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뿐일까?
연구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03.12
(논제)
택자는 하나님의 목적 대상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 가기 위해 영계와 우주를 만들고 세상을 운영하고 계신다. 영계의 천군 천사와 영물의 영원까지 모두 우리 택자를 위한 것이며 이 외에 다른 존재 다른 역사는 세상과 영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것이 하나님의 유일 목적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위를 택하고 길러 가시는 이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두시고 그 목적을 위해 다른 차원의 다른 역사를 하시지 않았을까? 우리는 특별계시인 성경과 일반계시인 자연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데 성경과 자연만을 가지고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택자가 하나님의 목적이며 이 목적을 위해 모든 존재를 만들고 운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해 줄 필요가 없고 기록한다고 상관도 없을 전혀 다른 목적은 존재할 가능성이 없을까?
백 목사님은 70년대에 하나님의 목적 세계를 설교 하는 중에 그 가능성 여부를 결론 짓지 않고 가능성을 제기만 한 적이 있다고 알려 져 있다. 현재 필기본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확인은 하지 못했으나 너무 중요한 논제여서 공회 내에서는오래 동안 하나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의견)
이제 세월이 더 많이 흘렀다. 더 밝아 지고 더 밝혀 졌다. 과거 알 수 없던 것도 자라 가면 더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말라기 2장 15절로 살펴 봤다.
말2:15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시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
하나님은 전능자며 절대자며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를 목적으로 삼은 그 목적 자체를 여럿 만들고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능력은 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까? 말2:15에서 '영'을 더 만들 수 있지만 일부로 한 사람에게 하나만 만들어 주셨다. 이 원리로 하나님의 내면을 살핀다면 하나님은 목적을 더 많이 만들고 진행할 수 있는 실력과 가능성은 있으나 우리만을 위해 우리만 목적 대상으로 삼지 않았을까?
택자는 하나님의 목적 대상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 가기 위해 영계와 우주를 만들고 세상을 운영하고 계신다. 영계의 천군 천사와 영물의 영원까지 모두 우리 택자를 위한 것이며 이 외에 다른 존재 다른 역사는 세상과 영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것이 하나님의 유일 목적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위를 택하고 길러 가시는 이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두시고 그 목적을 위해 다른 차원의 다른 역사를 하시지 않았을까? 우리는 특별계시인 성경과 일반계시인 자연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데 성경과 자연만을 가지고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택자가 하나님의 목적이며 이 목적을 위해 모든 존재를 만들고 운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해 줄 필요가 없고 기록한다고 상관도 없을 전혀 다른 목적은 존재할 가능성이 없을까?
백 목사님은 70년대에 하나님의 목적 세계를 설교 하는 중에 그 가능성 여부를 결론 짓지 않고 가능성을 제기만 한 적이 있다고 알려 져 있다. 현재 필기본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확인은 하지 못했으나 너무 중요한 논제여서 공회 내에서는오래 동안 하나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의견)
이제 세월이 더 많이 흘렀다. 더 밝아 지고 더 밝혀 졌다. 과거 알 수 없던 것도 자라 가면 더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말라기 2장 15절로 살펴 봤다.
말2:15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시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
하나님은 전능자며 절대자며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를 목적으로 삼은 그 목적 자체를 여럿 만들고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능력은 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까? 말2:15에서 '영'을 더 만들 수 있지만 일부로 한 사람에게 하나만 만들어 주셨다. 이 원리로 하나님의 내면을 살핀다면 하나님은 목적을 더 많이 만들고 진행할 수 있는 실력과 가능성은 있으나 우리만을 위해 우리만 목적 대상으로 삼지 않았을까?
전체 229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공지 |
이용 안내
공지
|
담당
|
2018.05.19
|
추천 0
|
조회 1125
|
담당 | 2018.05.19 | 0 | 1125 |
12861 |
New UP 주권섭리에 순행생활
12861
|
반사
|
2023.03.20
|
반사 | 2023.03.20 | 0 | 33 |
12829 |
(참고주해) 이사야 51:4-5, '하나님의 의'
12829
|
담당
|
2023.03.12
|
담당 | 2023.03.12 | 0 | 54 |
12802 |
목자 양 비유와 표어
12802
|
목회자
|
2023.03.03
|
목회자 | 2023.03.03 | 0 | 93 |
12753 |
절대자 하나님의 절대적인 역사
12753
|
공회원
|
2023.02.13
|
공회원 | 2023.02.13 | 0 | 74 |
12796 |
![]()
12796
|
공회원
|
2023.02.25
|
공회원 | 2023.02.25 | 0 | 106 |
12828 |
![]()
12828
|
"
|
2023.03.11
|
" | 2023.03.11 | 0 | 50 |
12714 |
영의 창조나 중생 순간의 상태
(4)
12714
|
공회원1
|
2023.02.02
|
공회원1 | 2023.02.02 | 0 | 86 |
12715 |
![]() ![]()
12715
|
"
|
2023.02.02
|
" | 2023.02.02 | 0 | 84 |
5209 |
![]()
5209
|
동천실
|
2020.12.10
|
동천실 | 2020.12.10 | 0 | 316 |
12699 |
경건에 대한 9가지 문답
12699
|
서기
|
2023.01.31
|
서기 | 2023.01.31 | 0 | 153 |
12754 |
![]()
12754
|
"
|
2023.02.13
|
" | 2023.02.13 | 0 | 157 |
12817 |
![]()
12817
|
"
|
2023.03.08
|
" | 2023.03.08 | 0 | 100 |
12664 |
십자가와 간판없는 교회
![]()
12664
|
연구
|
2023.01.22
|
연구 | 2023.01.22 | 0 | 239 |
12651 |
가룟 유다의 구원 - 요13:10
(2)
12651
|
연구
|
2023.01.19
|
연구 | 2023.01.19 | 0 | 107 |
11929 |
![]() ![]()
11929
|
서기
|
2022.07.10
|
서기 | 2022.07.10 | 0 | 442 |
12650 |
공회, 우리의 성령론에 '영감'의 의미
12650
|
담당
|
2023.01.19
|
담당 | 2023.01.19 | 0 | 150 |
5455 |
![]()
5455
|
양성원생
|
2021.01.07
|
양성원생 | 2021.01.07 | 0 | 450 |
12463 |
찬송가별 저작 연대 비교
![]() ![]()
12463
|
김지은
|
2022.11.28
|
김지은 | 2022.11.28 | 0 | 214 |
11330 |
![]() ![]()
11330
|
김지은
|
2022.02.15
|
김지은 | 2022.02.15 | 0 | 404 |
12446 |
'성경단어집' - 공회 성경신학의 기본 작업
![]()
12446
|
서기
|
2022.11.23
|
서기 | 2022.11.23 | 0 | 171 |
12406 |
백영희 '한글 성경'만의 성경 해석론
12406
|
연구부
|
2022.11.14
|
연구부 | 2022.11.14 | 0 | 227 |
12295 |
설교록 연구 -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①
(4)
12295
|
LA
|
2022.10.18
|
LA | 2022.10.18 | 0 | 356 |
12318 |
![]()
12318
|
LA
|
2022.10.21
|
LA | 2022.10.21 | 0 | 298 |
12271 |
공회 연구의 한가지 사례 - 주일론 정리
(2)
12271
|
서기
|
2022.10.13
|
서기 | 2022.10.13 | 0 | 260 |
12254 |
![]() ![]()
12254
|
서부
|
2022.10.09
|
서부 | 2022.10.09 | 0 | 8 |
하나 밖에 할 수 없어서 하나를 하는 것과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는데 단 하나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유일 목적이란 어떤 식일까?
나는 과연 절대자의 유일 목적의 대상의 가치가 있는가?
그런데 어째서 나는 하나님의 유일 목적의 대상이 되었는가?
왜
왜
왜 하필 내가?
왜 하필 나를?
이렇게 말도 안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 없는데
그렇게 주셔서
일방적으로 받은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