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좋은 설교란 무엇일까? - 2.설교의 내용

연구
작성자
"
작성일
2022.06.09
​2. 좋은 설교의 내용


1).성경적인 설교


​시대별로 하나님이 그 시대에 해당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시대에 요구하시는 말씀이 가장 큰 범위입니다.

노아시대에는 방주와 7계명이었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제사가 있었고,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이 있었습니다.

노아시대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실패한 이유는, 제사를 섬기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방주가 문제였고

방주 건설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람의 딸들이 원인이었습니다.

노아시대의 성경적인 설교는, 방주는 구원이라는 것이 노아시대의 성경적인 설교였습니다.


바리새인 서기관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서 그들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그 시대에 해당된 말씀은 구주 예수님의 영접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성경적인 설교는 예수님은 구원이라는 것이 예수님 시대의 성경적인 설교였습니다.


종교개혁의 때에는 천주교 1000년의 뿌리 깊은 잘못된 교리를 깨야 하니,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 다'는 교리가 그 시대에 성경적인 설교였습니다

그 시대에도 기도 연보 주일, 다 있었으나, 그 시대에 해당 된 말씀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큰 요구가 무엇일까?

건설구원, 성화구원일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복음을 두고 시대를 감당할 말씀이라 합니다.

우리는 시대를 감당할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이 길이 제시하는 말씀의 이치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성경적인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설교라는 것은 성경적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열어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조금 접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총공회 교인들이 백목사님의 설교를 좋아하는 이유는 성경적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백목사님 설교'만' 성경적이라 하면 잘못 된겁니다.

하지만 백목사님 설교만 성경적인것 처럼 배우면 백목사님이 깨달으신 성경과는 가까워 질 듯합니다,



2)성경적인 설교를 모방하는 설교


모방이 부끄러운 일인가?

알아야 하는 사람이 모르는 것이 부끄럽고, 모르는데 아는척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모르는데 아는 척 했다가 드러나는 것은 부끄럽고 창피하고 민망한 일입니다. 

모르니 배우겠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대신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자랑할 일도 아닙니다.

모르면 배우면 되고, 배우면 가르쳐준 사람에 대해 감사를 잊지 아니해야 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를 어디까지 할 것이냐? 그것은 배운 사람이 감사한 만큼 하면 됩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모방을 하는 종교가 기독교 입니다.

아들이 훌륭한 아버지를 닮기 위하여 아버지를 따라하는 것은 권장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닮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 자기를 고쳐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다 깨닫지를 못하니, 성경적인 깨달음을 찾는 것입니다.

자기에게서 가장 성경적인 깨달음이 나옴으로 자기로부터 성경적인 깨달음을 전할수 있으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지를 못하니 성경적인 설교를 찾아 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니 설교의 내용은 자기가 은혜 받은 성경적인 설교를 그대로 모방하면 됩니다.


설교는 전하면 듣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양식이 됩니다.

나에게 양식이 부족하니 다른곳에서라도 좋은 양식을 빌려와 나에게

맡겨진 사람을 먹일 수 있다는 그 자세가 솔로몬 재판의 '친모'일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람과, 양식을 맡기실 것 같습니다.

​​

설교록을 자유롭게 볼 수 있을때, 설교준비를 할 때에는 대놓고 설교록을 배껴서 읽으라 합니다.

백목사님 시절에 백목사님이 계실때도 목사님의 설교록을 토씨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 읽었다 합니다.

얼마나 잘 배껴서 읽느냐가 좋은 설교에 기준이었다 합니다.

그런데 같은 것을 읽어도 어떤 분에게는 은혜가 된다 하고 어떤 분에게는 호통을 친다고 합니다.

그런 책망을 받아 가면서도 백목사님 설교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은 백목사님 설교가

성경적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백목사님을 알던 사람들이 공회를 찾아오는 것은

공회 교리와 공회의 성경적 깨달음이 좋아서 모이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설교의 내용이 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맛이라도 지키면 단골이라도 남아있는데 그 맛을 잃어버리면 단골들 마저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골목안에 단골장사해야하는 맛집이 어느날 김밥체인점 처럼 메뉴를 수백가지로 늘리면 단골마저 떨어집니다.

거기에 김밥 체인점의 가격 경쟁력은 못 따라 갈 것이 뻔하니 죽도 밥도 안되고 맙니다.

그런데 그리 가면 살길이 있을것 처럼 보이니 기어코 그리 가봅니다.

그리고 돌아올때는 단골들 마저 다 떠난 상태로 돌아오게 됩니다.


백목사님 설교, 백목사님 교훈이 완전인가? 완전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대를 향해서는 오늘의 시대에 필요한 말씀입니다.

모방을 통해 말씀의 사람이 되어지고  그 위에 '자기'만의 깨달음이 하나 더 해진다면 더 나은 설교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부족하면 모방으로 배우고, 모방을 통해 배운 말씀의 사람이 되었으면,

그 위에 하나를 더 하면 반석위에 세운 집이 될 것인데,

모방이라는 반석은 없이 집만 지으려 하니, 쉽게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저작권을 두고 안타까운 것은, 

백목사님의 설교와 교훈을 더 넓게 더 많이 퍼트려 달라고 지원을 해 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는 실제가 든든하기 때문에 많이만 전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수없이 많은 감사 인사들이 백목사님의 자녀분들을 향하지 않았을까? 

세상 불신의 경영학적으로 보았을 때도 자기 것이 자신있고 정말 좋으면 무료로 많이 퍼뜨립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카카오 같은 대기업이 장사를 하는 방법입니다.

1000만원은 100프로 강제로 빼앗아 차지 해 봐야 1000만원입니다.

1000억원은 0.1프로만 자원하는 사람에게 받아도 1억입니다.

모방의 길조차 막아 놓은 것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발전과 자기 앞길을 막는 일 같습니다.


3)성경 말씀대로 되어진 설교대로 살아본 사람의 설교


교인이 한번 설교했을때 의외로 은혜가 있을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인이 목회자로써 설교를 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교인이 설교를 통해 90의 은혜 끼쳤다면 그 교인이 목회자로써 설교를 하게 되면 10~20넘어 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번만 잘하는 것과 365일 매일 잘한다는 것은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그 이유는 실행에서 차이가 납니다.

교인은 한번 설교를 위해 몇일을 몰두를 하고 준비를 하고, 자기 준비한 말씀대로 실행을 합니다.

적어도 목회자 보다는 설교 준비의 기간이 깁니다. 설교 준비가 아니라도

교인은 평소에 드문 드문 지나가는 깨달음만 잘 주워 모아도 설교 분량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는 오늘 실행한 말씀으로 내일 전해야 합니다,

수요일 금요일은 오늘 낮에 실행한 것으로 저녁에 전해야 합니다.

​동시에 주일에 전할 말씀은 따로 연구하며, 실행속에 준비해야합니다.

교인의 설교 준비와는 실행의 '밀도'가 다릅니다.

또한 공회 목회자는 설교와 목회를 위하여 퇴로를 끊어놓고 시작을 합니다.

교인은 물러날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목회자에게 더 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면으로 본다면 공회의 목회자들은 다들 대단합니다.

거미가 거미줄을 줄줄 뽑아내듯이 설교가 그냥 뽑으면 나오는 것 같지만

공회 목회자의 설교 이면에는 매 현실 마다 치열한 전투를 해보고 자기를 바로 길러보고 전하는 목회 설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의 말씀이기에 하나님이 열어 보여주셔야 합니다.

전하는 사람의 언변과, 외모가 아무리 출중하다 할찌라도, 하나님으로 부터 공급되는

공급이 없으면 사람의 감정은 움직여도, 말씀의 역사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열어보여주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좋은 것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은 어떤 설교에도 은혜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복 됩니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열기 위해서는 전하는 사람이 하늘의 하나님의 마음부터 열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여는 것은 전하는 사람의 평소 말씀대로 실행입니다.

설교는 말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전하는 사람이 그대로 살았느냐가 어렵기 때문에 

설교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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