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3심 준비 : 2심 확정 ≒ 놋 연단 : 은 깨끗

발언
작성자
서울
작성일
2018.08.31
3심 준비 : 2심 확정 ≒ 놋 연단 : 은 깨끗

법을 잘 모릅니다.
신앙 양심으로 말씀드립니다.

원고와 피고 중 어느 한쪽도 3심을 항소하지 않으면
2심 확정으로 재판은 끝이 납니까?
원고와 피고 중 어느 한쪽이 3심을 항소하면
원치 않아도 대법원 재판이 진행됩니까?

재판에 유리해도 2심처럼, 피고인 우리가 먼저 항소하여 3심이 진행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원고가 3심을 먼저 항소하면 피고인 우리는 재판에 불리해도 변호사를 선임하지 말고
스스로 자기를 변호하며 청중을 향해 할 말을 다 했으면 합니다.

본인은 원고와는 적이고 피고를 지지하며 더 나아가 제 자신이 피고이기 때문에
우리와 원고를 향해 이 글을 적습니다.

3심까지 가야 하는 가장 큰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사람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더 이상 할 수 없는 데까지가 대법원 판결이기 때문에
그리고 백목사님께 받은 사은에 감사하는 제자로서
스승에 대한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에 대법원까지 가는 것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우선 두 면만을 두고 손익계산을 재차 살펴 봅니다.
1. 구원에 유익한 면과 손해된 면.
2. 물질적인 면.

1. 소송으로 피고는 목욕한 욥처럼 회개하고 자기를 고친다. 아주 큰 수입입니다.
그러나 더 건설적인 면에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손해, 정력손해가 더 크다.
목욕과 회개는 1심 확정이면 충분합니다.
부공3 현재 방향은 다른 손해가 있어도 3심까지 가는 것이 구원에 더 유익하다 판단하신다면
저는 1심에서 더 나아가는 것은 구원에 유익보다 손해가 더 크다는 입장입니다.

2. 물질적인 면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매달 회개보고와 교회재정이 또 하나의 참고자료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오후 권찰회 때 전기세 절약을 위한 누진세 파악처럼 단순한 질문입니다.
1심 확정까지 소송비용과 1심,2심,3심을 합한 소송비용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습니까?
대법원 확정 이후 원고는 손해배상을 반드시 청구해 올 텐데
그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예상액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까?
추가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모든 소송비용과 손해배상액의 최대치를 미리 계산해 봤으면 합니다.
싸워 이길 승산이 있는지 만약 진다면 그에 따른 대비도 함께 준비하자는 의견입니다.

본인의 소견은
2심, 3심을 위해 준비한 소송비용을 가지고
변호사 수임료로 지출하지 말고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결과라면 손해배상액으로 대신 지불하고
5월 집회 말씀처럼 새출발, 새역사를 써 내려가는 것이
자타구원과 복음전파라는 전체적인 면을 위해 더 좋은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원고인 대제사장에게는 필요할지 몰라도
피고인 바울에게는 변사 더둘로가 필요 없습니다.
바울보다 노선과 역사를 더 잘 알고 신앙과 세상의 모든 면을 두루두루 자세히 살펴
부공3을 제대로 변호할 사람은 현재로선 없어 보입니다.

다만 목회와 소송을 병행하기에는 시간적 정신적 한계가 분명 존재하지만
현재 주신 현실은 소송이 곧 목회의 일부이자 연장 선상이 되어 있고
목회의 중심에 소송이 자리를 잡고 해결해 달라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끔 참고도 해야 하고 때로는 필요도 하겠지만
변호사란 원래가 돈이라는 이익추구를 위해,
달통한 세상법과 전관예우라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또 하나의 불신 세상임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세계는 사람의 실력이나 세상 권세인 애굽을 의지하지 않고
주신 범위인 자력으로 최선을 다하려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이 하시면 판례를 무시하고 처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친의 설교가 자녀의 사유재산이라는 원고의 주장은
신앙세계에서는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교계 일반에서도 비판받을 일임을 신문보도가 이미 증명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라면 몰라도 주권을 인정하는 신자라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원고의 잘못을 지적하다가 한편으로 회개에 도움을 줬다고 감사할 원고만 생각하다가
정작 발빠른 조처가 필요한 우리의 문제와 돌이킬 시기를 그냥 지나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 우리의 고칠 점. 욥처럼 우리 속에 숨어 있던 죄악의 실상을 깨닫고
원고와 부산을 향하던 시선을 돌려 재빠르게 방향 전환하여 새 길을 개척할 때가 언제입니까?

부공3은 그 시점을 대법원 판결 직후로 보고 계신다면 저는 1심 확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자라면 저는 대역 죄인이고
후자라면 3심을 진행하려는 지금이 허송세월입니다.

소송의 의미가 불의와 맞서 끝까지 싸우라는 연단의 뜻도 있겠지만
우리의 회개를 위해 바벨론 포로처럼
징계의 회초리 앞에 항복을 종용하는 의미도 함께 내포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나 로마에 가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 바울을 향해 예언으로 말렸는데
저 또한 우리의 구원이 일곱별의 사자에게 달려있음을 알기에 마땅히 말릴 수 밖에 없습니다.
목자가 죽으러 간다 하시는데 양떼가 어찌 가만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최종 법정 가이사에게 호소한 것은 죽음을 전제한 것인데
이번 소송도 목숨이 끊어질지라도 지켜내야 하는 사안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교회재정이 바닥나면 보물이 사라집니다.
구 보물인 백영희설교록은 주님의 깊은 뜻이 있어 거두어가시고
새 보물인 신풍설교록에 백영희설교록이 고스란히 녹아 전부 다 담겨져 있습니다.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1심 확정 한번이면 족하다 생각합니다.
부득불 꼭 3심까지 가게 하신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처럼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끌려 법정에 담대히 서는 것이라면 몰라도
내가 자원하여 '재판을 다시 해 달라'는 항소를 먼저 제기하면서까지 3심까지 가는 것은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무죄를 입증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죄가 없어도 주님의 대속처럼
비웃음거리와 조롱거리의 십자가 고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놋 - 연단  그리고  은 - 깨끗.

주변국 앗수르 산헤립이 강대해져서 예루살렘이 함락 직전의 사지로 몰리는 현실이면
회개를 촉구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생각납니다.
옷을 찢고 자기 중심의 나를 죽여서 진정 하나님만 모시면 대적들은 주님 손에 죽습니다.
원고를 향하여 잠잠하라.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가라.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입니다.
2018년 5월, 8월 집회 말씀 속에서 소송이 나아갈 방향을 찾습니다.


1. 유리해도 항소를 먼저 하지 말 것.
2. 불리해도 변호사를 선임하지 말 것.
3. 안될 것을 계산하고 만일을 대비하여
   손해배상금을 미리 준비함으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것.


무익한 종의 의견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전체 9

  • 2018-08-31 03:42
    1심, 2심 판결을 뒤집고 대법원에서 승소하더라도
    위와 같은 방편으로 3심이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 2018-09-01 09:21
    이번 일이,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포로처럼 항복을 종용하는 의미와 같다는 것이,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요?

    바벨론 환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당하게 된 환란이며
    추후 소망을 위하여, 항복하라고 예레미야를 통해서 권고하신 것입니다.

    설교록 사건이, 부공3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사건입니까?
    무엇을 어떻게 항복하라는 것입니까?

    총기를 든 괴한이 총을 쏘고 난리도 아닌데,

    ===================================================
    1. 유리해도 항소를 먼저 하지 말 것.
    2. 불리해도 변호사를 선임하지 말 것.
    3. 안될 것을 계산하고 만일을 대비하여
    손해배상금을 미리 준비함으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것.
    ====================================================

    정말 낭만적이십니다.
    항소를 하든 안하든, 변호사를 선임하든 안하든.
    이 결과야말로 바뀌는게 있습니까?
    그리고 손해배상금을 미리 준비하자고요?
    그 금액을 미리 준비하면, 금액이 줄어든답니까?
    그게 뺏기면 뺏기는거지, 준비하면서 갖다 바치는 겁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시면서, 결국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1심에서 포기했어야 했는데, 3심까지 질질 끌고 가게 된 것이 잘못'이라는 말 아닙니까?
    그 말을 하고 싶으신 것 아닙니까?

    물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안은 너무나도 중대한 일이라, 목사님께서 누구보다 더 생각하시고,
    기도하심으로, 누구보다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고 계시는 것으로 저는 보고,
    어떤 결과든지 응원 뿐입니다.

    "이번 소송도 목숨이 끊어질지라도 지켜내야 하는 사안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법은 잘 모릅니다"

    이미 답은 다 말씀하셨습니다.
    잘 모르신다면서요?
    세상법도 목사님만큼 모르시잖습니까?
    성경도 그렇잖습니까?

    변사가 필요없는 바울은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나를 말리지 말라.

    제발 모르시면, 기다려봅시다.
    어린 신앙들 혼란스럽게, 어지럽게 만들지 마시고.
    일대일 면담을 하십시오.
    충분히 납득시켜주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설명을 들으려고는 안하고, 자꾸 공론화 시켜서,
    안그래도 어려운 상황을 더 어지럽게 하시려는 이 작태를 볼적마다 울화통이 터지는 것은 저만 그렇습니까?

    몰라서가 아니라 이 말씀도 알만한 분이 이러시니 더욱 그렇습니다.

    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태복음 16:21-23


  • 2018-09-01 16:40
    저도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목사 설교가 자식 것이라는 것"은, 절대 못 받아드립니다.
    아무리 세상 법에서 그리 판결 내렸다해도, 저 개인에게 그게 맞느냐고 물어본다면,
    절대 '아니오'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달렸고,
    교훈이 달렸고,
    수많은 사람들의 영생이 달린 문제를.
    힘으로 뺏으려고 하니까, 얻어터지면서라도 결코 내놓을 수 없다고 붙들고 끝까지 지키고 있다가 피눈물로 뺏기는 것이지,
    그것을 제 손으로 그냥 포기를 해요?

    아니, 우리가 아무리 믿음은 없어도, 정말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믿음은 없어도, 기준만큼은 똑바로 가져야지 않겠습니까?
    백 목사님의 신앙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원칙에따라, 이행 중인데, 뭘 회개하고 뭘 항복하란 말입니까? 도대체.

  • 2018-09-07 05:51
    우리가 전적 옳다면
    뜻을 굽히지 아니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틀렸거나 뜻을 굽혔다는 말이 아닙니다.
    무죄의 연단으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면
    주님이 주신 잔을 전부 다 마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죄 때문에 지금 소송을 당하거나 한발 물러섰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단일성이 아닌 복합성.
    일방적이 아닌 쌍방적.

    사도바울처럼 복음전파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면
    첫째. 1심 판결이 났을 때 pkist.net 홈페이지 문을 계속 열어둔 채 2심 항소를  진행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pkist를 닫으신 주님이 pkists라는 새로운 홈을 활짝 여셨습니다.
    주님이 한번 (pkist) 닫으면 열 사람이 없고
    주님이 (pkists) 열면 닫을 사람도 없습니다.

    끝까지 진리를 외치는 것이라면
    둘째. 올해 5월, 8월 집회때 재독도 같이 병행하면서 설교를 전해서 우리의 의를 드러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소송을 시작하신 주님이 집회 때
    재독고집, 현실안주, 앉은뱅이는 꺽으시고 새 길을 열어가신 강권적인 객관의 역사였습니다.

    강제로 가져가면 눈물로 뺏길지라도 포기할 수는 없다면
    셋째. 대법원까지 소송비용도 추후 손해배상금도 교회의 피값을 쓰기 전에 먼저는 온몸을 불태워야 합니다.
    교회 피값은 대법원 판결이 끝나고
    원고가 교회 이름, 연구소라는 단체 이름으로 재차 소송을 걸어올 때 그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피값을 들여서라도 이 시대 마지막 선지자의 외침을 계속함으로 오는 댓가를 치르게 하신 것입니다.

    진리 대 진리투쟁을 위한 십자가 고난이 확실하면
    대법원 판결이 끝날 때까지
    모든 형사처벌과 무죄형벌을 감수하더라도
    헌법이 말하는 설교록 전파의 위법행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항소와 상고를 진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원고-부산연구소'의 이름으로 '피고-신풍연구소'에 설교권과 출판권을 돌려 달라 했다면
    소송을 시작한 명분이라도 서겠지만
    '부친의 설교가 자녀의 사유재산이라'는 원고의 주장은
    진리투쟁도 아니고 신앙문제도 아니고 이건 뭐 아이들 말로 죽도 밥도 아닙니다.
    불신자가 비웃고 있습니다.
    주권의 하나님에게 욕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비웃어도 욕이 돌아가도 무조건 이겨야하기 때문에 변호사의 조언을 따라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일까? 아니면 자의사 인가?
    왜 그렇게까지 했어야만 했을까?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기에 진리로 상대하라 하시니 순종하는 것이지
    상대할 가치도 없는 불신 세상이요, 성전밖 마당일 뿐입니다.

    다만 지금의 소송이 앞으로 닥칠 시대적 환란을 미리 알리는 예고라 생각됩니다.
    사랑으로만, 긍휼로만 이길 수 있는 길임을 거듭 알리시는 표시입니다.

    첫째. 둘째. 셋째. 위 세가지가 틀린 것은
    1. 원고를 생각하면,
    상대할 가치도 없는, 진리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
    2. 피고인 우리를 생각하면,
    놋 연단만을 위한 소송이 아니라
    은 깨끗도 소송에 함께 포함되어 있는 복합적인 진리 싸움이기 때문에
    3. 하나님의 역사를 두고 본다면,
    주님이 허락하신 십자가에 죽으려면 끝까지 가 봐야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3심 때는 상고를 먼저 하지 말고 변호사는 선임하지 말 것.
    사자굴에서 무사했던 다니엘처럼 승소한다면 기회를 또 주시니 감사해야겠지만
    십자가 영광이 우리를 기다린다면 이길 리는 없겠고 진다면 패소대비.
    손해배상금을 준비해서 자라나는 새싹들, 새 길을 개척할 다음 세대를 위해
    나머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자는 의견입니다.

    이 의견은 무저항이 아니라 '무언의 용사로 어디까지든지 가겠다'는 최고,최대 저항의 완곡한 표현입니다.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해석이 십자가를 지기 싫다?
    소송을 포기하겠다는 해석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한번 더 찾아보자는 의견입니다.
    진정 의견입니다.

  • 2018-09-07 17:13
    "주여 그리마옵소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중보자로 오신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합니다. 대속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 이 노선의 중보자들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다가 죽는게, 우리의 본래 사명입니다.
    되든 안되든 3심까지 싸울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주님과 백 목사님 앞에, 이 복음을 받은 자로써,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노선, 그대로의 삶, 그리고 전달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입니다.
    이 복음 위해 살다가 죽는 것.
    설령 그리 살지는 못해도, 그런 삶을 소망하는 것.

    백 목사님의 교훈을 듣고도, 이 확실한 사명, 이렇게 쉽고 확실한 뜻을 발견 못한 분이,
    무슨 개인 의견을 자꾸 말하고, 하나님의 뜻을 자꾸 운운하시는 것인지

    저는 당최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 2018-09-07 17:47
      (비용 문제)
      현재까지 모든 소송 비용과 향후 손해배상금은 개인 회원 몇 분이 직접 책임 지고 있습니다. 그 총액은 향후까지 계산해도 이미 충분합니다. 일반 연보가 나간다면 교회의 피값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지만, 연보에 나선 분들은 바로 이 때를 위해 주신 물질을 값지게 사용한다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소식 차원에서 알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교회의 경제를 피로 여기며 아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부산 쪽에 고소자들은 이런 대화의 세계를 모를 듯합니다.

      (여러 의견)
      일찍부터 부공3은 원래 갔어야 할 길을 벌써 출발해야 했다는 분, 지금이라도 재촉하자 합니다. 우리 모두 경청하고 있습니다. 출발 당시도 이 사건 초기에도 지금도 늘 귀에 맴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제안이 더 나은지 아니면 더 아쉬운 제안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현재처럼 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이 길이 맞다고 생각하나 '최종 단정'은 아닙니다. 세월이 좀 지나 봐야 모두 앞에 이 것이 답이었다고 자신하겠습니다. 현재 분명한 것은 갈수록 연구소의 대처 방향이 맞을 듯하다, 그 정도임은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서툴지만 그래도 부산처럼 그렇게 어둡거나 방향 감각이 전혀 없지는 않을 듯합니다.

      (적지 못하는 아쉬움)
      pkist 시절은 뭐든지 최대한 적었습니다. 홍보가 아니라 안내였습니다. 그리고 20년의 운영이 기적적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누구든 무제한으로 글을 적도록 하는 경우는 제가 알기에 없습니다. 바로 이런 상태가 계속 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이들이 생긴 것입니다. 어떤 분은 시기로 어떤 분은 이권을 어떤 분은 사감 때문입니다. 우리는 벌써 출발했어야 할 여행을 머뭇거리지 못하게 쫓아 내는 역사를 처음부터 느꼈습니다. 과거에는 이럴 때 세세히 내용을 설명함으로 소리 없이 지켜 보고 돕고 함께 하는 분들이 거의 질문이나 이견이 없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화조차 못하게 하려고 최근 모든 상황이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앉아 뭐든지 다 말을 하게 되면 이해 못할 분이 없고 동참하지 못할 분이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희의 과거만 가지고 각자 알아서 짐작하고 결정해야 하는 때임을 말씀 드립니다.

      다른 공회들처럼 다 공개하면 조직이 견디지 못하고 주저 앉을까 해서가 아니고, 다 설명하면 누구든지 따르고 이해해 왔고 현재도 그럴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pkist 시절처럼 모두를 다 발언하지 못하게 바뀐 오늘 형편을 탓하기 전에 주님이 더 중한 앞날을 미리 대비하도록 이 번 고소건들을 통해 세상이 지켜 보고 부를 때를 대비하여 만사 표현과 발표의 과정까지 조심하라는 뜻을 보며, 내부적으로 발표의 과정과 표현을 심각히 조심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
      우리는 백 목사님 때문에 이 노선의 홍해는 건너 왔으나 요단을 건너 갈 줄을 모르거나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냥 쳐다만 보고 세월을 보냈습니다. 2018년 8월 집회를 마친 현재 우리는 과거 누가 무슨 의도로 어떻게 했든지 말았든지 상관 없이, 이미 요단을 건넜습니다. 그 동안 모든 분쟁을 시작한 부산 쪽은 1단 로켓이 되어 우리를 이 땅 위로 솟구치게 했습니다. 갈 길이 멀다면 어떤 분이 거들어서 부공3 안에서의 갖은 문제들은 우리에게 2단 로켓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했던 창공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대기권을 벗어나고 끝없는 자유의 항해를 할 듯합니다. 누가 또 3단 로켓 추진체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영인 또는 이치영 2 명 중에 하나가 미치면 3단 로켓이 될 것으로 봅니다. 어쨌든 1단과 2단이 밀어 올리는 세계는 다릅니다. 우리는 소망 중에 있습니다.

      발언하지 못하고, 알려 드리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곳의 소신 하나는 적어도 알면서 다른 이유로 머뭇거리거나 딴 소리 하거나 딴 길을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것이 안 되면 이 곳에 있으려 해도 있지 못하게 됩니다. 어떤 증거들을 봤는가? 봤습니다. 현재 저작권이 아예 개입 될 여지가 없었던 많은 업무가 진행 중입니다. 30여명이 넘는 분들이 매진하고 있습니다. 집회 교재와 같은 작업이 66권을 향하여 전부 진행 중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신학'입니다. 백 목사님께서 거의 백지로 남겨 둔 분야,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분야가 지금 진행 되고 있습니다.

  • 2018-09-10 05:51
    '3단 로켓 추진체'

    하나님이 강퍅케 하시면
    누구든지 예외없이 사람은 별 수 없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앞으로 두 분이 미친다면
    무릎 꿇고 눈물로 호소하며 간곡한 말로 아뢰기를,
    "틀렸습니다. 지금 배가 산으로 가고 있나이다"
    충언할 자가 있겠는가?

    삼하24:1, 4, 10, 17, 24-25
    다윗이 잘못한 인구조사처럼.

    말씀하신대로 지금 누군가 미쳤다면
    충심으로 직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중단시킬 사람이 없다는 것이 늘 고민입니다.

    반면 정로로 바로 걷고 있다면
    주변에 개 짖는 소리는
    불량한 나발처럼, 시므이의 저주처럼 개의치 마시고
    대업을 이루소서.

    2심 항소의 시작도, 3심 상고의 시작도,
    최초 소송을 시작하여 손에 피를 묻힌 원고의 몫으로 돌렸으면 합니다.

    '항소나 상고를 하지 말자'는 모략이 선치 못하다면
    믿음 없음과 저의 좀 어리석음을 용납해 주옵소서.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강퍅을 계속 부리는 것이라면
    제가 미쳤습니다.

    수족인 최측근이 미치면 원인은 나에게 있습니다.
    미친 자를 고칠 자도 나 밖에 없습니다.

    인구조사를 재촉한 다윗에게 군대장관 요압은 늘 골칫거리였습니다.
    '참 내 맘대로 안된다. 심리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 2018-09-27 05:49
    항소, 상고, 할 수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짐승의 앞잡이 노릇하는 반기독 세력이 현 정부와 하나되어 한국의 전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국기배례는 국가의식으로서 반드시 해야 된다'고 1심을 신청하여 판결이 원고 승소가 된다면
    몇몇 뜻있는 기독교인들은 똘똘 뭉쳐 2심 항소와 3심 상고를 먼저 진행할 것입니다.

    대법원에서도 최종 판결이 원고 승소로 국기배례를 강제한다면
    그래도 우리 총공회는 우상숭배를 할 수 없어 감옥살이와 죽음을 택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13장.

    우리의 보물인 백영희 설교권과 출판권은 우리가 뺏기더라도 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이 나면
    우리는 승복을 하고 깨끗하게 포기할 것입니다.
    만약 국기배례와 성격이 같다면 최종 판결이 나도 백영희 설교록을 계속 전하고 출판을 계속 하다가 감옥에 들어갈 각오를 할 것입니다.

    과거 공회역사에서 국기배례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간 상태에서 소송하여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했는데
    그때 패소했다면 백ㅇㅇ목사님이나 연루된 교인들은
    미국처럼 보석금 석방이나 벌금을 낼 수 있는 길이 있다 해도 대신 감옥살이를 유지했을 것입니다.

    국기배례 사건처럼
    이번 소송도 똑같은 경우라 하여
    항소와 상고를 먼저 주도한다면
    패소해도 설교록 전파와 출판을 중지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국기배례는 우상숭배 죄가 되기 때문에 재판결과에 상관없이 우리가 할수 없는 것이고
    이번 소송은 패소해서 보물을 뺏겨도 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전파행위를 중지하는 것입니다.

    신앙문제에 관한 한 "죽었으면 죽었지. 우상에 절대 절할 수 없다"처럼 죄가 되는 문제에 한하여
    항소와 상고를 신청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주님의 역사로 알고
    재판소에 항의할게 아니라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순교하라는 현실임을 알고 앞으로 풀무불에 들어갈 준비만 하면 됩니다.

    과거 국기배례사건과 현재 진행중인 소송은
    그 성격과 차원과 대처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교인들의 피눈물로 세워진 보물인 예배당 소송에 더 가까와 보입니다.

    • 2018-09-30 16:37
      시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각도를 잡는 일입니다. 대포를 쏘기 전에 각도를 먼저 잡습니다. 각도를 잘못 잡으면 생사람을 잡습니다. 윗글의 시각을 생각합니다.

      백영침 목사님의 국기배례 건을 바로 아셨더라면 그 것을 예로 들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글이 이어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재 위의 글은 좌우 판단에 대한 글입니다. 건의 형식이든 탄식이든 호소든 글에는 현재 공회의 대처가 잘못이라는 글입니다. 그런데 이 글의 시각이 잘못 되면 생사람을 잡습니다.

      구 게시판 시절부터 이미 설명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말은 무슨 말이라도 그냥 지나 쳐 보내고 글 쓴 분의 밑바탕에 자리 잡은 첫 생각만을 가지고 돌진만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호소든 눈물이든 피눈물이든, 그 것은 전부 뒤에 할 말입니다. 일단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방향을 바로 잡은 다음에 호소가 있고 간구가 있고 안 되면 피눈물의 막아 서는 길도 있습니다. 피눈물의 표현이 먼저 나가면 좌파들의 광우병 소동처럼 됩니다. 위험한지 아닌지 살피고, 그리고 나서 이제 피눈물이라는 표현이 나와야 합니다.


      저희는 애굽 400년을 끝낼 모세를 받았습니다. 바로가 알아서 죽이라 합니다. 다른 공회들과 다른 사이트들은 자기에게 주어 진 모세를 알아서 다 없애 버렸습니다. 부공2의 김 목사님들과 서 목사님 등의 10명도 그렇게 했습니다. 저희는 석 달을 견뎠습니다. 그리고 지금 갈대를 만들고 강에 띄웠습니다. 역청도 발랐습니다. 미리암이 따라 가며 지켜 보고 있습니다. 요게벳과 모세가 유모와 왕자로 만날지 어떻게 될지 우리는 눈이 어두워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미리암이라는 최종 목격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의 남침 야욕은 때로는 테러로 때로는 전면 공격으로 때로는 평화로 나옵니다. 속은 하나고 수단과 겉모습은 천과 만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은 본질적으로 그렇습니다. 그 것이 공산주의의 속성입니다. 문제는 자유가 속성인 남한입니다. 북이 어떻게 나오든 남이 자기 방어에 충실하면 지켜 내고 발전을 이룹니다. 이 과정에서 남쪽 안에 의외로 남을 내리 앉히는 운동이 북의 공격보다 위험합니다. 남쪽 안에서 '이제는 북쪽도 진심으로 평화를 원한다' '이 번 공격은 연평도에 대한 국지전일 뿐이다' '그들도 사람인데 설마 민족에게'라는 남한 내부의 진실한 분들, 정말 양심적인 분들, 남들은 북과의 연계를 의심하나 진실로 진실로 양심적이며 철저하게 애국자인 분들 중에서 북쪽은 없어지지 않는 암세포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 속에서도 뭔가 희망이 있다는 분들, 그 오판은 북한 전체의 남침 역량보다 몇 배 더 무서운 내부의 위험 요소입니다.

      윗 글은 처음부터 늘 그렇다고 봤습니다. 윗 글의 진심은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윗 글의 오판은 이미 지난 날 확인이 된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도 진행 되고 있는 듯합니다. 공회의 행정은 공회의 교훈이 실제 적용 될 때를 말합니다. 공회의 신앙이 현실 속에 적용 되는 과정을 윗글에서 여러 면으로 설명했고 지난 여러 글에서도 적었습니다. 공회의 행정을 너무 모르니 면밀히 공회의 역사를 먼저 공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왼편 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을 두고 공회만은 해석을 달리 합니다. 그래서 공회의 행정은 윗글을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언제 어디쯤 어떻게 서고,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치느냐는 것을 두고, 공회는 교리와 성경 체계를 따로 가지고 있으며, 구체적 사례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단정하고 표현을 강하게 하기 전에 우선 살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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