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교회돕기, 교회살리기 운동...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4.08.26
선교지의 지원은 아주 특수하기 때문에 예외로 생각하겠습니다.
국내의 현재 환경은 영육간에 만사가 넘치는 시절입니다. 교회가 많아서 대폭 없애야 한다는 것을 교회까지도 내적으로 인정하는 정도입니다. 서로 자기 교회와 자기 교단만 예외로 두고 싶을 것이고, 타 교회나 타 교단에 대해 교회 숫자를 구조조정하자고 제안한다면 적극적인 동의를 할 듯합니다.
교회가 넘치면서 개척교회가 과거처럼 조금 견디면 자립교회를 지나 제대로 된 교회로 자리를 잡던 예전과 달리 늘 몇 명만 모여 어렵게 유지하고 그 몇 명은 안면 때문에 마지 못해 붙들려 있거나 그렇지 않은 교회라면 대부분 신앙의 본질을 떠나 동호인끼리 또래 모임으로 변질 된 경우입니다. 시골교회가 어렵고, 개척교회가 어렵고, 도시 상가교회가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교계에는 돕기 운동이 열풍처럼 일어났고 지금은 이 사회의 복지운동만큼 되었습니다.
공회는 교회를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젖먹이라면 부모의 수유가 필요하나 몇 살이 되면 혼자 떠 먹어야 하고, 10대가 되면 벌써 지게를 지고 제 밥벌이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예전에는 다 그러했습니다. 20세가 되면 가정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지키며 우리 사회에 역군이 되었습니다. 신라의 화랑은 10대에 구국의 전선에 앞 장을 섰고 줄줄이 죽었습니다. 그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수천 년이 지나고 모든 면으로 극단적으로 발전했다는 오늘에 30대 자립에 20대까지는 여전히 부모에게 매달려 사는 과거 10세 이하 아이들처럼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건전했던 시절에는 개척을 하는 목회자는 당연히 굶는 법이고 그래서 개척교회 목회자의 기도는 거의 금식기도였습니다. 또한 아이들 공부는 포기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고학을 하든지 아니면 10대 초반에 기술을 배워 제 인생을 살아 나갔습니다. 이 때 교회가 오늘의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불신 세상이 놀러 가는 해외를 목회자도 가고 싶고 그런 유흥 경비가 없다 보니까 시골교회 개척교회 해외 기도회 이름으로 지원비가 들어 갑니다. 지원비란 사실 구제금입니다. 교회는 구제를 하는 곳이지 구제를 받는 곳은 아닙니다.
이 노선은 어렵던 시기에 미국의 독립교회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원하겠다는 타진을 받아 왔었습니다. 그 때마다 돈은 필요 없고 기도를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미개국 교회에 선진국 교회가 경제 지원을 조금 하면 선진국 교회는 그 사회와 그 주변 교계에 영향력을 세계로 확대했다고 선전하고 또 그로 인해 자신들의 활동 공간을 넓히게 됩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중국 등의 해외나 북한선교에 눈을 돌리는 중요한 이유에 이런 면이 있다면 복음에 먼지가 되고, 찌끼가 되며, 더러운 이를 탐하는 죄가 됩니다.
이 노선은 기본적으로 출발할 때부터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방 전에는 선교사들에 의하여, 해방 후에는 미군의 구호 물자에 의하여 전국의 교회가 요즘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지원을 갈망하듯 그러할 때 이 노선 교회들은 받으러 오라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현실이 짚신이면 짚신을 신는 것이고, 선교사가 기도를 해 주고 교리를 가르쳐 주면 배우지만 그들이 본국의 구호 물자를 배부하면서 복지사업가로 대하면 우리는 아버지가 거부인데 지금 좀 고생해야 배울 것이 있어 훈련하는 시기이므로 받을 것이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서부교회는 많은 교회들을 개척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을 길러 사람을 파송했고, 그 사람은 말씀과 연단을 가지고 가서 교회를 세워 길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젖먹이처럼 돕지 않으면 안 될 때는 그렇게 했으나 기본적으로 자라 가는 생명처럼 그렇게 했습니다. 과도히 도우면 바보를 만들고 몹쓸 사람을 만든다는 세상 경험과 신앙의 근본을 바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돕는 교회의 긍휼과 자비는 좋으나 돕는 교회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모르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도움을 받는 교회는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마치 대학들이 교육부의 각종 지원사업을 많이 유치하는 것이 경쟁력 있는 학교가 되는 줄 알고 혈안이 되어 있듯 그런 자세를 걱정합니다.
공회의 기본 정신이 이러해서 공회 목회는 그 출발부터 대단히 어려워 보입니다. 알고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인데.
국내의 현재 환경은 영육간에 만사가 넘치는 시절입니다. 교회가 많아서 대폭 없애야 한다는 것을 교회까지도 내적으로 인정하는 정도입니다. 서로 자기 교회와 자기 교단만 예외로 두고 싶을 것이고, 타 교회나 타 교단에 대해 교회 숫자를 구조조정하자고 제안한다면 적극적인 동의를 할 듯합니다.
교회가 넘치면서 개척교회가 과거처럼 조금 견디면 자립교회를 지나 제대로 된 교회로 자리를 잡던 예전과 달리 늘 몇 명만 모여 어렵게 유지하고 그 몇 명은 안면 때문에 마지 못해 붙들려 있거나 그렇지 않은 교회라면 대부분 신앙의 본질을 떠나 동호인끼리 또래 모임으로 변질 된 경우입니다. 시골교회가 어렵고, 개척교회가 어렵고, 도시 상가교회가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교계에는 돕기 운동이 열풍처럼 일어났고 지금은 이 사회의 복지운동만큼 되었습니다.
공회는 교회를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젖먹이라면 부모의 수유가 필요하나 몇 살이 되면 혼자 떠 먹어야 하고, 10대가 되면 벌써 지게를 지고 제 밥벌이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예전에는 다 그러했습니다. 20세가 되면 가정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지키며 우리 사회에 역군이 되었습니다. 신라의 화랑은 10대에 구국의 전선에 앞 장을 섰고 줄줄이 죽었습니다. 그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수천 년이 지나고 모든 면으로 극단적으로 발전했다는 오늘에 30대 자립에 20대까지는 여전히 부모에게 매달려 사는 과거 10세 이하 아이들처럼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건전했던 시절에는 개척을 하는 목회자는 당연히 굶는 법이고 그래서 개척교회 목회자의 기도는 거의 금식기도였습니다. 또한 아이들 공부는 포기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고학을 하든지 아니면 10대 초반에 기술을 배워 제 인생을 살아 나갔습니다. 이 때 교회가 오늘의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불신 세상이 놀러 가는 해외를 목회자도 가고 싶고 그런 유흥 경비가 없다 보니까 시골교회 개척교회 해외 기도회 이름으로 지원비가 들어 갑니다. 지원비란 사실 구제금입니다. 교회는 구제를 하는 곳이지 구제를 받는 곳은 아닙니다.
이 노선은 어렵던 시기에 미국의 독립교회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원하겠다는 타진을 받아 왔었습니다. 그 때마다 돈은 필요 없고 기도를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미개국 교회에 선진국 교회가 경제 지원을 조금 하면 선진국 교회는 그 사회와 그 주변 교계에 영향력을 세계로 확대했다고 선전하고 또 그로 인해 자신들의 활동 공간을 넓히게 됩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중국 등의 해외나 북한선교에 눈을 돌리는 중요한 이유에 이런 면이 있다면 복음에 먼지가 되고, 찌끼가 되며, 더러운 이를 탐하는 죄가 됩니다.
이 노선은 기본적으로 출발할 때부터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방 전에는 선교사들에 의하여, 해방 후에는 미군의 구호 물자에 의하여 전국의 교회가 요즘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지원을 갈망하듯 그러할 때 이 노선 교회들은 받으러 오라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현실이 짚신이면 짚신을 신는 것이고, 선교사가 기도를 해 주고 교리를 가르쳐 주면 배우지만 그들이 본국의 구호 물자를 배부하면서 복지사업가로 대하면 우리는 아버지가 거부인데 지금 좀 고생해야 배울 것이 있어 훈련하는 시기이므로 받을 것이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서부교회는 많은 교회들을 개척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을 길러 사람을 파송했고, 그 사람은 말씀과 연단을 가지고 가서 교회를 세워 길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젖먹이처럼 돕지 않으면 안 될 때는 그렇게 했으나 기본적으로 자라 가는 생명처럼 그렇게 했습니다. 과도히 도우면 바보를 만들고 몹쓸 사람을 만든다는 세상 경험과 신앙의 근본을 바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돕는 교회의 긍휼과 자비는 좋으나 돕는 교회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모르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도움을 받는 교회는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마치 대학들이 교육부의 각종 지원사업을 많이 유치하는 것이 경쟁력 있는 학교가 되는 줄 알고 혈안이 되어 있듯 그런 자세를 걱정합니다.
공회의 기본 정신이 이러해서 공회 목회는 그 출발부터 대단히 어려워 보입니다. 알고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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