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콩 농사 [사진}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3.06.30
콩나물을 즐겨 먹습니다. 제 방에서 길러 보았습니다. 예전 방식으로 물을 주고 노력을 했는데 10 일이 걸립니다. 콩나물 기르는 간단한 시루가 있다 해서 몇만 원짜리를 사서 길러 보니까 4 시간 콩을 불린 다음 만 3일이면 식탁에 올려 놓고 먹게 합니다.

무심코 한 입에 들어 가는 10여 개 콩나물 가닥의 한 가닥이 각각 콩대 하나요 그 무성한 잎과 열매들을 생각하니까 아깝기도 하고 이 콩나물 하나를 심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습니다. 3 일만에 다 자란 식탁용 콩나물을 부엌에 갔다 주기 전에 콩나물 4 가닥을 뽑아서 제 창문에 주먹만한 작은 화분에 심어 보았습니다. 지금 제 창문을 아름답게 멋있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콩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헤아려 보니 20여 개가 달렸습니다. 제 주변에는 농사 짓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게 해서는 콩이 열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열린 것입니다. 이 번에는 그 분들이 열매 모습만 갖추지 속이 여물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물어 가고 있습니다.


제 손에서 종자로부터 열매를 맺도록 길러 본 농사는 처음입니다. 많은 것을 배웁니다. 세 살짜리 농부의 글입니다.

길러 본 이 콩나물 4 가닥을 가지고 제가 사는 시골 주변의 감나무 등나무 별별 열매 맺는 과목들을 그려 봤습니다. 모든 식물이 겉 모습을 갖추는 것은 아주 조기에 끝납니다. 네 달 농사라고 하는 콩의 경우로 예를 들면 한 달이면 겉 모습은 성인입니다. 두 달이면 열매의 덩치 자체는 커지지 않습니다. 그대신 그 때부터 나머지 기간은 속으로 소리 없이 여물어 갑니다. 열매 모습을 갖췄을 때 신기하여 손으로 열매를 만져 봤습니다. 껍데기만 있고 속은 텅 비었습니다. 때때로 만져 봅니다. 다음에는 물이 담겼습니다. 지금은 연하지만 고체가 잡힙니다. 앞으로 저 것이 그 단단한 콩알로 여물어 가겠지요.


사람이 겉 모습을 성인으로 갖추는 것은 10대에 대충이고 20 년이면 끝이 납니다. 그런데 이 20 세의 대학생들은 콩의 겉만 갖춘 것처럼 속에 든 것이 없습니다. 문득 백 목사님의 평생 설교 중에 '대학생 그 것들이 뭐을 안다고 데모야'라는 책망과 비판이 한도 없이 많았는데 저 역시 그 당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다 알거나 백 목사님과 수평 비교를 할 수는 없으나 아는 것이 대단히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생들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까지 있으니 그 사회를 지도하는 이들과 비교하면 알 만한 것은 다 아는데 양심까지 있으니 사실 대학생들의 판단이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신앙이 들고 눈을 새로 뜨고 배워 가며 알아 가면서 저는 아주 초강경파가 되었습니다. 진시황이 포크레인으로 구덩이를 파고 유학자와 유교 서적들을 모조리 파묻었다는 말을 적극 찬성할 정도입니다. 인간의 지식이 인간을 더 괴롭게만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생들이란 열매의 속을 만들기 위해 겉만 갖춘 상태입니다. 이 것을 단면적으로 비판하자면 100 % 외식자들이고 시간의 흐름 속에 귀엽게 봐 준다면 세 살짜리 아이들입니다. 이 것들이 하는 말은 그 말의 반대로 하면 된다 할 만큼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가르쳤고 이들에게 데모를 하라고 부추긴 교수들이 있다면 그들은 넉 달이 다 지나서 여문 콩을 가져야 하는데 추수 때보니 속이 없는 쭉정이들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나 대충의 흐름이 이렇습니다.

공회의 시각이 이렇다 보니 남들이 보면 반지식론자며 탈사회주의며 비현실적이라고 비판을 받기 알맞는 것도 사실이나, 분명한 것은 20 세의 청년들은 그들의 앞 날은 몰라도 그들의 오늘은 제 창문에 콩 모습은 100 % 갖춰으나 속은 아무 것도 없는 쭉정이들입니다.

이 노선의 우리 모습 때문에 콩과 우리 사회의 지난 날 대학생들의 발광을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 성도의 모습이 틀림 없이 성도인데 우리의 속이 그런가, 이 노선의 이 곳을 찾는 이들과 안내 창구에서 떠들고 있는 저의 모습은 성숙한 콩이며 성인의 모습은 분명히 갖췄습니다. 그런데 우리 속이 이 노선의 영양을 공급 받고 그 영양을 받아 자기 것으로 변환을 시키며 콩알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지고 다지고 다져서 돌 같은 콩알을 만들고 있는가?

콩알이 생겼는지 아닌지, 콩알이 여물었는지 아닌지 아는 방법은? 만져 보면 압니다.
탄식하며 이 글을 적습니다. 제게 대한 비판으로 제 모습을 콩깍지로 대학생의 번지르르한 말에 비추어 봅니다. 뜨거운 여름의 햇빛이 콩깍지 안으로 들어 간 수분 속에 영양분을 변환 시킵니다. 이 곳에 넘치는 이 귀한 교훈들이 각자 자기 속의 알곡이 되었으면. 분리해서 또 어느 현실에 따로 던졌을 때 이 노선의 교훈이 또 하나의 생활을 만들고 생명의 역사를 반복 시켰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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