 말이고 무조건 썩게 되어 있습니다. 이 썩은 것을 고친다고 양의 탈을 뒤집어 쓰고 그 속에는 새끼 양을 잡아 먹을 이리들이 들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라는 국내 제일 유명한 교회의 목사님 학위 문제나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의 범죄 문제와 전국의 유명 교단 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을 세상 언론과 교회 내 좌파 진보주의들이 총 동원 되어 짓밟아 대고 있는데, 이 교회 지도자들의 죄가 없다거나 그들을 잘한다는 등으로 비호를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 노선은 평소 그런 분들을 사실 교회 취급도 하지 않을 정도로 상대해 왔으나 교회 내의 '자유주의' '진보' '좌파' 이름이 붙은 이들이 교회의 보수주의가 만든 죄가 있다며 들고 일어 나는 것은 예수님 판 가룟 유다의 짓입니다.
보수 정통 교회의 잘못은 보수 정통 교회 스스로 목숨 걸고 처결해야 할 사안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 세상과 교회 내 자유주의자들이 그 기회에 교회를 아예 끝장을 낼 기회로 삼고 동행하고자 한다는 것을 잊으면, 보수 정통 교회 내에서 진정으로 교회를 살려 보려고 운동한 이들은 자기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한 '가룟 유다' 이름이 자기들 머리 위로 떨어 질 책임을 생각하며 언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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