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생애를 신구약으로 비교
연구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01.31
구약은 대략 4천년, 신약은 대략 2천년이다. 예수님은 신구약의 전환기에 계셨다.
예수님의 출생과 성장 30년은 확실하게 구약의 율법에 따라 진행이 되었다. 구약의 일반 시기로 비교할 수가 있다.
예수님의 3년은 율법으로 정죄 받을 언행이 많았다. 모세와 그 이전은 율법을 초월했던 시기였고 다윗도 그러했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을 보이도록 활동했다. 신약의 복음 운동은 눈에 보인다. 보이는 것이 당연히 전부는 아니다.
예수님은 40일만에 승천을 했다. 이제는 보이지 않도록 활동하겠다고 보여 주셨다. 신약의 실제는 거의 볼 수 없다.
역사 세계를 함축해 놓은 예수님의 생애 중 오늘 우리는 어디 쯤에 있을까?
그 생애를 연대기로 적어 놓고 무조건 갖다 붙일 수는 없다. 한 개인도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복합적일 수 있다.
신앙 출발기는 마치 구약처럼 우리가 시작한다. 어떤 때는 초월적인 은혜도 받고 어떤 때는 하나씩 따를 때도 있다.
경제면은 연보의 제도를 넘어 생애를 다 바친 신약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예배 면은 구약의 제사 수준일 수도 있다.
오늘 우리의 일반적인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이 노선의 일반적인 단계로 본다면 부활 후 디베랴 바다가처럼 보인다.
요21:1에서 12제자 중 주력의 7명 제자가 모두 세상으로 돌아 가 버렸다. 이 때는 부활 후다. 40일이 지나고 있었다.
생전에 모신 주님과 말씀과 능력으로 충분했다. 십자가를 봤고 부활과 이후를 다 봤다. 그러면 넘쳐야 하지 않을까?
오늘 이 시대 우리, 오늘 이 노선의 우리는 생전의 제자들이 본 것처럼 교회의 역사와 이 노선에 배푼 역사를 봤었다.
그리고 이 시대와 이 노선에 아주 새로운 세계와 은혜와 기회를 영육으로 교회와 세상적으로까지 마음껏 다 겪었다.
그런데 교계적으로도 또 이 노선 내적으로도 웬 일인지 정작 주님 옆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최고 주력들까지도.
교계에는 교계의 중심을 자처한 교단과 교회와 지도자들이 그들 기준으로 봐도 전부 세상을 향해 다시 나가 버렸다.
이 노선도 각 공회와 각 교회와 각 지도자들까지 그들이 평소 말한 그들의 기준으로 봐도 스스로 받은 걸을 다 버렸다.
이런 시기의 이런 형편에서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신앙으로 보잘 것이 없다 해도 디베랴 바다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있을 곳에만 있다면, 과거 위대한 분들과는 감히 비교도 하지 못하나 그냥 주님 곁에만 붙어 있다 해도 대단할 듯하다.
노아와 세 아들을 돌아 본다. 창6장에서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요 완전하다 했다. 그런데 홍수 후에 보니 별 볼 일 없다.
아들 셋 중에 하나는 끝장을 내고 하나는 어중간하고 하나만 바르게 출발을 했다. 실제 노아와 비교할 수 없이 어린데도
노아의 완전함과 의인 된 평가는 훗날 보니 위태했고 내면에 불안한 면이 많았다.
오늘 우리를 돌아 보며 시대는 너무 악하고 어두우며 우리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자칫 낙망하기 쉽겠다.
그런데 예수님 생애를 통해 오늘을 읽고 그 때 제자들과 노아 때의 8명 식구를 살펴 보니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겠다.
코로나 방역 문제가 1년을 지나 가면서 결국은 독감 정도도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과거 메르스 등에서도 그러했다.
오히려 코로나로 온 인류가 한 여름에도 마스크를 착용하자 이 것이 생활화가 되었고 올해는 감기 환자가 없는 듯하다.
평소 감기 폐렴에 죽는 수가 엄청났으나 올해는 코로나로 죽은 1천명 때문에 감기 폐렴의 사망자를 대폭 줄인 듯하다.
이 방역 문제에 한국 교회와 공회 교회는 전부 혼비백산하여 모두 디베랴 바닷가에서 세상의 처세술로 밤을 샌 듯하다.
베드로처럼 시대와 공회의 지도자로 표시 되는 인물과 교회부터, 평소 과학적으로 계산하던 도마는 말할 것도 없다.
야고보 요한도 나다나엘까지도 모두 디베랴 바닷가에서 또 예전처럼 세상을 세상법으로 대처하며 허송하는 듯 하다.
예수님의 출생과 성장 30년은 확실하게 구약의 율법에 따라 진행이 되었다. 구약의 일반 시기로 비교할 수가 있다.
예수님의 3년은 율법으로 정죄 받을 언행이 많았다. 모세와 그 이전은 율법을 초월했던 시기였고 다윗도 그러했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을 보이도록 활동했다. 신약의 복음 운동은 눈에 보인다. 보이는 것이 당연히 전부는 아니다.
예수님은 40일만에 승천을 했다. 이제는 보이지 않도록 활동하겠다고 보여 주셨다. 신약의 실제는 거의 볼 수 없다.
역사 세계를 함축해 놓은 예수님의 생애 중 오늘 우리는 어디 쯤에 있을까?
그 생애를 연대기로 적어 놓고 무조건 갖다 붙일 수는 없다. 한 개인도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복합적일 수 있다.
신앙 출발기는 마치 구약처럼 우리가 시작한다. 어떤 때는 초월적인 은혜도 받고 어떤 때는 하나씩 따를 때도 있다.
경제면은 연보의 제도를 넘어 생애를 다 바친 신약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예배 면은 구약의 제사 수준일 수도 있다.
오늘 우리의 일반적인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이 노선의 일반적인 단계로 본다면 부활 후 디베랴 바다가처럼 보인다.
요21:1에서 12제자 중 주력의 7명 제자가 모두 세상으로 돌아 가 버렸다. 이 때는 부활 후다. 40일이 지나고 있었다.
생전에 모신 주님과 말씀과 능력으로 충분했다. 십자가를 봤고 부활과 이후를 다 봤다. 그러면 넘쳐야 하지 않을까?
오늘 이 시대 우리, 오늘 이 노선의 우리는 생전의 제자들이 본 것처럼 교회의 역사와 이 노선에 배푼 역사를 봤었다.
그리고 이 시대와 이 노선에 아주 새로운 세계와 은혜와 기회를 영육으로 교회와 세상적으로까지 마음껏 다 겪었다.
그런데 교계적으로도 또 이 노선 내적으로도 웬 일인지 정작 주님 옆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최고 주력들까지도.
교계에는 교계의 중심을 자처한 교단과 교회와 지도자들이 그들 기준으로 봐도 전부 세상을 향해 다시 나가 버렸다.
이 노선도 각 공회와 각 교회와 각 지도자들까지 그들이 평소 말한 그들의 기준으로 봐도 스스로 받은 걸을 다 버렸다.
이런 시기의 이런 형편에서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신앙으로 보잘 것이 없다 해도 디베랴 바다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있을 곳에만 있다면, 과거 위대한 분들과는 감히 비교도 하지 못하나 그냥 주님 곁에만 붙어 있다 해도 대단할 듯하다.
노아와 세 아들을 돌아 본다. 창6장에서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요 완전하다 했다. 그런데 홍수 후에 보니 별 볼 일 없다.
아들 셋 중에 하나는 끝장을 내고 하나는 어중간하고 하나만 바르게 출발을 했다. 실제 노아와 비교할 수 없이 어린데도
노아의 완전함과 의인 된 평가는 훗날 보니 위태했고 내면에 불안한 면이 많았다.
오늘 우리를 돌아 보며 시대는 너무 악하고 어두우며 우리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자칫 낙망하기 쉽겠다.
그런데 예수님 생애를 통해 오늘을 읽고 그 때 제자들과 노아 때의 8명 식구를 살펴 보니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겠다.
코로나 방역 문제가 1년을 지나 가면서 결국은 독감 정도도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과거 메르스 등에서도 그러했다.
오히려 코로나로 온 인류가 한 여름에도 마스크를 착용하자 이 것이 생활화가 되었고 올해는 감기 환자가 없는 듯하다.
평소 감기 폐렴에 죽는 수가 엄청났으나 올해는 코로나로 죽은 1천명 때문에 감기 폐렴의 사망자를 대폭 줄인 듯하다.
이 방역 문제에 한국 교회와 공회 교회는 전부 혼비백산하여 모두 디베랴 바닷가에서 세상의 처세술로 밤을 샌 듯하다.
베드로처럼 시대와 공회의 지도자로 표시 되는 인물과 교회부터, 평소 과학적으로 계산하던 도마는 말할 것도 없다.
야고보 요한도 나다나엘까지도 모두 디베랴 바닷가에서 또 예전처럼 세상을 세상법으로 대처하며 허송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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