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신앙계통 -> 신앙노선 -> 신앙노정

발언
작성자
교인
작성일
2020.08.14
신앙은 모방에서 그 첫 걸음마가 시작되는 면이 많은 것 같다. 첫 아이 옹알이처럼 보고 듣고 따라해 보는 데서 '와 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언젠가 내가 없어도 가정이 잘 돌아가고 내가 없어도 교회가 잘 돌아가려면 사람이 사람을 길러 사람을 남겨야 한다. 이는 믿는 자가 풀어 나가야 할 영원한 숙제인 것 같다. 각자 현실 속에서 써 내려가고 있는 남단 글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나누는 그 날이 오길, 한번쯤 꿈꾸어 본다.

신앙이란, 내가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믿는 것처럼 보여도 - 물론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을 통해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지만 - 실제로는 죽어 있던 영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님이 일방적으로 살리시는 중생이 먼저 있고 그 뒤에 때가 되면 하나님이 열어서 보여 주시는 계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이 알게 되고 믿게 되어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기도로 시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엄밀하게 따지자면 믿음의 주체는 내가 아니고 하나님인 것이다. 영원 전에 나를 믿는 자로 택해 놓으셨다는 에베소서 1장 말씀에 큰 은혜가 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신다. 사람은 영이 중생된 사람만 사람이다. 죽을 때까지 영이 죽어 있는 사람은 동물과 같은 상태다. 성경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영이 죽어 있어 마음이 믿지 못하는 상태가 되니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했다. 여기서의 깨달음이란 믿은 후에 성경을 아는 정도, 차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영이 죽어 있는 불신자 상태에서는 성경 말씀이 마음에 깨달아지지 않는다. 디모데전서 말씀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은 인류 전부가 아닌 영원 전 하나님이 택한 사람만을 뜻한다.

주님의 십자가 대속은 만인적 구속이 아닌 제한적 속죄가 진리이다. 이 또한 주님이 그 영안을 열어서 보여 주시지 않으면 마음에 믿어지지 않는 것은 눈 뜬 장님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나 또한 과거에는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외웠지만 위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깨달음의 차이가 우리 신앙과 목회 그리고 사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지금도 그 영향력을 살펴보는 것이 내 신앙 연구의 일부가 되어 있다.

한 예로 홍해를 건널 때 뒤따라 오던 애굽 병사들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잘 건너도록 유대인 구원을 위해 죽음을 통해 이용된 사람들에 불과하다. 바람이 불 때 돛을 단 배는 더 빨리 가듯 뒤에 애굽병사가 따라오니 곁길로 새지 않고 홍해 바다로 뛰어 들게끔 하나님의 인도에 필요한 하나의 이용물에 불과하다. 배의 돛, 바람처럼 애굽 병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잘 건너도록 하기 위해, 홍해라는 한 길만이 살 길이니 그 쪽으로 몰아간 양몰이 개처럼 구원의 이용물에 희생된 사람들에 불과하다.

또한 출애굽 때 애굽 사람들의 장자를 다 죽이셨다. 이들 또한 구원의 대상은 아니다. 누가 구원의 대상인지 우리는 모르나 분명 영원 전에 하나님의 아들로 택하지 않은 존재가 분명 있다. 이 또한 말씀 속 진리이다. 말씀은 아는데 진리는 모른다.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니라 내가 걸어온 삶의 경험담이다. 내가 그랬다. 나는 성경을 좀 안다 생각했다. 실상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주님은 여러 번 내가 죽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말씀하셨으나 제자들은 그 속 뜻을 몰랐다. 왜? 진리가 없으니 세상지식, 인간지식, 기존 지식으로부터의 자유함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 65권을 알아도 사도 요한의 환상의 계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접할 수 없었다. 어거스틴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삼위일체를 깨달을 수 없었고 칼빈이 아니었다면 이신칭의를 비롯한 주옥같은 참된 이치인 진리를 깨달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다 이런 보배를 질그릇에 담고 있는 유약한 존재이지만, 깨달음의 역사는 신앙에 앞선 지도자를 통해 하나님이 계통으로 일해 오신 것이 6,000년 기독교 역사의 기록이다.

내가 성경을 아무리 100독, 1,000독 이상을 하고 밥 먹고 맨날 성경 연구만 집중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깨닫게 하여  주지 않으시면, 나를 칼빈처럼 쓰시겠다는 주님의 뜻이 없으면, 글자는 알지라도 그 속의 깊은 뜻, 구원의 이치에는 조금도 접근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이 지금까지 해 오신 구원 역사의 법칙인 것이다.

물론 지금은 성령의 역사가 있기에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여 깨닫는 면도 있겠지만 내가 걸어온 인생 방향의 노선과 인생 노정을 돌아보면 좁은 길과 넓은 길의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서는 분명 앞선 자의 교훈을 통한 지도가 있었고 이를 나는 '하나님의 인도'였다고 말하고 싶다.

아브라함을 떠난 롯은 멸망의 조상이 되었고 모세를 대적한 고라 외 여러 사람들은 땅 속에 삼켜 버렸으며 사도 바울 시대에는 바울 밑에서 배우는 것이 복이다. 물론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소원 만큼은 이래야 복된 예정일 것이다. 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믿음의 선생, 복음 안에서의 스승, 나의 신앙 길을 안내하고 지도해 줄 사람, 구약이라면 모세 정도가 될 것이고 신약에서는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않다 했던 사도 바울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의 표준은 주님이지만 신앙의 본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100년 세월 쌓아 올린 공든 탑을 한 손에 톡 털어 한순간 마귀 입에 쏘옥 넣을 수 있는 것이 신앙 세계임을 과거 교회사에서 잘 말해 주고 있듯... 신앙계통, 신앙노선, 신앙노정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성전 밖 마당에서 성전 안으로. 각 교회마다 각 교단마다 존재하는 계통, 노선, 노정이 아쉬운 말세지말이다.
전체 12

  • 2020-08-16 05:46
    구약에서는 대제사장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백성의 죄를 속죄할 수 있었지만 신약 우리들에게는 만인 제사장의 원리에 따라 남자가 결혼을 하여 가장이 되면 가정교회라는 범위 안에서는 가정을 이끌어 가는 대제사장이며 남편이 직장을 나가 있는 동안에는 자녀들에게 어머니는 대제사장 역할을 하도록 하나님이 그 위치와 책임을 부여해 놓으셨다 그래도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면도 있기에 목회자를 통해 선포되어지는 설교를 반복해서 들으며 자라는 어린 주일학교 학생들 마음 속에 '나도 커서 우리 목사님처럼 목회하고 싶다'는 그런 소망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총공회가 메뚜기처럼 또 한번 창공을 향해 뛰어 오르는 도약이 되겠다 내가 그런 그릇이 될지 안될지는 하나님이 판단하시겠지만 소원은 해야 가정교회를 바로 이끄는 목회자가 되기도 하고 한 교회 반사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는 자라도 되겠다 태생적으로 거룩과 따지는 구별이 강하다 보니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 '지도자의 신앙이 워낙 출중하다 보니 나 같은 사람이야 어찌 백목사님처럼 되겠느냐' 스스로를 너무 과소 평가하다 자신의 한계를 자기가 정하다 보니 젖만 먹고 앉은뱅이 신앙으로 평생을 살아가려는 근성이 생기고 차차 오랜 세월 돌 같이 굳어 마치 독립하고 출생할 어른이 되어도 지금이 좋사오니 캥거루 주머니 품 속에 살고자 하나 이를 깨고자 소송이라는 지진과 진동을 일으키시고 또한 국가가 나서서 방역을 핑계로 교회를 들쑤시는 요즘 이때일수록 더욱 주님만 모시고 독립으로 나가야 하되 일곱 별 사자의 비밀을 더욱 붙들게 된다 머지 않아 공회 인도자를 주님이 데려 가시면 나는 어찌 하나?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는 어찌 살까? 남편이 아내가 먼저 주님 앞에 서면 나는 자녀를 어찌 키우며 이 험악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교회는 교인 수가 많아 분가를 하고 개척을 해야 하는데 목회자가 없어 쩔쩔. 목회자 이동을 반대하니 교인이 목회자를 버리고 교회를 이동하는 초강수가 등장하고 시키라 월새 토새 설교를 부탁하고 주기적으로 길러간다면 초대교회 그 집의 교회가 재현되지 않겠는가 앞으로 7년 대환란을 기쁨으로 통과하려면 인터넷 실시간 방송을 넘어 목사님 설교를 다시 새김질하여 가정안에서 가장이 집에서 설교를 해야 날이 오지는 않을까? 분명 예배당에 모일 수 없는 그 날이 온다면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해야 할까?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니라 차별금지법 통과와 함께 코로나 전후보다 몇 십배는 더 급변하는 세상이 특히 교계 내 도래할 것 같다 우리는 안전한가? 오늘 주일 새벽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아 본다

    게을러 물러 터졌거든 개미에게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배우라 공회 지도자가 목회자가 항상 내 곁에 있는게 아니다 부모님이 항상 나를 도와주지 못한다 살아 생전 있는 힘껏 달아 붙어 주일 설교가 끝나면 질문도 하고 목회자를 부모를 귀찮게? 하라 목회자도 살고 부모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다 이해가 안되거든 자꾸 물어 보라 앞으로 시대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면 예레미야가 바지를 끌르고 아랫도리와 볼기짝을 다 드러내어 조만간 이스라엘 수치와 포로 상황을 몸소 보여줌으로 미리 예언한 것처럼 극심한 환란의 특수 상황에 접어 드는 이 때 우리에게는 무슨 충격 요법과 극약 처방이 필요할까? 세상 문화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나 자신부터 참새 잡으려 여름 땡볕에 포기할 줄 모르는 고양이의 끈기를 배운다 내부에서 한계되는 면이 있다면 주님이 외부에서 사람을 내부로 끌어서라도 배우게 하신다 한국 교회 모든 교단 모든 교인들이 신풍연구소 문을 두드리고 신풍교인으로 정착하며 그 후세대 자녀들이 이번 집회때처럼 결혼했으면 좋겠다 우리 역량이 그 모든 사람들을 품고 받아줄 그릇의 크기와 깊이와 높이와 넓이가 문제겠지만 항상 보면 실행이 문제다 말은 누구나 청산유수처럼 잘 할 수 있다 실제 닥치면 진가가 드러난다 그 날에 수치가 없고 떳떳하게 죽음으로 영광이 드러나도록 오늘도 주일예배를 사모한다 우리는 누구나 목회자를 꿈꾸어야 한다 내가 그럴만한 그릇인지 아닌지는 주님이 필단하실 일이다 목회자를 꿈꾸면 그 소망이 나를 실력자으로 끌고 가 가정의 목회자로 바로 세우게 하신다 아무나 목회자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목회자가 어떻게 목회하는지 가까이에서 목도하다가 나도 그대로 따라해 보는 것이다 시켜만 주시면 뭐든 하겠다 설교든 심방이든 청소든 뭐든 있을 때 힘 있을 때 충성하라 문제는 자기 중심, 자기 부인이 문제다 '부모님께 잘해라 돌아가시면 후회하지 말고 기회는 살아 생전 한번 뿐이라' 늘 말씀하시던 어느 노인 고인의 말씀이 생각난다 지금은 내게 유언으로 남아 있다 그 땐 왜 주님의 음성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세상 들을 게 많아 정작 들어야 할 말은 못 듣고 있다 맹인 소경처럼 늘 보면 마귀에게 속아 문제다 속아 쌓인 악습도 문제다 속지 말라 속지 말자 속지 않겠다 이 아침 스스로를 결단해 본다

  • 2020-08-17 06:01
    주일 예배 설교 만큼이나 주일 권찰회의 은혜도 큰 것 같다 설교를 그리 많이 들어도 말 귀를 못 알아 듣는다 해법은 설교를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길잡이 역할의 부연 설명을 권찰회에서 듣다 보니 일어날 일들을 미리 예상해 보고 상황 파악이 다 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도둑을 미리 기다리고 마귀의 수법을 미리 알면 안 속는다 마귀는 아주 교묘해서 꼬리부터 살짝 넣어 본다 간을 봐서 미혹에 안 넘어올 사람은 아예 찔러 보지도 않는다 일반에서 성경공부를 공회에서는 설교에서 부족한 부분 귀가 어둡고 귀가 가려워 듣고 싶은 것만 듣기 원하는 교인이라면 필히 권찰회 참석을 권한다 그리고 그 권찰회 내용을 여러번 재독하면 그 속에서 설교와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교리와 행정은 하나인데 교리는 아는데 행정은 모른다 그래서 교리는 좋은데 행정은 나쁘다는 이런 뚱단지 같은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내게 권찰회는 주일 설교를 가지고 나머지 6일을 어떻게 실천하고 적용해 나갈 것인가? 위험 표시판처럼 자동차 운전 계기판 게이지처럼 초등학교 알림장처럼 한번 더 강조하며 마귀의 궤계와 술수에 넘어가지 않게 하게 하는 요리사의 레시피 비법과도 같은 묘약이다 주일 권찰회 한편을 듣고 다음 날 월요일 새벽 설교를 준비하라는 특명이 떨어진다면 누가 나설 것인가? 공회가 지닌 강점이다 성결의 깨끗은 비교에서 시작된다

  • 2020-08-17 14:22
    세월이 참 빠르다 한 직장에서 10년 하고도 1년. 중간에 쉼도 있었지만 청춘을 한 곳에서 보냈다 요즘은 직장도 한우물을 파면 망한다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여러 다양한 경험을 하고서 나중에 정말 자기가 하고 싶고 평생을 해도 질리지 않는 직업 선택을 하라고 조언하는 책을 몇년 전 접한 적이 있다 이치를 따져 본다

    오늘 아는 지인이 직장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는 사람이 직업 없이 변변히 살다가 택배업을 했단다 한 5년을 한 지역에서 택배업을 하다 보니 그 가정의 식구가 몇 명이며 이름 나이까지 나중에는 꿰뚤게 되었단다 그러던 중 5년째 배달을 하는데 그 날도 단골 닭집 택배를 건네며 사장님 오늘은 치킨 많이 파셨나요 그러니 치킨 사장님이 울상이다 요즘 장사가 안 되어 가게를 팔려고 내 놨는데 팔리지도
    않고 고민이란다 머리 속에 번쩍 스치는 생각 내가 한번 해 볼까 그래서 택배업으로 번 돈을 종자돈을 다 투자하여 시세보다 싼 값에 치킨 가게를 매입하여 본격적으로 치킨업에 뛰어 들었다 그 동안 택배업을 한 덕에 집집마다 전화나 문자 카톡을 보내 홍보를 했다 새로운 메뉴가 나오면 단골집에는 이름까지 불러가며 취향까지 맞춰가며 홍보를 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집집마다 일주일에 한번은 꼭 시켜 먹는 그 지역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물론 맛난 치킨 메뉴 개발을 위해 부단한 노력도 했다 무엇보다 택배업을 했던 경험과 노하우가 치킨사업과 만나 몇 배의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이를 통해 보편성 주변성의 원리를 새김질해 본다

    요즘 직장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이번 8월 집회 말씀처럼 주변에서 내가 평소 할 수 있는 것 일반적인 것부터 시작하다 보면 그 다음 것이 보이는 것이 세상 이치에서도 통하는 것 같다 모든 업은 서로 통하는 면이 있다 하나의 일에 도통하면 그 다음 것은 대개 보면 쉽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외국어 언어 배우는 것도 그렇고 세상일이 다 그런 면이 있다 연관성의 원리. 신앙자유할 수 있는 업이 공회는 꿈의 직장일 것이다 1년 집회 참석 2번, 매달 양성원 참석하면서도 자녀 다섯 이상 기를 수 있는 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조혼다산 그리고 신앙자유업 주일학교때부터 일주일 11번 예배 속에서 듣는 구원의 이치 속에서 누가 어느 정도 깨닫고 심지를 견고히 세워 실행하고 재생산해 나가느냐에 따라 그 열매는 천차만별인 것 같다 이 세상은 과연 천국의 모형임에 틀림이 없다 심은 대로 거둔다 시간이 아깝다 글을 적으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의 개인 역사는 공회 역사만큼이나 후회가 없는가? 한번 더 기회가 허락된다면 임신과 출산 죽기 전에 자손 5대를
    보고 싶다 육의 자녀가 안 된다면 영의 자녀를 통해서라도...

    그럴려면 부지런히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갈수록 사람들이 강퍅하여 복음을 듣지 않는다 해도 복음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식지 않는 한 세상의 차별금지법도 막지 못하는 사람,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을 누가 건드리겠는가? 감옥에서도 사형수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죽어도 좋다는 사람은 조폭도 건드리지 못한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 다 가진 사람 심령이 가난한 만큼 천국을 소유한 진정한 부자. 대속의 은혜로 진리와 성령으로 충만한 자는 지금 죽어도 좋고 날마다 죽노라 말할 수 있는 자가 아니겠는가?

  • 2020-08-18 05:59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누구는 말한다 이런 사람은 꼭 보면 자기를 돌아보지는 않고 남탓부터 한다 부자부터 욕한다 복지 복지하다가 나중에는 나라 살림을 말아 먹을 사람들이다 복지가 필요하나 악용하니 탈이 나는 법이다 복지뿐이랴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다 선용하면 무한한 선물 악용하면 살인 무기가 된다 의사 손에 쥐어진 수술용 매스 칼은 사람을 살리지만 강도의 사시미 칼은 사람을 죽인다


    우리가 매일 듣는 설교 속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지혜를 담아 두셨다 늘 똑같은 설교라 귀 넘어 듣지만 주님은 말 귀를 못 알아 들으니 반복하여 애터지게 오늘도 외치신다 귀에 좀 담아 두라고 이 차이가 의사처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강도처럼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남편의 말 한마디에 아내의 신앙이 죽고 아내의 눈초리 한번에 자녀들 신앙이 죽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매일의 새벽 설교에 오늘 하루 필요한 영의 양식이 모두 들어 있다 사람의 말로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게 해 달라던 어느 집사님의 주일학교 설교 전 대표 기도문이 오늘따라 떠오른다


    하나님을 모르니 나오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 주어져 있다 우리가 배운대로 세월은 생명과도 같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시간 속에 모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 존비귀천 영광과 수치가 영원토록 결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갈수록 세상이 악하고 음란해지니 쓸데 없는 일에 정신 팔리기 쉬운 요즘이다 지금 글을 적는 이 시간에도 성경 좀 더 읽고 기도나 좀 더 할 걸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잘한 일이라 본다

    집회 기간동안 설교록 전체를 타이핑하는 어느 선생님을 보며 그 집중력과 그 끈기 근성에 감탄을 했다 그에게 보낸 카톡이 그의 보배로운 시간을 얼마나 뺐었을까 생각을 하니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물론 할 말은 해야 하지만 조절이 너무 아쉬웠다

    언젠가 주일 설교 끝나고 나는 너무 궁금해서 교인들 인사하는 목사님에게 다가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배 중 설교 말씀에 대한 질문과 대화가 대략 20분 이상 오고 갔다 그러다 보니 목사님의 점심 시간과 오후 예배 준비에 지장이 되었다 이를 지켜 보던 어떤 집사님이 내게 훈계를 하셨다 예배 끝나고 목사님 힘들게 하면 안 된다고 일리 있는 말이다 질문도 해야 하나 조절도 필요하고 상대방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내 자유도 조금 제한하는 것까지 감안하는 것이 세월을 참되게 아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지적해 준 그분께 감사가 된다 십년이 지나 겨우 세월에 눈을 뜬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다 사람이 철이 들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부모가 다 해 주면 늦게 철 들고 장가도 시집도 늦게 간다 결혼해도 아기 낳으면 손주들 데리고 시댁으로 친정으로 달려온다 신앙적으로도 보면 나는 못한다 나는 설교 듣기만 한다 설교는 내 할 일이 아니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안다 자기 한계를 자기가 정하고 자기가 판단한다 듣기 싫은 말은 보면 대개 내게 유익한 말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 예외도 있긴 하다 아무튼


    이게 이것이 요런 깨달음이 바로 허송세월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요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다 자녀는 대개 보면 부모가 망친다 교인은 목회자가 망친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모든 게 자기 잘못이고 남 핑계 못하지만 원리가 그렇다는 말이다 자녀를 시켜라 어릴 때부터 설겆이도 시키고 청소도 시키고 교인도 시켜라 설교도 시키고 때론 공석으로 야단도 치고 에어컨 끄면 안 됩니다 때론 사석에서 달래기도 하며 오해는 풀고 물론 심리를 살펴 가며... 이런 의미에서 보면 목회가 참 복이다 그러니 소망이라도 하거라 그럼 가정목회에 밑거름이라도 된다더라 백목사님 설교가 그립다 새 길을 걸어가면서도 옛 길의 향수와 받은 은혜에 대한 무한 감사는 잊을 수가 없다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는 말씀이 이 새벽에 떠 오른다 물론 네 주제를 알아라는 세상 말도 필요하나 우리는 주님의 종이며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 받을 아들이며 후사다 목회자가 시키면 이해가 되든 안되든 일단 해 놓고 보는 것이 복이다 만에 하나 목사님이 틀려도 나중에 순종의 복이 열매를 맺는다 자기 중심이 세월을 허비하게 한다 수 천, 수 안의 목숨이 나의 결정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 놓은 책임과 매워 주신 십자가의 무게를 확실히 알라는 뜻일 것이다

    이 새벽에도 자기 중심을 부인하고자 그리하여 두 번 다시는 내 사전에 단 1초도 시간을 잘못 보냈다는 말이 안 나오도록 새벽 설교 재독에 귀 기울인다 카톡 유튜브가 구원을 위해 잘 사용하면 참 귀한 선물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시간 잡아 먹는 귀신이다 카톡 유튜브 휴대폰 사용은 20대는 넘어야 사용할 실력이 된다고 본다 실수하면서 배우기도 하지만 그 폐단이 너무나도 큰 것 같다 성결법의 시작 어디에서부터 실천할 것인가? 세월과 시간 사용에서부터 살펴 본다

    댓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세월을 허비하고 있는 내 자신이 아닌가? 과도기적으로 잠깐 지속하는 게 좋겠다 교인님의 글처럼 신앙 성장에 모방은 필수다 담당님처럼 가정목회를, 진정한 목회를 제대로 해 보고 싶다 그럴려면 가장 쉬운 방법 중에 하나가 그대로 따라해 보면 된다 처음엔 서툴러도 괜찮다 하다 보면 내 속에 숨어 있는 잠재력을 주님이 최대한 끌어 올리게 하실 줄 믿는다 문제는 계속이 문제다 끝장을 보겠다는 작심의 심지. 야곱이 천사를 붙들고 제게 축복하지 않으면 못 갑니다 야곱의 고집도 고치고 형 에서와 화목하게 된 계기. 야곱은 강 건너기 전 어찌 기도했을까? 아마도...

    지난 날을 후회하고 자복하오니
    주님! 한번만 더 기회를 주옵소서
    주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자타,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주옵소서
    신혼의 정신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임신과 출산의 기회를 사라처럼 엘리사벳처럼 한번만 딱 한번만 주옵소서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베푸사 영과 육의 자녀를 허락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 2020-08-18 12:41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평소 말이 많은 사람이 있다. 모이면 리드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 한편으로 과묵한 사람도 있다. 말 수가 적은 사람도 있다. 나는 말이 적은 편이다. 말이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일부러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누구처럼 말주변이 정말 없다. 세상 말에 침묵은 금이라고 한다. 그러나 설교록에 보면 꼭 필요한 말, 구원에 유익한 말은 많이 할수록 정금이라 한다. 잠언 말씀에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 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라는 말씀처럼 금과 은, 좋은 것은 다 모였다. 이보다 더 좋은 수는 없다는 금상첨화. 말이 많으나 적으나 꼭 필요한 말은 해야 하는데 안해서 탈이고 말은 많이 하는데 정작 해야 할 말은 못하고 상대방 비위를 맞추기 위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게 넘어 가자고 사람 눈치만 보는 사람 저를 포함하여 자기 위치가 아닌데 무례하게 내뱉는 말도 문제. 아이가 어른 가르치는 말 교인이 목회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말. 말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얻기도 하고 말은 옳아도 시기적절한 때를 잘못 맞춰 때론 원수가 되기도 한다 많은 계산이 필요한 것이 말, 언어, 말투인 것 같다


    나는 말 수가 없다 보니 말의 실수를 적게 한다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그 반대다 살아 생전 아버지는 말이 많으셨고 어머니는 조용하셨다 부모님의 좋은 점만 배우려는 자녀, 목회자의 좋은 점만 본받으려는 교인, 이 또한 실천은 어렵다 나는 두 분의 피를 다 물려 받은 게 분명하다 나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대동소이하게 다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평소에는 조용한데 성경 연구나 진리 토론을 할 때면 말이 많아진다 이렇게 댓글을 적는 나 자신을 보면 평소 나는 과묵하다 말이 없다 댓글을 적으며 나의 이런 과묵한 성격을 고쳐 보려 한다 내가 싫어하는 것 안하려고 하는 것 하지만 억지로라도 해서 발전시켜야 하는 것들. 나의 취약점 나의 가장 약한 것들을 자랑하여 메뚜기처럼 새로운 도약을 시도해 보려 한다 백씨 집안의 역항 신앙처럼 말이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좋게 보면 포기 없는 근성이고 나쁘게 보면 고집불통 오기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길게 적는 것을 보면 말로 표현 못하는 것을 글로 묵묵히 적어 가시는 어머니의 일기장을 보며 무더운 여름날, 마치 깊은 우물에서 얼음 냉수 같은 찬물을 길어내듯 내가 물려받은 유산을 다시금 꺼내 본다 나를 좀 아는 사람은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그 사람은 말이 없다 조용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너무 과묵해서 탈이다 집사람도 그렇게 생각한다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은연 중에 나를 사로 잡는 기존 지식이 되어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직장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이 말이 없다고요 천만에 말씀.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예수 성경 얘기는 이제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복음 전할 때도 말할 때와 상대방 말을 들을 때 전도서 말씀처럼 타이밍의 지혜가 필요함을 느낀다 뭐든 조절이 참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양면성을 선천적으로 물려받아 태어나고 후천적으로 듣고 보며 자란다. 어제 집회 설교 말씀 재독을 하면서 유출에 관하여 생각난 것을 글로 정리해 본다 피는 혈관 안에 있어야 하고 침은 입 속에서 밥을 먹을 때 윤활유 역할을 하지만 말할 때 흥분해서 침을 튀기면 코로나의 주범이 된다 이성도 마찬가지다 남자 몸에 있어야 할 정력이 남발하여 이 세상이 이렇게까지 어지럽게 되었다는 말씀은 과연 그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나는 입에서 나오는 말을 떠올려 본다 화가 나면 얼굴에 울그락불그락 표가 나고 입이 험해진다 표정 관리를 아무리 잘 하려 해도 일단 화가 나면 얼굴이 굳어진다. 십 대 자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번 말했는데 시정이 안 되면 얘가 내 말을 무시해 또는 어떤 이유에서건 부모 말한 대로 안 하면 화부터 난다 그래서 말을 되풀이 하니 잔소리가 된다 말을 반복하면 말의 권위가 없어진다고 했다 가정뿐 아니라 교회에서 교인간 목회자간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간 어디든 이런 현상은 일어난다


    어떻게 하면 유출의 쓸 말은 유출하고 불필요한 말은 유출 안 되게 입을 자물쇠로 꽁꽁 잠글 수 있을까? 고민이다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할 말이 있고 안 할이 있고, 말을 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충분히 기도했다가 조심히 해 주어야 할 말이 있다 언제 말하느냐 어떻게 말해 주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이 느끼기에 지적과 정죄가 될 수도 있고 감사를 표하는 훈계가 될 수도 있다 목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인 중 누군가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면 참 고마운 사람이다 목사님이 공식 석상에서 야단을 치면 그 사람은 목사님이 만만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평소 잘하는데 그 사람을 지목해서 그렇게 하면 옆에 사람이 마음에 찔리는 효과. 설교 시간에 잠 안 잤는데 나보고 야단치면 옆에 조는 사람이 정신 차리고 나는 혹 겉눈은 떴지만 정신이 딴데 가 있거나 지금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 주님이 주의 종을 통해 내게 호통을 치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 이러면 그 사람은 시험 들 일이 없다


    성경도 이것을 말한다 다윗이 피난을 가면서 욕을 얻어 먹을 때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나를 욕하라 했다 내버려 둬라 나는 욕 얻어 먹어 당연한 사람이다 압살롬 아들놈 하나 잘못 길러 지금 그 댓가를 받고 있다 그 전에 우리야 아내를 잘못 범하여 내 몸속에 있어야 할 정욕이 잘못 유출되어 주님이 내게 주신 벌이다 앞으로 네 집에 칼이 영영 떠나지 않을 것이라 하셨다 다 내 탓이다 나를 욕한 그의 잘못은 하나님이 따로 나중에 계산하시겠지만 일단 내 잘못이 얼마나 큰지 지금 만천하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자식이 잘못한 게 아니고 애비인 다윗 나, 내가 잘못하여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자식도 피해자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피해자다 내 몸속에 있어야 할 정력 한 바탕이 유출되어 온 천하를 더럽히고 있다 압살롬아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내 아들 압살롬아 자녀의 잘못은 부모 탓이다


    교인 잘못은 목회자의 몫이다 탯줄 만큼이나 강하게 엮어 놓은 것이 부모와 자녀 목회자와 교인이다 그 증거가 배꼽이다 아직 배꼽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진정한 목자를 못 찾은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회초리할 수 있지만 목회자는 교인을 회초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흔적이 남아 있다면 그는 교인을 넘어 진정한 영적인 자녀일 것이고 스승을 넘어 영적인 아비일 것이다 설교 시간에 호통은 가정의 초달과 같은 훈장이다 대개 보면 이 선을 못 넘어 교회를 가출하는 이들이 많다


    상대가 어떤 목적과 의도로 했건 주님이 하라 하셨으니 내가 듣는 것이다 이러면 복이다 반대로 자기나 잘하지 너 잘못도 많은데 왜 자꾸 남의 일에 참견이냐 그러면 입은 닫고 그 때부터 교회 내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다 외유내강 남에게는 부드럽고 자신에게는 철저하게 하라는 불신 세상에서도 하는 말이다 설교에서는 낯설게 들린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더 확실한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순종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다 고린도후서 12장 세째 하늘에 끌려 올라 갔던 사도 바울, 본인 구원에는 손해 되지만 다른 사람 구원을 위해 부득불 자랑한다고 한 말씀, 설교록에도 목회자 본인의 경험담을 하시면서 내게는 백해무익하지만 자타구원을 위해 어쩔수 없이 말한다 남단 글을 보며 다양한 사람들의 평가와 말들을 많이 듣는다 내게는 유익뿐이다 감사함으로 받으니 모든 게 배울 거리의 양식이다 지금 쓰는 이 글도 몸 안에 있어야 하는 데 쓸데 없는 유출인지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너희도 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하기를 원한다 말한 것처럼 그런 것인지 따져 본다 나 또한 글을 적으며 배운다 계속 할 일은 아니란 것을 아무나 목회 연구소 사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 설교록에 시골에서 집사로 목회할 때 일제 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보여 주신 환상들. 해방과 중립국 예언 그 외 다수. 하나님이 내게 보여 주셨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런 것을 보여 달라고 구하지 말라 이건 소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필요하면 떨기나무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신 것처럼 사도 바울의 세째 하늘처럼 개인적으로 보여 주신다 일반 교계에서 하는 말, 소명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사 부르시는 Calling이 참된 소명이라고 한다 목회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내가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세처럼 빼다가 아론의 송아지 우상이 출현하는가 하면 목회 안 할 사람이 목회한다고 나서다가 공회에 두고두고 골칫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맡은 직분과 위치가 어떠하든 유출하지 않고 자타구원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만 가려서 지나치게 생각할까 하여 그만두노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입이 무거울수록 하나님의 초자연의 역사는 가깝게 다가온다 레위기를 그리 많이 읽고 외웠건만 유출 한 단어에 숨어 있는 구원도리의 깊은 뜻을 몰랐다

    그러기에 일곱 교회 사자인 '목회자에 따라 교인의 영원한 삶이 결정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 2020-08-19 06:02
    2020.08.19 수요일
    오늘부터 수도권 전지역 오프라인 예배금지 온라인 예배만 허용한다는 행정명령이 떨어졌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유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조처니 교계 협조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겉은 협조인데 속은 명령이며 벌금이 뒤따른다 이를 두고 믿는 자들간에 의견이 크게 둘로 갈린다

    1. 코로나는 전염병이니 하나님의 징계가 분명하다 각자 회개할 기회로 가정단위로 집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필요하다는 입장
    2. 말세 교회를 향한 핍박이다 방역을 하면서 조심하며 예배드리는데 공예배를 강제로  막는 것은 선택의 자유를 막는 것이다 다니엘이 기도할 자유가 있었고 어인이 찍혀도 계속 기도한
    상황과 똑같다는 입장

    징계인가? 핍박인가? 둘 다인가? 지켜볼 일이다 하나님은 코로나를 통해 우리에게 징계를 촉구하시는데 마귀는 이 코로나를 역이용하여 교회 탓으로 돌리고 짐승의 강압의 역사, 말세 마지막 환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인가?

    분명한 것은 행정권고가 아니라 행정명령이다 이를 어길시 벌금, 구금, 폐쇄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의 이번 조처는 분명 신앙자유에 위배된다 전염병으로 교회뿐 아니라 모든 모임을 취소한다면 이해가 된다 그렇다 해도 교회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

    2020.08.19 수새 오늘 수도권 교회 믿음의 실상을 드러내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말세 7년 환란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고 있는가? 아니면 징계를 통한 회개의 역사인가? 핍박인가? 징계인가? 둘 다인가? 지켜볼 일이다 1년 뒤에는 오늘이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것 같다.

  • 2020-08-19 10:03
    (교계 대표)
    우리 나라는 단체 설립과 이름을 자유롭게 붙일 수 있다. 한국교회협의회인지 뭔지 대표들이 한국교회 대표로 정부와 만나 사과를 하고 교회 폐쇄를 동의했다 한다. 그 대표, 그 인간들이 목회하는 교회를 닫든지 폭파 시키는 것이야 그들의 자유다. 그런데 그들은 '한국교회'라는 그들의 개인 이름을 세상에게 내어 줬다. 세상으로서는 수도 없는 한국교회 단체들 중에 세상이 원하는 대로 합의해 줄 대표를 불러 '한국교회'와 협의를 했다는 명분을 챙겼다. 이런 일을 가룟 유다라 한다.

    (조삼모사)
    아침에 4개 주고 저녁에 3개를 주나 그 반대로 주나 마찬 가지다. 그런데 3개를 주고 나서 4개를 준다는 말을 먼저 던지면 화를 낸다. 순서를 바꿔 주면 박수를 친다. 원숭이 이야기라고 했지만 나는 백성을 가지고 노는 정치가의 말 장난으로 읽어 왔다. 비대면 예배가 있고 대면 예배가 있는가? 공회는 원래 이렇게 구별하지 않고 예배는 하나라고 했다. 그런데 대구공회와 일반 교계는 예배를 대면 예배와 비대면 예배로 1989년에 구별을 한 다음 비대면 예배는 우상이 되고 예배가 아니라고 했다. 살아 있는 사람이 한 자리에 앉아 얼굴을 맞댈 때만 산예배라고 했다. 교계도 그러했다. 그렇다면 부공3은 비대면 예배를 허용한다는 정부의 발표에 대하여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대구공회와 교계는 비대면 예배는 '비예배'가 된다면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기독교 예배만 전면 금지'
    '예배당에 단 1명의 교인도 출입금지'
    '예배당만 전면 봉쇄'

    이렇게 읽어야 맞다. 이렇게 발표해야 양심이다. 그런데 '간교'라는 단어가 있다. 창세기 3장 1절이다. 뱀의 표현을 말했다. '비대면 예배 허용'이라고 발표를 했다. '금지란 말은 없애고 허용이란 말만 남겼다.' 조삼모사다. 신령계를 논하는 교회가 세상 철 없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표현에 놀아 나고 있다. 세상으로서는 훌륭하게 정치를 하고 있다. 그렇다. 그래야 세상이란 돌아 간다. 밉상에 밉상은 세상이 아니라 교회다. 세상의 노래에 교회가 장단을 맞춰 주고 있다.

    (역사적 교훈)
    일제 때 총독부와 김길창 목사 등의 친일파들이 협의하는 과정이 바로 그러 했다.
    공산화 이후의 북쪽의 기독교 대표들과 6.25 후의 남한 점령 치하의 기독교 대표들이 공산당과 협의할 때 이렇게 했다.

  • 2020-08-20 04:59
    우리 중에 선지자가 있었도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산 제물로 바치라 하신다 지금 우리는 그 답을 너무나도 쉽게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지금 현실에 주님이 내 자녀를 먼저 데려 가신다 하면 아브라함처럼 기쁨으로 바칠 수 있을까? 다니엘 세 친구들에게 우상을 강요한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풀무불에 타 죽어도 우상에게 절할 수는 없다 다니엘이 그 동안 하루 세 번 기도했는데 왕이 어인을 찍어 앞으로 삼십일 동안 누구에게든지 왕 외에 절하면 사자굴에 넣는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일제 시대에 신사 참배를 두고 의견이 둘로 갈렸다 지금은 신사 참배가 죄며 똑같은 일이 일어나면 나는 조상들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다고 말은 잘한다 실제 닥치면 나부터라도 어찌할지 장담을 못한다 입을 벌리게 하고 치아를 하나 하나 다 뽑고 신경에다 고문을 시작하면 순교하겠다 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시키는대로 고분고분하겠는가?

    이번 오프라인 예배 금지를 두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주님처럼 잠시 내리는 소낙비니 피하는 게 상책인가? 벌금을 내더라도 예배당을 지키는 게 주님의 뜻인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예배는 하나다 오프라인 예배금지면 앞으로 온라인 예배도 금지하겠다는 마귀의 수법이다 온라인 예배 뿐 아니라 모든 예배를 폐할 것이다 마귀는 조금씩 잠식해 온다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폴짝 뛰어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차가운 물에 개구리를 넣고 조금씩 물을 가열하면 서서히 졸다가 나중에는 죽고 만다 이런 꼴이 되는지 모르겠다 출애굽 때 모세가 애굽을 벗어나 광야에서 우리끼리 따로 제사를 드리겠다고 하니 애굽왕이 협상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너희 남정만 가라 소 양 염소는 안된다 마귀는 늘 이런 식이다 일제 시대 6.25때 기독교가 공산주의에 잠식될 때 똑같은 전처를 밟았다

    바벨론 포로처럼 국가가 시키는대로 순종하며 그 속에서 회개하라는 뜻인가? 아니면 다니엘처럼 국가의 명령은 부당하니 기도는 물러설 수가 없다 사자굴에 들어가더라도 기도는 해야 하고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모든 예배는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이 주님의 기쁘신 뜻인가? 예배당에서 예배를 금지하면 차를 몰고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괜찮은가? 죽이려 한다면 카타콤으로 가는 사람 그 자리에서 순교하는 사람 믿음의 종류는 여럿이 있다 누구를 나무랄 수는 없다

    오프라인 예배를 금지하면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온라인 예배를 금지하면 가정예배를 드리고 모든 예배를 금지하고 매매금지 우상에게 절 안하면 죽인다 그러면 그 속에서 매매를 할 조건으로 우상에게 절할 것인가? 오프라인 예배를 지속하는 것이 정부를 대항한 것인가? 아니면 다니엘의 기도처럼 기존에 해 왔던 것을 어떤 핍박이 와도 지속하는 것인가? 오프라인을 금지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하라 하면 막바로 모든 것을 바꾸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그래도 교회로 모여 차에서 드리든지 삼삼오오 교인 집에서 드리는, 모이는 최소한 노력의 차선이 지금 현실에서는 최선인지 모르겠다

    다니엘이 기도와 사자굴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너무나도 쉽게 보이는데 지금 내 현실에서 답을 찾기는 너무나 어렵다 바벨론 포로와 지금 코로나 예배 금지는 경우가 같은가? 다른가? 다니엘의 기도와 지금 코로나 예배 금지는 경우가 같은가? 다른가? 밤중이 되기 전에 기름 준비를 어느 정도 했는가? 흉년이 오기 전에 풍년의 때에 얼마나 양식을 준비했던가? 마귀역사 뒤에 하나님의 역사를 살펴 본다 마귀는 신앙을 죽이려 핍박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시련이니 원망 낙망 말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알고 늘 깨어 징계면 회개할 일이고 연단이면 기쁨으로 통과하면 된다 전염병이라도 회개와 연단, 핍박과 경계 두 면을 다 살펴 본다. 둘 중에 어느 한 면만 너무 강조하다 보면 치우치기 쉽다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고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다 과거 역사 경험을 참고하긴 해야 하겠지만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국면일 수도 있다. 신앙의 후퇴인가? 아니면 잠시 피해야 하는 소나기인가?

    앞선 자의 말씀도 들어보고 내 속에 양심의 소리도 들어보고 대목장처럼 신앙의 수입이 넘치고 있다 매일의 새벽 증거되는 말씀 속에 모든 답이 다 들어 있다 환경이 바뀌어도 못 바꾸는 것이 있다 과도기적으로 할 수 있는가? 아니면 잘 살펴서 문고리 잡는 심정으로 하나씩 열어 보여 주시는 데로 하루하루 걸어갈 것인가? 죄는 중단이 없다 과정 중에 충전을 가능하나 결국에는 둘 중에 하나다 많은 면을 살펴 경거망동하거나 무감각에 주저 앉지 않고 이 아침도 깨어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 2020-08-21 12:23
    한교연 긴급 공지사항

    한교연에 소속된 교단과 단체에 정부가 어제 18일  발표한 서울과 수도권 지역 교회의 예배 금지 명령에 대해 본회의 입장을 밝힙니다. 모든 교회는 정부 방역 지침에 따라 보다 철저히 방역에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예배는 구원 받은 성도들의 영적 호흡이요,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는 통로입니다. 따라서 생명과도 같은 예배를 그 어떤 경우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 같은 시련을 주셨는지를 성찰하고, 오늘의 고난을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나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묵묵히 교회가 가야 할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바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이 위기에서 건져 주시고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 OOO 목사 및 임원 일동



    국가의 오프라인 예배 금지라는 행정명령에 대한 한교연의 입장 표명이다 내가 볼 때는 국가는 들으라 국가 관계자에게 말하였다기보다는 물론 이 면도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근본적으로는 우왕좌왕할 수 있는 교인들에게 이렇게 대처하라는 안내의 글로 나는 읽었다 나보다 윗선에서 명령한 것이 부당하거나 하나님의 계명에 틀렸을 경우 개별성을 무시하고  신앙자유를 제한할 경우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옳다 아니다 아니라면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어떤 자세와 태도 중심이냐가 관건이다

    불신 아버지가 주일 날 교회 가지 마라 하면 주일학생이 어떻게 부모님에게 말해야 할까? 5계명 부모님께 순종하라 했으니 예. 안 가겠습니다. 입장표명 하나. 제4계명 안됩니다. 저는 교회 가야 합니다. 입장표명 또 하나 제3의 입장표명은 이렇다 우리가 설교록에서 들어 잘 아는 대로 아버님이 아직 불신자라 몰라서 그렇다 4계명 5계명 다 순종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딱 꿇고 아버지 제가 교회 안가면 우리 집안은 다 멸망합니다. 아버지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주일 예배만큼은 허락해 주십시요 눈물로 호소하며 간절히 구하는 그 자세 그런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끝까지 안된다 하시면 강제로 두 다리를 묶고 하루종일 감시하신다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순종하면서 마음은 교회에 가 있다 기도하며 금식하며 주일을 보낸다 그러면서 부모님께는 이전보다 몇배는 더 신경을 쓴다 그러면 부모님이 감동을 받게끔 하나님이 만드신다 아버지를 교회 가게 만들기 위해 아버지를 강퍅하게 만들어 자녀에게 어려운 숙제도 내시고 이 시험을 통과하면 자녀의 믿음도 성장하고 아버지도 믿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의 역사로 본다

    입장 표명이 교회 간다 안 간다 답변도 중요하겠지만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 본다 어떻게 부모님께 입장 표명을 했는가? 목회자와 교인간 대부분 목회자가 옳다 그러나 목회자도 사람인지라 오판할 수 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명령한 경우 다윗이 영안이 어두워 오판했다 그럴 때 군대장관 요압이 바른 소리를 했다 참 어려운 말이다

    다윗이 진노하여 나발을 죽이려 한걸음에 달려 왔다 아비가일이 막아 섰다 그 때 아비가일의 입장 표명이 참 조심스럽다 먹는 음식을 가져와 다윗 앞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이렇게 자기 입장을 말로 표현한다 내 주여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때에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수하셨다든지 함을 인하여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어떤 아내가 머리로 주신 남편에게 바른 소리를 해야 할 때, 자녀가 부모가 잘못 인도하는 것을 기도하고 동참할 수 없어 꼭 말해야 할 때, 교인이 목회자에게 자기 의견을 말해야만 할 때, 접촉하다 의견이 서로 대치될 때, 전원일치를 위해 우리의 입장 표명은 조심스럽다 노선에 대한 입장표명은 더더욱 그러하다

    국가의 이번 예배당 예배금지 행정명령에 어떻게 입장 표명을 할 것인가? 외부 공개용은 아니더라도 내부 비공개용으로 글을 써 본다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엘리야처럼 우리는 국가 명령이라도 하나님의 계명에 틀렸다면 틀렸다고 말은 해야 한다 내가 만약 교회 책임자라면 가정을 인도하는 가정의 목회자라면 식구들에게 어떻게 말해 줄 것인가?


    1. 정부가 오프라인 예배를 금지했으니 집에서 실시간으로 드려라 2. 정부의 예배금지는 틀렸으니 예배당으로 무조건 나와서 예배당을 사수하자 벌금, 구금, 감옥행이면 감수하자 영광의 면류관이다 3. 정부의 예배금지는 틀렸으나 신앙은 제각각이니 예배당에 나올 사람은 나오고 예배당 주차장에서 볼 사람은 주차장에서 보고 집에서 볼 사람은 집에서 보라 자유로 결정하라 오프라인은 진행하겠다 4. 이번 정부의 조처로 오프라인을 막으면 신앙손해가 많다 주일날 예배당에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 집에서 각자 예배 보는 것보다 일단 예배당에 모이자 그리고 그 다음 예배당에서 안된다고 하니 그럼 모여서 어떻게 예배를 봐야 할까 함께 고민해 보자 온라인 예배 최소 인원을 대폭 조정하고 나머지는 차에서 나머지는 예배당 근처 교인 집으로 분산하든지 어쨌든 예배당 앞으로 모이자 그 다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주님이 지혜를 주실 것이다




    저는 이렇게 했으면 하고 무식하나마 의견을 고합니다 주변에 있는 친구, 가족, 지인들이 걱정입니다 이번 주일날 일단 예배당 앞으로 모입시다 예배당 주차장 차에서 예배드리든 교인 집에서 예배를 드리든 일단 예배당 주차장 앞에 모입시다 실시간 인도를 위한 정예 요원만 예배당에서 인도하고 나머지는 실시간을 대비합시다 가정단위로 예배드려야 할 앞날을 미리 연습하라는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실시간으로 가정단위로 예배드리는 것과 교회 예배당 앞에 나와서 차에서 각자 예배 드리는 것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게 그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불편한 차에서 드리는 것보다 편하게 집에서 실시간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더 낫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신앙의 성공과 실패가 이 작은 차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마귀가 더 잘 알 것입니다 마귀로 빈틈을 주면 그 다음은 양심에 화인 맞을 일만 남습니다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싸웁시다 지금껏 들은 말씀을 실전에 써 먹을 때입니다 오프라인을 금지하면 막바로 온라인을 갈아타지 말고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싸웁시다 시시각각 바뀌는 현실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주님이 창살 틈으로 내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 싸움은 사람을 붙드는 육체와의 싸움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적, 악한 영들과의 싸움임을 우리가 다 너무나도 잘 알기에 국가 기관을 상대로 대항하라는 말이 아니라 국가 권력을 붙잡고 뒤에서 숨어서 조종하며 역사하는 마귀를 대적합시다 하나님께 순복합시다

    예배당 예배를 대충 드렸던, 설교를 대충 들었던 지난 날을 회개합니다 말세 대환란 7년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알고 새출발합니다 2018년 5월 집회, 창세기 1장의 새출발 말씀을 시작으로 3년 전부터 준비하라고 주님이 소송을 통해 5월, 8월 집회의 방향을 틀게 하시고 이번 일로 급변하는 현실 속에 복된 현실만 담아 주실 것이니 잘 대처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 2020-08-21 12:37
    10번의 댓글로 마무리합니다. 직접 댓글을 적어 보니 pkists.net 연구소 관계자분들이 얼마나 힘든 일을 하고 계시는지 새삼 느낍니다. 앞으로도 어두운 신앙 세상을 밝게 비추는 등대 역할을 잘 감당하는 이 곳이 되길 기도합니다. 흉내 내길 좋아하는 참새가 뱁새를 따라가다 가랑이가 찌어지듯 각자 주신 역량과 범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할 말이 아닌데 위치도 모르고 발언하여 여러 분들을 어지럽게 한 면이 있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 2020-08-21 13:07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 계속 써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글귀대로
      "각자 현실 속에서 써 내려가고 있는 남단 글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나누는 그 날이 오길, 한번쯤 꿈꾸어 본다."
      함께 꿈꾸고 있습니다.

      앞장 서서 빛을 비추고 계속 가시면, 뒤따라갈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 2020-08-21 18:59
        택자 교리가 공회에서는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영원 전에 불택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불공평하다. 자기가 믿을지 안 믿을지 신앙의 선택이라는 자유를 줘야 한다.
        직장 동료와 대화하다가 나의 말을 가로막는 그를 보며 공회를 알기 전 제 모습을 보는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에 그 분을 생각하며 글을 적다 보니 일주일째 댓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1:1-2, 11-12, 25-26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자기 민족 유대인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싶습니다.
        유대인 구원을 위해 베드로를 세우셨고 이방인 전도를 위해 사도 바울을 세우셨듯이
        일주일동안 글을 적어 보니 제가 감당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독자로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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