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아담의 회개 - 2. 믿음의 계통

발언
작성자
"
작성일
2022.06.27

 

아담의 회개 2.믿음의 계통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유리하는 자가 되어지고 아담에게 새로운 믿음의 계통의 자녀로

셋을 주십니다.

셋을 포함하여 아담으로 부터 내려가는 모든 자손들의 모습과 그들의 고생을 아담과 하와가 볼 때에

아담의 머릿속에 비교되는 환경은 에덴동산이었을 것 같습니다.

죄짓기 이전 하나님과 동행하며, 에덴동산의 시절을 살아 보았던 아담이 자손들의 모습을 보면

자손들의 고생을 두고, 참 미안했을 것 같고, 자손들을 향하여, 너희들은 이렇게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고 알렸을 것 같습니다.

이런 아담의 회개가 어떤 모습으로 믿음의 계통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났는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1)믿음의 계통


아담으로 부터 이어지는 믿음의 계통을 살펴 보면 

아담           130세 셋을 낳았고

셋               105세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         90세 게난을 낳았고

게난              70세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은  65세 야렛을 낳았고

야렛은        162세 에녹을 낳았고

에녹은          65세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는 187세 라멕을 낳았고

라멕은        182세 노아를 낳았고

노아는         500세 이후에 셈, 함, 야벳을 낳았습니다.

아벨이 순교를 하고 아담의 자손 중 셋이 자라며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니
130세 놓았던 셋은 믿음의 계통을 이어갈 사람입니다.

셋은 아버지 아담보다 더 빠르게 105세로 믿음의 계통의 자녀를 이어갑니다.

에노스는 이것을 90세로 더 낮춥니다.

게난은 이것을 70세로 더 낮춥니다.

마할랄렐은 아버지 게난보다 더 낮춰서 65세로 낮춰버립니다.

믿음의 계통의 자녀를 놓는 때가 점점더 당겨집니다.

​더 어릴때 더 어릴때 부터 신앙교육을 했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계통의 자녀를 이어갈 때에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것 처럼  처음부터 정해져서 태어났을까?
아니면 태어난 자녀를 믿음으로 길러보니, 믿음의 계통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가인과 같은 인물이 있는 것을 보니,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또한 앞뒤로 기록되지 아니한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게 믿음의 계통의 자녀가 빠르게 이어지는 것이 아담이 살아생전 아담이 보는 가운데 그리 되었습니다.
아담이 비록 선악과는 먹었지만 아담의 노력의 방향은 어쨌든지

믿음의 계통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이어지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앙교육이 더 빠르게 이루지는 데는 에덴동산 시절을 살았던 아담이 살아있고,

그 아담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마할랄렐은 65세에 야렛을 낳으며 마할랄렐까지는 점점 더 그 시기가 당겨지다가
야렛은 162세로 갑자가 많이 늦춰집니다.

야렛이 타락을 해서 그랬을까? 그렇게 보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두가지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있는데 하나는 야렛이 낳은 아들이 에녹이었습니다.
에녹의 하나님과 동행에는 아버지 야렛의 영향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한가지 사실은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습니다.
야렛이 자신은 162세에 에녹을 놓았는데,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놓도록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았을때 야렛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통의 자녀가 빨리 이어지기를 바랬는데

주시기를 늦게 주셨습니다. 대신 에녹과 같은 뛰어난 인물이 나왔습니다.

야렛의 아내도 기록이 되어있지 않지만 에녹을 길러낸 믿음이면

아내의 잘못으로 야렛의 믿음의 자녀가 늦어졌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오히려 한나와 같이 믿음의 계통의 자녀를 소망했지만 늦게 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으므로 믿음의 계통을 이었는데,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놓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두고 자녀교육 하기를 엘리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하듯이 신앙교육을 그렇게 므두셀라에게 에녹이 했으면 에녹의 승천은 없습니다.

에녹은 65세에 신앙의 자녀 므두셀라를 놓았고, 자기가 부모로써 해야하는 의무는

다 했기 때문에 승천했습니다.



에녹이 엘리와 같이 자녀교육을 함으로 므두셀라가 187세로 늦쳐진것이라면 에녹의

승천은 없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에녹의 므두셀라에 대한 신앙교육은 사무엘과 같이 아버지로써 해야할 역할은

​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록은 없지만, 므두셀라의 믿음은 에녹의 아내의 신앙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믿음의 계통이 이어지고, 그것이 점점 더 좁아질 수 있었던 것은 

에덴동산 시절을 기억하며 , 에덴동산 시절을 겪어 보았던 아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라멕과 노아​


노아는 의인이고, 당세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노아의 아버지 되는 라멕은 홍수전에 죽은 것으로 되어있고

홍수에 멸망 받았다 생각되는 므두셀라는 노아의 할아버지 인데

이 둘과 노아의 믿음을 비교하면 한쪽은 구원이고, 한쪽은 멸망이었습니다.

라멕이 모든 면으로 노아보다 못한 라멕인데, 노아보다 나은 것이 딱 한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라멕은 아담이 살아있던 시대를 보았다는 것이고, 노아는 살아있는 아담의 시대를 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아담을 보았고, 보지 않았다는 이 한가지 차이가 들어서 노아는 믿음의 계통의 자녀를 500세에 낳습니다.

하나님이 안주셔서 500세에 낳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노아의 선조들을 보았을 때

아무리 늦어도 187세였습니다. 의인이고, 당세에 완전했던 노아가 선조들 보다 부족했던 것은 아담을 못 봤던 것 빼고는 없어 보입니다.


아담을 본것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어 냈을까?

아담은 에덴동산을 보았고, 그곳의 하나님과 동행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이 살아있고, 전해진다는 것은 아담의 회개가 전해진다는 뜻입니다.


아담의 자손들은 에덴동산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을 보았던 아담이 살아 있을 때를 보았고 

에덴 동산의 잘못을 두고 두고 이야기 하며, 에덴동산을 그리워 하는 아담 후손들이 보았습니다.

연대 계산을 해보면 라멕과 아담은 몇십년 가량만 시대가 겹치게 됩니다.

그럼에도 당대의 의인이었던 노아보다 믿음의 계통이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시대에 따라서 신앙이라는 것은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시대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같은 사람이라도 완전히 다른 신앙을 가지게 되어있습니다.

신사 참배를 이겼던 신앙들을 오늘의 시대에 갔다 놓았다면, 그들의 신앙의 평균치는 한단계 내려 올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오늘의 어린 신앙도 그 시대에 있게 되면 신앙의 평균치는 한단계 올라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가까이 둔 사람과 죽음을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와 같이 아주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시대와 상관없이 꼭 같은 신앙을 가질 수 있어야 하지만 노아의 때도 그러 했고, 오늘도 그러합니다,


3)아담의 시대


문제는 오늘 우리의 신앙입니다.

아담을 직접 본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의외로 굉장히 많은 차이가 납니다. 노아조차 그러했습니다.

요셉 시대를 본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이스라엘의 불행을 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모세를 직접 본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도 그러 했습니다.

다윗의 시대를 보았던 노인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음으로 이스라엘의 분열은 시작됩니다.

백목사님 시절을 보았던, 살았던 분들을 하나님께서 한 분씩 불러가십니다.

그럴 때 보이는 사람으로 인하여 노선이 흔들리지 말자고 모든 것을 기록하는 곳이 연구소라 생각합니다.

기록이 소중하지만, 사람이 약해지는 것과 떠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듯 합니다.




​백목사님 시절을 살며 그 시대를 보았던 분들이 오래 사시길 바래봅니다.

백목사님의 흔적이 스쳐만 갔더라도, 그들의 장수를 빌어봅니다.

다윗 이후의 이스라엘의 잘못된 행적을 두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억하시고 은혜를 배푸십니다.

공회는 백목사님의 의를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시는 곳입니다.

그런 은혜를 끌어 오는 것이 앞선 노종들의 기도입니다.

공회에는 새벽으로 밤으로 기도의 불을 밝히는 노종들이 많습니다.

청년들이 자기들의 힘으로 오늘을 살고, 자기 힘으로 자기 앞길을 밝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그들의 주변이 환하게 되어진 것은 그들의 뒤에서 누군가 불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

세상은 70~80년대 아이들이 많다고 산아제한을 할 때 공회는 아이들을 귀하다 여기며 전도에 힘을 쏟았습니다.

지금은 노인들이 많고 아이들이 적은 시대라 세상도 아이를 귀하게 여깁니다.

아이도 귀하게 여기지만... 이번에는 백발을 귀하게 여길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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