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밀담(密談)과  밀서(密書) 

발언
작성자
MARK
작성일
2020.09.12
밀담은 비밀리에 오고 간 대화나 담화를 뜻한다. 밀서는 그것을 서신이나 메일로 주고 받은 기록을 말한다. 구약시대 다윗이 사울 왕의 눈 밖에 나서 여러 차례 창에 찔려 죽을 위기 속에서 평소 다윗을 흠모하던 요나단이 먼저 밀담을 제의한다. 우리 아버지 사울왕이 식사 자리에서 다윗을 말할 때 무덤덤하면 너는 돌아오고 다윗의 형편을 말할 때 대노하면 너는 떠나라. 소년 하나를 불러 창을 가까이 던지든지 멀리 던져라. 그냥 천천히 주워 오라 하든지 빨리 달음질하라 하든지 둘 중에 하나. 소년은 모르나 다윗과 요나단만 아는 밀담이었다.


신약시대 끝까지 남아 마지막 성경을 기록한 제자가 사도 요한이다. 요한계시록은 대부분 상징이다. 그래서 불신자는 모르게 숨겨 놓았다. 믿는 자라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없으면 그 깨달음이 엉뚱하게 산으로 가기도 한다. 이는 요한계시록이 사도 요한과 주님과만 나눈 밀담을 글로 기록한 밀서의 형태를 띤 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대적들이 모르게 기록을 해야 믿는 자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안전하게 구원을 이룰 수 있기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주님의 속 깊은 배려다. 요한계시록의 밀서는 주님의 사랑이었다.


우리도 세상을 살며 밀담과 밀서를 주고 받는다. 일제 시대에 밀서가 발각되어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이 적지 않게 죽었다. 6.25전쟁 때도 그랬고 전쟁 때는 항상 밀담, 밀서가 오고 갔다. 대표적으로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일본의 기밀문건이 노출되어 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결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도 비밀 문건을 수십년이 지난 뒤에 공개하기도 한다. 지금은 말세 마지막 전쟁인 아마겟돈을 준비하는 세대다. 앞으로 닥칠 신앙 전쟁을 대비해 신앙승리를 위해 우리는 어떤 밀담과 밀서를 주고 받아야 하는가? 적에게 노출되지 않으려면 어떤 조심을 해야 하는가?


초대교회 시대 '밀담과 밀서에 관한 보고서'에 대해 여기 Mark 그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나는 사도 바울을 따라간다고 했다. 그러나 바울 선생님은 전세계를 돌아 다니며 복음을 전해야 하니 당분간 바나바를 따르며 그 밑에서 참된 목회를 배우라고 하신다. 지금 바울과 바나바는 가는 길이 다르다. 돌아올 길이 막힌 듯하다. 그리고 바울 선생님은 지금 로마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계신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감옥 면회를 내일 가자고 디모데가 제의한다.' 나의 가는 길을 누가 알겠는가? 오직 주님만이 아실 일이다.


무슨 밀담을 하실려고 나를 부르시는 것일까? 베드로를 따라가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인가? 디모데와 동역하라 하실 것인가? 바나바 밑에서 계속 배우라 하실 것인가? 바울, 베드로, 바나바가 다 떠나고 나면 나는 누구를 따라갈 것인가? 고아가 된 심정이다. 속사도 시대로 접어들면 독립 신앙만이 살 길이다.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Mark 그가 걸었던 행보가 궁금해진다.


어릴 때는 부모님을 통해 배우고 결혼하여 분가하면 자녀를 나처럼 나 이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마지 못해 해야만 하는 의무감이 아니라 주님이 모든 믿는 자인 우리에게 똑같이 맡겨 놓으신 사명이다. "네가 해라. 너도 해라. 너도 할 수 있다. 가정 목회부터 한발한발 차근차근 시작해 보라. 네가 못한다면 내 목회는 실패한 목회다." 그 옛날 어느 노신사가 말씀했던 호통이 귓가에 쟁쟁하게 맴돈다.


요나단의 밀담과 요한계시록의 밀서가 지금도 유효한가? 신앙의 길은 참 기이하고 묘하다. 기묘하다. '주님만 모시고 어디까지든지 독립으로 가겠다'는 표어가 '항상 두길 오직 한길'이라는 표어로 진일보하고 있다. 새 길을 걷고 있는 지금부터가 우리의 진짜 신앙이다. 악하고 음란하여 어지러운 세상,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으니 오직 주님께만 시선이 고정된다.
전체 2

  • 2020-09-13 06:04
    MARK님의 말씀 중 '어릴 때는 부모님을 통해 배우고'는 동의하지만 '결혼하여 분가하면 자녀를 나처럼 나 이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에는 위험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서부인으로 살아 오면서 수많은 가정들을 보게 됩니다 특히 자녀 교육에 있어 자녀를 나처럼 나 이상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녀를 상대하면 자녀가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본인은 그런 뜻이 아니며 사람이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도 사람 노릇하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고 제대로 믿는 사람 답게 공회 신앙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도록 안내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을 역설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독자들이 읽기에는 자녀가 커 갈수록 더욱 길러줘야 하는 신앙의 자유성은 생각지 않고 오로지 부모의 지도나 가르침만 강조하는 것처럼 읽혀질 수 있습니다 제가 과거 셋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실수를 많이 해서 지금 첫째는 교회도 안 나오고 세상으로 갔고 그리고 둘째는 공회가 싫다 하여 일반 진영으로 갔으며 마지막 막내는 교회는 나오지만 늘 풀이 죽어 있습니다 오빠와 누나가 교회에 없으니 자기도 신앙생활에 대한 의욕이 상실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자녀교육에 대해 무심해도 문제지만 부모의 자녀에 대한 신앙 욕심이 과하면 분명히 나중에 탈이 생깁니다 자녀가 많았던 과거에는 그래도 형제간 치이면서 중화가 되는 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나 많아 봐야 둘인데 부모의 관심과 그런 신앙 열심이 한 자녀에게만 집중된다면 성장 과정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아주 높으며 부모의 뜨거운 시선 때문에 자녀에게 화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MARK님의 글이 그런 뜻이 아니었다면 제가 글을 잘못 곡해해서 읽었으니 사과드립니다만  과거 제 실수가 떠올라 한 말씀 올립니다 후회하고 돌이키고 싶은 지금은 이미 그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자녀들이나 교인들)의 수없는 강퍅에 참다 참다 화 한번 냈다고 모세(부모나 목회자)가 가나안에 못 들어간 것(중생 이후 이루어 가야 할 구원의 실패)을 기억하며 오늘도 자녀들의 마음이 공회 신앙으로 다시 돌아오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도록 간절히 구하며 주일 예배를 준비합니다

  • 2020-09-13 18:04
    백영희 목사님은 자녀들을 자신 이상으로 잘 만드려 했으나 자녀들은 부모를 피해 해외까지 갔다고 알려 져 있다.
    이 경험 때문에 백영희 자녀분들은 엄하게 할 때 생기는 부작용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에게는 어릴 때 너그러웠다.
    그런데 오늘 결산을 해 보니 너그럽게 배려 받은 손주 20명의 신앙은 현재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 훨씬 못한 듯하다.

    교리적으로 성경적으로, 우리는 맡은 사람을 잘 기르려고 해야 하고 우리가 부족하니 우리보다 낫게 하고자 한다.
    어떤 가정은 그 열정 때문에 자녀 신앙을 놓친 경우도 많고 어떤 가정은 그 열정 때문에 결국 자녀들이 좋아 진다.
    손양원의 부친 손종일은 자녀를 잘 만드려 했고 실제 자기 이상으로 잘 만들었고 손양원은 이를 평생 감사했다.
    대부분 출옥성도 자녀는 신앙으로 평생 아주 엉망이 되었다. 통계적으로 보면 제대로 된 의인의 자녀는 허무하다.
    일반 가정의 경우, 눈물의 어머니 기도와 훈계는 자녀를 만들고 엄한 아버지 밑에는 의인이 잘 나오지 않는 듯하다.

    MARK님의 말씀을 공감한다.
    서부인의 우려에도 공감한다.

    해도 안 되고 그냥 두도 안 된다면, 해 보는 것이 충성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밀어 붙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버지에 달려 있지 않고 어머니에 달려 있다 한다. 의인이며 시대적 인물도 못한 일.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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