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구남단2
탑승객들의 오해들 - 50년 전의 선생님
구남단2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4.08.29
옛날 아이들은 새처럼 나는 꿈을 꿉니다. 요즘 아이들은 비행기를 타는 꿈을 꿀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TV 아동용 만화영화는 비행기를 친근하게 그려서 아이들이 생각한 것을 실제처럼 펼칩니다. 누구나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고 누구나 비행기에서 뛰어 나려 활공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손을 펴면 닿을 정도의 현실처럼 느낍니다.
시골의 경운기는 운전 중에라도 짐칸에 탄 청소년들이 뛰어 내릴 수도 있고 또 올라 탈 수도 있습니다. 옛날 일제 때 서울의 전차도 그러했다고 합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를 많이 접하고 연구하고 활용을 하다 보면 이제는 창공에서 자기 혼자의 힘으로 설교의 세계를 마음껏 비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갑니다. 실제로는 그 분 정도가 되어야 하고 또 그 이상이 되어 우주 밖으로 나가는 사람도 앞으로는 나와야 할 것이나, 현재까지는 아직 그 설교의 깊이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연구소의 직책 때문에 교계 안팎에 백영희 설교 세계에 대하여 일가견이 있거나 어느 경지에 도달했다는 분들을 종종 뵙습니다. 이런 분들은 백 목사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교계 어디에 가도 설교 하나로 아주 신령한 사람으로 대우 받던 공회 목회자들이 있었습니다. 한결같이 그들의 절정기에 공회를 떠났습니다. 그 분들을 수십 년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 제 눈에는 그런 목회자들과 백 목사님을 비교하면 거의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아이의 눈에는 뒷동산이나 백두산이나 갈매기 나는 높이나 비행기 나는 높이가 무늬로만 비교 되지 높이로는 비교가 되지 않을 때입니다.
백 목사님 밑에서 배울 때와 독자적으로 나가서 목회할 때를 비교하면 공통적으로 나타 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 밑에서 활동할 때 그 분들의 설교는 백 목사님께 배웠다는 경력만 특별할 뿐이지 실제 은혜 면을 보면 일반 교인 눈에는 백 목사님과 같아 보이는 정도였는데, 일단 백 목사님을 떠나게 되면 얼마 동안만 그들의 설교력이 주변을 끌 뿐이고 조금 지나면 추력이 떨어 져서 전혀 엉뚱한 곳을 향하든지 아니면 교계의 일반 수준까지 설교력이 떨어 져 버립니다. 공회 출신이어서 역시 다르다는 정도의 말만 듣지, 공회 내에 있을 때 교계를 압도하는 면은 사라 져 버립니다.
왜 그럴까? 추력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백 목사님께 배울 때 그 분들의 설교의 힘은 백 목사님의 설교의 능력이 뻗쳐 있었습니다. 외형은 그 분들의 실력처럼 보였으나 속에서 그 분들의 설교가 힘 있고 은혜롭게 만드는 이유는 백 목사님의 설교의 은혜가 이어 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회를 떠나게 되면 외부로 나타 나는 목회자의 모습은 그대로지만 내면에 백 목사님과의 은혜 줄이 끊어 집니다. 백 목사님이 자신을 떠났다고 전기를 차단한 것이 아니라, 이미 나가는 과정에서 그 분들의 마음에 백 목사님과의 은혜 줄을 스스로 끊은 것입니다. 이렇게 단선을 하고 나면 이제 그 분들의 자기 추력이 드러 납니다.
현재까지만 두고 본다면 백영익 목사님의 추력이 조금 있었던 것 같고, 김석준 목사님의 추력은 좀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의 추력은 거의 없다고 느껴 집니다. 간혹 자신의 독자적 추력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송용조 목사님은 공회 내에서 이미 공회와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추력을 준비했고 공회를 떠나자 교계에 활발하게 소신을 펼쳤습니다. 공회 입장에서 보면 탈선이고 송 목사님 입장에서 보면 발목에 족쇄를 풀고 복음의 자유로운 세계를 비행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집중하는 일 때문에 남들에게는 설교록만 소개하면서 정작 자신은 거의 설교록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설교는 설교록을 거의 참고하지 않습니다. 물론 지난 날 설교록 전체를 마음에 이미 담았을 정도겠지만 일단 현재 외견으로 보면 설교록을 거의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연구소 업무만 주력했고 이런 세월이 20 년이 넘었습니다. 아주 최근에 와서야 성경만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주일학교 반사 한 사람이 설교록을 살피고 내용을 정리해서 강단에 서면 제게는 백 목사님 생전에 그 분께 직접 받던 은혜를 느낍니다. 그리고 제 설교를 다시 들어 보면 백 목사님 생전에 이 노선을 떠난 분들의 이 노선 탈퇴 이후의 설교 세계를 느낍니다.
비행기 탑승객이 비행기에서 그냥 뛰어 내리면 가던 가속 때문에 조금 그렇게 가다가 조금 후에는 수직으로 떨어 질 것입니다. 만일 선풍기 정도의 엔진을 달고 있다면 비행기에서 내린 순간 조금 지나면 장독대를 옮겨 다닐 정도의 장난이 될 것입니다. 경비행기 엔진을 가진 분들은 뛰어 내린 후에도 제법 멀리 갈 것이나 궤적을 유심히 추적해 보면 출력과 행적에서 뚜렷한 감소 현상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선풍기 엔진을 가졌거나 그마저 없는 이들이 볼 때는 공회를 탈퇴한 뒤에도 과거 못지 않게 목회하는 분으로 보이며 독자적인 실력이 백 목사님과 사실 진배 없었다고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이들 눈에는 50보에 100보 차이일 것입니다.
백영희 설교를 통해, 성경과 하나님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배우되 그 배움의 과정을 통해 그 분이 앞 서 가며 소개한 그 수준에 이르는 사람이 나오고 그 분을 넘어 서는 분이 나올 때 이 노선은 주님 오시기 전에 또 한 번 시대를 감당하는 종을 모시게 될 터인데 그럴 기회를 주실지. 아니면 우리 각자가 비록 좀 작지만 그래도 독립 신앙들을 가진 숫자가 많고 그 많은 숫자가 시공을 초월하여 합산 될 때 우리 모두의 힘으로 이 시대를 감당하게 될지. 여러 면을 생각해 봤습니다.
주일학교 3학년 때 제게 기본구원을 심어 주셨던 반사 선생님이 현재 75세며 서울에서 혼자 사는 사모님입니다. 화요일 밤 늦게 통화를 하다 12시를 넘겼습니다. 그 분은 1966년에 제게 교리를 심었고 1968년과 69년으로 기억 되는 기간에는 성경 전체를 잘 요약해서 전했던 분입니다. 이야기 식이 아니고 시청각 교재를 동원한 것도 아니고 성경 내용 그대로를 공회 공과식으로 또박또박 전했는데 당시 저는 예배를 훼방하느라고 말도 못했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그런 망나니 짓을 하던 귀에 그 말씀들이 심길 여지도 기억조차 없었는데 최근에 성경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 시절 그 사모님의 전하던 모습과 그 말씀들이 대목대목 또렷하게 선명하게 보입니다. 너무 감사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 말씀이 백 목사님 설교를 재독하다 보면 30년 전에 직접 들을 때는 그 때 엄청나게 은혜를 받고 그 때는 그런 은혜 이상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30년이 지난 오늘 새로 재독을 하다 보니 천하에 이런 말씀이었는데 그 때는 무엇을 들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 갔다는 생각에 기가 막힌다고 합니다.
5월과 8월에는 많은 공회 식구들이 산 집회를 통해 함께 재독을 합니다. 오래 다닌 분들, 목회자들, 설교록 연구에 더욱 매진한 사람들일수록 감탄에 감탄입니다. 30 년 전에 그 때 처음 들을 때도 천하가 우습게 보이도록 은혜로웠던 말씀이, 재독을 하면 더 깊어 지고 세월이 더욱 지나가고 다시 재독하니 더 깊어 지고 있습니다. 에스겔 성전에서 흘러 나온 물이 처음에는 문지방으로 새어 나왔지만 1천척이 흐르니 발목에 잠길 만큼 되고 이후 무릎과 허리까지 차며 나중에는 천하를 소성케 했다고 했습니다. 생명 운동이란 피 한 방울로 시작해서 태아로 모습을 드러 내며 조금씩 자라 갑니다. 이 노선의 생명의 역사는 백 목사님 생전에 있었던 외형적 굉장한 모습 속에 실제로 자라 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총공회는 그 외형적으로는 분명히 붕괴 직전처럼 내려 앉고 있으나 그 외형이 지반 침하 현상에 붕괴 되는 내면에서는 이런 말씀의 생명 역사가 꾸준히 강해 지고 있습니다.
시대의 소망을 함께 받기를 소원하며
50년 전의 주일학교 선생님과 통화하며 깊이 느낀 여러 면들을 전합니다.
그 선생님이 그 당시 성경이 어렵다 해서 동화로 그림으로 이야기로 만들어 심었다면 제 머리 속에도 왜곡 된 성경이 심겨 졌을 것이고 지금 신앙이라면 그렇게 심은 선생님에게 제 백지에 낙서했다고 원망을 했을 터입니다. 주일학생이나 어린 교인이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해 달라고 몸부림을 쳐도 말씀을 전하는 우리의 책임은 기도하고 은혜를 구하되 말씀은 남녀노소 유무식을 막론하고 말씀 그대로만 전하는 것이 공회의 말씀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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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오로지 성경만 읽고 있습니다.
수정: 오로지 연구소 업무만 주력했고 이런 세월이 20 년이 넘었습니다. 아주 최근에 와서야 성경만 읽고 있습니다.
시골의 경운기는 운전 중에라도 짐칸에 탄 청소년들이 뛰어 내릴 수도 있고 또 올라 탈 수도 있습니다. 옛날 일제 때 서울의 전차도 그러했다고 합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를 많이 접하고 연구하고 활용을 하다 보면 이제는 창공에서 자기 혼자의 힘으로 설교의 세계를 마음껏 비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갑니다. 실제로는 그 분 정도가 되어야 하고 또 그 이상이 되어 우주 밖으로 나가는 사람도 앞으로는 나와야 할 것이나, 현재까지는 아직 그 설교의 깊이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연구소의 직책 때문에 교계 안팎에 백영희 설교 세계에 대하여 일가견이 있거나 어느 경지에 도달했다는 분들을 종종 뵙습니다. 이런 분들은 백 목사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교계 어디에 가도 설교 하나로 아주 신령한 사람으로 대우 받던 공회 목회자들이 있었습니다. 한결같이 그들의 절정기에 공회를 떠났습니다. 그 분들을 수십 년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 제 눈에는 그런 목회자들과 백 목사님을 비교하면 거의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아이의 눈에는 뒷동산이나 백두산이나 갈매기 나는 높이나 비행기 나는 높이가 무늬로만 비교 되지 높이로는 비교가 되지 않을 때입니다.
백 목사님 밑에서 배울 때와 독자적으로 나가서 목회할 때를 비교하면 공통적으로 나타 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 밑에서 활동할 때 그 분들의 설교는 백 목사님께 배웠다는 경력만 특별할 뿐이지 실제 은혜 면을 보면 일반 교인 눈에는 백 목사님과 같아 보이는 정도였는데, 일단 백 목사님을 떠나게 되면 얼마 동안만 그들의 설교력이 주변을 끌 뿐이고 조금 지나면 추력이 떨어 져서 전혀 엉뚱한 곳을 향하든지 아니면 교계의 일반 수준까지 설교력이 떨어 져 버립니다. 공회 출신이어서 역시 다르다는 정도의 말만 듣지, 공회 내에 있을 때 교계를 압도하는 면은 사라 져 버립니다.
왜 그럴까? 추력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백 목사님께 배울 때 그 분들의 설교의 힘은 백 목사님의 설교의 능력이 뻗쳐 있었습니다. 외형은 그 분들의 실력처럼 보였으나 속에서 그 분들의 설교가 힘 있고 은혜롭게 만드는 이유는 백 목사님의 설교의 은혜가 이어 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회를 떠나게 되면 외부로 나타 나는 목회자의 모습은 그대로지만 내면에 백 목사님과의 은혜 줄이 끊어 집니다. 백 목사님이 자신을 떠났다고 전기를 차단한 것이 아니라, 이미 나가는 과정에서 그 분들의 마음에 백 목사님과의 은혜 줄을 스스로 끊은 것입니다. 이렇게 단선을 하고 나면 이제 그 분들의 자기 추력이 드러 납니다.
현재까지만 두고 본다면 백영익 목사님의 추력이 조금 있었던 것 같고, 김석준 목사님의 추력은 좀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의 추력은 거의 없다고 느껴 집니다. 간혹 자신의 독자적 추력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송용조 목사님은 공회 내에서 이미 공회와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추력을 준비했고 공회를 떠나자 교계에 활발하게 소신을 펼쳤습니다. 공회 입장에서 보면 탈선이고 송 목사님 입장에서 보면 발목에 족쇄를 풀고 복음의 자유로운 세계를 비행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집중하는 일 때문에 남들에게는 설교록만 소개하면서 정작 자신은 거의 설교록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설교는 설교록을 거의 참고하지 않습니다. 물론 지난 날 설교록 전체를 마음에 이미 담았을 정도겠지만 일단 현재 외견으로 보면 설교록을 거의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연구소 업무만 주력했고 이런 세월이 20 년이 넘었습니다. 아주 최근에 와서야 성경만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주일학교 반사 한 사람이 설교록을 살피고 내용을 정리해서 강단에 서면 제게는 백 목사님 생전에 그 분께 직접 받던 은혜를 느낍니다. 그리고 제 설교를 다시 들어 보면 백 목사님 생전에 이 노선을 떠난 분들의 이 노선 탈퇴 이후의 설교 세계를 느낍니다.
비행기 탑승객이 비행기에서 그냥 뛰어 내리면 가던 가속 때문에 조금 그렇게 가다가 조금 후에는 수직으로 떨어 질 것입니다. 만일 선풍기 정도의 엔진을 달고 있다면 비행기에서 내린 순간 조금 지나면 장독대를 옮겨 다닐 정도의 장난이 될 것입니다. 경비행기 엔진을 가진 분들은 뛰어 내린 후에도 제법 멀리 갈 것이나 궤적을 유심히 추적해 보면 출력과 행적에서 뚜렷한 감소 현상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선풍기 엔진을 가졌거나 그마저 없는 이들이 볼 때는 공회를 탈퇴한 뒤에도 과거 못지 않게 목회하는 분으로 보이며 독자적인 실력이 백 목사님과 사실 진배 없었다고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이들 눈에는 50보에 100보 차이일 것입니다.
백영희 설교를 통해, 성경과 하나님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배우되 그 배움의 과정을 통해 그 분이 앞 서 가며 소개한 그 수준에 이르는 사람이 나오고 그 분을 넘어 서는 분이 나올 때 이 노선은 주님 오시기 전에 또 한 번 시대를 감당하는 종을 모시게 될 터인데 그럴 기회를 주실지. 아니면 우리 각자가 비록 좀 작지만 그래도 독립 신앙들을 가진 숫자가 많고 그 많은 숫자가 시공을 초월하여 합산 될 때 우리 모두의 힘으로 이 시대를 감당하게 될지. 여러 면을 생각해 봤습니다.
주일학교 3학년 때 제게 기본구원을 심어 주셨던 반사 선생님이 현재 75세며 서울에서 혼자 사는 사모님입니다. 화요일 밤 늦게 통화를 하다 12시를 넘겼습니다. 그 분은 1966년에 제게 교리를 심었고 1968년과 69년으로 기억 되는 기간에는 성경 전체를 잘 요약해서 전했던 분입니다. 이야기 식이 아니고 시청각 교재를 동원한 것도 아니고 성경 내용 그대로를 공회 공과식으로 또박또박 전했는데 당시 저는 예배를 훼방하느라고 말도 못했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그런 망나니 짓을 하던 귀에 그 말씀들이 심길 여지도 기억조차 없었는데 최근에 성경을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 시절 그 사모님의 전하던 모습과 그 말씀들이 대목대목 또렷하게 선명하게 보입니다. 너무 감사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 말씀이 백 목사님 설교를 재독하다 보면 30년 전에 직접 들을 때는 그 때 엄청나게 은혜를 받고 그 때는 그런 은혜 이상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30년이 지난 오늘 새로 재독을 하다 보니 천하에 이런 말씀이었는데 그 때는 무엇을 들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 갔다는 생각에 기가 막힌다고 합니다.
5월과 8월에는 많은 공회 식구들이 산 집회를 통해 함께 재독을 합니다. 오래 다닌 분들, 목회자들, 설교록 연구에 더욱 매진한 사람들일수록 감탄에 감탄입니다. 30 년 전에 그 때 처음 들을 때도 천하가 우습게 보이도록 은혜로웠던 말씀이, 재독을 하면 더 깊어 지고 세월이 더욱 지나가고 다시 재독하니 더 깊어 지고 있습니다. 에스겔 성전에서 흘러 나온 물이 처음에는 문지방으로 새어 나왔지만 1천척이 흐르니 발목에 잠길 만큼 되고 이후 무릎과 허리까지 차며 나중에는 천하를 소성케 했다고 했습니다. 생명 운동이란 피 한 방울로 시작해서 태아로 모습을 드러 내며 조금씩 자라 갑니다. 이 노선의 생명의 역사는 백 목사님 생전에 있었던 외형적 굉장한 모습 속에 실제로 자라 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총공회는 그 외형적으로는 분명히 붕괴 직전처럼 내려 앉고 있으나 그 외형이 지반 침하 현상에 붕괴 되는 내면에서는 이런 말씀의 생명 역사가 꾸준히 강해 지고 있습니다.
시대의 소망을 함께 받기를 소원하며
50년 전의 주일학교 선생님과 통화하며 깊이 느낀 여러 면들을 전합니다.
그 선생님이 그 당시 성경이 어렵다 해서 동화로 그림으로 이야기로 만들어 심었다면 제 머리 속에도 왜곡 된 성경이 심겨 졌을 것이고 지금 신앙이라면 그렇게 심은 선생님에게 제 백지에 낙서했다고 원망을 했을 터입니다. 주일학생이나 어린 교인이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해 달라고 몸부림을 쳐도 말씀을 전하는 우리의 책임은 기도하고 은혜를 구하되 말씀은 남녀노소 유무식을 막론하고 말씀 그대로만 전하는 것이 공회의 말씀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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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오로지 성경만 읽고 있습니다.
수정: 오로지 연구소 업무만 주력했고 이런 세월이 20 년이 넘었습니다. 아주 최근에 와서야 성경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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