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오벳에돔의 집, 그 복까지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3.12.16
본 연구소의 가장 소중한 사진 한 장을 소개합니다. '남단'이라는 집입니다. 섬돌 왼 쪽에는 고추를 말려 놓고 있습니다. 산골의 가옥입니다. 이 안에 이 노선의 가장 소중한 원본 자료들이 17년을 나그네로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원래 총공회라는 교단과 서부교회와 교단의 양성원과 전국의 이 노선 연구자들의 열렬한 환영과 지원과 연구를 한 몸에 받아야 하는 대상인데, 임진왜란 같은 변란에 일단 자료 보존에만 주력하다 보니 어느 시골 집에 기약 없이 기거하는 중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건국의 태조로부터 5백 년의 조선 역사를 빠짐 없이 일지로 기록했고 4 부로 만들어 서울 충주 성주 전주 등의 전국 4 곳에 분산 보관을 했습니다. 임진왜란에 3 곳이 불 탔으나 전주 사고 자료가 살아 남았는데 선비 1 명이 백 리 길의 내장산으로 옮겨 오늘까지 그 원본이 내려 오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미국 어느 교회가 370 년 된 시편 성경을 2 부 보관하고 있다가 그 중에 1 부를 150억 원에 팔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홈에는 150억이 아니라 그 10배를 준다 해도 팔 수 없는 소중한 자료들이 많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자료의 2 부 생성과 분리 보관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부산 연구소와 함께 이 홈은 별도 자료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산 연구소는 공회의 교권 행사에 주력하였고 이 곳은 연구에 주력하다 보니 거의 모든 원본 자료는 이 곳에 있다 할 상황입니다.

이 홈의 초기에 경제가 극히 어려울 때 연구소 직원이 멀리 있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시골 농가에 남단을 만들고 17 년을 자료실로 관리를 했습니다. 이 홈을 위해 인생을 다 바쳐 온 연구원들과 운영위원들에게조차 그 위치는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백영희 성함 사용 문제가 부각 되며 자료의 소재지를 묻는 분들이 많아서 주소지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나 사진으로 그 모습이라도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화재, 습기, 먼지, 온도, 방범까지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지만 외부 모습은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산 속의 농가입니다. 시내 사무실이나 신규 건물을 피하는 이유는 등기나 건축물 관리 대장 등에 기재가 되면 재산세의 대상이 되는 등 여러 형태로 위치가 노출 됩니다. 반면에 산골의 농가는 무허가 건물이고 흙벽돌이어서 보관 관리의 실제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있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과도기를 보내고 있는 곳을 성경은 오벧에돔의 집이라고 합니다. 그 집에는 여호와께서 넘치는 복을 주셨고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 법궤를 다시 제 자리로 올리게 됩니다. 전체 공회가 안정 되고 이 노선의 가치가 객관적으로 평가 받는 날이 되면 연구소는 자그마한 역사 자료실을 따로 마련하려고 생각합니다. 예산까지 확보 되어 있지만 그런 역사 자료실이 필요한지 반론하는 분들부터 교계에 의심을 받는다며 알아서 기는 죄인 근성의 신앙까지 난무하고 있어 할 수 없이 연구소의 내부 자료로만 관리하고 사용 중입니다. 얼마나 근검절약했는지, 어떤 성품이었는지 실감 있게 연구할 기회를 드리고 싶으나 광풍이 부는 날에 소중하고 민감한 자료를 옮기고 전시하다 분실이나 훼손이 있을까 합니다.

이 노선이 가치 있고 의미가 있다면 오벧에돔의 집이 되기를 자청하여 17년 동안 남단이라는 자료실을 무상으로 제공한 그 가정은 복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그 가정이 이 자료의 보관에 헌신함으로 받은 복은 글로 다 적기 어렵습니다. 또한 그 자료는 물론 이 연구의 중심지가 되기를 즐거워 하여 전력한 제 목회지 교회가 받은 복도 제대로 설명하려면 글로 적기는 어렵도록 종류도 많고 분량도 많습니다. 그냥 입만 벌리고 감탄만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런 복을 모두가 거절하여 돌고 돌아 제 목회지 교회까지 들어 왔습니다. 이 홈의 의미를 알고 이용하는 모든 분들께 그 은혜가 고루 나누어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