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전원일치가 자라 가면 어떤 모습일까?

연구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07.19
(생명성의 특성)
생명이 있으면 환경에 피동이 되지 않고 환경에 대처한다. 홍수 물에 집도 통나무도 떠내려 간다. 피라미 한 마리는 자유한다.
생명이 없으면 환경에 맡겨 놓고 환경에 따라 그냥 흘러 간다. 생명의 유무를 알아 내는 것은 어려워도 결과를 보면 쉽다.

20세기 과학이 요동을 치자 기독교 외 모든 종교는 바닥을 들어 냈고 생명 없음이 모두 드러 나 버렸다. 결과로 알 수 있다.
기독교는 21세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적으로 특히 국내에서는 맹신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중생의 표시를 내뿜고 있다.
하나님이 붙들지 않고는 21세기의 지성인 과학자 문명인이 이런 문화 속에서 그런 마음과 행동을 할 수가 없는 표시가 있다.

교회 안에서는 다시 교리나 행정을 두고 살펴 보면 생명성을 알 수 있다. 환경에도 세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라 가는가?
변질하지 않고 둔갑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비록 힘이 없어 꺾일 수는 있고 늦어 질 수는 있지만 지켜 내는가, 자라 가는가?
장로교의 고전적 장로 제도는 환경과 세월 속에 확실히 내부 모순이 나왔다. 틀렸다 하기는 곤란하나 그대로는 참 곤란하다.
당회란 그 모순과 문제점이 조기에 이미 나왔다. 비교적 더 나을 수는 있지만 진리성을 두고는 문제가 많다. 참 문제가 많다.



(공회의 생명성)
교리는 일단 제외한다. 공회 교리는 1960년대부터 발표 되면서 일일이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으나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공회는 교회 운영을 두고 목회자 양성을 신학 대신 교인 생활을 잘 하는 사람을 파송하고 신학은 훗날 잠깐 참고만 하게 한다.
한 교회의 운영을 두고 목회자가 주도하지만 매 2년 시무투표를 통해 목회자를 조건 없이 해직한다. 장로 권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공회는 교회의 모든 결정을 할 때 전원일치다. 단 1명의 의견도 그냥 꺾지 않는다. 설득이 되지 않으면 과제로 끝낸다.
이 제도는 교회의 외형 발전에 치명적 손해다. 그러나 교회답게 유지하는 데는 좋다. 공회는 내용에 전력한다. 그 것이 공회다.

교회에 분쟁이 발생하면 세상을 아예 개입 시키지 않는다. 이 것이 소송금지원칙이다. 대략 이 정도가 공회 행정 원칙이다.
이 제도는 공회의 출발 때부터 적용했고 이로 인해 지켜 보는 교단들은 일제히 이단이라 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감탄한다.
이 제도가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었고 타 교단은 그들의 폐단을 알기 때문에 공회 행정을 인정은 하지만 따라 하지는 못한다.
따라 하려면 교권을 잡은 이들이 교권을 포기해야 한다. 알면서도 따라 하지 못하고 외부로 지지조차 하지 못하는 이유다.
단순한 세월도 많이 지나 갔고 그 세월 속에 사회와 교회와 인간의 모든 면이 너무 급변했다. 생명의 유무는 쉽게 드러 났다.



(공회 제도의 생명성의 성장 과정)

* 소송 금지 원칙의 사례

생명이 없는 제도는 그 제도 자체가 부서지고 둔갑을 하고 변절을 한다. 생명이 있는 제도는 어린 시기를 거쳐 성장해 간다.
공회의 시무투표는 1970년에 시작할 때 권고 또는 참고 사항이었다. 1988년에는 장로 권사까지 확대하며 무조건 적용했다.
백 목사님 생전에는 시무 찬반만을 표시했다. 이제 모든 교인이 적을 수 있는 시대이므로 찬반에 더하여 의견까지 적게한다.
대구공회는 시무투표 제도를 없앴다. 아마 지금 후회할 듯하다. 부산공회는 아직도 유년기다. 그냥 80년대만 반복하고 있다.
연구소를 운영하는 부공3은 찬반의 표시에다 이제는 자유로 적을 수가 있기 때문에 항목별 의사까지 적으면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70년대에서 80년대로 끝을 낸 공회들과 비교하면 부공3은 제도를 지켜 내면서도 더욱 성장을 시킨 것이 아닐까?

공회의 제도를 두고 소송 금지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 원칙은 법원에 고소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일 겉에 나온 표시이다.
그 속에 들어 가면 교회의 신앙 분쟁은 교회가 판단하는 것이지 세상에게 판단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 실제 그 내용이다.
이 원칙을 처음 발표한 것은 1950년대다. 이후에 환경의 급변 속에 세상은 물론 교회들까지도 고소가 일상사로 바뀌었다.
1950년대 소송 금지가 당시 교계의 지지를 받을 때 공회는 먼저 소송을 하는 것은 물론 피고로 응하는 것도 금지를 시켰다.
1980년대가 되며 공회는 민사와 형사를 구분했다. 형사는 강제 진행이므로 피고 대응을 피할 수 없다. 민형사를 구분했다.
바로 이 분리 때문에 고소 금지 원칙은 더욱 빛을 발했고 고소 금지란 천국에서나 가능하다는 조롱까지 모두 막아 버렸다.

백 목사님 사후 총공회는 전체 재산 때문에 대구공회가 고소하고 부산공회가 응소를 하며 다시 이 원칙을 살피게 되었다.
백 목사님 생전에 미리 확인한 원칙 때문에 대구공회의 고소 시작은 말할 것도 없고 민사 소송에 응한 부산공회도 틀렸다.
그런데 2013년에 백영희 가족은 부친 설교가 자녀만의 사유재산이라며 고소했다. 민사 소송에 응하지 않는 점을 본 것이다.
2013년 연구소와 부공3은 전체 총공회 소속 공회들에게 공회의 민사 무대응의 원칙을 이용하는 고소를 두고 질문을 했다.
어느 공회도 목회자도 공회원도 의견을 내지 못했다. 소송 금지는 공회 교리인데 소송이 들어 오면 모든 것을 다 줘야 할까?
그렇다면 공회의 소송 금지 원칙은 아무 도적에게나 소송 서류 하나만 들어 오면 예배당도 기도원도 무조건 다 줘야 한다.
그렇다면 이 교리는 잠꼬대일 뿐이다. 공회 교리는 항상 현실의 구원 실무적이다. 공회의 소송 금지 원칙은 또 자라 갔다.

2013년에 총공회의 어떤 양성원도 어떤 교수도 학자도 목회자와 공회원도 반대하지 못할 '소송 금지 원칙'이 정리 되었다.
백 목사님의 직계 자녀들이 고소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 고소도 설교가 개인 소유라는 것으로 민사 소송하지 않았더라면...
2013년의 장성한 원칙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과거 어린 원칙만 가지고는 교회 별로 공연한 손해가 너무 많았을 듯하다.
2013년의 공회의 소송 금지 원칙은 세상 법조인들이 봐도 판검사 사법기관이 봐도 타 교단에서도 모두 감탄하고 있다.


* 전원 일치 제도의 경우

앞에 설명한 것을 참고로 삼고, 이제 또 하나의 행정 원칙을 두고 이 원칙의 장성한 모습을 함께 연구하고 싶어 적게 됐다.
백 목사님 사후, 백 목사님의 생전 주제든 사후 주제든 부공3이 발표하면 거의 모든 내용은 그대로 공회적 결정이 되었다.
단순 오타 정도나 형용사적 표현 정도가 아닌 경우를 두고 부공3, 이 연구소의 발표에 아직 반대나 이의가 나온 적이 없다.
이런 결과를 가지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번 '전원 일치'를 두고도 또 같은 일이 반복이 된다면 두고두고 아쉬울 듯하다.
최근에 연구소와 부공3에는 세월 속에 이제 오늘과 앞 날을 책임 질 분들이 확연히 많아 지고 있다. 이 분들을 기대한다.
이 분들뿐 아니라 공회 외부에 우리와 뜻을 같이 하며 함께 연구하거나 연락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 분들에게 제의한다.

전원 일치도 시무 투표처럼 또는 소송 금지 원칙처럼 목사님 생전의 시대가 죄악이 덜 발달하여 당시 제도로 감당을 했으나
오늘 2021년의 상황은 세상이나 교계적 어떤 면으로 봐도 80년대의 단순한 원칙만 가지고 제대로 대처하는 것이 어렵다.
전원 일치가 공회의 첫 출발 때처럼 또 지난 날의 그 수 많은 사건과 분쟁을 거쳐 나오면서도 여전히 그대로 지켜 지려면
소송 금지 원칙이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그 노선을 지키면서도 점점 성장함으로 오늘의 사태를 의연히 다 대처하는 것처럼
각 교회와 공회의 전원 일치 결의가 오늘 기이한 상황, 특히 전원 일치 제도를 악용하려 마음 먹고 들어 오는 원수를 상대로
원래 원칙을 그대로 지켜 내면서 실무적으로 넉넉히 다 대처를 하려면 어떤 면을 더 강화하며 살펴야 할까?

이 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에게 과제로 일단 드리고자 한다. 한 주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성경으로, 또 각 교회에 발생하는 극단적 상황에 실제 적용을 해 가면서 바른 것을 지키면서
불신자도 모든 교계 누가 봐도 또한 이 제도를 악용하려는 이들도 대꾸 할 수 없도록 의견을 주시면 좋겠다.



이런 과제, 또는 이런 우리의 연구를 두고, 모두가 이해하고 진리에 맞다면 그가 우리의 스승이다.
주일학생이라도, 공회를 오늘 처음 알게 된 이라도, 우리는 불문하고 여쭙고 배우고자 한다.
한 주간이 지나면 이 곳에 같은 이름으로 적어 보겠고 그 사이에 어떤 의견이라도 댓글에 적어 주셨으면 한다.

이 번 댓글만은 전체의 진행을 위해 반복 되거나 다른 논쟁으로 나가는 글은 이 곳의 서기에게 정리를 부탁했다.
미리 양해를 구했으니 이 글의 댓글만은 이 점을 감안하고 적어 주면 좋겠다. 전원 일치 주제에만 집중하고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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