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2020.09.06. 주새 - 이사야2:22, 3:1-4

발언
작성자
司書
작성일
2020.09.06
2020.09.06. 주새
이사야2:22, 3:1-4
제목 :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사람, 만물과의 관계도 바로 된다.


아담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못 만드니 아래로 만물과의 관계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아담이 위로 하나님과 옆으로 아내 하와와 아래로 만물과의 모든 질서를 바로 잡아, 만물과의 관계는 물건 다루듯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길러가는 자유성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이 곳이 바로 지상낙원 에덴이다. 식물을 예로 들면 뿌리와 둥치의 관계가 바로 되면 잎이 천지만엽으로 무성하게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러나 뿌리와 둥치, 둘 사이의 관계가 바로 되지 않으면 다 말라 버린다. 뿌리는 땅 밑에서 안 보이고 둥치만 보여 중심에 서 있다. 에덴의 주인은 아담처럼 보이고 중심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뒤에 하나님이 엔진처럼 뿌리처럼 그리 되어 있다. 아담이 하나님과 관계가 틀어지니 아담과 관계된 만물은 엉망진창이 되어 인류역사 6천년의 기록이 다 그리되고 있다.


인물이 있으면 만사 해결이라 생각하면 하나님은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져 하나님 의뢰가 약해지면 인물에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 사모가 없어지면 철부지 어린 것들이 위에 지도자로, 결정자로 세워져 다스리고 방백들은 밑에서 다스림 받는 이런 화가 생긴다. 스스로 화를 자처하게 되고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버리시겠다고 하신 말씀이다. 사람의 인체로 말한다면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입술과 이는 서로 도와주는 관계다. 입술은 아름다운 대문인데 이가 없으면 제일 못난 입술이 되고 만다. 이웃이 있어야 내가 바로 되는데 이웃을 쥐어 박으니 참 문제다. 비천한 사람이 높고 귀한 사람에게 배우고 본을 받아야 되는데 다 뒤집혀 버렸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나와 만물의 관계는 반드시 다 틀어진다. 세상을 살다보니 인물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했던 무지한 백성들처럼 말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 주신 인물인데 갈수록 하나님은 필요 없고 하나님은 잃고 사람만 얻었다. 사람만 남았다. 차라리 인물 없고 하나님 찾으면 되는데 돈 있고 하나님 없으니 그러면 돈을 없애 버려 어렵게 만드신다. 하나님이 돈을 주셨구나 하나님 아니면 안된다는 사실을 좀 깨달으라고. 자기가 인물되고 나면 자기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하나님 되고 나면 사모함이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에게 가 버린다. 그러다가 아이를 주시면 하나님보다 하나님은 잊어 버리고 사람에게만 집착하게 된다. 그러면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겠는가? 하나님이 인물을 주시면 선물로 알고 길러 가면 되고 인물이 없으면 알아서 공급해 주실 것이라. 그러면 ‘주님 한분, 절대 주님 한분이면 된다.’ 이 마음이면 되는데 자꾸 깜빡깜빡 잊어 버리니 뿌리와 단절된 둥치처럼 서서히 말라 천지만엽의 잎사귀와 열매는 아비규환이 되고 만다. 다 같이 기억합시다.



후기 : 설교를 듣고 그대로 전달하는 면은 연구소에서 할 일이다. 나는 단지 설교를 들으며 달리 정리해 본다. 설교를 듣고서 내가 자주 사용하는 언어로 다시 한번 더 번역해 본다. 자녀들에게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준다는 마음으로 글을 적어 본다.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나는 위 설교 말씀에 비추어 이런 면이 잘못되었다. 이 면을 중점적으로 고쳐야 한다. 쓸데 없고 잘못된 것에 집요하고 건설적인 면에는 등한시하기 쉬운 이 성격을 고치려고 시작한 일이다. 카톡이나 유튜브 동영상 취미보다 설교록을 재독하고 느낀 점을 글로 적는 것이 더 유익한 것 같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취하고 자원한 일이지만 자칭 사서을 소원하여 시작한 일이지만 주변에서 원성과 반대가 자자하다.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사서가 되겠다는 것보다 천방지축 망나니 같은 이 못난 자아를 벗어 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담당님도 어릴 때 주일학교 교회에서 참 골칫거리였다 들었다. 교회 일을 맡으며 차츰 사람이 되어져 갔다는 말씀에 힌트를 얻어 주일 새벽 설교를 듣고 나름 느낀 점이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글로 적어 본다. 설교를 듣기만 할 때와 적어볼 때 많은 독자들 앞에 공개를 해야 하니 나의 부족한 치부도 드러나고 하니 처음엔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수십년 쌓인 악습을 고치는 것이 더 급하니 수치심은 뒤로 하고 교회 덕이나 욕은 욕대로 얻어 먹더라도 물론 조심한다고 하지만, 그래서 시작된 사서일이니 주일 새벽만큼은 이 지면을 통해 나를 길러가고 싶다. 방법이 틀렸다면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워가려 한다. 모든 이들로부터 지도를 받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새벽 설교를 글로 적어 보고 싶지만 실력이 그만큼 따라가질 않는다. 항상 보면 무례함이 문제다.


오늘 설교 말씀은 관계 면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모든 인인관계, 만물과의 관계가 바로 되는데 인물 찾고 인물 기르다 자칫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 질 수 있다. 살다 보면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 있을 것이다. 가정 안에서가 가장 많고 그 다음 직장, 교회 순일 것 같다.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가 숙제인 것 같다.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 봐야 한다. 성경을 봐도 내 식대로 해석하고 기도를 해도 내 말만 하고 “하나님 보십시오 여기에 성경 말씀은 이런 뜻이고요 주님 이것 해결해 주십시요 이건 제가 볼 때 꼭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식의 자기 중심이 대부분의 원인인 것 같다. 자기부인 못하는 성격.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직 숙제로 남아 있다. 야곱처럼 먼저는 하나님과 씨름해서 단판을 지어야 한다. 그럴 때 형 에서와의 갈등은 눈녹듯 해결이 되었다. 야곱이 삼촌 라반과의 문제도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라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말은 쉬운데 실제는 어렵다. 남의 얘기는 쉬운데 정작 내 문제가 되면 오리무중이 되고 만다.


‘일방과실, 쌍방과실’ 인인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많이 생각나는 단어다. 내 틀린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차로 말하면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가만히 서 있는데 뒤에서 차가 와서 박는 경우, 파란불에 가는데 옆으로 차가 와서 문짝을 박는 경우는 일방과실일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차에서 내려 경찰을 부르던지 보험사에 전화하면 되는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상대방 잘못을 지적하며 감정을 표현하다가 문제가 생긴다. 내 잘못은 없는데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 대처하는 과정에 말실수 때문에 일을 크게 만드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목격한다.

남의 일인가? 나의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것인데 사람과 접촉하며 문제를 만든다. 오늘 설교는 사람과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적용 면에서 나는 그렇다면 사람과 틀어진 그 면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에 마음이 모아진다. 누구와 불목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전혀 잘못이 없다. 제3자 누가 보더라도 내 잘못은 없다. 순전히 상대방이 삐져서 사이가 서먹하게 되었다 가정해 보자. 이건 만약이다. 그럼 상대방 100% 일방과실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다리며 하나님이 상대방 마음을 고쳐 먹기를 기도만 하면 되는가? 그러면 나는 50점 신앙 밖에 안된다고 본다.


설교록에 보면 신혼 초 아내가 삐져서 친정으로 가 버리면 남편을 두 부류로 나눈다고 한다. 하나는 그냥 내비 둔다. 돌아올 때가지 연락도 안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또 하나는 얼른 가서 데려 온다. 데려올 때는 달랜다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달래서 어짜든지 당신이 집안 일하고 아이 키운다고 고생하는데 내가 그 마음을 몰라 줬다. 미안하다. 일단 집에 데려 와서 시간을 두고 아내를 길러 가야 한다. 여기서 남편은 전혀 잘못이 없고 아내가 100% 잘못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말하고자 한다. 일방과실이다. 여자와 세 살배기 유아는 살살 달래라고 한다. 살다 보니 과연 그렇다. 상대방 잘못을 묻어 두고 그냥 넘어가라는 뜻이 아니다. 똥낀 놈이 성낸다고 상대방이 100% 잘못했는데 화까지 나 있다면 어떻게 상대를 해야 하는가 어떻게 일처리를 해 나가야 하는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남자 중에도 여자와 같고 유아와 같은 속성이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도 속이 좁아 대표적으로 그런 유에 속한다. 어떨 때 보면 내가 여자가 아닌가 내가 유아가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았다. 부부관계만 그러겠는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직장 가서도 그럴 것이고 교회 가서도 그럴 것이고 내가 가는 곳마다 다 분란을 일으키고 다닌다. 내 발에 똥이 묻었으니 접촉하는 어디든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나는 전혀 잘못이 없는데 상대방이 토라져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의 부족함이 드러난다. 기다려 주지 못하고 참지 못하는 성격, 열 번, 백번 똑같은 말을 반복해도 들어줘야 하는데 보통 일반의 사람은 대개 참아주고 들어주기가 참 어렵다. 물론 정도라는 게 있고 한계라는 게 있다. 치매를 겪으신 부모님을 직접 모셔본 경험으로 봐서도 이건 오래 하다 보면 실력과 노하우가 쌓여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경험 없는 사람보다는 조금 나을지 몰라도 이 또한 인간 수준에서 하는 말이지 대동소이하다.


일방과실도 이 정도인데 쌍방과실은 말해 봤자 무엇하랴? 북한이 6.25남침을 감행했다. 이것을 예로 인인관계에 접목하여 일방과실이나 쌍방과실로 접근하면 좀 곤란할 것 같다.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라는 점을 미리 말해 둔다. 아무리 상대방이 전부 잘못하고 내가 잘못이 전혀 없어도 북한과 남한의 6.25전쟁을 말한다면 없던 감정까지 합세하여 돌아올 길도 막아 버리고 만다 생각한다. 남편의 자존심은 건드리지 말고 부부싸움하라 하신 것처럼 어떤 누구에게는 이런 예가 남자의 수염같은 자존심일 수도 있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은 빼고 대한민국 시민의식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6.25전쟁을 두고 북한 전적 잘못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북한을 여자나 유아처럼 달랠 수도 없다.


그냥 각자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이해는 간다. 그러나 마음은 체한 듯 더 답답하다. 밑 둥치 둘이 불목하니 이제 갓 새로 난 연한 순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나도 앞가림 못하는 철부지인데 나한테 묻는다. 어찌하면 좋냐고? 비극이다. 남북상잔의 비극이 따로 없다. 남북한을 예로 든 것이니 이런 결과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해는 충분히 간다. 과연 2007년 그날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부부 관계처럼 먼저 손 내밀어 어린 아이 달래듯 내가 안해야 될 말까지 해서 당신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다. 미안하다. 잘못해서 미안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 잘못을 넓은 아량으로 품지 못해 미안한 것이다. 잘못을 덮어 주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진정 진심 미안하다는 이 말 한마디를 나 자신도 지금 못하고 있다. 어느 짝에도 쓸모 없는 그 쫀쫀한 자존심 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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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6 07:26
    관계,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내가 죄인인가? 주님께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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