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배움의 자세 (집회를 앞두고)

발언
작성자
연구
작성일
2021.04.26

배워서 남 주나?
- 배움의 자세

 

 

1. 주관은 객관으로 형성

사람은 지식에서부터 행동거지의 모든 것까지 객관에서 배웁니다. 보고 듣고 접촉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자기 것을 만듭니다. 부모에게 배우고 형제에게 배우고 스승에게 배우고 친구에게 영향받고 주변 모든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사람의 인격이 형성됩니다. 어릴 때의 교육, 어릴 때의 환경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젊은 세대, 어린아이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부분입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의 후세대 교육에 자연계시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입니다.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자란 사람은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끼리끼리 잘 뭉칠 것입니다. 우리나라 산골에서 자란 사람은 다 왕땡이라 합니다. 골짝골짝 좁은 땅에서 저마다 다 왕 노릇입니다. 호남지방은 평야가 많은 곡창지대입니다. 지주는 몇 사람이고 대신 머슴이 많습니다. 그 지방성이 그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들어 있습니다.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그릇이 클 것 같습니다. 대신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인 줄 압니다. 중국이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모두 주변 환경의 영향입니다. 태어나면서, 자라면서 보고 듣고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자기 속에 스며든 성향이며 자기 주관들입니다.

 

2. 배움의 시기

공부에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배움에 필요한 두뇌 회전의 시기와 함께 객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연령대가 있다는 말이겠습니다. 20세 이하는 주입 시기라 합니다. 그때가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니 객관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두뇌와 마음 자세가 되어 있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시기가 지나면 두뇌의 회전도 마음의 자세도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배움의 시기를 놓치고 후회하는 경우는 참으로 많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날 때부터 알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배움이란 객관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이며, 따라서 어릴 때의 성장, 교육 환경의 중요성은 말로 다 하기 어렵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주일학교에 주력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지식은 차치하고라도 성경 지식은 주일학교 때부터 배운 것이 평생의 신앙을 좌우하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공회 안에서 자라 공회의 신앙 지식과 공회 신앙의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과 장성한 후 새로 배우는 사람은,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고 예외적인 경우가 없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세계가 다르다 할 만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3. 배움의 자세

모든 배움은 객관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객관을 받아들이려면 내 주관이 그럴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내 주관이 주격으로 자리 잡고 있으면 객관은 내 속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내 주관이 큰 만큼, 많은 만큼, 강한 만큼 객관은 내 속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만큼 자기는 고립되고 좁아지게 됩니다.

아이들 중에도 자존심이 세고 주관이 강하여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객관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아이가 가끔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대개 나름대로 똑똑하고 실력이 있는데 그 성품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자라게 되면 대개 편견적이고 지엽적이며 주관적인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자기는 잘하는데 다른 사람을 아주 피곤하고 힘들게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조화도 어렵습니다. 어릴 때의 그 자존심이 들어서 객관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주관적이고 객관성이 부족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어린 만큼 주관이 적고 작고 약합니다. 당연히 객관을 잘 받아들입니다. 가르치는 대로 배우고 타이르면 알아듣고 꾸중하면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고 바로 자라게 됩니다. 부모를 통해서, 형과 언니들을 통해서, 선생님들을 통해서, 주변 어른들의 언행과 여러 환경을 통해서 보면서 들으면서 접하면서 느끼면서 수많은 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실력과 인성이 형성되게 됩니다. 어리기 때문입니다. 주관이 별로 없고 있어도 적고 작고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릴수록 더 잘 배우고 빨리 배우고 많이 배웁니다. 이 자세가 계속되면 장성해서도 객관을 받아들여 배우는 데 아주 유리합니다.

 

4. 배워서 남 주나?

배워서 남 주냐는 말이 있습니다. 틀림없는 말입니다. 무엇을 배우든지 배우면 자기 것이 됩니다. 몸의 기능을 익히면 그 기능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기 것이 되듯이 모든 배움이 그러합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누구에게서든지 몰랐던 것을 배우고 나면 배운 그것은 자기 것입니다. 내 속에 들어온 나의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배운 만큼 내 지식은 많아지고 넓어지고 깊어지고 세밀해지게 됩니다. 따라서, 무조건이거나 무분별은 조심하되 필요한 지식, 중요한 것을 배움에는 대상을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아이에게라도 배울 수 있고 원수에게라도 배울 수 있습니다. 일단 배우면 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지식도 배우면 내 것 됩니다. 나쁜 것조차도 배우면 내 속에 들어와서 내가 됩니다. 그래서 배움은 중요하고 생활 환경이 중요합니다. 하물며 좋은 것, 필요한 것, 영원한 구원에 관계된 것을 배우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일단 배우면 빼앗기지 않는 내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직접 깨달으면 가장 좋으나 이런 경우는 특별한 분들 외에는 별로 없다 할 수 있습니다. 대개는 설교를 듣고 배우거나 이런저런 기회를 통하여 직접 간접으로 듣고 배워서 알게 됩니다. 어떤 경로로든지, 누구에게든지 배우면 배운 것은 내 것입니다. 남이 가져가지 못합니다. 배워서 남 주지 않습니다.

 

5. 자존심이 밥 먹여 주나?

자존심은 필요합니다. 중요합니다. 특히 믿는 사람이 자존심, 주체성이 없으면 무골호인 되기 쉽고 구별을 생명으로 삼는 바른 신앙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택함 받고 구속 받은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가져야 합니다. 새사람 참사람 자기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 아들이라는, 천국 백성이라는, 구속 받은 성도라는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적인 자존심, 옛사람 자존심은 버려야 합니다. 버릴 정도가 아니라 아예 꺾어서 죽여버려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합니다. 이 자존심이 있으면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믿음이 자라는 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말씀의 지식이 자라는 것입니다. 성경만 읽고 연구하여 신앙 지식이 자라면 좋은데 옛사람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 성경을 읽고 깨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옛사람이 주격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성경이 깨달아질 리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내 주관이 객관이신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서 내 주관화시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옛사람의 자존심 때문에 사람에게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하나님 말씀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성경 깨달음의 대부분은 먼저 깨달은 종들을 통해서 배우게 되어 있고, 현실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신앙 지식과 지도는 내 주변에 있는 분들을 통해서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어리다고, 직분이 낫다고, 나와 맞지 않는다고, 싫다고, 밉다고… 별별 이유가 있으나 그 중심에는 옛사람의 자존심이 있어 그 자존심 때문에 배울 사람에게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자존심은 원수입니다.

 

6.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3:14).
누구에게든지 배워서 자기 것을 삼되, 성경은 뉘게서 배운 것을 알아라 했습니다. 주관을 최대한 부인하고 주신 현실의 여러 객관을 통해서 배워 자기 것을 삼되, 뉘게서 배운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에게 배웠는지를 필요하면 알리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자기에게 가르침을 준 스승이 누군지는 알아야 하며, 그만큼의 대우는 하는 것이 성경이며 사람의 도리이고 신앙입니다.

엘리사가 영감의 갑절을 구할 때 엘리야가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왕하2:10) 했고, 엘리사는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는 엘리야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고 엘리야의 능력이 엘리사에게 임했습니다.

 

# 오늘 

백 목사님 설교 저작권 때문에 고소를 당할 때 대개는 그냥 넘겨주자 했습니다. 공회는 대법원까지 갔습니다.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까지 갔고, 더 이상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새로 출발했습니다. 뉘게서 배운 것을 아는 자세입니다. 그렇게 한 분에게 백 목사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수록 그럴 것 같습니다.

백 목사님께 배운 것만 그럴까?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든지 배우면 배운 것은 자기 것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감정 때문에, 이해타산 때문에, 자기와 맞지 않아서, 사람이 미워서 영원에 관련된 성경 깨달음을, 신앙의 길을 배우지 않는다면? 너무나도 우둔한 짓이고 정신 나간 짓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의 정상적인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구별 없이, 아무것이나 아무에게나 막 배울 것은 아니고, 그럴 일도 별로 없지만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식은 일단 배우고 볼 일입니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워서 가르친 사람을 넘어서면 됩니다. 그게 실력이며, 그것이 바로 참사람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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