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신약성경을 다 외웠던 양재평 장로님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4.01.12
백 목사님 전기 자료를 모으기 위해 길 건너 애양원교회를 자주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이광일 목사님은 손양원 목사님을 연구하다가 보수주의 신앙인이 되어 순교를 주제로 연구했고 그런 자료는 그가 속한 통합 교단과 장신대 쪽에서는 거의 없어 고신을 찾았으나 고신대학에도 의외로 관련 자료가 없어 제게 부탁을 했던 분입니다. 여러 자료를 드렸습니다. 고마워 했고 인용도 되었습니다. 저는 그 분에게 손양원 기념관에 1절밖에 갖지 못한 손 목사님의 시의 나머지 11절을 드렸습니다. 백 목사님의 시집에 백 목사님이 적어 놓았던 시였는데 그 시를 드리자 바로 교인들에게 확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양재평 장로님입니다.

그 양 장로님을 찾아 만났습니다. 그 정도 기억력이면 1960년에 애양원교회의 초청을 받아 집회를 인도한 백 목사님 관련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했습니다. 양 장로님께 놀라운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설교록에서 백 목사님은 예수님의 인성을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라고 했더니 설교 도중 장로 한 분이 일어나서 고성을 지르고 항의하며 가버렸다는 내용을 기억하는지 궁금했고 그 때 상황을 알고 싶었습니다. 양 장로님께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백영희 목사님의 사경회 인도를 기억하느냐고 먼저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바로 막힌 봇물이 터지듯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오늘 일을 오늘 저녁에 일기에 찬찬히 적어 나가듯이 말씀도 조용히 차분히 표현 하나하나를 짚고 있었습니다.

설교록에서 소개 받은 내용과 표현까지 일치했고 설교록에서 소개되지 않았던 내용을 많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 날의 본문, 둘째 날의 본문, 설교의 내용과 흐름 그리고 전개 되어 가던 순간 일어 났던 일들....

오늘 이 글을 적는 것은 이 이야기 때문이 아닙니다. 양 장로님은 백 목사님의 설교와 성경 지식에 참으로 감탄을 했는데 장로님 자신은 신약 성경을 전부 외우는 분이었습니다. 1924년에 출생하여 15 세에 나환자가 되었고 1942년에 애양원으로 들어 와서 평생을 살았는데 26세가 되던 해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 소경이 되었습니다. 이후에 주변 다른 사람이 불러 주는 성경을 들으며 외우기 시작했고 마침내 신약 성경 전부를 암송하는 분이 되었습니다. 그 분이 백 목사님의 설교, 그 것도 1961년처럼 백 목사님이 설교 중에 성구 인용을 많이 하고 또 성구 인용을 표시하지 않아도 설교 내용 전체가 거의 성구로 이어 지듯 나가는 것을 파악하는 데는 적임자였습니다.


2007년 84세로 돌아 가십니다. 언론에는 늘 그 분이 애양원을 대표하는 장로님처럼 소개하는데 정작 그 분 자신에게 백 목사님 설교 때 벌떡 일어 나서 고함을 지르고 나간 장로님에 대해 질문을 하면서 당시 교회 구성과 내면을 여쭸습니다. 양재평 장로님은 백 목사님을 모시고 집회하던 당시에는 발언권도 없는 일개 교인이었고 손 목사님 생전의 장로님들이 다 돌아 가시고 아무도 남은 사람이 없어 과거를 기억하는 자신이 지켜 본 목격담 정도에서 평생 애양원과 손 목사님을 외부인들께 안내했다고 합니다.

백 목사님에 대한, 그래서 공회에 대한 기억과 기대가 그 분은 남 달랐습니다. 제가 목회하는 교회와 한 마을에 있기 때문에 신풍교회의 역사와 외부 평가와 주변의 경계심을 그 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애양원교회 강단에서 말씀을 전해 주기를 청했습니다. 그 분이 청하면 목사님은 당연히 순종하는 사이였습니다. 또 담임 목사님도 백 목사님에 대해 깍듯한 자세였습니다. 양 장로님께 양해를 구하고 사양했습니다. 제가 서게 되면 강단에서는 제가 깨달은 대로 말씀을 전하게 될 터인데 과거의 애양원이면 같은 신앙의 노선에서 환영할 말씀이 되겠지만 오늘의 애양원이면 제가 전하는 이 노선의 설교는 애양원이 들어 볼 수 없는 가장 아픈 칼이 될 터인데 애양원의 자존심과 굳이 싸우러 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내용으로 말씀을 드렸고 그 분은 그 말의 뜻을 바로 알아 들었습니다.

신약 성경을 다 외우는 그 장로님에게 신구약성경을 다 외우는 백 목사님은 평생에 잊혀 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애양원에는 수도 없는 인물들이 다녀 갔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을 절절이 기억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성구 암송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그 분을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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