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2020. 08. 30. 주새 - 베드로전서2:18-20

발언
작성자
司書
작성일
2020.08.30
2020. 08. 30. 주새
베드로전서2:18-20
제목 :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 사회, 국가 제도와 윗사람에게 순복하라.

국가 통치 체제 속에서 순종, 사회에 순종, 가족에 순종, 19절에 애매하고 죄 되지 않는 것은 순종하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 본보기로 순종하셨다. 주님의 순종의 본을 따라 우리도 그 뒤를 따라 가면 되는데 주님은 위 세가지 다 순종하셨는데 오직 하나 죄는 짓지 아니하셨다. 각종 책임을 지고 있는 그들에게 이유 없이 고난을 받아도 고난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니 주권자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한 예로 장마 철에 비가 불편하지만 이 습기 속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게 믿는 자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실 때는 하늘의 모든 권세를 하늘에다 다 벗어 놓으시고 이 땅에 죄의 괴수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요셉의 육의 부모에게 순종했고 그러나 죄는 짓지 않고 나머지에는 다 굴복하다 보니 고난이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죄는 안되고 윗사람에게 순종하다 보니 애매한 고난이 왔다. 주님은 헤롯, 빌라도, 다 무시하고 시공간의 이동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배를 저어 갈릴리 바다를 이동하셨다. 죄만 짓지 아니한 것이 아니라 그러면서 아버지의 뜻만 찾아 갔다. 그럴 때 세상과 부딪힐 때 고난을 받아 가며 자기의 길을 걸어 가셨다. 우리가 걸어 가야 할 길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고종의 종에서 일본의 종이 되어 일본의 식민지 나라가 되었을 때 일본 천황이 세금 내라 하면 나는 낸다. 신사 참배하라 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 놓지 않았으니 신사참배 그거는 못한다. 죄를 지으라는 말은 순종 못한다. 그러나 나머지는 순종해야 한다. 물어 보는 것이 죄니 덫을 놓으려는 말이니 뱀같은 지혜로 대답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내라.


세금 내라 할 때 세금 직접 내셨다. 사회에 순종, 국가 통치에 순종, 부모 받든 것은 말할 것 없고,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 세리들이 왔다. 그 당시 세리들은 민족 반역자, 죄인 중 제일 대표 죄인들이다. 그들에게 정한 세만 받고 정한 세 이상은 받지 말아라. 주의 길을 예비하던 세례 요한이 세리들에게 말하길, 세금 거두는 것이 죄는 아니다. 다만 무겁게 매기는 것이 문제다. 애매하고 억울한 주인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워 놓으셨다. 군인들도 와서 우리는 어떻게 하리이까? 강포 금지, 그 다음 없는 법으로 백성을 족치지 말아라. 로마법으로 다스려라. 그 말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을 로마법으로 다스리라 그 말입니다. 그 원리가 바로 되어야 부부가 바로 되고 가정이 바로 되고 직장이 바로 됩니다. 주를 위하여 그리하라. 참 마음에 들지 않는데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와 윗사람을 바로 상대하는 우리가 됩시다.

후기 : 날 중에 가장 귀한 날로 우리는 항상 주일을 제1로 꼽는다. 어떤 날 새벽보다도 주일 새벽의 은혜가 가장 큰 것을 몸소 체험한다. 목회자라면 주일날 교인들에게 증거할 말씀을 생각하니 주일 새벽부터 긴장되기도 하고 마음이 설레기도 할 것이다. 오늘 증거할 말씀이 정말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그 말씀이 과연 맞는가? 이런 생각에 긴장도 될 것이고 한편으로 맞다면 주일 오전 예배가 기다려 질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주일 하루를 보내는 목회자는 참 복될 것 같다. 목회자의 고난을 생각한다면 아무도 목회자를 안하려고 할 것이고 목회자가 받는 복을 안다면 누구나 한번쯤 소망은 할 것이다. 주일 새벽 주의 종을 통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언젠가는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날도 올 것이다. 닥치기 전에 미리 대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지금 주일 예배를 재독하며 목회자가 없다면 내가 가정의 목회자 노릇을 해야 한다. 먼 이야기니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는 말도 있지만 그 내일이 오늘이 될 수도 있다는 경감심이 요즘 강하게 든다.


오늘 증거된 말씀은 순복이다.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순복. 순종은 이해되면 순종하는 것이고 복종은 이해되지 않지만 애매한 고난이 와도 일단 순종하고 보는 것일까? 가정, 사회, 국가에 순종이다. 아무리 남편이 괴팍하고 나발처럼 제 마음대로 하며 가정을 엉망으로 이끌어 가도 아내 입장에서는 순종하라는 것이다. 죄는 순종할 수 없지만 죄도 대단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야 한다. 며칠 시간을 두고 기도하며 한 마디 꺼낸 아비가일의 총명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된다. 직장에서 사장이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해도 죄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순종하라는 것이 성경 말씀이다. 국가의 제도가 아무리 공산주의로 치달아도 그 속에서 우리 할 일은 공산주의 반대 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 천국, 하늘 나라 건설만 하면 되는 것이다. 왜 부당한 가정의 남편에게, 불합리한 사장에게, 말도 안되는 국가 제도에 순복하며 따라 가야 하는가? 주권자 하나님이 그런 형편, 그런 현실을 만들어 놓으셨고 우리를 그 속에서 길러 가시기 때문이다. 죄는 지을 수 없고 고난 받는 그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 가라는 것이다.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의 이 한 말씀을 체휼토록, 순종토록 하기 위한 사랑의 현실인가? 주님이 친히 본을 보여 주셨다.


우리는 지금 상식이 파괴된 시대에 살고 있다. 국가의 제도가 상식을 벗어난지 이미 오래 되었다. 임기 5년이 끝나면 과거 구약 바벨론 포로 시대보다 더 암울해 질지도 모르겠다.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전체주의적 공산화, 자유 민주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자유 시장 경제 체제 부정, 개인 자유 사유 재산 제도 부정, 이것이 지금 정권이 다 시행해 놓은 경제 제도의 결과물이다. 그러면 우리 믿는 자들은 싸울 것인가? 운동을 벌일 것인가? 신앙 어린 교인들의 정평정가의 구별을 위해 틀렸다고 한번 정도 말할 수는 있지만 싸울 일은 아니다.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예배당 예배 금지 20명으로 제한 그러면 거기에 맞추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예배당 예배를 강행해야 맞는가? 벌금 300만원을 내더라도 예배당 예배를 강행하는 그들은 일제 시대 신사 참배를 강요할 때 감옥에 가더라도 신사 참배는 못한다. 이와 똑같은 논리로 접근한다. 지식 하나가 잘못 들어가면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 하나, 국가가 만약 죄를 강요한다면 순종할 수 없고 나머지는 우리의 회개를 위해 주셨으니 순종하는 것이 맞다. 이 간단한 원리를 몰라, 성경 말씀의 말귀를 못 알아 들어 청개구리처럼 ‘순종해야 할 때 거부하고 거부해야 할 때 순종한다’. 일제 시대 신사 참배는 거부해야 한다. 죄짓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시키는 나머지는 해야 한다. 그 속에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신다. 국권을 뺏긴 것 자주 국방을 못했거나 양반 상놈 계급 제도를 철폐시키고 참된 기독교를 받아 들이도록 하신 하나님의 밑거름의 역사인 것이다.


일본을 거부하는 것은 나는 기독교가 필요 없다는 말과 통할 수 있다. 이런 말을 좌파가 들으면 바로 친일이라 할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반일운동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주권을 모르는 자들의 범죄행위이다. ‘친중이 반일을 부추긴다’. 일본이 조선을 고문하고 못살게 군 것은 엄연히 세상 인권에서도 잘못된 것이 분명 맞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로 본다면 일본에 식민지가 안 되었으면 우리나라는 벌써 공산화가 되어 지금의 북한처럼 수십만 동포가 굶어 죽었을 것이다. 1910년 국가 정세로 볼 때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일본 식민지 아니면 공산화 두 길 중에 한 길 뿐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가난한 이 나라에 복음의 문을 활짝 열도록 하신 주님의 사랑이라는 역사 기록의 결과인 것이다. 주권자 하나님을 모르면 결국 남탓부터 하고 본다. 남탓이 하나님이 하셨다는 주권으로 바뀌길 바래 본다.


지금 우리 현실로 돌아 와서 예를 들어 보자면 예배당 예배 금지다. 이것은 죄인가? 순종할 수 있는 문제인가? 신사 참배처럼 거부해야 하는가? 정답부터 말하자면 정부가 방역을 빌미로 내 놓은 코로나 정책이 애매하고 기독자들이 볼 때 천주교 미사나 불당은 제재가 없다고 불공평할 수도 있겠으나 일단 순종하는 것이 옳다. 천주교와 불당을 기독교와 똑같이 대우해 달라는 이것 자체가 기독교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천주교나 불교는 생명이 없다. 그들은 ‘차별’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바꾸어 우월감의 긍지(pride)로 받아 들이면 감사뿐이다. 평소 기독교 교인들이 예배를 똑바로 안 드려 주권자 하나님이 지금 국가 책임자를 시켜 행정명령을 내리게끔 하셔서 주님이 직접 예배당을 폐쇄시키신 것이다. 그러면 20명만 예배당을 지키고 나머지는 예배당 밖에서 또는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다. 그러다가 인터넷 예배까지 금지하면 집에서 가장이 예배를 인도하든지 재독의 형태로 가는 것이 맞지 광화문에 나와 국가를 상대로 데모를 선동하는 운동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할 일은 아니다. 인터넷 예배 금지를 넘어서 집에서도 찬송가 소리가 시끄럽다고 주변 이웃이 신고를 하고 그래서 집에서도 찬송가 부르는 것 금지, 집에서도 예배 금지, 국가가 법으로 이렇게 조치를 내린다면 그 때는 오직 한 길 뿐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처럼 집에서 가정 단위 또는 혼자 예배 보면 찬송가 소리가 안 들려도 성경 보고 기도하는 모습이 이웃 주민에게 발견되어 신고가 들어가서 감옥 간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국가법은 거부해야 한다. 주변에 소리가 안나고 조용히 예배를 드리는 대도 주민이 신고하면 감옥간다는 국가 법이 발의가 되면 우리는 다니엘의 하루 3번 기도처럼 사자굴에 들어갈 준비와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떠한 국가 처벌이 뒤따라와도 조용히 묵상으로 기도하고 묵독으로 성경 보는 이런 개인 예배는 강행해야 한다. 앞으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초기에는 유할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죄여 올 것이다. 집에서 찬송가 부르면 시끄럽다고 신고하면 포상금이 붙고 찬송가 부른 교인은 처음에 벌금, 그 다음 구금, 그 다음 재산 압류, 구상권 행사 등등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신앙의 자유가 막바지인 지금, 우리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 영원한 천국에 있을 일을 미리 앞당겨 이 세상 현실 기간에 준비하는 것이 우리 기독자들이 아닌가? 앞으로 환란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국가 권력으로 말도 안되는 국가적인 악법으로 올 것이다. 뱀같은 지혜가 없어 지식이 없어 다 망한다고 했다. 죄는 거부하고 그 외 모든 국가 제도와 법에는 순종해야 한다. 예배도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이 산에서도 말고 앞으로 예배당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면 매일 드리는 제사도 폐한다고 했다. 실지 그리 되고 있고 그리 되었다.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어두운 신앙의 밤중이 오면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는 아가서 4장 말씀을 우리는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수천년 전, 예언의 말씀이 현실이 되고 있다. 조금씩 신앙의 자유가 없어지고 있는 이 때에, 과도기적인 이 때에 예배당에 안 가고 십일조도 안 내고 앞서 가는 것도 문제다. 최대한 우리는 국가 제도에 순응하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예배당 예배가 금지면 예배당 밖에서 예배당을 향해 기도하는 것이 주일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들은 말씀을 가지고 각자 글로 써 보면 유익이 참 많을 것 같다. 이것이 모이면 개인 설교 노트가 되고 한 가정의 가장 설교의 준비 노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들은 설교를 가지고 내가 한번 더 설교를 흉내내 보는 것이다. 설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설교는 못하더라도 설교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란다 그러면 자녀들이 보고 설교자가 되던지 아니면 그 손주들 중에 설교자가 날지 누가 알겠는가? 설교자, 목회자가 우리 가문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아니라 우리는 항상 들은 말씀을 가지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교훈을 전해 주는 설교자, 선지자의 직책을 예외없이 우리 모두 다같이 공평하게 맡아 있는 것이 우리 기독자임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앞으로 직분에 상관 없이 모든 신자는 설교자의 위치에 서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말씀을 풀어서 전해주는 설교자의 위치에, 선생의 위치에 주님이 세워 놓으셨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누구나 설교를 해야 한다. 주님의 훈계와 교훈으로 아내도 가르치고 아내는 그 자녀에게 말씀을 풀어서 가르쳐 줘야 한다. 설교를 해 줘야 한다. 밥상머리에서도 밥 먹을 때는 책보지 말고 밥 먹는 데 집중해야 한단다. 평소 밥 먹을 때 책보며 산만하게 밥 먹으면 그 습관이 들어서 예배 드릴 때도 산만해 진단다. 자녀의 잘못된 습관 하나 고치는 데도 설교가 필요하다. 밥상에서의 훈계가 넓은 의미의 설교인 것이다. 밖에서 놀다 집에 들어오면 신발 가지런히 하고 손발 깨끗하게 씻어라. 손 안 씻고 밥 먹으면 몸이 더러워진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위생교육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집회 때 접촉 조심 배웠지 밖에서 놀이터에서 흙장난하고 들어오면 손발에 세균이 많이 붙어 있겠지 그 손으로 밥 먹으면 세균이 몸 속으로 다 들어가겠지 그러면 몸이 병든단다. 성경에도 외출하고 들어오면 손발을 씻으라고 했지 이것은 육체적인 더러움을, 손을 씻으면서 우리 신앙적으로 죄를 지은 것은 없나? 친구와 놀이터에서 놀면서 더러워진 손처럼 친구에게 죄지은 것은 없나? 손을 씻으며 몸도 깨끗하게 하고 신령한 영혼도 깨끗하게 해야 한단다. 그러면 그 때의 부모의 교육은 위생교육을 넘어 위생지도를 통한 설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의 말씀이 잔소리로 안 들리고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 어릴 때부터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평소 내가 설교자로 서 봐야 나를 보고 자라는 자녀도 설교를 할 수가 있다. 자녀는 또 그 자녀를 지도하고 설교하고 성경대로 가르칠 수가 있다. 매주일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에서 이제는 매주일, 매일 새벽 설교를 준비하는 교인으로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가 올 날도 머지 않았다. 목회자의 직분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누구보다 계통이 중요함을 아는 내 자신이다. 예배당 예배 금지라는 이 상황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은 무엇일까? 이게 내 글의 핵심이다. 이제는 실전이다. 준비의 때는 지나갔고 이제부터는 시험을 쳐야 한다. 그 동안 수도 없이 설교를 듣지 않았는가? 이제 너도 자녀에게 집에서 설교를 동시에 해 봐라. 시도해 봐라. 준비하라.


소송은 부공3 집회를 재독에서 현장 집회로 바꾸어 놓았다. 재독이 더 은혜된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재독의 은혜보다 앉은뱅이 신앙을, 서서 걷게 하는 신앙으로 바꾸는 것이 더 시급하기에 이제는 더 늦출 수가 없기에 주님이 소송을 통해 집회의 모든 것을 급변하게 바꾸셨다고 본다. 이처럼 이번 예배당 예배 금지 소식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든다. 주님이 또 무슨 좋은 복을 주실려고 우리의 잠든 신앙을 깨우시고 계시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모든 신자의 설교화’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오늘 주일 오전, 오후 설교를 듣고 각자 노트에 적어 가며 설교자처럼 설교 흉내라도 내 보길 권한다. 저녁 산기도도 정부가 법으로 막으면 집에서 내가 인도해 보겠다는 각오와 결심도 해 본다. 지금까지 공예배 설교권은 모든 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공예배가 차츰 허물어지고 있는 이 때 우리는 가정예배 설교자로 거듭나야 한다. 지금까지 수없는 연습을 해 왔다. 공회 실력이라면 얼마든지 누구나 설교를 할 수 있다. 3-4살 유아는 초등학생들이 설교할 수 있고 초등학생들은 중간반이 설교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이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다른 일반교회는 모르겠으나 부공3만큼은 가능하다고 본다. 공회가 앞서면 일반도 따라올 것이다. 분명 설교는 훈계나 권면과는 다르다. 주의 말씀을 받아 대언하는 것이 설교라고 배웠다. 내가 성경을 읽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거나 전하는 것은 성경공부이다. 설교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고 배웠다. 성경공부를 하다가 설교의 필요성을 느끼기를 소원해 본다. 설교를 시키면 모세처럼 입이 둔하다 하여 빼다가 우상숭배라는 더 큰 죄를 백성들에게 지우지 말고 시키면 그냥 하면 된다. 잘하든 못하든 주님이 목회자를 통해 시키면 일단 하고 보는 것이 복된 교인일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오늘 주일 새벽 말씀은 국가의 제도에 순복하라. 죄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애매한 그 모든 것을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순종하신 것처럼 순종하라.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부당한 국가 제도에 순복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 국가가 예배를 금지한다면 우리는 각자 예배 드릴 수 있는 힘과 역량을 길러야 한다. 예배의 핵심은 설교이다. 공예배의 목회자 설교를 막는다면 이제는 각자 집에서 가정단위로 재독도 하면서 동시에 가장이 자녀를 가르치고 교훈을 전하는 준비와 훈련을 지금, 공예배를 볼 수 있는 지금 동시에 병행하며 대비해 놓아야 한다. 예배당 예배 금지라는 뉴스를 접하며 주님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뜻은 무엇일까? 거듭 자문해 본다. 국가의 불법에 순복하되 죄는 지을 수 없으니 예배자로 한 가정의 설교자로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해 본다. 매일 새벽 설교를 준비하는 교인. 새벽 예배 4:30분, 1시간전부터 일어나 예배 처소 촛불을 켜는 우리네 아버지들이 다 되길 기도해 본다. 오늘 주일 새벽 설교 ‘국가 제도에 순복하라’는 말씀을 들으며 나는 결심하고 작정하게 된다. ‘예배당 예배 금지’는 곧 한 가정의 ‘아버지가 재독 인도를 준비하고 더 나아가 설교자로 준비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집회 때 30년 재독이 끝나고 현장 설교를 시작하던 역사적인 그 날, 2018년 5월 7일 월요일 오후 3시 예배 때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다. 설렘 반, 긴장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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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2 05:57
    또 한번의 도약을 꿈꾼다. 시대적인 환난의 전조인지는 몰라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지막 십자가 결전을 위해 오늘의 시련은 기쁨으로 웃음으로 넘긴다. 매일이 최후를 결정짓는 그 날이다. 판단 한번, 생각 한번 잘못하면 천길 낭떠러지다. 막바지 평안한 때인 지금 요단의 창일함을 예상해 본다. 주님의 인도와 보호의 은혜만 구할 뿐이다.

  • 2020-09-03 10:28
    어머님이 정성껏 차려 주시는 아침 밥상이 소중하듯 매일 새벽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이 참 귀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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