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다다익선의 기독교

발언
작성자
공회원1
작성일
2022.04.15

다다익선의 기독교

 

 

1. 평등을 부르짖는 세상

세상은 세월 속에 늘 변합니다. 세상의 변화는 사람의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변함에 따라 세상이 변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자연환경의 변화도 물론 있지만 주된 원인은 사람입니다.

오랜 세월 세상은 양육강식의 세상이었습니다. 힘 있으면 뺏고 올라가고 주인도 되고 왕도 되고, 힘 없으면 뺏기고 종으로 살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동서양이 따로 없이 어디나 그러했습니다. 이에 따라 신분의 계급이 뚜렷했고, 신분에 따라 사람도, 권세도, 부도, 명예도 많은 차별이 있었습니다. 서양은 봉건주의로, 조선은 반상의 신분 계급의 차이로 500년을 이어 왔습니다. 상놈으로 잘나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며 반역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결국 대세에 밀려 실패하고 비참하게 죽고 마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수천 년 양육강식으로 그냥 그렇게 살던 세상에 대략 100여년 전 공산주의라는 사상이 생겨 사람들은 평등을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겉모습이 너무 번지르르하니 반세기 동안 세상을 거의 절반을 점령하는 정도가 되었다가 실제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지금은 공산주의는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북한을 포함한 몇 나라가 가지고 있지만 무늬만 그럴 뿐 실상은 자본주의가 세상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한번 먹어보면 맛을 잊을 수 없게 됩니다. 자유를 맛보고 나면 자유를 뺏기느니 죽음을 달라고 외칩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고,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는 말이 담긴 동물농장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말이지만 군중은 어리석어서 다수가 그렇다 하면 그런 줄 알고 쓸려 가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못 박을 때도 그랬고, 사도 바울을 죽이겠다고 연극장에 몰려든 사람들도 태반이 어찌 모였는지도 모르고 모였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광우병 광란도 있었고, 촛불도, 태극기부대도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이 한번 세상을 쓸고 난 다음 사람들 머릿속에는 ‘평등’이란 두 글자가 박혀 있어 지금은 미국 같은 자본주의 종주국 같은 나라도 평등을 외면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자본주의가 다 점령하고 있지만 옛날 자본주의와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내놔서 없는 사람에게 줘야 하고 안 내놓고 안 주면 죄인처럼 되고, 없는 사람은 없는 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있는 사람의 것을 반강제로 뺏다시피 하여 가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어찌 보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절충된 듯한 전혀 새로운 체제의 세상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많이 가지고 올라가고 성공하고 잡게 되는 것이고, 게으르고 무능하면 뺏기고 내려가고 종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렇게 되는 것이 정상인데, 이런 지극히 당연한 정상적인 일들이 다 뒤집어져서 상식이 없어지고 비상식이 당연시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이 말세 지금의 세상 모습입니다.

 

 

2. 기독교를 곡해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오해하고 곡해해서 세상을 향하게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기독교 사회 주의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기독교는 천국을 향하는 것인데 성경을 곡해하여 세상을 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표현은 달라도 그 중심에는 ‘평등, 공정’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정점은 종다수가결 주의입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찬성하면 그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맹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천국을 향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면도 없지는 않습니다. 민주주의의 최종은 인본주의이고 이는 하나님 유일주의인 참된 신앙의 가장 큰 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세 일곱 머리 열 뿔이 하나 되어 어린양과 진실한 자를 대적한다는 말씀 속에 이 모든 상황이 들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교회도 따라갑니다. 다수의 교인들이 원하니 교인들을 모아야 하는 목사들이 그렇게 방향을 잡게 되고, 교인들이 그런 목사를 원하니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 교수들도 그렇게 가르치고 성경을 그렇게 곡해해서 악순환으로 되풀이되며 오늘 속화된 교회, 타락한 세상의 모습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의 핵심에는 인본주의, 소위 기독교 사회주의에서 주장하는 ‘조화, 공정, 평등’이란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이란 자생력이 있는 것이고, 교회는 생명이 있는 곳이니 세상이 뭐라 하든지, 온 천하가 모가지 끊긴 닭처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달려갈지라도 생명 있는 교회, 생명 있는 믿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의 정체성을 가지고 기독교의 근본인 하나님을 모시고 천국을 향해 가야 하는데 교회들까지 전부 세상을 따라가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3. 다다익선의 기독교

성경에는 신분 제도가 엄존합니다. 빈부가 있고 신분의 귀천이 있으며 지위의 고하가 있습니다. 긍극적인 은혜 위에 각자의 받은 분량으로 충성하는 만큼 빈부도 신분도 지위도 마련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말할 것 없고 영원한 천국도 그 차이는 무한하다는 것을 고린도전서 15장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1절 이하에 므나 비유가 나옵니다. 종들에게 한 므나씩을 맡겼고 두 종은 열심히 장사하여 각각 열 므나, 다섯 므나를 남겼습니다. 한 종은 게을러서 받은 므나를 그대로 돌려주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주인은 그 한 므나마저 빼앗아 열 므나 가진 자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눅19:26). 받은 분량 다하여 충성하여 가지면 더 가지게 되고, 게을러서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도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힘은 쓸수록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것이 사람의 기능입니다.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모든 면이 다 그러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동일합니다. 충성하면 충성하는 만큼 의의 실력은 늘어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믿음으로 자라간다고도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점점 믿음의 사람이 되고, 믿음을 떠나면 점점 믿음 없는 사람이 되어 속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죄는 지을수록 더 넓고 많고 강한 죄를 짓게 됩니다. 중독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자기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항상 두 길이며 오직 한 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충성하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는 자기에게 오게 되고, 그 은혜는 곧 자기 실력이 되며 영원한 기능이 되는 것입니다.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을수록 유익하다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신앙으로, 믿음으로, 충성으로 다다익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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