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찬송론 - 한국의 아리랑을 찬송가로 채택 여부

연구
작성자
연구부
작성일
2023.07.06

연구부의 과제입니다.  12명의 답변이 있었습니다.

이 곳에 일단 전체 내용을 소개합니다.

12가지 의견이 등재 된 후 적으면 좋겠습니다.

 

 


 

(과제: 찬송론)

 

 

국내 최고 최대 교회이면서 제일 보수 정통으로 인정 받는 오정현 목사님의 설명입니다.  무조건 비판하지 마시고, 이 주장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공회 시각에서 살펴 주시고 공회 시각을 알지 못한다면 개인적으로 생각한 '이유'를 아주 간단히 적어,  서기에게 내일 저녁(23/7/2)까지 제출해 주시면 한목에 게재하고 연구소 입장을 보태겠습니다.

 


 

전체 16

  • 2023-07-06 21:30
    (아리랑 곡 찬송 연구)
    기존 찬송가 중 독일 국가, 영국 국가 곡을 이용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아리랑 곡을 이용해 찬송가를 부를 수 있다고 하는데, 독일이나 영국은 원래 기독교 국가라 그 곡이 찬송가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리랑 곡은 민족의 한이나 유흥판의 흥을 돋우기 위한 곡으로 구원의 찬송가를 담기에는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 2023-07-06 21:30
    독일이나 영국은 기독교 정신의 국가였기 때문에 민족정서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세월 속에 자연스럽게 찬송가와 국가가 공통의 곡을 사용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정현 목사님은 아리랑이 세계 곳곳에서 울려 펴질 때 우리민족에 대한 자긍심으로 마음이 울컥한다고 하는데 민족적 긍지에 울컥하는 것은 애국심이지 신앙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택자의 하나님이요 우리 민족에 국한 된 하나님이 아니신데 민족적 긍지에 울컥하기 때문에 찬송으로 사용하는 것은 더 더욱 곤란할 것입니다.

    민족의 자긍심을 위해, 우리 민족의 한이 서려있고 원망이 서려 있는 아리랑 곡에 맞추어 하나님에 대한 감사 찬송을 부르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께 누를 끼치는 일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교회가 이런 세상 곡을 굳이 사용해서 세상과 신앙을 섞어 놓을 위험이 있는 곡으로 찬송을 부르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조심해야할 것입니다.

  • 2023-07-06 21:30
    < 아리랑 곡에 찬송 가사의 문제점 >

    - 공회적으로

    1. 정서를 앞세우면 감성에 붙들려 진리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리랑이라는 한국의 민요에 찬송 가사를 붙여 부르면 아리랑이라는 한국인만의 정서에 막혀 진리를 통한 하나님을 찾아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리랑 곡에 할렐루야 찬송 가사를 붙여 신나게 부르고 나면 뒤에 가서 진리가 남을까, 하나님이 생각날까, 아리랑 곡만 남을까?

    2. 기독교는 지역과 시대를 초월합니다. 따라서 특정 국가에 기독교가 국한되면 곤란합니다. 공회 이름에 ‘예수교’가 가장 앞에 있는 이유입니다. 아리랑이라는 한국인만의 정서를 앞세우면 기독교를 한국적으로 국한시키고 변질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아리랑 곡에 찬송 가사를 붙여 부르는 그 예배 시간 그 자리에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같이 예배드린다면 함께 은혜를 받아야 할 그들의 마음과 입장은 어떨까?

    - 일반적으로

    1. 서양 대부분의 국가들은 천주교든 개혁교든 기독교가 국교일 정도로 기독교 문화로 모든 것이 이어져 왔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청교도로 시작된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 나라는 문화 자체가 기독교 문화이므로 특정 국가나 민요가 찬송가에 들어 있다 할지라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한국의 아리랑은 그와는 전혀 다릅니다. 말 그대로 한국인의 민요 곡에 찬송 가사를 붙인 것인데, 세상을 교회와 섞는 결과가 됩니다.

    2. 초기 어릴 때, 모든 것이 혼돈될 때는 그리될 수밖에 없으나 장성하고 정리되면 세상과 교회는 분리되어야 정상입니다. 서양 대부분의 국가가 기독교와 세상의 문화가 섞인 상태를 구분하지 않고 그대로 이어오고 있기 때문에 오늘 그 나라들의 교회가 타락해서 아주 엉망이 되어진 것입니다.

  • 2023-07-06 21:31
    (아리랑 곡조)
    두가지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1) 기존 찬송가의 곡조에 개사
    - 양성원 시간에 가끔 부르는 '나는 독립으로 무언의 용사로'
    2) 민요에 가사 붙인 것
    - 사랑의 교회 아리랑

    두 경우 모두 저에게는 낯설고 어색하며 '기존 찬송가 부르기 벅찬데 굳이?' 라는 생각이 듭니다. 찬송가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은혜를 시로 적은 것에 곡조를 붙인 것이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두 경우 다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내면은 판이한 것 같습니다.
    - 전자는 공회의 기조를 알고 있기에 '어떻게 하면 더 하나님을 찬송해 볼까' 하는 하나님 중심이 출발인 것 같고
    - 후자는 목사님 자체가 음악에 관심이 많아 보이며, 설명 중 '아리랑을 들으면 한민족이라는 울림이 있다'고 말했듯이 민족성을 앞세운 것 같습니다(일종의 k-pop처럼). 특히나 타령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아무리 거기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도 타령을 듣는 즉시 민요의 원 가사가 떠오르게 됩니다(겉으로는 '할렐루야'라고 부르지만 속으로는 민요의 가사를 읊조릴 것 같음). 하지만 아리랑을 찬송가로 처음 접한 외국인이라면 '이런 찬송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확대해 보자면, 만약 해당 목사님께서 헤비메탈이나 랩을 좋아하셨다면 거기에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가사를 붙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해당 목사님을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교인들은 이마저도 수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치우친 생각도 해 봅니다.

    *추가 자문자답 (이부분은 내용에서 제외시켜도 됩니다)
    영상을 보면 아리랑 곡에 가사 붙인 것에 대해 이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아리랑 찬송'이 나오게 된 이유는 아마도 덮어 놓고 목사님은 옳다라는 생각이 전제 되었을 것이고, 대부분 교인은 나 기분 좋자고 다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손해가 없으니 따르는 것이고, 왜 그랬을까 하고 궁금해도 굳이 선지자를 거스려 인인관계에 화를 자초할 필요도 없고, 너무 마음에 안 들고 애매하면 안부르면 된다는 식이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일반 교회는 해년마다 찬송가에 한두 곡씩 추가 되기 때문에 전혀 낯설지 않음.

    결론
    목회자 인도의 책임과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음.

  • 2023-07-06 21:31
    아리랑 찬송 과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서양은 기독교가 국가나 생활의 기본적으로 배경이되고 깔려 있습니다. 그런 신앙의 배경을 가지고 있고 또 국가나 대표적인 노래는 아무 노래나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닌 가장 경건한, 격식있는 노래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아리랑은 그 배경이 유교며 한이 맺힌 타령으로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또한 정서적으로 맞다하나 찬송이란 신앙의 경험 깨달음 그리고 터쳐 나오는 찬송이기 때문에 한 나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믿는 사람이라면 전부 대상이 되어야 될듯합니다.

    정서적으로 맞으니 찬송으로 한다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마약먹은 노래가 맞을 것이고 노인분들은 타령노래가, 한국사람은 한국노래가 맞을 것입니다.

  • 2023-07-06 21:31
    (아리랑 곡의 찬양)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감정 기분에 맞춰진 자기 만족을 위한 인간중심의 노래라 생각됩니다.

  • 2023-07-06 21:31
    세상 것이 잘못된 게 아니라, 하나님보다 앞세운 세상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실력이 부족하여 세상노래가락에 찬송가를 붙인 것은 그 시대에 있어서는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그렇게 해야 할 만큼 실력이 부족한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오정현 목사님 말씀대로라면 아리랑에 담긴 민족의 얼이 좋아 찬송가를 만드신 것인데, 과연 이 찬송을 부르며 사람들이 하나님을 먼저 생각할지 아니면 그 가락에 담긴 감정, 감성, 정서를 기억할 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 2023-07-06 21:31
    독일과 영국은 기독교와 역사를 같이 해 온 나라로 찬송가 곡조에 가사를 붙여 애국가가 될 수 있는 배경이 될 수 있으나 오정현 목사님의 우리나라 아리랑에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닌 우리 국민으로서 나라 사랑의 자부심 정도로 보여 위 나라들의 예를 드신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하나님 찬양에 꼭 한복을 입으셔야 했는지도 의아할 따름입니다. 찬양은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 2023-07-06 21:32
    전에 호주에 어학연수 갔을 때(2001년), 시드니에서 흑인이 호주 고유의 악기로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외국에서 우리나라가 많이 생각났던 것 같습니다. 아리랑곡은 신앙보다는 민족적정서를 고양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 2023-07-06 21:32
    곡조 음계에는 홈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서양 클래식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봅니다. 반면 우리나라 국악의 기원은 귀신에게 제사 지내던 무속 음악입니다. 가사가 아무리 찬양 가사라고 해도 영적으로 안좋다고 생각합니다. 김석진 목사님의 누나 김순진 권삼이 국악 박사 학위 받으셨는데 국악하다가 귀신들리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군가도 들으면 은혜가 됩니다.

  • 2023-07-06 21:32
    찬송의 중심은 가사인데, 감정적인 아리랑 곡을 사용하면 감정적인 곡에, 아리랑의 감정적인 가사(저주의 가사)가 떠올라 찬송에 손해가 될 듯합니다. (감정기분에서 떠나 말씀에다 굳게 세워, 찬송가72장)

  • 2023-07-06 21:33
    국가에 대한 개념이 단순히 애국의 의미를 넘어 일본의 천황처럼 종교적 의미를 지니게 될 때에는, 단순한 경례조차 1계명 2계명의 신앙 문제의 양상을 띄기 때문에 할 수가 없고, 반대로 오늘날처럼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애국정신조차 없는 때에는 오히려 국기에 대한 절을 해도 종교적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올림픽의 기원 역시 원래는 그리스 로마 미신의 대제전이었으나 지금은 그냥 스포츠 행사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상관이 없는 것처럼.

    어떤 맥락으로 펼쳐지는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에는 이미 수천년 기독교가 뿌리를 내렸고, 일반적으로 부르는 민요라고 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인생에 대한 내면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사는 비록 찬송은 아니고, 일반 생활 속에서 흥얼거리는 그 노래 가락이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께 질문하고 토로하고 하나님을 찾는 찬송가에 버금 가는 실제 내용이었으며, 그럼에도 찬송가로 채택이 되려면 하나님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색, 인종색, 나이 색이 없는 신앙만을 위한 곡이라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날의 가사 찬송가는 가사는 찬송일찌라도 그 내면과 바탕에는 불신, 인본, 자기 감정으로 하나님 향한 기본 방향을 상실한 찬송이기에 기본적으로 찬송의 요건이 되지 않고 이러한 오늘날의 분위기에서 새로운 찬송가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과 토대는 전혀 없고, 과거에 불러오던 꺠끗한 찬송을 고수하는 방향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아리랑 역시 찬송으로서의 바탕성, 신앙성, 검증성이 전혀 없고, 미신적 주술적 민요적인 요소는 불신적 방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가사를 찬송으로 붙인다하더라도 찬송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 부르려면 예배당 바깥에서는 부르려면 부를 수 있다고 이해하지만, 공예배의 순서에 정식 찬송가로 부른다는 것은 개교회의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무리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2023-07-06 22:32
    피아노는 유흥가에서 나와서 처음에는 교회에 들여 놓는 것이 불결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피아노는 예배찬송에 가장 중심이 되고 현재는 드럼도 흥을 돋는 예배악기가 되었습니다. 찬송가곡중 하늘가는 밝은길이의 곡은 출처불명의 미국민요 러브송이었는데 이를 아는 미국인들은 불결하다고 하였으나 미국선교사 소안렌이 거기에 찬송시를 붙여서 지금은 가장 은혜로운 찬송이 되었습니다. 아리랑곡은 우리가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 여러가지 비판을 할수도 있지만 이를 모르는 다른나라사람들은 아리랑곡이 아름다운 선율이어서 찬송시를 붙이면 아마 할렐루야가 들어갔으니까 기쁨에 찬 찬송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리랑곡이 한이 서린 곡인데 찬송은 흥겨운 할렐루야가 들어가니까 더욱 이질감이 있는데...이 곡을 장례식때나 고난의 찬송으로 작시가 되었더라면 어울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든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련스럽게 될수도 있겠지만 이곡은 한이 서린 곡에 기쁨에 찬 찬송이니까 오래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 2023-07-28 16:09
    어느 두 분의, ‘아리랑관련’한 내용의 일부분을 대강(묶어) 옮겨보면,

    <..욕단(족)의 후손들이 우리(민족)의 조상이다. 우리가 동부(동쪽)히브리인이다.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다. 아리랑은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이 대홍수 후에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동방으로 천동(遷動)할 때에 수많은 고개를 넘어가면서 불렀던 ‘찬송가’였다. 오랜 세월 수많은 고원과 산맥을 거쳐 오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민족과 함께하셨고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했던 그 절박한 노래가 아리랑’에 들어 있다.
    ‘아리랑의 어원은 알이랑’이다. 연음법칙 때문에 ‘아리랑’으로 발음하는데, ’알‘이라는 이름씨(명사)와 ’이랑‘이라는 도움씨(조사)가 붙어서 된 말이다.
    '알'은 성경에 ’엘(EL)‘과 동의어로서 유일신 하나님을 뜻하는 우리 겨레의 옛말이다. ‘이랑’은 ‘~와 함께, with'와 같은 의미이다. ’알과 함께 즉, 하나님과 함께‘라는 의미이다. (가사의 설명주장부문 생략)
    우리민족은 ’알이랑 민족’이다. 한 주제를 가진 노래가 이렇게 많은 것은 우리민족의 DNA속에 하나님 사상이 심겨져 있다. 우리 민족은 다신숭배가 만연한 고대 세계에서 민족사를 ‘알이랑 정신’ 곧, ‘하나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독특한 민족이다. 이것이 아리랑의 비밀이다..>

    위의 내용처럼, ‘아리랑’을 성경적 시각으로 보는 게, 근거적으로 일고의 가치조차도 없는 것인지 아니면 다면연구과제가 될 수도 있음인지..를 차제에 생각해보게 됩니다.

    • 2023-07-29 10:56
      알이....EL이라고 한다면...하나님과 함께가 알이랑=>아리랑....이런 논리라면...뒤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님이....EL인데..EL이 어찌 발병이 날 것이며....어찌....EL에게 발병이라는 저주를 내릴까요? 참 갖다 붙여도....말이 되게 붙이셔야지....님의 마지막 말씀중 근거적으로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허무맹랑한 정신없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 2023-07-28 20:08
    개인적인 의견으로 필력합니다.

    지금 현재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곡조에 상관없이 목적이 찬송가와 같은 목적이고 가사의 뜻이 찬송가와
    같다면 문제가 없는것 아닌가?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저는 오랫동안 찬송가 부르는것을 좋아하고 성가대도 했습니다.

    요즘 세상의 유행가들은 인본주의의 사람의 감정과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방향성을 가지고 곡을 만들다 보니
    찬송가에 나타난 깊은 성경말씀에서 나온 깊은 뜻과 성경대로의 방향을 같은 잣대로 놓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곡조인 것이 세상 유행가 입니다.

    그러므로 위에 말씀하신 "아리랑" 이라는 곡도 마찬가지로 세상의 유행가와 다르지 않은 곡조 이기에
    찬송가로 불려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찬송가는 통일찬송가 새찬송가 21세기 찬송가, 복음성가, 복음송, ccm 등 점점 시대의 변화에 맞게
    곡조가 세상 유행가와 같이 변화하고 가사도 과거 찬송가들과 달리 세상 유행가처럼 시대에 맞게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도록 개사되고 유행가와 같은 가사로 변화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오래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딱딱하고 지루하다고 여겨지는 과거 찬송가들이 만들어졌던 시기를 되돌아보면
    지금처럼 풍족하고 부족한 것이 없어서 갈급함도 없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복을 받아야 겠다는 시대와 달리, 가난하고 어려움이 많아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지 않으면 헤쳐나가기
    어려운 시기 였기에, 과거에 작곡 되었던 지루하고 딱딱한 찬송가들이 성경대로의 지식이 담긴 가사와
    하나님을 찾고 의지해야 한다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곡이 만들어졌기에, 지금 나오는 찬송가 라고 불리는
    곡들과 비교할때 판이하게 차이가 납니다.

    물론 어디까지가 정통의 찬송가라고 분류하고 선을 긋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으나, 자꾸 시대의 변화와
    함께 바뀌어가는 찬송가를 볼때에, 이제는 더 변질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답변을 드렸고,

    위에 말한 "아리랑" 이라는 곡은 찬송가가 될수 없다는게 제 의견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찬송가의 분류는 (과거 통일찬송가- 새찬송가 , 과거 복음성가 ) 이정도가 찬송가라고
    생각되며, ccm도 애매하지만 정말 극히 일부들만 찬송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저도 찬송가 라는 분류를 나눌때에는 누구보다도 극보수적 이라고 말씀드리며,

    반박하는 의견을 제시하셔도 겸허히 받아 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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