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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심신의 주력 (2022. 08. 28. 주새)

작성자
교인
작성일
2022.08.28

 

불완전한 심신의 주력 (2022. 08. 28. 주새)




영과 육을 구분하지 못하면 구원의 건설에는 한계가 많다. 허물과 죄로 인해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중생은 단번, 완전, 평생에 한번으로 끝나지만 인간의 육이라는 마음과 몸의 심신은 평생을 통해 고치며 자라간다. 주님 앞에서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들었던 베드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여 교회 건설이라는 영광된 자리에 앉았다가 곧바로 뒤 인간의 일, 인본이 중심된 생각 한번에 주님의 물리침을 받았다. 믿은 이후 우리 마음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심신의 둘째 사망은 택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후에 주어질 현실이다.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실수하고 잘못을 한다. 똑같은 실수 삼세번이면 넌 아웃이야. 정신 차리라고 사람들은 그러지만 죄악된 인간을 바로 알고 나면, 믿은 이후에도 불완전한 심신은 평생이라는 기간을 통해 자라간다는 깨달음을 가진다면 죄의 감옥에 갇혀 있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때론 권면하며 강퍅하여 안되면 때가 아닌갑다 또 기다려 주고 나를 십자가에 못 받는 그들을 위해 몰라서 그러니 참 안됐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어디서 나오는가? 대속의 정신은 하나님이 열어서 보여 주실 때만 가능하다. 누구나 예외없이 심신은 평생 죄악 속에 뒹굴다가 또 주의 피로 깨끗해졌다가 수없는 이런 반복을 거치면서 완전을 향해 나아간다.





나 아닌 타인, 남편, 아내, 자식, 교인, 목회자, 상대방의 고쳐지지 않는, 평생 고쳐지지 않을 것만 같은 그 면을 두고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는 데도 적어도 30년 많은 시간, 세월이 필요하다. 포기만 안하면 대속이 내게 와서 내가 먼저 대신하면 그는 회개할 마음이 전혀 없는데 내가 먼저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에게 있는 잔혹한 죄악상을 내 속에 있지는 않는가? 찾아 보니 과연 있구나? 회개하고 그를 맞으니 하나님의 감동으로 20년 원수가 형제 우애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단지 얍복 나루를 건너던 야곱과 에서 그 집안에만 있었던 특정인의 이야기인가? 야곱 속 인본을 빼내기 위해 에서 속 죄악된 인성과 품행을 사용하신 것은 아닐까? 나 하나 고치려고 결혼전 그리도 순하고 고분고분하던 처자를 나 만나고 나서 악처를 만들었구나! 나 때문에 내 주변 여럿 사람을 악하게 만든 이, 내가 바로 그 장본인이오. 이런 고백을 할줄 아는 자가 비로소 심신은 죄악 세상이라 나갔다 오면 하루에도 몇번이나 손발을 씻어서 깨끗하게 해야 인본에 감염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일 것이니 나는, 우리는 아직도 멀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주님을 만나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기 전까지 90세, 평생에 그의 신앙은 입문, 초입에 불과했다.





이런 불완전한 우리 심신, 어디다 주력하면 주님의 완전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을까? 하나님의 인도가 어디며 오늘 하루 주님이 내게 하실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설교의 향방을 몰라 그래서 설교의 강단이 어렵고 조심스러운 자리인 것이다. 내일 주일은 또 무슨 말씀을 주실려나? 할 말씀은, 내가 하고 싶은 말씀은 많으나 정작 주님이 교인들에게 하실 말씀은 무엇인가? 인본은 접고 신본만, 이걸 주님이 안 열어 주시면 토요일 저녁은 초죽음이다. 갓난 애는 젖달라고 아우성인데 젖이 안나온다? 그 심정을 아는가? 십계명을 가지고 따지며 어제 잘못 산 것들을 꺼집어 내어 주님의 피에 묻혀 나를 돌아보고 이제 어디다 주력할 것인가? 목사 안수를 기다리는 자는 성경 100독에 주력할 것이며 올해 대입을 보는 자는 공부에 주력할 것이라. 올해 출산을 앞둔 만삭의 부인은 출산과 이후 태어날 아기에게 필요한 모든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주력을 할 것인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정신을 어데다 한눈 팔지 말고 어디에 주력할 것인가? 나의 사명, 너의 사명,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살펴서 제일 먼저는 주님의 확실한 답변을 듣고서, 주의 종을 통해 한번 더, 마지막으로 현실 인도까지 그 다음에 움직이자. 주력, 그래야 헛일을 안하게 된다.





주일 새벽 예배를 공식적으로 드리는 교회가 있어 감사하다. 설교를 글로 정리하고 말로서 나누어 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일이다. 설교의 통일성 뒤에 새김질의 다양성, 그 속에서 공회의 신앙은 한발 도약을 꿈꾼다. 내 설교를 너도 한번 해봐. 흉내라도 내 보렴. 세월 속에 너도 나처럼,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 순교로 지금은 낙원에 계실 스승의 간절한 바램이자 주님의 포원일 것이다. 백목사님 생전 주일 새벽예배가 없었다가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다시 주새가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주일 새벽예배를 부활시키며 이전과는 다르게 그는, 어디다 주력한 것일까? 주일 새벽 설교 말씀을 전하며 몇년 뒤 있을 순교 준비에 만전을 기하며 전심전력 했을까? 그는 실로 몇년을 앞서 갔던 것일까? 왜 그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주력은 목표가 있어야 가능하다. 영원한 목표 말이다. 짐을 져야만 힘은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녀가 많을수록 주일학생과 교인이 많을수록 부모는 반사는 목회자는 더 강철해진다.







8월 27일,  어제는 사활의 대속의 이... 설교가 제 귓전에 메아리치던 날이다. 신풍연구소가 부산연구소 주소를 이 곳에서 링크 걸어 소개했으나 부산연구소는 이를 거부했다. 상대가 원치 않는데 계속 하는 것도 인본의 기준에서 보면 대단한 실례일 수 있으나 불목이 화목되기를 소원하고 우리라고 소망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한 뜻과 진심어린 중심으로 해석된다. 우리가 부산연구소를 링크 걸어 소개할 때의 그 심정 그대로, 피키스트 이 곳에 백목사님 마지막 설교를 부산연구소가 자진해서 소개한다면 자타의 지난 과오는 다 용서가 되고 회개가 되는 것일까? 용서와 주력, 쌍방간에 중심이 들어간 용서 없이 주력은 불가능하다. 사활 대속의 정신 없이 구원의 건설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스승의 마지막 설교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요긴한 말씀으로 와 닿는다. 대속이 결핍되어 있으니 만사 인본에 허덕이고 주력점을 찾지 못하는 우리들 모습이다. 36년과 48년이라는 격세지감, 그 세월의 간격만큼이나 좋았던 때인 순교 이전으로 돌리거나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시간이라는 그 간격을 좁힐 수는 과연 없는 것일까?







모든 일을 질서 가운데 미리 허락 받고 글을 올려야 하는데 주일 새벽에 받은 은혜에 대한 의욕만 앞서다 보니, 듣는 청종보다 말하고 표현하는 데만 주력하다 보니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공감능력 부재로 물어볼 검증인이 없어 주님 앞에 두렵습니다. 본 연구소 취지와 맞지 않는다면 정중히 삭제를 요청드립니다. 염치가 둔하고 무지해서 늘 의향을 물을 수 밖에 없음에 양해를 구합니다.





 




위 출처는 부산연구소가 일반에 공개한 백목사님의 마지막 설교에 유튜브 공유 버튼을 눌러 전했음을 밝힙니다.

 

전체 2

  • 2022-08-28 06:47
    https://youtu.be/fokwSNKW_Fo

  • 2022-08-29 01:34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은 늘 반복된다.
    우리네 신앙은 어디쯤 와 있을까?
    남단글처럼 석류 속 알알이 박힌 꽉찬 글이고 싶다.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는 공회 특성상 나눔은 인색해 보인다.
    예배 후 인사 한번이 그리도 어렵다.
    진정한 재독은 사후가 아니라 살아 생전 나눔에 있다.
    꼬리가 되어 머리의 지도를 받고 싶은 지금이 봄이다.
    다만 안하무인, 경거망동이 지도받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사후가 되면 물어보고 싶어도 기회가 없다.


    겨자씨 믿음처럼 그는 나를 위해 존재하고 나는 또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다.
    넘치는 에너지는 열매의 모습으로 반드시 발산하게 되어 있다.
    시대를 먼저 읽고 경건에 다시 불을 지펴 본다.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 어디에 주력할 것인가?
    내가 살아 있으니 자아가 죽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신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 가운데서 정로를 걸을 자 그 누군가?
    밤을 비추는 달빛은 낮동안 햇빛을 받은 만큼만 발산하게 되어 있다.
    달같이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를 어디서 만날 건가?
    찾아 헤매지 않아도 자기 현실에서 간절한 충성으로 주님만 찾으면 현숙한 여인도 영적 아비도 만나게 하신다.
    있는 힘 다하는 전심은 주님을 만나게 하는 나침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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