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교회 통계로 본 공회 평가

연구
작성자
목회자
작성일
2020.10.20
(챙겨 봤던 백영희, 그는 탁월한 행정가였다.)
백 목사님은 평생 '챙기는' 분이다. 만사를 챙긴다. 이를 목회라 하고, 이를 연경이라 하고, 이를 백영희 노선의 현장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고 당연한 면은 주일학교에도 있었고 70년대와 80년대라는 환경을 만나 세계 최대 주일학교라는 모습으로 나타 났다. 그 결과의 내면 분석을 해 보면 '챙기는' 것이다. 좀 배운 교파의 지성인들은 '셀운동' '이슬비전도' '제자훈련' 등으로 끝없이 재포장을 했지만 내용은 백 목사님의 '챙겨 보라'는 부탁이다. 그런데 이 것이 거창하게 표현하면 '행정'이 된다. 이런 표현이 들어 가면 복음과 생명의 본질을 모르는 공무원식 신앙가들에게는 짐이 되거나 아니면 기계적 조직 운영의 수단이 된다. 백 목사님 별세 직전에 현재 대구공회를 중심으로 모인 목회자들이 '교회 보고'를 중단하라고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그래서 목사님 생전의 마지막이었던 1989년 3월 총공회에서는 다시는 행정 보고 문제를 반대하는 거론조차 하지 말기로 결의까지 했다.

백영희 행정의 진면목은 세계 최대라는 주일학교, 세계 5대 교회까지 이르렀던 서부교회, 전국 100개 교회가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내면의 본질을 바로 꿰뚫고 있었다. 그는 늘 현장 일선에 있었다. 그래서 바로 살아 보려는 이들에게 헛 일을 시키지 않았고, 공무원처럼 대충 넘어 가려는 이들은 그의 눈이 두려웠다. 그는 늘 변화 된 환경에 따라 달라야 하는 면을 짚어 냈고, 그는 어떤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켜 내야 할 불변의 가치를 지켜 냈다. 다시 생각하면서도 감탄스럽다. 그 비슷한, 그 흉내를 내보려고 적어 본다.



(1980년대까지의 교회 평가)
백 목사님은 초등생까지의 유년주일학교, 중고생의 중간반, 장년반의 주일 오전과 오후 예배와 삼일과 오일 예배와 새벽예배의 출석수만 가지고 교인과 구역장과 목회자와 교회의 역량을 정확히 읽어 냈다. X 선이 아니라 CT나 MRI 차원이었다. 70년대와 80년의 한국 사회와 교계와 공회의 여건에서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예배의 출석수가 목회자의 충성과 신앙이었다. 개개인이 굳이 말을 하려면 할 말이 많겠지만 당시는 그러했다. 판검사나 의사가 된 사람은 공부에 머리와 노력이 함께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비록 커닝을 했을지라도 당시에 박사 학위를 받는다는 것은 몇십 년 공부에 골이 빠져야 했다.

당시 자가용은 특별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운전 면허증이란 마음만 먹으면 받을 수 있었으나 모두들 애를 먹었다. 지금은 자가용 없이 산다면 뭔가 사연이 있다. 자연스럽지 못하다. 80년대까지는 교회의 개척과 교인의 전도란 신앙과 열심이 따라 가면 전국 어디서나 거의 가능했다.



(2020년대 오늘의 교회 평가)
이 글은 당연히 오늘 공회 교회를 기준으로 적는다. 이 글을 적는 곳은 '연구소'의 '총공회 발언/연구' 게시판임을 양해 구한다.

* 새로운 개척
80년대 개척은 목회자의 실력과 교파에 거의 상관 없이 전국 어디라도 시도만 하면 교회가 서게 되고, 노력만 하면 교인이 모였고, 버티기만 하면 자립교회가 되었다. 위치나 실력이 조금 괜찮으면 모두가 부러워 할 교회로 자리를 잡았다. 조금 더 괜찮으면 요즘 그렇게 모두가 전설처럼 생각하는 대형교회가 되었다. 80년대는 그렇게 열매를 채 맺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90년대를 통해 늦게라도 그렇게 되었다. 백 목사님은 70년대 말부터 이런 점을 주목하고 그렇게 목회자들과 교인들을 재촉했다. 그 때 우리는 근시였고 그 분이 망원경으로 살핀 다음에 애를 태우며 부탁을 할 때 좀 지나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공회 핵심이며 백 목사님의 아낀다는 말을 듣는 나조차 그런 마음이 있었다. 지나치다 할 만큼 몰아 붙인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기회가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설교나 회의를 통해 그는 먼저 봤고 남이 보기 어려운 면을 봤다. 그래서 혼자 애를 태웠다. 그의 평생 거의 모든 분야에서 늘 그러했다.

2020년대, 오늘의 개척은 어느 곳에 누가 개척을 해도 실패할 것으로 본다. 살아 남는 곳이 있다면 기존 교회의 분리 등의 좋지 못한 면이 있다. 순수한 개척의 시도는 없다고 볼 상황이다. 실제 새로운 개척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개척을 하려는 그 교단의 그 교회의 그 목회자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그렇게 은사를 제공하는 교회들이 생활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같은 업종에서 같은 음식을 파는데도 식당을 또 여는 것은 내 돈을 벌기 위한 것인데 개척조차 그렇게 해야 할까? 부공3은 1990년대부터 벌써 새로 개척을 해야 할 이유를 찾고 나서 개척을 하려니 개척할 곳이 사실 없었다는 글을 구 게시판에 올린 적이 있었다. 동감이다. 2000년대의 개척이 정말 개척답게 개척이 되었다면 그 자체가 특이한 경우다. 그리고 그 개척이 자리를 잡는다면 대단한 일이다. 공회는 공회의 특성이 워낙 특별하여 아직도 그런 사례가 아주 가끔 있을 듯하다. 최근 서해안에 시작한 개척은 그 위치를 생각하고 그 곳 주변으로 움직였을 공회적 성향의 인물들이 어느 정도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순수 개척의 의미가 있다.


* 교회의 위치
개척을 포함하여 그 어떤 교회도 교회의 위치란 교회의 외형에 큰 영향을 준다. 백영희의 신앙과 충성과 실력은 늘 절정이었다. 그러나 거창의 개명과 위천 시골에 있을 때와 부산 서부교회로 이동했을 때의 교인 수는 비교할 수가 없다. 거창에서도 만일 거창읍이라는 시내권에 교회가 있었다면 대단했을 것이다. 1965년 서울의 아현교회에 김현봉 목사님이 별세한 후 후임으로 갔다면 교회의 외형은 오늘의 순복음교회가 되고 그 내용은 서부교회였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걸출한 인물 때문에 우리는 그런 인물을 그리다가 마는 회상에 그치지 않고 오늘 우리를 살펴 본다. 오늘 교회의 규모가 80년대의 혜택을 본 90년대까지를 비교해서 왜소하다 하여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소망 때문에 비교를 하고 있다.

구 도심에 주민이 갑자기 없어 지고 허허들판에 갑자기 인구가 밀집하면서 교회의 부침이 뚜렷한 경우가 있다. 어느 교회를 볼 때도 이 면은 고려하는 것이 맞다. 모두가 아는 상식인데 이렇게 적는 것은 백영희의 시골 목회와 부산 목회를 비교해도 그렇기 때문이다. 오늘 구 도심 주택가의 과거 100명 교회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면 2~3배의 부흥이 있었다고 가산해야 할 듯하다. 오늘 동탄 한 가운데 종교 용지를 분양 받고 개척한 교회가 수백 명 교인을 단시일에 가졌다면 이는 부동산의 안목을 포함하지 않을 수가 없을 듯하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까지 신도시 중심으로 공회는 여러 교회들을 개척했다. 충주, 청주, 인산, 창원, 번동, 포항, 안양의 경우는 대표적으로 성공한 경우다. 방배동 하계동 진주 등의 경우는 아쉽게 된 경우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출발을 했는데 결과가 차이가 난 것은 목회자와 교회의 역량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시대와 지역의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공회의 개척 방향과 당시의 기록에서도 이 부분은 공회가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바로 이런 기록을 가지고 오늘 우리는 전국의 공회 교회들을 재평가 해 볼 시점이다.

최근에 코로나 사태 때문에 서울의 동문교회가 크게 부각이 되었다. 교회의 신앙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좁은 구 도심에서 아직도 중견 교회로 유지 되고 있다는 것은 동문교회의 전성기를 지켜 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인의 수와 외형만 보면 도심 속에 파묻혔다고 볼지 모르나 하나님이 주신 현실의 다른 여건을 고려하면 견실하다고 보인다. 반면에 서부교회의 경우는 간부만 남고 교인의 의미를 가진 이들은 남아 있지 않다고 읽힌다.


* 교인의 구성
사회의 고령화에 따라 과거 청년 대학생만 모인다는 교회도 지금은 중년이 중심이고 노년과 청년의 분포가 비슷해 보인다. 80년대의 공회 교회들은 장년반이 100명이라면 중간반이 30여명이 예사였다. 주일학교는 2, 3백 명이 예사였다. 당시 초등학교는 1개반에 60명이 정원이고 최소한 50명은 넘겼다. 지금은 서울의 도심 학교가 학생이 없어 폐교에 이르고 전국의 아동 감소는 모두가 알고 있다. 오늘 장년반이 100명이라면 중간반 10여명이 어렵고 주교생 30명이 어려운 때가 되었다. 공회는 어디라도 아이를 다른 곳보다 많이 낳는다. 그래서 이 정도라도 유지가 되고 있다.

지금 서부교회는 어떤 통계도 평양처럼 감추고 있다. 가끔 직접 방문하고 촬영한 방문객들이 연구소에 공개한 자료를 보면 대략 짐작을 할 수 있다. 장년반이 1천 명 이하이고 주일학교는 5백 명 채우기 어려운 듯하다. 80년대라면 반사 2-3명이 그 수를 채웠고, 30개 분교 중에 상위급 2개를 합하면 그 숫자를 넘겼다. 오늘 주일학생 1명은 80년대와 비교할 때 10명과 교환 가치를 가진 듯하다. 장년반은 구 도심이나 시골처럼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숫자 자체의 변동은 1-30% 정도를 벗어 나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신도시까지 포함하여 연령 분포는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시골 교회는 80대가 점심과 청소를 맡고 90대가 어른으로 앉아서 섬김을 받는다. 좀 형편이 나으면 70대가 일하는 청년이다. 도시 교회는 전국적으로 젊은 교회로 알려 졌던 교회도 4-50대가 중심이고 그 이하는 적고 그 이상이 대부분이다. 서부교회의 경우 최근 코로나 때문에 기사화 된 내용에 대부분 노인들이었다고 전한 기억이 있다. 교인의 사진을 봐도 그렇다.


* 교인의 거주 분포
쉽게 넘어 가기 쉬우나 주력 교인의 주거나 교회의 예배당으로부터 생활 거리에 있는지를 보면 교회의 내면을 살필 수 있다. 80년대로 말하면 걸어서 교회를 올 수 있는 교인은 교회의 중심이고 차를 타야 오는 교인은 손님이다. 공회는 웬만한 교인이면 교회를 걸어서 다니는 위치에 살았다. 다른 교단은 교회로부터 멀리 떨어 진 곳에서 차를 타고 와야 대우를 받는 분위기였다. 당시 활성화 되던 신도시의 좋은 거주 환경에서 사는데도 본 교회를 지키기 때문이었다. 공회는 이런 교인을 롯과 같이 소돔으로 간 교인 취급을 했다. 오늘의 기준은 조금 넓게 잡아야 할 듯하다. 자동차로 새벽 예배를 나올 수 있는 거리면 어떨가? 자동차로 시골은 5분, 도심은 10분 정도라면 만일 눈이 오거나 차량이 막히면 걸어서라도 올 수 있다. 이 정도면 생활 거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교회로부터 교인의 주거지까지 거리의 평균을 내 보면 그 교회의 역량이 될 듯하다. 주택을 마련하고 주거 환경을 평가할 때 웬만한 손해를 봐도 교회를 아끼는 비용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결정은 속에 담고 있는 신앙의 분량으로 환산할 수 있을 듯하다. 마치 교회가 총공회 간판과 공회 찬송가와 남녀 분리와 모든 종류의 교회 행사를 예배 외에 모두 배제할 수 있다면 이 것은 그교회의 볼 수 없는 내면을 보여 주는 대단히 중요한 지표로 보인다. 80년대는 경제가 어려웠기 때문에 빚 없이 예배당을 잘 짓는다면 그 교회의 교인들의 신앙 내면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지표였다. 지금은 돈이 많아서 이런 면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 예배 모습과 내용
예배 구성은 크게 찬양과 설교로 나눌 수 있다. 설교의 비중과 시간을 보면 교회의 역량도 쉽게 나온다. 공회는 대부분 목회자들의 역량이 아직도 예전을 유지하고 있어 이런 점은 공통적으로 원만하다고 생각한다. 설교의 시간이 줄어 들고, 예배의 횟수가 줄어 들면서 예배 대신 성경공부나 교회의 여러 행사나 교육 과정이 대신하게 되면 마치 구약의 성전에 제사 외에 다른 용도와 물품들이 밀고 들어 오는 것과 같다. 김남준 목사님의 열린교회가 과거 설교만 2시간을 쉽게 진행했다. 찬송도 조용했다. 공회 외에서 이런 사례는 거의 없다. 공회조차 쉽지 않다. 지금도 그런지 한 때 초기만 그런지는 모르겠다. 바뀌었다면 왜 변경했는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그런 곳까지 살필 시간이 없다. 그냥 좋게 보였고 들려 온 소식이기 때문에 바깥의 것은 좋은 것만 기억하여 사용하는 것이 복 있는 눈과 귀가 될 것이다. 이런 분은 우리와 내용이 다르고 지향이 다르다 해도 하나님과 동행한 자신의 신령한 면이 깊지 않고는 할 수가 없다.

오늘 주일학교나 중간반이나 장년반의 예배 구성과 예배 내용 그리고 설교를 들여다 보면 교회 차원의 역량이 될 듯하다. 이 문제를 두고 하나 더한다면 찬양대 활동이다. 찬양대 활동이 활발할수록 말씀 쪽은 줄어 들 수밖에 없다. 이 것은 찬양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연약성 때문이다. 영어에 치중할수록 수학은 비게 되고, 수학에 파고 들수록 영어를 배울 기회는 아쉽게 될 수밖에 없다. 찬양은 감사의 표시다. 말씀으로 감사를 제대로 알게 되면 함께 화음을 내지 않아도 찬양은 한 없이 나오게 되어 있다. 그 찬양을 지휘로 모으고 함께 모여 맞춰 내면 더 좋은 모습을 갖게 된다. 그 좋은 모습이란 그런 감사를 모르는 어린 사람에게 그런 감사를 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런데 찬양은 은혜의 세계에 쉽게 다가 가고 말씀이란 다가 가기가 까다롭다. 사람은 경제적 본능이 있어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치 만족을 추구한다. 그래서 어느 교회든 그냥 두면 찬양은 자꾸 발전 성장한다. 그리고 말씀으로 깊어 지는 기회는 웬지 아쉬워 진다. 이런 현상이 진행 되면 마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신 상황이 일어 난다. 원래는 좋은 뜻으로 대표 기도를 했고 거리 전도를 했으며 구제에도 나섰는데 어느 순간 안과 밖이 바뀐다. 동기는 얕아 지고 결과는 짙게 남는다. 어느 순간 외식이라는 딱지가 붙어 버린다.



오늘 개인과 함께 우리의 공회 교회들의 신앙 내면을 80년대 상황과 비교해 보면서
과거 기록과 전해 지는 이야기에 위축이 되고 낙심까지 하는 일이 없도록
오늘의 우리가 80년대 그들보다 여러 배 어려운 중에 노력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싶었다.

80년대 그 유명한 서부교회 반사들이 오늘도 현장에서 반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거의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80년대 그렇게 급격하게 부흥을 시킨 공회의 유명한 목회자들, 지금은 그 때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결과 수치를 가지고 오늘 우리는 우리를 위로 하면서 안심을 시킬 것이 아니라
오늘 환경을 우리의 현실로 주신 상황에서 어떤 면을 노력하고 어느 정도라면 그 때보다 비슷하거나 좀 나아 질지를 연구하자는 뜻을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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