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주해) 이사야 51:4-5, '하나님의 의'
연구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3.03.12
(구원을 위해 베푸신 '칭의 = 대속 > 하나님의 의')
의란 말씀으로 산 행위, 명령을 지켰다는 뜻이다.
죄는 말씀을 어긴 행위, 명령을 버렸다는 뜻이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 했는데 먹었으니 인간은 죄인이 되었고 그 죄값으로 지옥이다.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죄'다.
의라는 말은 죄인이 되어 지옥을 가야 하는데 예수님이 죄값을 대신 해결하고 우리를 다시 '의'인으로 만들었다.
예수님이 수고하신 것은 사람으로 오셨고 평생을 우리 위해 활동하셨고 우리를 위해 죽었고 부활을 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우리 위해 하셨으니 하나님이 만드신 이 '의'를 입고 우리는 의인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천국에 간다.
우리가 구원 받고, 우리가 천국 가고, 우리는 이제 죄와 상관이 없다 라고 할 때 의는 정확히 '하나님의 의'이다.
인간 노력은 전혀 들어 가지 않았고, 주님이 대신 수고하고 만들어 우리에게 입혀 놓은 '하나님의 의'가 구원이다.
(이사야 51장 5절)
공회의 삼분설과 건설구원론이 아니면 '내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이라는 5절을 해석할 수 있을까?
해석은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로 곧 오실 것을 말한다고 해석하면 무리가 없다. 다 그렇다.
그렇지만 기본구원의 의로만 해석하게 되면 아직 의가 오지 않아서 의인이 아니고 아직 중생이 되지 않았는데
17절에서 '깰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시면 중생이 되기 전에도 회개하고 돌아 설 수가 있다는 말이 되어 버린다.
이사야에 말씀하신 '의'뿐 아니라 성경에 우리의 노력과 상관 없이 받게 되는 '하나님의 의'는 기본구원 문제다.
그리고 우리가 노력해야 할 말씀들의 문제는 건설구원의 문제다. 성경 전체를 통해 모든 말씀을 해결하는 열쇠다.
사51:5 '내 의가 가깝고'라 했으니 3저부터 시작 되는 '나 여호와가'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가깝다.
오늘 이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는 어느 정도로 가까울까? 안 믿던 우리를 성령이 중생을 시킨다.
공간적으로 강 너머 산 너머 있는 것을 끌어다 오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때가 되면 내 안으로 오셔서 해결한다.
중생이 된 사람은 이 말씀과 상관이 없을까? 중생이 된 사람에게는 영 속에 하나님의 의가 항상 기다리고 있다.
내 마음이 언제든지 양심의 귀를 기울이면 내 영 속에서 넘쳐 나오는 하나님의 의를 마음 안에다 모실 수 있다.
영을 중생 시킨 하나님의 의, 대속의 공로는 우리 영에서 기다리다가 우리 마음을 사죄의 마음으로 살게 만들고
우리의 행동까지 사죄 받은 생활을 하게 한다.
구약에게는 오실 주님이 가깝다 하신 것이고
신약의 우리에게는 중생의 순간이 다가 왔으니 힘껏 전하되 때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신학의 상식이며 별 이견이 없다.
그런데 중생 된 사람에게 주신 것이 성경인데
이사야 51장의 뜻이 무엇인지 읽는 사람은 전도에 지체하지 말라는 말씀으로만 읽어야 할 성구일까?
즉, 남에게만 해당 되고 나에게 해당 되는 것은 없을까?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먼저 원하는 것이 있을 터인데..
영은 중생이 되었으나 우리의 마음이 문제고, 우리의 행동이 문제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행위까지 말씀으로 살 수 있도록 중생 된 영을 채우고 있는 하나님의 의, 이 의가 가깝다.
신30:11, 믿는 우리에게 원하는 말씀은 바다 건너를 가거나 하늘에 갔다 와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 된 영 안에서 기다리는 성령에게 배우면 된다. 배울 것이 많고 고칠 것이 많다. 해야 할 일도 참으로 많다.
의란 말씀으로 산 행위, 명령을 지켰다는 뜻이다.
죄는 말씀을 어긴 행위, 명령을 버렸다는 뜻이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 했는데 먹었으니 인간은 죄인이 되었고 그 죄값으로 지옥이다.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죄'다.
의라는 말은 죄인이 되어 지옥을 가야 하는데 예수님이 죄값을 대신 해결하고 우리를 다시 '의'인으로 만들었다.
예수님이 수고하신 것은 사람으로 오셨고 평생을 우리 위해 활동하셨고 우리를 위해 죽었고 부활을 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우리 위해 하셨으니 하나님이 만드신 이 '의'를 입고 우리는 의인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천국에 간다.
우리가 구원 받고, 우리가 천국 가고, 우리는 이제 죄와 상관이 없다 라고 할 때 의는 정확히 '하나님의 의'이다.
인간 노력은 전혀 들어 가지 않았고, 주님이 대신 수고하고 만들어 우리에게 입혀 놓은 '하나님의 의'가 구원이다.
(이사야 51장 5절)
공회의 삼분설과 건설구원론이 아니면 '내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이라는 5절을 해석할 수 있을까?
해석은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로 곧 오실 것을 말한다고 해석하면 무리가 없다. 다 그렇다.
그렇지만 기본구원의 의로만 해석하게 되면 아직 의가 오지 않아서 의인이 아니고 아직 중생이 되지 않았는데
17절에서 '깰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시면 중생이 되기 전에도 회개하고 돌아 설 수가 있다는 말이 되어 버린다.
이사야에 말씀하신 '의'뿐 아니라 성경에 우리의 노력과 상관 없이 받게 되는 '하나님의 의'는 기본구원 문제다.
그리고 우리가 노력해야 할 말씀들의 문제는 건설구원의 문제다. 성경 전체를 통해 모든 말씀을 해결하는 열쇠다.
사51:5 '내 의가 가깝고'라 했으니 3저부터 시작 되는 '나 여호와가'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가깝다.
오늘 이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는 어느 정도로 가까울까? 안 믿던 우리를 성령이 중생을 시킨다.
공간적으로 강 너머 산 너머 있는 것을 끌어다 오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때가 되면 내 안으로 오셔서 해결한다.
중생이 된 사람은 이 말씀과 상관이 없을까? 중생이 된 사람에게는 영 속에 하나님의 의가 항상 기다리고 있다.
내 마음이 언제든지 양심의 귀를 기울이면 내 영 속에서 넘쳐 나오는 하나님의 의를 마음 안에다 모실 수 있다.
영을 중생 시킨 하나님의 의, 대속의 공로는 우리 영에서 기다리다가 우리 마음을 사죄의 마음으로 살게 만들고
우리의 행동까지 사죄 받은 생활을 하게 한다.
구약에게는 오실 주님이 가깝다 하신 것이고
신약의 우리에게는 중생의 순간이 다가 왔으니 힘껏 전하되 때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신학의 상식이며 별 이견이 없다.
그런데 중생 된 사람에게 주신 것이 성경인데
이사야 51장의 뜻이 무엇인지 읽는 사람은 전도에 지체하지 말라는 말씀으로만 읽어야 할 성구일까?
즉, 남에게만 해당 되고 나에게 해당 되는 것은 없을까?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먼저 원하는 것이 있을 터인데..
영은 중생이 되었으나 우리의 마음이 문제고, 우리의 행동이 문제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행위까지 말씀으로 살 수 있도록 중생 된 영을 채우고 있는 하나님의 의, 이 의가 가깝다.
신30:11, 믿는 우리에게 원하는 말씀은 바다 건너를 가거나 하늘에 갔다 와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 된 영 안에서 기다리는 성령에게 배우면 된다. 배울 것이 많고 고칠 것이 많다. 해야 할 일도 참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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