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불국사 석굴암의 조실대사도 pkist로 주님 품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3.12.20
보통 절에서 최고 인물은 '주지'라고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주지'는 외부에 내세운 인물이고 내적으로는 조실이 최고입니다. 상기 사진은 불국사 석굴암의 조실대사 묘소입니다. 중을 따질 때도 사회 활동이나 포교나 행정을 하는 승려들이 있고 밖으로 드러 나지만 사람을 만나지 않고 선만 하는 중들도 있습니다. '참중' '참선' '참승' 참선중' 등으로 주변에서 보통 사용합니다. 조실대사의 동생이 공회 교인이었고 그 가정에서 백 목사님을 한 번 만나 몇 마디 대화 중에 이 조실대사는 영생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오랜 세월 석굴암의 어른으로 있으면서 늘 그 복음으로 자문자답하다가 결국 서부교인이 되고 묘소에 묻힙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불교 사랑과 지원은 아마 고려 왕조 이후 최대 최고였을 것입니다. 그 따님 때문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주님을 믿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상 사람은 내 버려 두고 교인들이라면 그의 평생 지은 죄를 용서하고도 남아야 합니다.

이어령이라는 인물은 참으로 잘 난 사람이며 기독교를 꼭 짚어 비판을 하지 않았던 것 같으나 그의 사상에 구원이 들어 갈 여지는 없었다고 봤습니다. 잘 난 사람들의 불행입니다. 그런데 그 분도 회개하고 진심으로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불교계에 유명한 후원자 지지자들이 기독교를 믿는다고 돌아 서는 경우는 허다하지만 어느 교회 장로님이 불교로 돌아 섰다는 이야기는 없다고 알면 될 정도입니다. 있다 해도 평소 그가 부인 따라 그냥 몇 번 다녔는데 서툰 교회가 장로직에 앉혀 덕을 부려 한 그런 경우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불교계는 기독교를 향해 서로 전도하지 않기로 하자며 제의를 하고, 기독교는 무슨 말이냐고 외면을 합니다. 이런 대화만 놓고 봐도 종교 중에 어느 것이 옳은지를 가리는 것은 불신자라도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1970년대까지는 북한이 남한을 향해 격의 없이 언제 어디서라도 대화를 하자고 큰 소리를 쳤고 남한은 북한과 대화하려 하기만 해도 용공으로 처벌을 해야 했습니다. 그 때는 북한이 잘 나갔다는 뜻입니다. 1990년대부터는 북한은 무조건 대화 차단이고 남한은 한 번만 만나 보자고 사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이런 대화의 자세만 보면 바로 그 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80년대까지는 불교 승려가 기독교로 개종한 경우가 가끔 있었습니다. 그들의 간증 부흥회에 불교계는 집단으로 몰려 와서 횡포를 부렸습니다. 일반 승려 하나를 두고도 그러했습니다. 1983년 3월에 저도 함께 했던 장례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불국사 석굴암의 조실대사인 '능요대사'가 죽기 전에 회개하고 서부교인이 되었고 서부교회에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 날 아침 머리 깎은 중들이 100여 명 서부교회로 몰려 들었으나 교회가 워낙 컸고 또 가족들이 이 나라 최고의 법조인들이어서 조용하게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석굴암의 최고 어른의 입장이 확고했습니다.

공회 자료를 살피다가 서부교회 묘소에서 당시 사진을 찾았습니다. 이 사진이 바로 최지훈 씨 묘소입니다. 서부교회 묘소 552번입니다. 공회는 어지간히 '광고' '공지' '선전' '홍보'와는 거리가 먼 모양입니다. 30 년이 지난 지금 '연구'를 전념하는 이 홈에서 역사 자료를 정리하다 이제 처음으로 외부에 알립니다.

일제 때 일본 유학 출신의 엘리트였고 집안이 학문에는 비상했으며 평양 최벽부라는 인물이 그의 부친인데 이 최벽부가 일제 때 오산학교를 지원하였고 그의 사위 정기수가 오산학교 교장을 할 때 함석헌 등이 그 밑에 교사였으며 정기수는 해방 후 조만식 선생님의 외무 외교를 담당하며 해방 조국의 초대 외무장관으로 예견 되었던 인물입니다. 공회인으로 살다가 돌아 가신 정기수의 아내는 최귀주라는 제천 남천교회 교인이고 최지훈은 그의 오빠였습니다. 공회는 못난 사람들만 모인 곳인데 못난 사람만 자랑을 하고 못난 사람들이 설치다 보니 못난 공회가 되었으나 실제로는 세상 잘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자유당 때 오늘의 국세청장으로 계셨던 분, 대한민국 영화계 최고의 평론가 정영일, 변영태 총리, 대림건설의 창립주역 이재순... 그러나 공회는 교회였고 교회이기 위해 교회로 운영 되었으며 그 과정에 이런 분들은 신앙 서열과 내용 때문에 공회 안에서는 그 이름들이 드러 나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사진 한 장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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