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새장의 '참새'들 안부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4.07.16
이 곳에 제가 기르는 '새'의 사진과 함께 안부를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남단의 글을 좋아 하는 분들이 계셔서 소식 하나를 덧붙입니다.
저희 교회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2014.7.16.
예배당 뜰의 한 공간에 새들이 깃들며 우리 교회와 이 복음을 지켜 보고 있습니다.
배 부른 세상이 되어 모두들 그림 속의 자연을 즐기며 노래하지만, 우리는 원래 시골에 살다 보니 그 자연이 우리의 전쟁터며 생존 경쟁의 직장입니다. 그런 교인들이 모인 교회 한 곳에 새를 기르다 보니 교인들께 죄송한 마음도 있으나 이런 틈 하나는 이해해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완조들은 열대 지방 출신을 사람들이 방 안에서 애완조로 변형 시켰던 것입니다. 한 겨울의 야생은 어려울 듯했으나 영하 10도가 계속 되는 지난 수 년 동안을 늘 무사히 생존하여 우리를 기뻤습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이 복음으로 말세 가장 혹독한 환경을 넉넉히 생존하고 오히려 자유를 누리라며 본을 보이고 격려하는 듯했습니다.
애완조들만 있던 새장에 참새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습니다. 2층에 잘못 날아 들어 온 친구, 세면대 창문 틈에 들어 가서 헤어 나지 못한 친구들인데 총 3 마리였습니다. 벌써 몇 년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부 수컷들이었습니다. 올해 4월 말에 옆 집에 길 잃은 참새가 있다 하여 모셨는데 암컷이었습니다. 이 번 주간에 참새 새끼들의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새장의 한 곳에 스스로 집을 지어 놓았습니다. 이들이 태어 나면 애완조가 야생으로 돌아 가던 우리 새장에, 이제는 야생의 참새들이 새장 안에 적응하고 집을 짓고 새끼까지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민 2세대가 되고, 출애굽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 가는 모습이 됩니다.
이 글을 적으며 한 가지를 짚고 싶습니다. 매일 새장을 들어 가는 저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의 귀 밝은 분에게 새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야생의 새는 물론 맹수 새끼라 해도 새끼 시절에는 부모가 없는 상태가 되면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혹시 소리를 내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바로 숨을 죽여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존의 본능'입니다. 학습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에게는 조물주 하나님께서 그 생명들이 자라 가는 과정에 스스로 해결하기 전까지 무조건 주시는 최소 필수 선물들이 있습니다. 젖을 빨거나 배가 고프면 우는 것이 그렇습니다. 태어 난 새들의 소리, 그들은 생존을 위해 태어 나자 말자 소리 내는 것부터 이런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킵니다.
그런데 어미들은, 제가 새장에 들어 갈 때는 절대로 새끼가 있는 집 근처로 가지 않습니다. 이 것도 짐승들의 본능입니다. 꿩을 잡을 때도 꿩이 날면 그 날아 간 곳에서 10 미터 정도의 주변으로 집을 찾습니다. 아무리 위험해도 꿩은 적어도 10 미터 정도를 수풀에서 기어 간 다음에 나릅니다.
인간만 하나님 주신 생존의 기본 선물인 이 본능을 무시합니다. 주변에 부모 외의 존재가 감지 되면 숨을 죽여야 하는데 열 살도 되지 않은 것들을 부모가 주변 모든 사람들이 쳐다 보도록 꾸며서 밖으로 내 보냅니다. 새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십대가 되고 나면 이제는 그들이 한껏 치장하고 온 시내를 다닙니다. 호랑이 새끼들도 그러지 않습니다. 어린 호랑이나 사자 새끼들이 까불고 다니면 늑대나 다른 맹수들이 물어 죽여 버립니다. 장차 그들의 위협 요소를 미리 제거합니다. TV의 동물왕국에서 이런 정보를 얻고 배운다면 TV도 하나님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TV를 보고 생존을 위해 숨는 새 새끼와 맹수 새끼들은 보지 않고, 밤 무대 성인들의 옷과 행동만 흉내를 내는 것이 보통인데 이렇게 되면 말세의 음녀가 됩니다.
새장의 안부를 전하며
예배당 마당에 기르는 새들 때문에 목회자로서 교인들께 이 말씀을 함께 전합니다.
남단의 글을 좋아 하는 분들이 계셔서 소식 하나를 덧붙입니다.
저희 교회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2014.7.16.
예배당 뜰의 한 공간에 새들이 깃들며 우리 교회와 이 복음을 지켜 보고 있습니다.
배 부른 세상이 되어 모두들 그림 속의 자연을 즐기며 노래하지만, 우리는 원래 시골에 살다 보니 그 자연이 우리의 전쟁터며 생존 경쟁의 직장입니다. 그런 교인들이 모인 교회 한 곳에 새를 기르다 보니 교인들께 죄송한 마음도 있으나 이런 틈 하나는 이해해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완조들은 열대 지방 출신을 사람들이 방 안에서 애완조로 변형 시켰던 것입니다. 한 겨울의 야생은 어려울 듯했으나 영하 10도가 계속 되는 지난 수 년 동안을 늘 무사히 생존하여 우리를 기뻤습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이 복음으로 말세 가장 혹독한 환경을 넉넉히 생존하고 오히려 자유를 누리라며 본을 보이고 격려하는 듯했습니다.
애완조들만 있던 새장에 참새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습니다. 2층에 잘못 날아 들어 온 친구, 세면대 창문 틈에 들어 가서 헤어 나지 못한 친구들인데 총 3 마리였습니다. 벌써 몇 년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부 수컷들이었습니다. 올해 4월 말에 옆 집에 길 잃은 참새가 있다 하여 모셨는데 암컷이었습니다. 이 번 주간에 참새 새끼들의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새장의 한 곳에 스스로 집을 지어 놓았습니다. 이들이 태어 나면 애완조가 야생으로 돌아 가던 우리 새장에, 이제는 야생의 참새들이 새장 안에 적응하고 집을 짓고 새끼까지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민 2세대가 되고, 출애굽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 가는 모습이 됩니다.
이 글을 적으며 한 가지를 짚고 싶습니다. 매일 새장을 들어 가는 저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의 귀 밝은 분에게 새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야생의 새는 물론 맹수 새끼라 해도 새끼 시절에는 부모가 없는 상태가 되면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혹시 소리를 내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바로 숨을 죽여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존의 본능'입니다. 학습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에게는 조물주 하나님께서 그 생명들이 자라 가는 과정에 스스로 해결하기 전까지 무조건 주시는 최소 필수 선물들이 있습니다. 젖을 빨거나 배가 고프면 우는 것이 그렇습니다. 태어 난 새들의 소리, 그들은 생존을 위해 태어 나자 말자 소리 내는 것부터 이런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킵니다.
그런데 어미들은, 제가 새장에 들어 갈 때는 절대로 새끼가 있는 집 근처로 가지 않습니다. 이 것도 짐승들의 본능입니다. 꿩을 잡을 때도 꿩이 날면 그 날아 간 곳에서 10 미터 정도의 주변으로 집을 찾습니다. 아무리 위험해도 꿩은 적어도 10 미터 정도를 수풀에서 기어 간 다음에 나릅니다.
인간만 하나님 주신 생존의 기본 선물인 이 본능을 무시합니다. 주변에 부모 외의 존재가 감지 되면 숨을 죽여야 하는데 열 살도 되지 않은 것들을 부모가 주변 모든 사람들이 쳐다 보도록 꾸며서 밖으로 내 보냅니다. 새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십대가 되고 나면 이제는 그들이 한껏 치장하고 온 시내를 다닙니다. 호랑이 새끼들도 그러지 않습니다. 어린 호랑이나 사자 새끼들이 까불고 다니면 늑대나 다른 맹수들이 물어 죽여 버립니다. 장차 그들의 위협 요소를 미리 제거합니다. TV의 동물왕국에서 이런 정보를 얻고 배운다면 TV도 하나님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TV를 보고 생존을 위해 숨는 새 새끼와 맹수 새끼들은 보지 않고, 밤 무대 성인들의 옷과 행동만 흉내를 내는 것이 보통인데 이렇게 되면 말세의 음녀가 됩니다.
새장의 안부를 전하며
예배당 마당에 기르는 새들 때문에 목회자로서 교인들께 이 말씀을 함께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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