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총공회와 유무형의 회의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4.03.02
총공회는 개교회주의며, 개교회주의는 개인 신앙자유주의의 자연스런 발현이며, 개인 신앙자유주의는 모두를 같게 만드는 체계나 모습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소극적이며 때로는 부정적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인도하여 그 관계가 생명의 신앙이며 신앙의 기본으로 파악합니다. 그런 개인들을 가정이나 교회로 모아 함께 해야 할 사명을 주시니 이 것은 부부와 교회의 형태로 나타 나게 됩니다. 개인을 개별적으로 인도하듯이 부부와 교회들도 다른 가정이나 다른 교회들과 따로 인도하며 다른 사명을 주신다는 것을 2차 사항으로 파악하는 것이 공회 신앙입니다. 자연스럽게 한 교단도 그렇고 한 시대도 그렇습니다. 내면으로 보면 한 분 하나님과 하나인 진리에서 하나를 발견할 수 있고, 겉으로는 주신 위치와 역할 때문에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것이 성경이며 이 것이 신앙이라면 천하 교회와 교인 전부를 교황의 취향 하나에 묶어 꼭 같이 만드는 것은 천주교가 잘못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실수며, 오늘 교단들과 교회들이 단체성을 먼저 내 세워 개인별 하나님의 인도까지 막고 나선다면 교회의 생명성과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중대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회의 출발 정신은 이런 실제 신앙의 체험적인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공회가 공회다우면 전체적으로도 함께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럴 때는 단체적 모습이 보이나 대부분 시간과 노력은 개인은 개인 현실에서 개 교회는 그 교회 환경에서 자신들에게 따로 주어 진 사명에 집중하느라고 다른 것을 거의 돌아 보지 못합니다. 이런 면 때문에 공회는 생활과 실행에서 뿐 아니라 교회 운영에서도 형식 체계 제도 절차라는 것을 최소화합니다. 외형은 내면을 잘 담고 잘 전하는 그릇이지만 이 그릇이 강조가 되고 이 그릇에 내용을 맞추게 되면 주종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을 '회의'나 '총공회 조직'에서 찾아 본다면 공회는 마치 회의도 없는 것처럼, 마치 조직 체계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내면의 실제 회의를 위해 외형의 절차를 최소화하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따로 역사하는 하나님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전체에게 함께 역사하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면 다수결로, 또는 회의나 회의체의 기술과 기법으로 몰아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그 제도와 절차와 다수결이 들어서 그 회의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생명 있는 신앙을 전부 기계 부속으로 만들게 됩니다.

'2014년 총공회'는 외부 누가 봐도 회의체로 단체로 소집하고 진행하려고 소집 절차를 밟았습니다. 외형을 너무 축소하게 되자 형제들과 이웃들이 무교회주의나 되는 것처럼 또는 1인 구멍가게인 것처럼 오해를 하여 죄를 짓는 데 이를 수 있음을 봤기 때문에 그 정도가 되지 않도록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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