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작은 시작, 큰 역사 - 나아만 집 여종의 신앙에서

발언
작성자
공회원
작성일
2022.04.26

작은 시작, 큰 역사 - 나아만 집 여종의 신앙에서

 

 


1. 역항적 신앙의 성향

 

백 목사님 생전 공회 교역자 중에는 교역자 되기 어려울 만한 분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인품도, 학벌도, 경력도 사회에서 말단이라 할 만한 분들이 백 목사님을 만나 교역자가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교회 수위 하시던 분, 막노동하던 분, 자갈치 시장에 리어카 끌고 장사하던 분…

심지어 주먹세계의 조직에 몸담고 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백 목사님을 만나 귀하고 귀한 위치인 교역자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인데 백 목사님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물론 세상 어디 가도 인정받고 대우받을 만한 학벌과 인품과 실력을 갖춘 분도 많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백 목사님은 이치를 연구하기 위해서 여러 종류의 생물을 기르셨습니다.

새도 길렀고 물고기도 여러 종류를 기르셨는데,

물고기 중에 가물치가 특히 기르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가물치알을 사 가지고 와서 부화시켜 길러 가지고 알 사 온 수족관에 도로 갖다주신 적도 있습니다.

설교록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백 목사님의 역항적인 성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왜 안 되는지, 되는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고 연구하면서

기어코 되는 길을 찾고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정주영 회장이 자주 했던 유명한 말이 ‘해 봤어?’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일개 회사 회장 정도를 감히 감히 백 목사님께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각 분야의 대인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성향은, 뭐든지 남이 가는 대로 그냥 따라가지 않고

옳은지 그른지, 가야 될 길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고 따져서,

자기가 이해되고 판단이 되어야 비로소 움직이는, 신앙의 구별성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2. 역설적인 경우

 

예수님 초림 당시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지내시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그럴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은 너무도 당연한 말씀이었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2-13).

알고 보면 비판하는 그들이 무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설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사가 의사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병이 있고 환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병이 없고 환자가 없으면 약도 필요 없고 의사도 필요 없고 병원도 필요가 없게 됩니다.

군인은 전쟁을 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군대 중에 좋은 군대는 전쟁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군대라고 합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일본의 연합함대 야마모토라는 사령관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정말 강한 군대가 있으면 그 나라는 전쟁이 날 리가 없습니다.

지금 미국을 침략하려고 생각하는 나라는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정말 실력 있는 의사라면 환자가 없어야 하고 최소한으로 줄어들어야 정상입니다.

경찰이 정말 경찰다우면 범죄자가 줄어들고 없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했고 주님이 오셨고,

죄로 인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받은 구주 예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환자가 있기 때문에

의사는 그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 가치를 인정받고 대우도 받고 돈도 많이 벌게 됩니다.

범죄자들이 있기 때문에 경찰이 있고 검사와 판사가 있고 대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죄인이 좋고 병이 좋고 범죄가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다 아는 상식입니다.

역설적인 이런 일들이 세상에는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3. 지혜 있는 자에게는 숨기시고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11:25-26)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세상의 잘난 사람들, 세상에 큰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신다 하셨고,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 하셨습니다.

어린아이같이 순전하게 순종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을 전부로 삼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시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작은 민족이라 했습니다.

가장 작은 민족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셔서 하나님의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종으로 팔려서 애굽에 갔지만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께서 들어 쓰셔서 애굽 나라 총리가 되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큰 토막을 담당했습니다.

 

다윗은 일개 목동 초군이었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과 연결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들어 쓰셔서 만왕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의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역항이기도 하고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4. 작은 시작, 큰 역사-나아만 집 여종의 신앙

 

열왕기하 5장에 아람 나라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고침받은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일의 시발점이 되는 여종은 사마리아에서 사로잡혀간 작은 계집아이였습니다.

‘작은 계집아이’라고 했으니 나이가 많아 봐야 14-15세 정도 되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적국에서 끌려온, 아무 힘 없고 빽 없고 가진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작은 여자아이가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라고 한,

이 작은 여자아이의 말 한 마디로 천형이라 불리는 불치병 문둥병이 고쳐지는 기적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여종을 둘러싼 주변을 여종과 대비해 보면 극과 극,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여종이 섬기던 주모는 나아만 장군의 아내입니다.

일국의 대장군의 아내이면 그 나라 여성 중에는 최고 엘리트일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아람 나라를 구한 영웅입니다.

 

아람 나라 왕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을 벌벌 떨게 만든 대국 아람 나라 왕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등장합니다.

하나님 백성의 나라 왕이지만 믿음이 없으니 아람 왕의 편지를 받고 벌벌 떨었습니다.

 

엘리사가 등장합니다.

엘리야를 이어서 그 시대를 감당했던 위대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셔서 요단강을 움직였고 나아만의 몸에 있던 문둥병 균을 박멸해 버렸습니다.

 

만유주 주권자 하나님이 움직이시고,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움직이고,

두 나라의 왕이 움직이고,

일국의 대장군과 그 아내가 등장해서 이루어지는

 

지극히 큰 역사의 출발이

지극히 작은 한 여자아이의 말 한 마디에서 비롯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시작인데 큰 역사입니다.

생명 있는 신앙 세계는 이런 일들이 참 많습니다. 요셉이 그랬듯이, 다윗이 그랬듯이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의 신앙은 작아도 이렇게 큰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는 오늘도 유효합니다.

그때의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의 시작은 작은 점 하나 정도에서 출발합니다.

생명이기 때문에 자라면 그 존재의 종류에 따라서 얼마든지 커집니다.

어떤 나무는 자라면 수십 미터 위까지 뻗어 올라가며 사방으로 가지를 뻗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위대한 인물도 그 생명의 잉태는 작은 점 하나 정도의 크기입니다.

무엇이든 생명 역사의 그 출발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작고 작아도 하나님과 연결만 되면

얼마든지 큰 역사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생명 있는 신앙의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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