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자녀 이름 짓기

작성자
교인
작성일
2022.06.29
아이 이름 짓기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시다. 문제는 누구를 통해서냐다. 참고로 백목사님은 자기 자녀들의 이름을 누구에게 부탁하셨을까? 아니면 손수 지으셨을까? 성경에 인물들은 부, 모 누가 그 자녀들의 이름을 지었던가? 공회적으로 이름은 그 의미가 있으니 각 교회 주의 종이나 공회 인도자인 하나님의 종에게 부탁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이었던 것 같다.

인식을 전환해 한번 정도는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자녀를 10달 동안 자기 몸 안에서 키우며 아이와 동고동락하는 잉모(산모)가 어찌 보면 자기 자녀를 가장 잘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치 환자를 위한 기도도 필요하나 아픈 환자 본인이 가장 간절하고 그 다음은 가족일 것이다. 환우를 위한 기도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간절성의 정도를 지금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 이름 짓는 것도 이제는 부모가 한번쯤 짓는 것에 동참하거나 직접 참여해 보는 것도 부모의 생후 아이에 대한 책임성, 목회자의 입장에서 내가 스스로 해 본다는 부모 신앙의 자립성을 위해서라도 한번쯤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니면 과도기적으로 부모에게 먼저 아이 이름을 지어보라 하고 그 다음 목회자도 기도해 보고 아이 이름에 대해 주님의 뜻을 찾아가는 과정에 상의를 하거나 함께 고민해 보자 그러면 아이 이름을 둘러싸고 목회자와 교인간의 또 다른 의미의 뜻 깊은 교제가 되지는 않을까?

아이 이름 짓는 것, 쉽게 목회자에게 부탁하고 그냥 기도하며 기다려도 되겠지만 부모가 직접 기도하며 아이 이름을 생각해 보는 한편 목회자와 함께 고민해 보는 이런 과정들을 거치며 아이에게는 보이지 않게 이름, 그 이상의 존재 의미가 벌써부터 부여되는 것이니 이름 짓는 이런 과정 또한 탄생 직후 또 하나의 귀한 선물이 아니겠는가? 자문해 본다.

청출어람의 시작은 목회자의 역할 분담과 앞선 자의 삶을 본대로 들은대로 한대로 따라해 보는 흉내에서 기인하고 출발되는 면이 적지 않다고 필자는 본다.
전체 5

  • 2022-06-30 02:59
    목회자의 짐을 덜어드린다.

    백목사님의 결혼식 주례를 과감하게 중단시킨 장본인, 선견지명이었다. 목회자의 짐을 덜어 드리는 것 그리하여 오로지 설교 말씀 연구에만 집중하시도록 심방까지도 대표를 세우는 교회, 목회자가 설교 준비에만 전념하실 수 있도록 나머지 모든 교회 행정은 각 교인에게 분담되어 있는 교회 그런 교회는 목회자를 주님이 언제 불러가셔도 사후 훗날이 걱정없이 빈자리없이 잘 돌아가게 되어 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교회 만드는 것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했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꿈꾼다.

    내가 죽어도 처자식은 신앙 생활 잘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부모인 우리가 빠져도 자녀들은 험한 세상 풍파 음란하고 죄 많은 이 속에서도 잘 헤쳐 나갈까? 직장에서 내가 빠져도 회사는 잘 돌아갈까? 평소 내가 할 일을 줄이고 살아 생전에 사람을 길러 놓아야 겠다는 이런 사고가 들어 가정도 교회도 공회도 사후 빈자리없이 주님을 어디까지든지 따라갈 수 있는 온전한 독립신앙의 깃틀을 마련하게 된다.

  • 2022-06-30 04:11
    대속의 정신은 원수까지도 화목케 한다.

    퇴근 후 남편이 좀 힘들면 아내는 그만큼 편할 수 있다. 퇴근한 남편을 좀 쉬게 하려고 아내가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남편의 저녁 쉼은 그 가정의 화평과 거룩의 밑거름이 된다. 내가 조금만 더 힘들고 굳은 일을 대신하면 직장에서도 다른 동료의 업무가 좀 더 편하다. 우리에게는 대속의 정신이 늘 불타 오르고 있다. 대속은 대신한다는 희생이요 그 중심은 영혼구원이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죽은 기능을 살리기 위해 내가 뭘 좀 더 희생할까? 이런 마음을 늘 속에 염두해 두며 현실을 상대한다면 부부싸움도 교회내 교인간 다툼이나 완력도 현저하게 줄 것이다.


    어제 새벽 말씀처럼 믿은 세월이 오래되면 고약한 심보가 늘 있게 마련이다. 좀 안다고 무례하고 건망져 오만불손한 태도가 온 교회 공회 전체 안팎의 물을 흐린다. 목회자가 전체를 판단하여 처리하실 일인데 내가 척 나서서 처리해 버린다. 월권이다. 얼마나 무식하고 예의 없는 행동인지 모른다. 예배 설교 시간에 그 사람 들으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데도 정작 본인은 아니라며 안심한다. 나는 그럴리 없다고, 귀구멍이 막혔으니 입만 아프고 어이없어 더 이상 말할 힘도 없단다. 이 글을 적고 있는 본인 얘기다.


    pkists.net 이 개설된 이후 최근에 글을 가장 많이 적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지난날 회개를 만회하고자 연구소 일을 안하겠다며 버티다 주님께 된통 징계의 회초리를 맞고 있는 지금도 정신을 못차리고 정신없는 말, 헛소리를 글로 적고 있다. 중단해야 하고 자중해야 하는데 한번 고삐 뿔린 망아지는, 브레이크 고장난 폐물은 결국 폐차장과 도살장만이 답이다. 주님이 하루 속히 데려가시든지 제명을 당하든지 제 발로 탈퇴를 하든지 셋 중 하나 외에는 길이 없어 보인다. 강단의 설교 말씀도 두렵지 않는 이런 안하무인,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이런 자를 두고 성경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복없는 자라고 일컫는다.


    설교록 편찬도 발행, 출간도 모두 한사람의 체계적인 위계 질서 가운데 엄연히 충분한 소통과 검토 평가 가운데 알아서 각자 담당하는 단일 편집부가 있듯이 글 쓰는 것도 질서가 있어야 하는데 야밤에 본드 흡입하고 져 죽을 줄도 모르고 거리를 활보하는 광인처럼, 이런 자아를 죽이려면 필자는 이곳을 방문하지 않아야 한다. 민폐는 지금까지의 낙서로 충분하다. 자격지심이 아닌 객관의 평가가 그러하다. 오죽 했으면 지인이 날 못 믿어 입 다물고 가만 좀 있으라 할까! 최후 발악처럼 목 끊긴 닭의 마지막 날개짓처럼 뭐 선을 격발케 한답시고 담당님을 흉내내 성장한다는 미명아래? 이게 무슨 헛소리냐고 무슨 개짖는 소리도 아니고! 자칭 광대노릇을 했으나 결국 여호수아 40년 광야세대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정작 본인 구원은 없는 잇몸 역할만 하다 생을 마감하는 이런 사람.


    시간이 없는데 자기 교회도 못 돌아보면서 자기 가정도 못 챙기면서 무슨 공회 일이냐고 얘가 없으니 저러지 시간이 남아 도니까 그렇지 자녀가 한 네 다섯 되면 글 쓸 시간이 어디 있냐고 그러니까 주님이 자녀를 더는 안 주시지. 지금 교회 주일학생 한명이라도 더 전도해서 길러야지 지금 뭐 하고 있냐고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사람의 악담이 아니라 실상, 주님이 지인을 통해 구구절절히 애간장이 녹토록 지속적으로 외치고 계시는데도 필자의 전화기는 지금 일방통행이다. 반신불수, 중병, 대형사고가 나기 전 질주를 멈춰야 하는데 길이 안 보인다. 남 흉보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필자, 본인 얘기다.


    솔직한 심정이다. 속내는 가급적 될 수 있으면 감춰야 한다. 구원의 유익보다 손해가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죽을만큼 숨이 턱턱 막히면 할 말은 해야만 한다. 하다 못해 남이 못해 주면 자기가 직접 나서서 스스로 자아비판을 해야만 하는 것이 공적인 자리에서의 회개의 첫걸음이라 생각된다. 부공3 불목의 원인은 접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제가 죽어서 제 하나가 없어져서 이 불목이 해결될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겠습니다. 주님! 뉘시오니이까? 무엇을 할까요? ....... 묵묵부답, 11년째 답변이 없다. 선교사가 되어 한알의 썩어져가는 밀알이 되라 주님은 권면 하시는데 나는 그럴만한 그릇이 못된다는 이런 글이라도 안 적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다. LA교회 파송도 대단히 중요한데 생사를 다툴만큼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벼랑 끝, 더 시급한 교회도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해 주셨으면, 떼 쓰는 것이 아니라 간곡하고 애절한 요청이온데 글 표현상 예의 없는 부족들은 넓은 아량으로 양해를 구합니다.

    죄송한 마음을 마지막으로 담아 보며.

  • 2022-06-30 18:12
    * 공회식 이름
    1. 교회
    이름에도 공회식이 있을까? 식은 없으나 분위기는 있습니다. 교회의 이름은 '지역' 이름을 제일 먼저 찾고, 이미 그 이름의 다른 교회가 있으면 혼선을 피하면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해 '창동 : 거창 동' '창북 : 거창 북' '부산 서부' '서진' '동부' 등으로 하거나 성경의 '강'이나 '산'을 표시하기 위해 '동천' '인산' 등으로 짓습니다.

    2. 사람
    사람의 이름은 성경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피합니다. '성령' '성자' '성경' '복음' 등으로 짓게 되면 사람의 잘못이 있을 때마다 주변 모두에게 그 이름을 비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모르고 지은 이름은 늘 조심하면서 짓고 새로 짓는 이름은 이런 면을 조심하며 혹시 중간에 평소 사용하는 이름을 하나 더 마련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이름을 따로 가지는 경우는 많습니다.

    3. 최근에 해외 여행이 많아 지거나 영문 표시가 흔해 지면서
    우리의 교회 이름은 그렇게 사용할 일이 없어 보이나 개인의 이름은 여권이나 해외와 오가는 자기 소개 등을 위해 영어식으로 표기를 할 때 '경 > Kyeong' '명 > Myeong' 식으로 한글식 영문 표기에 엄하면 평생 나의 이름을 외국 사람이 부를 때 애를 먹습니다. 우리도 외국인 이름이 너무 어려우면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고 나중에 잊어 버립니다. 이름을 지을 때부터 영어 표기도 생각하며 지을 때로 생각합니다.

    우리 말로 읽을 때와 영문 표기를 할 때가 비슷하지 않으면 '여권법'에 따라 받아 주지 않습니다. 이름에 '신앙의 소원'을 담되, 일반적으로 평범하게, 그리고 사용하기 좋으면 좋겠습니다. 공회는 이름을 두고 '너무 이상'해서 남의 눈에 띄는 것은 신앙의 평소 원리에 따라 피하기를 권합니다. 예배당도 교회라는 표시가 크게 나지 않도록 짓고, 교회 차량도, 목회자의 복장이나 평소 생활도, 교회의 각종 명칭이나 모든 것을 그 내용에 중점을 두고 그 외부 표시에서는 주변에 묻힌다 할 만큼을 권합니다. 좋게 말하면 생활화 일반화 보편화에 담긴 깊은 뜻이 있습니다. 막상 환란을 닥치면 외부의 표시 때문에 자기 신앙 이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어 내부에 들어 있는 신앙이 내려 앉습니다.

    피하지는 않으나 깃발을 들고 나를 향하라 할 정도는 과하다는 뜻입니다. 일제 신사참배와 6.25와 해방 된 이 나라 우리 사회 속에서 수 많은 세월에 갖가지 고난을 홀로 거쳐 온 경험을 모두 반영한 부탁입니다.

  • 2022-07-11 07:30
    백 목사님의 자녀들 이름의 경우
    첫째 '백도광'의 성함은 장남 스스로 신앙의 의지를 가지고 이름을 바꿨다고 전해 집니다. 사실로 보시면 될 정도입니다. 원래 이름은 '상인'입니다. 호적에도 어디에도 이런 표시는 없습니다. 다만 집안의 사촌들 이름이 '재인'이고 도평 백 씨 집안의 같은 항렬에 목회자인 '차인' 성함도 있으니 참고할 수 있습니다. 둘째 순희 자녀 분까지는 불신 시절에 지은 성함입니다. 세째 은희 성함은 믿은 직후의 이름이고 도진 도충 도영 성함들은 모두 '도, 道'가 있어서 쉽게 신앙의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손주들 이름 중 최창근 최창원은 창12장의 복의 근원으로 목사님이 지었고, 영선 영신 영수 영헌 영호 등의 손주들 이름을 보면 목사님의 아들 계통은 마치 '영'이라는 글자가 항렬처럼 사용 되나 전부는 아닙니다. 막내 가정의 동진 동신 동화의 이름은 '동방의 진리' '동방의 믿음' '동방의 화평'으로 지으며 진리를 앞에 세우고 믿음으로 따라 가며 최종적으로 평화의 세계를 추구하라고 지었습니다.

    • 2022-07-12 05:55
      직원님께 여쭙습니다.

      현재 부공3 목회자 자녀의 손주들이나 교인 3세대 자녀들이 태어나면 아이들 이름을 지어 주는 비율이 목회자가 지어 주는 경우와 부모가 지어 주는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당시 형편과 사정, 입장이 각각 달랐다 하더라도 백목사님이 손수 자녀들의 이름을 지어 줬다면 본인 믿음의 분량이 사람마다 다른 것을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5명당 1명꼴 내지는 많게는 절반 정도는 우리도 그리할 수 있고 그리 해 보는 것이 교인들의 자립신앙에도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합니다만,

      여기서 단지 이름 짓는 것만을 말하고자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신앙의 모든 면에 있어서도 '백목사님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남달라 하셨지만 우리는 못한다'고 하는 이런 주의, 이런 사상이 들어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더 많은 것들을 주고자 하시는데 본인 스스로 자기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제한해 버리고 한정해 버림으로 신의 성품이라 할 수 있는 완전과 무한의 경지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30대가 넘어서도 독립하지 못하는 캥거루족처럼 가정에서는 애물단지, 교회의 골칫거리, 공회적으로는 신앙 계대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도 고민해 봅니다. 구약 출애굽의 인도자 한 사람은 모세 한명뿐이었지만 신약에서 각 가정교회 가장은 1인 제사장의 원리의 양면도 함께 살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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