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 - 우리아 살해와 압살롬 귀환 건을 중심으로
연구부의 과제가 다음과 같이 있었고 11명의 답변이 있었습니다.
이 곳에 일단 전체 내용을 소개합니다.
11가지 의견이 등재 된 후 적으면 좋겠습니다.
---------------------------------------------------------------------------------------------------
(과제: 요압의 신하 역할)
* 취지
성경 해석에서도 중요하고, 또 오늘 우리가 살아 가면서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교회 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닥칠 때 모래에 머리를 숨기고 나는 안 봤다는 식은 자기 위안이고 자기 해명이지 해결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묻게 되어 있습니다.
* 제출
이 곳에 적으면 복잡하니 서기에게 개인적으로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구소 행정실이나 신풍교회 발언게시판에 비번을 걸고 비실명으로 적어도 됩니다만 이 정도 문제로는 복잡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저녁까지 (23/6/28)입니다.
* 과제
사무엘하 11~14장에는 다윗의 우리야 범죄,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압살롬 사건이 나옵니다. 잘 알려 진 이 문제가 아니라 이 두 사람 사이에 '요압'을 눈여겨 봐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자기 현실에 오늘의 다윗이기도 하고 또 압살롬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오늘 우리는 다윗과 압살롬이 아니면 요압이라야 합니다. 요압은 우리야 건을 두고 다윗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그리고 14장까지로 이어 지며 요압은 압살롬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가?
요압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신하로서 교인으로서 또는 시키면 해야 하는 입장에 설 때 자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가지고 다윗의 부탁을 받고 요압이 가진 위치와 자세와 역할... 그리고 압살롬 사건 때 요압이 가진 위치와 자세와 역할... 이 2 가지를 나란히 비교하며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비교를 하시고
분석을 하시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자기 결론을 부분적으로도 적어 보시고 또 최종 결론도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 적으실 때
이 곳의 우리는 초신자가 아니며 공회가 낯 설지 않습니다. 이 곳의 우리가 단어 하나면 서로 알 것으로 생각되는 그런 설명은 최대한 줄이시고, 새롭게 깨닫고 새롭게 보게 된 면을 다른 분이 알아 볼 정도로 간략하게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적다 보면 성경 연구자가 됩니다. 그 성경 연구자가 시야를 넓히면 좋은 신학자, 산 신학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공지 |
이용 안내
공지
|
담당
|
2018.05.19
|
추천 0
|
조회 1501
|
담당 | 2018.05.19 | 0 | 1501 |
13763 |
New 총공회와 한국교회가 4번타자 왕종훈에게 배울 점.
(2)
13763
|
3공회 교인
|
2023.12.02
|
3공회 교인 | 2023.12.02 | 0 | 99 |
13755 |
교회가 세상과 다른것이 무엇이 있는가?
(16)
13755
|
회의감이들며
|
2023.11.29
|
회의감이들며 | 2023.11.29 | 0 | 181 |
13682 |
사사기3장 :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
13682
|
연구원4
|
2023.11.11
|
연구원4 | 2023.11.11 | 0 | 128 |
13598 |
회중주의와 소송 - 공회와 비교
(1)
13598
|
외부교인
|
2023.10.21
|
외부교인 | 2023.10.21 | 0 | 167 |
13566 |
목회자의 책임 범위
(1)
13566
|
목회자
|
2023.10.10
|
목회자 | 2023.10.10 | 0 | 257 |
13555 |
교역자의
13555
|
교인
|
2023.10.06
|
교인 | 2023.10.06 | 0 | 185 |
13522 |
서부교회에서 이사람이 나대는이유 교회교인을망치려나서는이유
(1)
13522
|
치기
|
2023.09.30
|
치기 | 2023.09.30 | 0 | 294 |
13517 |
물두멍과 건설구원 - 피영민의 탁월함
13517
|
독자
|
2023.09.29
|
독자 | 2023.09.29 | 0 | 147 |
13444 |
임의의 과실에 대한 정의와 실제 사례(이동-관)
(8)
13444
|
교인
|
2023.09.14
|
교인 | 2023.09.14 | 0 | 318 |
13544 |
![]()
13544
|
공회원
|
2023.10.05
|
공회원 | 2023.10.05 | 0 | 122 |
13618 |
![]()
13618
|
공회원
|
2023.10.27
|
공회원 | 2023.10.27 | 0 | 102 |
13430 |
높이와 깊이, 그리고 넓이
13430
|
공회원
|
2023.09.10
|
공회원 | 2023.09.10 | 0 | 160 |
13372 |
천국을 공회적 관점으로 생각해보니
(7)
13372
|
동천 정동진
|
2023.08.16
|
동천 정동진 | 2023.08.16 | 0 | 334 |
13360 |
총공회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
(29)
13360
|
오랜총공회교인
|
2023.08.10
|
오랜총공회교인 | 2023.08.10 | 0 | 534 |
13352 |
왕을 구한 죄
13352
|
공회원
|
2023.08.01
|
공회원 | 2023.08.01 | 0 | 215 |
13340 |
(교리, 말세론) 그 날은 단선 일정이 아니라 3중선
13340
|
연구
|
2023.07.26
|
연구 | 2023.07.26 | 0 | 255 |
13262 |
사람의 그릇 – 소망 중에 다짐하며
13262
|
공회원
|
2023.07.09
|
공회원 | 2023.07.09 | 0 | 248 |
1. 우리야 사건 때 요압은 공범
1) 요압은 공범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라고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으로 요압에게 보냈습니다. 요압은 정치적인 사람이고 똑똑한 인물입니다. 우리야를 죽이기 전이든 후든 앞뒤 정황을 살펴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라고 한 이유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의 치명적인 약점이었고 요압에게는 다윗을 언제든지 협박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게 하라고 했을 때 요압이 그 이유를 알고 했다면 요압은 다윗의 범죄에 공범이 됩니다. 모르고 했다면? 그래도 문제입니다. 우리야는 다윗에게도 요압에게도 충신이었습니다. 다윗도 알고 요압도 압니다. 그런 충신을 다윗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이라고 했을 때 요압은 다윗에게, 두 번은 몰라도 한 번 정도는 의문을 가지고 물어봤어야 합니다. 요압의 성정을 보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요압은 그냥 모른 척하고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이유를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범죄에 공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당시 요압의 입장이었다면?
당시 요압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한 번은 이유를 물어봤을 것 같습니다. 다윗에게서 이해될 수 있는 합당한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한 번쯤 더 물어봤을 것 같고, 그래도 시키면? 그때는 내가 모르는 뭔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시키는 대로 했을 것 같습니다. 이유를 알았다면? 당연히 거절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2. 압살롬 사건 때 요압은 역적
1) 압살롬과 요압의 관계
우리야를 죽이고 범한 죄 때문에 다윗의 집안에 골육상쟁이 벌어집니다. 암논이 아주 못된 죄를 지었고, 압살롬은 그 암논을 죽였고, 오랫동안 도망 가 있다가 다윗의 심정을 헤아린 요압의 간청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나 아버지께 인사도 못 드리고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였습니다. 요압을 보내서 해결하려 했으나 요압이 오지 않자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질러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고, 이후 치밀하게 준비해서 결국 아버지를 향해 칼을 겨누는 반역의 패륜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2) 충신 같으나 역적인 요압
압살롬의 난으로 다윗의 편에 속한 사람들이 다 피신했고, 후새의 계략으로 압살롬과 전면전이 벌어지게 되었고, 다윗은 전쟁에 나서는 대장들인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해 달라’고. 모든 군사와 백성들도 다 들었습니다.
압살롬의 군사가 패했고,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들과 맞닥뜨렸습니다. 압살롬이 도망치다가 긴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린 상태에서 타고 있던 노새는 빠져나가고 압살롬은 나무에 매달렸습니다. 왕의 간청을 기억하고 있던 군사들은 압살롬을 죽이지 못하고 있었고, 그 중에 한 사람이 요압에게 알렸습니다. 요압이 와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창으로 찔렀고, 요압의 신복들이 둘러서서 죽였습니다.
요압이 다윗의 간청을 무시하고 압살롬을 죽인 것은 압살롬에 대한 사적인 감정과 함께 압살롬이라는 인물에 대한 위협 때문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 중에서 인물도 실력도 가장 출중한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의 사후 만에 하나 압살롬이 왕이 된다면, 압살롬의 행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앞날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요압의 정치적인 계산은 그럴 수 있는 기회에 아예 압살롬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간청은, 압살롬의 패륜의 원인을 자기에게 있는 줄 알았고, 따라서 압살롬을 살려서 회개시킬 기회를 가지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왕을 반역한 역적의 죄나, 아버지에 칼을 겨눈 패륜의 죄를 묻는다면 죽어 마땅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에서 압살롬이 희생되고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에 그렇게 간곡하게 부탁을 한 것이고, 그 간청을 요압은 개인적인 감정과 정치적 이유 때문에 무참하게 짓밟고 살해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역적을 죽였지만 죽인 그 역적이 자기가 섬기는 주군의 아들이었고, 그를 살려 달라는 주군의 간청을 짓밟고 그 아들을 살해한 것입니다. 충신 같으면서도 실상은 역적이었습니다.
3) 당시 요압의 입장이었다면?
당연히 다윗의 간청대로 요압을 해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역죄와 패륜의 죄를 묻는다면 죽어 마땅하지만, 왕이며 아버지인 다윗이 그렇게 간곡하게 청을 한다면 일단 살려두고 그 다음에 살려야 하는 이유를 묻든지 해서, 처벌하는 것은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산 사람은 죽을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지만, 죽은 사람은 두 번의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3. 요압에 대한 평가
요압은 다윗의 군대장관으로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부터 나라를 세울 때, 그 이후에도 수많은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습니다. 목숨을 걸고 다윗을 위해서 충성했습니다. 그러나 중간중간 요압이 한 행적은 요압의 충성이 참 충성이라고 보기 어렵게 합니다. 자기 동생 아사헬을 전쟁에서 죽였다는 사적인 원한 때문에 다윗 몰래 아브넬을 죽인 것이나, 압살롬의 난이 진압된 후 아마샤를 죽인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원한과 야욕 때문이었습니다.
압살롬을 죽인 후 다윗이 그렇게 비통해할 때 요압은 다윗을 협박했습니다. 요압의 말이 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목숨 걸고 왕을 위해서 전쟁하고 돌아온 군사들을 패잔병처럼 부끄럽게 만들고 있으니 다윗도 잘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다윗을 그렇게 비통하게 만든 그 원인자기 바로 요압 자기이고, 거기다가 신하로서 섬기는 주군인 다윗을 협박한 요압의 태도는 용서할 수 없는 자세였습니다. 결국 요압은 다윗을 거역하여 솔로몬을 따르지 않고 아도니야를 따랐다가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충성이 중요하나 참된 충성은 바른 중심이 들어가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목숨 걸고 충성한다고 해도 그 중심이 잘못되면 충성이라 할 수 없고 결국 탈선의 길로 가고 마는 것을 요압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나 교인이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를 냉정하게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1. 우리아 건
다윗이 충신 우리아를 죽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요압입니다. 오히려 왕이 죄를 지으려고 하면 막아야 하고, 안 되면 최소한 협조는 안 해야 했습니다.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이 죄를 지으려고 할 때 할 일.
2. 압살롬 건
다윗이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아들 문제를 요압이 잘 해결했습니다. 윗사람 스스로는 자기 입장 때문에 해결할 수 없지만 아랫사람으로서는 해결할 수 있을 때 할 일.
다윗은 요압에게 충성되고 의로운 우리아 장군을 죽이도록 시켰습니다. 요압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의로운 왕이 큰 죄를 짓는데 일조하였습니다. 죄 짓는 잘못된 명령에는 순종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요압의 평소 행동을 보면 그는 분명 그런 명령에 거부할 용기와 기개가 있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요압은 다윗의 계략대로 우리아를 교묘하게 처단하여 스스로도 죄를 짓고 다윗도 큰 죄를 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다윗은 요압이 못된 명령에도 거부하지 않고 행할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압 속에는 분명 그런 요소가 있었습니다.
2. 압살롬 사건 때 요압의 위치, 자세, 역할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 한 배은망덕한 압살롬이었지만, 그런 압살롬을 살려 압살롬이 자신의 죄를 진정 회개하기를 원하였을 것입니다. 다윗이 어려울 때부터 생사를 같이한 요압은 용맹하고 최고로 유능한 심복이었지만 다윗의 명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였습니다. 요압은 자기 위치를 벗어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강한 힘을 복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왕의 명령을 어기고 잔인하게 살해하는 데에 사용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그러한 일을 할 인간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면을 간파하고 후환을 없애도록 솔로몬에게 경계를 부탁한 것입니다.
3. 결론
내 속에도 악령, 악성, 악습에 이끌린 옛사람의 요소가 너무도 큽니다. 내 속에 요압같은 요소가 없는지 매사 두려움으로 살펴보아야 겠습니다. 겉으로는 열심 있고 충성된 종처럼 보이나 결정적 순간에 복음을 등지고 신앙의 동지를 배신하고 반역할 수 있는 요압과 같은 복수심, 증오심에 가득찬 잔혹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야 사건
- 다윗에게 보고하는 순서와 내용을 보면, 요압은 인간(겉사람) 다윗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보임
- 따라서 패전의 원인은 군대장관 요압 자신에게 있음에도 말미에 우리야가 죽은 사실을 알리므로
- 마치 ‘다윗 당신이 시킨 대로 우리야를 죽이려다 보니 패전하기까지 했다’는 식으로 패전의 원인을 다윗 ‘탓’으로 돌리고자 한 듯 함.
압살롬 귀환 사건
- 둘의 관계가 진심으로 안타깝고 애통하여 압살롬을 데려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다윗에게 충신임을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긴 듯 함
- 근거는 자신의 조언에 따라 다윗이 데려오라 할 때, 요압의 말을 보면 자신의 입지가 더 든든해졌음에 기뻐하는 내용이 있으며, 압살롬을 데려온 이후 둘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행한 일이 없어 보임
요압의 특징
- 다윗의 측근이었음에도 하나님 중심의 다윗을 본 적이 없으며 자신 생각대로의 다윗을 바라 봄 (다윗을 단순히 전쟁 승리의 왕으로 존경)
- 만약 하나님 중심의 다윗을 봤었다면 ‘충신인 우리야를 왜 죽여야 하는지’ 고민한 대목이 있어야 하는데 고민 없이 바로 실행에 옮김.
- 다윗에게 보고 한 우리야 사건과 드고야 여인 내용을 보면 요압은 기회주의자, 처세술과 목적 달성에 능한 자이며
- 겉으로 다윗에게 순종하는 것 보이나 최종은 자신의 뜻과 이익을 위해서 실행
결론 : 내 속에 있는 요압의 면모.
하나님을 믿으며 순종한다고 하지만 결국 저변에는 나의 손익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남들이 보면 신앙 선배의 가르침에 순종이라 할 수 있지만, 내가 나를 볼 때 철저히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 많습니다. 신앙이 어릴 때는 ‘왜 우리야를 죽이라’지는 지에 대해 묻고 따지고 연구하지 않고 무턱대고 ‘위대한 왕 다윗이 시키니까’하는 식의 순종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매사 말씀을 기준으로 연구하고 기도하고 묻고 따져가면서 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점검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안할 때는 문제가 없으나 어려움을 당할 때 자유케 해야 할 신앙이 역으로 걸림돌 되고, 진도한 신앙 사람을 ‘탓’ 돌리며 악을 더 발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훗날까지 계산하며 만사 말씀으로 거룩과 구별 생활을 하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는 악을 행할 때
다윗의 부탁을 받은 요압이 우리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다윗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삼하14 장으로 이어지는 압살롬 사건 때 다윗이 압살롬을 위한 구원의 긍휼을 부탁했을 때 요압은 왕의 명령에 불순종합니다.
두 사건과 이후에 요압의 행동들을 살펴보면 요압은 다윗 왕에게 순종한 것이 아니라 자기감정과 자기 생각과 자기 유익에 따라 행동했을 뿐 하나님과 다윗 왕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하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소 자기의 입장에 따라 움직이는 요압이니 당연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섬기는 우리야는 쉬운 상대가 아니고 곱게 보일 리도 없기에 다윗이 부탁할 때 우리아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요압의 요소가 우리 속의 인간지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하나님 모시고 현실을 다스릴 때는 거머쥐고 이용할 수 있으나 감정에 피동되어 현실을 상대하게 되면 인간지식을 통제할 수 없고 하나님 모시는 요소가 오히려 인간지식에게 삼켜지게 됩니다.
- 칼, 죄를 짓는 처리(손발)
2. 압살롬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가?
- 마음을 살펴 원하는대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주는
3. 신하, 교인으로서 시킬 때 해야 되는 입장에서
1)다윗의 부탁을 받고 요압이 가진 위치와 자세와 역할
- 위치 : 다윗의 손발
- 역할 : 다윗의 마음대로 움직여주는
- 자세 : 주인을 위해서, 주인 시키는대로 > 맹종
2) 압살롬 사건 때 요압이 가진 위치와 자세와 역할
- 위치 : 다윗의 마음
- 역할 : 다윗을 움직이게 만드는 역활
- 자세 : 주인을 위해서, 주인을 기쁘게 > 순종
결론
신하, 교인, 시키는대로 해야되는 위치에서
- 말씀대로 명확하게 시키는 것은 순종
- 말씀과 명확하게 다르면 호소하며 순종치 못함.
- 말씀에 애매하면, 잘 모르면 물어보고 의논하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진행 여부를 좀 지켜보고 판단
요압의 위치는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바로 잡으려면 바로 잡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왕의 잘못을 되돌리려고 하지 않고 왕의 명령에 따랐습니다
또 압살롬에 대한 요압의 일 처리를 보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왕의 마음도 얻고 압살롬의 마음도 얻기 위해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는 일에 앞장서 일을 했으나 막상 왕이 압살롬의 얼굴을 보지 않자 압살롬을 무시합니다.
압살롬의 반역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윗왕의 당부는 저버리고 자기 감정을 앞세워 압살롬을 원수로만 상대하여 구원의 기회를 절단해 버립니다.
겉으로 보면 요압은 다윗왕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일등공신처럼 보이는데
요압 속에 자기중심으로 인하여 다윗의 나라 구원운동에 내부의 적이었습니다.
요압의 위치는 평생 다윗 옆에서 구원의 계통에 복이란 복을 다 받을 수 있는 위치였으나 자기중심으로 인하여 이 위치와 복을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불행한 사람입니다.
■ 요압의 다윗과 압살롬을 상대한 자세
-범죄공범 :다윗의 뜻에 동조, 입의 혀같이 움직였으나 우리야를 죽인 일에는 공범이 됨 >아브넬, 아마사를 죽인 일과 동일선상
※ 다윗의 행태를 자기와 같이 정당성을 가졌고, 다윗의 회개를 배우지 않아 고칠 기회를 놓침, 다윗을 자기와 같은 류로 판단
-부자지정 간파 : 다윗의 뜻을 간파하여 압살롬을 다윗으로 돌아오게 하고 중재하여 부자지간을 회복시킴 > 혈육지정, 자기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꼈을 듯.
-반역한 압살롬을 죽임 : 다윗을 모반한 압살롬을 다윗의 부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을 찔러 죽임. >다윗의 부탁에 대해 존경
하여 그 명을 지킴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모반한 원수로 상대하여 처리함.
-다윗의 압살롬 죽음에 대한 애도 : 부자지정 및 자기의 범죄(우리야 죽음)로 인한 것임을 알고 애통 > 반역자들을 목숨을 걸고
싸우는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다윗에 대한 존경이 사라짐.
-아도니야가 왕이 되도록 모의 : 이는 곧 다윗의 계통 솔로몬이 아닌 다윗과 대립이 되는 선택을 하게 됨. > 앞서 다윗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최종적으로 대립의 단계로 가게 됨.
-여호와의 장막에서 쳐죽임을 당함 : 아도니야가 월권적 밧세바에게 아비삭을 아내로 구하였고 솔로몬의 분노로 대립적 위치에
있던 아도니야가 죽었고 아비아달은 파면을 당했고 요압은 아브넬, 아마사 등의 일과 함께 죽음당함
■ 요압 관련 살펴봐야 할 부분
-다윗왕의 우리야 처분에 대해서 신하로서 하나님을 상대하는 백성으로, 신하로 왕에 대하여 간언하는 것이 마땅(신앙양심)
-다윗왕의 우리야 처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다윗의 회개에 대해서 살펴서 자기 또한 회개를 하였더면(옳은 것 찾기)
-다윗왕의 혈육지정 등 인정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같은 마음으로 살폈으면 좋았을 듯 (소망적 자세)
-인간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인식이 최종 계통에 대한 대립 곧 하나님께 대한 대립이 되고 잘못 선택함으로 죽음(항상 하나님편)
■ 신약의 오늘날 우리는
-주님을 모신 우리가 은혜의 기관, 앞서 신앙선배들을 통해 배워 감에 있어서 하나님 상대의 신인관계를 항상 우선 생각하여
죄악에는 동참하지 아니하고 의를 이루는데는 빠지지 않고 동참을 해야 하며
-요압과 같은 군대장관의 직책 신분을 가지고 있는 자가 조심해야 할 것중 설교록에 나와 있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새겨 조심을
해야 하겠다.
“교회의 큰 적”
“교회는 교회 일을 안 하려고 반대하는 그 사람보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하려는 그것이 교회에 제일 큰 적입니다.
큰 적이 그 안에 들었습니다. 공명욕, 명예욕, 권세욕 이것이 주장이 돼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것, 그것은 제 왕국을
장만하지 다른 것 장만하는 것 아닙니다’(83031630 설교록에서)
하지만 요압이 우리아를 죽인 것이 1) 지도자에게 충성하는 마음으로 한 것인지, 2) 자신의 사욕으로 실행한 것인지 그 상황만을 두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연속되는 사건을 두고 요압의 자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후속되는 사건의 원인이 되는 암논의 죄는 다윗의 죄와 유사합니다. 회개의 차이가 있으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여인을 멋대로 취하였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사적 구제로 처단한 것은 단순히 누이의 복수가 아닙니다. 왕의 허락 없이 임의대로 처벌한 것은 왕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 자체가 이미 반역입니다. 아마 이렇게 행동한 것은 '같은 죄를 지어 서로 봐주기 하는 것 아니냐?'하는 불만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가하니라"라고 요압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압살롬의 행동은 노아의 죄를 소문내어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한 함과 같이 잘못된 행동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에 대해 두 가지 입장입니다. 자신의 지은 죄로 인해 자신을 불신하는 아들의 아버지(사적 위치)이기도 하지만, 반역자를 처리해야하는 왕(공적 위치)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압살롬을 향해 마음이 사무쳐도 압살롬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으면 불러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압은 왜 압살롬을 불러들였을까? 전쟁터를 누비는 군인은 위계질서에 매우 민감할텐데, 왜 압살롬의 반역의 기미는 알아차리지 못하였을까? 이것은 알아차리지 못한 게 아니라 알아차리지 않은 것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사적 위치로만 대우했습니다(압살롬을 향한 간절함을 보고 압살롬을 불러들이도록 함). 다윗의 공적 위치는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으로 대우한 것이 아니라 동업자 정도로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압살롬이 반역자로 보이지 않고 아버지께 반기를 드는 아들 정도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압살롬이 다윗을 무시하는 것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는 것은(단순히 아들끼리 싸웠다고 표현한 요압의 사주를 받은 여인의 말) 요압도 다윗을 그렇게 무시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다윗의 가장 가까이에서 다윗의 허물만 보고 다윗의 회개와 다윗의 의, 하나님과 동행은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요압이라면 우리아를 죽인 것도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에게 충성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죄는 본받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세운 지도자로 끝까지 대우했습니다.
이와 달리 요압은 다른 사람 보기에는 다윗의 최측근 다윗의 충신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다윗의 죄는 본받으면서 다윗을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로 모시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며 자기 사욕을 채우는데 이용하였습니다.
요압은 아무도 자기보다 더 다윗의 의중을 알고 충성을 다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했고
다윗도 이런 요압임을 알지만은 주님의 일에 필요하니까 사용했습니다.
요압과 압살롬의 악행을 욕하기 전에, 그때라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지금 어떤 충성과 노력을 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더 필요했을까?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더 해로웠을까? 주인의 소원을 원대로 이루는 실력을 가지면서도 자기 중심이 없이 깨끗하게 충성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