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백영희 '한글 성경'만의 성경 해석론

연구
작성자
연구부
작성일
2022.11.14
(성경의 해석과 원어)
영어를 좀 하고 나면 뭐든지 영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그래야 할 때도 있으나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곳곳에 영어를 적는다.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라는 고전어를 좀 하고 나면 이런 현상은 과도해 진다. 실제 잘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천주교는 원어와 고전어를 통해 세계 모든 교인을 문맹화 하고 특수 계급을 만들어 결국 저렇게 되었고 우리는 개혁을 했다.
천주교에서 새출발한 개혁교회의 개혁 중에는 특수 언어를 암호화 하고 독점함으로 어두움에 숨은 것을 모국어로 비추었다.
독일인이 독일어 성경을 읽게 되고 영국 교회가 영어로 성경을 읽고 보니 천주교의 허상이 드러 났다. 이 것이 개혁이었다.


(성경의 번역과 신학)
천주교로부터 탈출하고 교회다워 지기 위해 모국어를 강조하는 과정에 개혁주의에는 또 하나의 덪이 기다리고 있었다.
천주교를 깨기 위해 지식 중심의 논증과 논리를 앞에 세우다 보니 원어와 고전어 중심의 신학이 지나 치게 비대해 졌다.
천주교라는 맹수를 사냥하기 위해 강아지를 풀었는데 이 강아지들이 사냥을 한 뒤에 여전히 맹수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칼빈 같은 신학자가 되려고 모두가 원어 중심의 신학에 빠져 들었고 루터처럼 모국어 번역을 위해 성경 번역이 남발했다.


(번역 성경의 해결)
칼빈은 언어에 타고 난 인물이라 한다. 잠재력만 두고 말한다면 백영희도 타고난 언어력을 가졌으나 원어로 나가지 않았다.
공부는 초등 5학년이 전부였으나 선교사들로부터 또 개혁주의의 제대로 된 마지막 세대로부터 원어에 대해 파악을 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고 실행을 하면서 조금씩 깨달아 나가는 세계지 세상 학문처럼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는 타고 난 언어 학습력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비록 늦었지만 하려 들었다면 할 수 있는데 확실하게 포기를 했다.
그리고 성경 그대로 읽었고 외웠고 아는 대로 깨닫는 대로 실행에 전력했다. 하나씩 깨달아 지면서 그의 세계를 이루게 된다.

중학교 영어 실력도 되지 않는 이들이 강단에서 원어를 사용한다. 고교 영어 실력이 제대로 되면 신학교를 가지도 않는다.
대학 영어 실력이 넘어 선다 해도 원어를 새로 시작하면 마침내 원어에 중학교 실력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인생이 끝 난다.
그런데 원어를 높이 치켜 들어야 뭔가 아는 듯해 보인다. 그래서 정치적 학자들은 원어를 앞에 세운다. 공회는 그렇지 않다.
번역 된 우리 한글 성경만 가지고도 성경의 해석에 접근할 수 있다. 영어 성경에 원어 공부까지 하는 사람보다는 유리 하다.
어떤 사본 성경도 번역본도 기본적으로 오류가 있다. 그 오류를 잡아 나가는 방법은 성경 전체를 읽고 실행하는 것이다.


(번역 성경의 활용)
원본 성경은 우리가 모르고 있다. 배껴 적은 사본은 서로 차이가 있다. 차이를 비교하면 감춰 진 원본이 어느 정도 그려 진다.
한 말씀씩 실행을 하면서 신앙이 자라 가면 숨어 있는 원래 뜻이 조금씩 드러 난다. 성령의 조명이 있기 때문에 그러 하다.
역사적으로 사본 성경의 비교는 오늘의 어느 학자가 다시 끼어 들 수 없을 만큼 이미 결과물이 쌓여 있다. 선택하면 된다.
1950.6.25.에 맞붙은 수십 만의 남북 군인은 어느 쪽이 선공을 했는지 안다. 그런데 참으로 오랜 세월 서로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날도 그 훗날도 그리고 남한이 먼저 치고 들어 갔다고 했던 이들도 속으로는 진실을 알았고 오늘은 모두가 안다.
모두가 다 안다고 해도 오늘까지 남한이 먼저 치고 들어 갔다고 확신한다면 그렇게 믿고 그렇게 살면 된다. 달리 방법이 없다.

성경의 사본은 크게 2 종류다. 서로가 더 정확하다고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난리다. 우리는 비교를 하면서 감을 잡아 본다.
사본들의 내용은 대부분 같다. 같은 부분을 먼저 확정해 놓고 서로 다른 부분을 자꾸 비교하다 보면 정답이 서서히 나온다.
6.25의 발발은 모두가 인정하고 3일만에 서울 점령도 모두가 인정한다. 그러면 선공이 어느 쪽인지 더 따져 볼 것도 없다.
사본들의 차이는 일단 그 문제로 신앙의 근본이 바뀔 정도는 없다. 나머지는 세월 속에 서로 비교하면서 확정하면 된다.
차이가 없으면서도 더 급한 말씀도 많은데 사본의 차이 때문에 교파가 만들어 지고 한 쪽만 옳다고 한다면 문제가 있다.

가룟 유다부터 역사적으로 사본 성경의 차이 때문에 자기 신앙을 포기한 경우가 있었던가? 약해서 넘어 지고 꺾여 졌던가?
사본 성경의 흐름을 일단 이렇게 잡아 놓고 이제 번역본을 살피면 된다. 번역본은 얼른 봐도 거의 흐름이 그냥 나와 버린다.
읽는 사람들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본문과 다르게 번역하는 성경이 NIV와 그보다 넓은 번역본들이다. 이 것은 그냥 주석이다.
영어 성경의 KJV NKJV NASB 이 정도가 되면 비교가 좀 애매하다. 그렇다면 이 성경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좋다.
한글 성경의 경우 구역성경은 너무 서둘렀고 개역성경은 준비를 잘 했다. 이후 공동번역 등 나머지는 그냥 주석 정도로 본다.
요즘은 예전의 한글성경의 교인 독자보다 더 많은 영어성경의 교인 독자들이 있다. 한글성경과 KJV NASB를 비교하면 좋다.
신학자들도 원어까지 가기에는 어학력이 부족하다. 개역성경과 KJV NASB 정도를 비교하면 원어 문제는 거의 해결 된다.
이런 성경들을 '번역' 성경으로 삼고 이외의 성경들은 성경 주석이나 해설서 정도로 참고하고 한 번 정도 비교하면 된다.

일제 말에 신사참배와 6.25의 점령 치하와 지난 2 년의 코로나 기간의 예배 고수에 무슨 원어와 번역본 차이가 있을 것인가?
뻔히 알면서 준비가 없어 자기가 자기 신앙을 꺾었다. 지금은 외부가 꺾으려 하기 전에 자진해서 모두 세상으로 나간다.
신학자들치고 역사적으로 제대로 된 환란을 이긴 사람은 없다. 학문 할 시간에 기도하고 실행을 했어야 기름 준비가 된다.
기도와 실행으로 기름 준비를 한 성도가 환란을 이긴다. 이기고 나면 성령이 더 밝게 만든다. 그렇게 하면서 밝아 진다.
이 것이 제대로 된 신앙의 발전 단계이며 신앙의 세계의 실체다. 공회의 원어와 번역과 신학에 대한 기본 개념이 이렇다.


(백영희의 주경 세계)
백영희의 신앙 역사를 조사해 보면 처음 믿을 때는 안식교와 기독교를 혼동했고 율법의 행위로 천국 가는 줄 알았다.
그런 초기의 혼란을 겪으며 하나씩 배워 갔고 자라 갔다. 그래서 그를 헐뜯으려면 과거로 갈수록 재료가 많아 진다.
그런데 진실이 있었고 가식이 없었기 때문에 갈수록 배워 가고 고쳐 가며 놀랍게 발전해 갔고 마침내 신학을 넘어 섰다.
그에게는 신학이 없다. 그런데 어떤 신학도 그의 주경 세계 안에서는 다 포함이 되고 녹아 져 일치가 되고 해결이 된다.
그의 장점이 아니라 그를 붙들고 오늘 우리에게 원어와 신학에 족쇄를 풀어 주시려는 주님의 인도와 배려를 보게 된다.

최근 딤전2:1의 '도고'를 해석하면서 원어를 모르고 한글 단어에만 집중하다 보니 오류가 되었을 가능성이 제기 되었다.
사람이니 어떤 가능성도 항상 있는 법이다. 그런데 성경 해석을 두고 백영희의 평생이 진행 된 과정을 이제 설명 드렸다.
이렇게 발전을 하다 보면 울타리 안에서 잠깐 방향을 잃을 수는 있어도 성경과 교리의 울타리를 벗어 나지는 않게 된다.
차선 안에서 좌우를 맞추는 과정에 흔들릴 수는 있다 해도 차선을 벗어나 역주행이나 가드레일을 벗어 나는지는 않는다.
스승을 위해서나 소속 단체의 권위를 고수하기 위해 합리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막을 설명하며 전체를 안내 해 봤다.

백영희의 주경 세계..
진정한 개혁주의의 첫 길을 고수하고 있다. 원어와 신학을 강조하는 것은 또 하나의 천주교가 된다.
무식한 맹신 신앙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원어를 섭렵한 신학자만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을 지적하는 것이다.
교황이나 신학자나 지방의 신부나 무식한 영감이나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으로 살 때 불편이 없고 차이가 없다.
그 차이를 만든 것은 천주교다. 오늘 원어를 원어민처럼 사용하는 것처럼 연극하며 모두가 가진 성경으로는 안 된다 하면
오늘의 천주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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