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신앙의 효율과 세상의 효율

발언
작성자
공회원5
작성일
2022.04.15
신앙의 효율과 세상의 효율


효율을 선호하는 사람의 마음

효율 (效率)  : 들이는 수고에 대비해서 얻어지는 결과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모든 요소가 그러하듯 효율을 추구하는 마음 또한 타락 이전과 타락 이후가 많이 다르게 되었습니다.

​타락 이전에는 세상과 신앙이 추구하는 효율의 방향은 같았고 하나였습니다.

에덴동산이라는 세상이었지만 사실은 신앙만 있었습니다.

타락 이후에는 세상과 신앙이 추구하는 효율의 방향이 달라졌고 둘이 되었습니다.

신앙의 효율은 그대로 였는데 자기 중심의 인간으로 인해 세상의 효율의 방향이 변질이 된 것입니다.

이 두가지의 차이와 이면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

1.세상의 효율


1)속도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 전쟁을 남의 집 불 구경 하듯 실시간으로 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왕래가 그냥 빨라진 정도가 아니라, 손안에 실시간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효율의 하나의

모습입니다.

밤 10시에 택배를 시키면 그 다음날 새벽에 문앞에 택배가 도착해 있습니다. 기업이 추구하는 효율의 모습입니다.

지구 반대편을 가는데 비행기 같은 교통 수단은 반나절이면 도착을 합니다.

동시에 비행기 한대가 떠서 하늘에서 사고확율은 1100만분의 1로 사고율이 가장 낮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라 합니다.

효율적인 이동수단의 발전모습입니다.

빠르고, 편하며, 굉장한 속도로 시간을 줄이고 아낍니다.

모두가 이런 면 때문에 이용을 하고 좋아합니다. 하지만 신앙의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면도 함께 봐야 않을까 싶습니다.


속도의 이면에는 

빠른 만큼 그 무너짐도 빠르다는 것이 기본 원리입니다.

비행기의 사고율이 1100만분의 1이라고 하지만 사망율은 100프로에 가깝습니다.

손안에 스마트폰으로 터치 몇 번이면 되는 세상을 사니, 편리와 시간은 아끼는데 그것에 중독이 되어 사람의 몸도 거기에 맞춰지게 됩니다.

살다 보면 불편한 일도 있는 법인데, 사람의 몸이 불편을 이겨내지 못하는 체질로 자꾸 바뀌어 집니다.

사람의 몸이 편함에 익숙해 짐에 따라, 작은 불편에도 감사가 사라지고, 감사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원망과 불편이 감사의 공간을 빠른 속도로 채워버립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효율의 이면입니다.

 

2) 압축


인류역사를 6000년이라 보는데 5900년 간 했던 변화보다 마지막 100년에 더 압축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6000년 전체의 변화보다 최근 20년의 변화는 더욱 압축되어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거대한 공룡같은 국가나 기업은 방향전환이 어렵다는 것이 옛날의 상식이었습니다.

​요즘에는 거대한 미국같은 국가나 공룡 같은 기업들이 토끼처럼  방향을 전환하고 시대의 변화를 이끕니다.

​​

이렇게 세상의 효율을 극단으로 끌어올려 만들어놓은 물품이 요즘 스마트폰인 것 같습니다.

과거에 각기 따로 존재하던 수많은 물품들을 한 곳에 압축해 놓았습니다. 

손안에 스마트폰으로 5월 집회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이렇게 압축하여 잘 운영하게 되면 좋은 면만 있는 것 같으나 그로 인해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는 면이 있으니


​실제를 놓치고 살게 된다는 이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5월 집회 설교를 손안에 스마트폰에 놓고 볼 수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5월 집회 장소의 봄 꽃 향기. 집회 장소 새벽의 맑은 공기, 교재를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넘길때의 손의 감촉. 찬송인도 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의 감동과 설교의 긴장감은 휴대폰을 넘어 전달이

되지를 아니합니다...

말씀의 이치는 휴대폰을 넘어서 전달이 되어지지만. 현장의 분위기와 냄새와 은혜는 전달이 어렵습니다.

효율적인데,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걸 초월할만한 신앙이거나, 아니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주신 하나님의 다른 은혜가 더해질 때라면 몰라도 현장의 감촉은 전달이 안됩니다.

굉장히 효율적으로 압축을 시켜 놓은 것 같으나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게 되는 양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3)다수 


세상의 효율에 있어서 다수를 빼 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수가 모이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의 방향도 바꾸는 것이 다수입니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이 다수가 되어야 힘이 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뭐든지 집행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수에 힘을 씁니다.

기업들도 과거에는 좋은 물건을 만들어 팔기만 하다가 지금은 당장 손해를 볼 찌라도 사람을 모아야 힘이 되는 것을

깨닫고 수없는 적자를 보더라도 사람만 많이 모여 있으면 기업운영의 효율이 극대화 된다는 것을 알고 다수에 집중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1000원 짜리 물건을 사도 1명이 구매하는 것과 1만명이 구매하는 것은 단가 자체가 달라집니다.


이런 다수의 이면에는 자기 유익 앞에는 무너지는 허무함과 의외의 무지함이 있습니다.

바벨탑에 언어가 하나 바뀜으로 무너졌음과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는​ 사도행전19장 32절 말씀처럼 이런 무지함이 있는 것이 다수입니다.
세상 역사에도 그런 사건들은 많습니다.



2. 신앙의 효율


1)생명성


생명은 하나님과의 연결을 생명이라 합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은 생명이며 동시에 천국 건설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공회 반사들은 생명성 있는 특별한 모습들이 몇 있는것 같습니다. 사실 건전한 신앙의 정상적인 모습이라 말하고 싶은 면들입니다.

보통 공회 반사라 하면 토요일 심방을 빼 놓을 수 없는데 심방의 방법이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무난하게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같은 곳을 지나가며 그곳의  사람들을 전도합니다.

기본 몇년에서 수십년을 특별한 현실의 변동이나 특별한 인도가 없는 한 평생을 같은 동네, 비슷한 시간, 비슷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새로운 학생이 생기면 기존 동선에 맞춰서 동선만 추가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그곳을 수백번을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돌며 반복하다 보면

그곳에서 만나지는 사람들,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반사의 기도에도 그 동선과 만나는 사람들의 순서를 따라 기도로 심방을 더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월속에 전도 될 사람은 전도가 되어지고. 전도가 안되는 사람들도 시간 속에 그 사람을 알게 되고

불신자들도 다 아는 그 동네에서는 토요일마다 돌아다니는 유명한 전도인이 되어집니다.


굳이 일부러 걸어서만 다니지는 아니합니다.  주신 현실이라면 차량도 이용을 합니다만 

기본 자세는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드리는 방향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효율적일 것 같다 생각하는 것이

옳은 반사의 본능이며 정상적인 모습 같습니다.

화끈하게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하루 이틀 전도. 심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 보입니다.


한여름에 누구도 돌아다니지 않을 줄 알면서도 늘 심방가는 그곳과 그 시간을 지켜서 심방하며 돌아다니게 됩니다.

태풍이 불어서 사람들이 없는 줄 알고, 학생들도 못 만날줄 알면서 그곳을 똑같이 지키며 심방을 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차피 사람도 못 만날 것인데 왜 그러느냐?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고생되는 것을 찾아가는 고행주의는 아닙니다.


한겨울에 가장 추울 때 밖에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을 그 때에 심방을 변치않고 가는

​그런 모습을 우연히 본 동네 주민들의 마음속에 그런 순간은 특별하게 스며들게 됩니다.

사람에게도 그럴찐데 하나님이 보실때는 어떠할까 생각해봅니다.

한여름 아무도 못만날 줄 알면서 땀을 뻘뻘흘리며 자리를 지키는 그 반사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학생들을 보내고 싶지 않으실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때는 바쁘게 학생들을 챙기는 순간보다, 이런 순간이 점수를 더 많이 얻을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아무도 가지 않는 그 자리를 가며 찬송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반사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사고 방식으로 접근을 해 보면 아이가 없어서 전도 못한다는 말은 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도의 파종은 사람들 많은 곳에서 뿌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한분 붙들고 가는 그 전도의 걸음에서 전도의 파종은 뿌려지는 것이 전도의 효율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방편이라 생각합니다.

보이는 사람이 오고가는 것은 그 파종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과거 공회 역사관련 책들을 보면 특별한 기도의 모습들도 그렇습니다.

40년대 공회 초기 집에서 해도 되고, 교회에서 해도 되는 기도를 삼봉산 칼바위 까지 굳이 올라가서 기도를 해야할까?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천국을 향하니, 그 발걸음이 조금이라도 하나님과 가까워 지기 위하여 높은 산으로 저절로 향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나님과 단 둘만 있고 싶은 그 심정이 칼바위의 절벽의 기도 장소로 향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도 이런 사람은 붙들고 싶지 않을까? 

서부교회 70~80년대 부흥과 성공의 씨앗은 이때 뿌려졌다 생각합니다.


신앙의 효율이란 세상의 효율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극도로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알고보면 이것이 성경에 가깝고 하나님이 내신 자연에 가깝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방편이라 생각합니다.


2) 성장성


세상의 발전은 자본이 들어가고 많은 사람을 잘 이용해야 발전은 되어집니다.

신앙 성장의 효율이라는 것은 자기를 바쳐 실행한 만큼 자라는 것이 신앙 성장의 효율입니다.

세상의 공무원 제도처럼 시간이 흐른다고 신앙이 저절로 좋아지거나 자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장이라는 것은 굉장히 솔직합니다.

백목사님의 신앙 성장방법이 아는 만큼 실행이었습니다.

우리도 아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그리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자기를 드리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어른들이나 앞선 분들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녀서가 아니라, 우리보다 말씀으로 실행을 해본' 세월'과 '경험'을 존중하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의 신앙 노하우와 경험과 체험은 그 사람의 것입니다.

그것을 값을 내지 않고 공유를 받는 겁니다.


그 사람도 누군가에 은혜로 받은 것이고, 궁극은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신앙의 배움에는 비용을 내지 않지만

​돈을 내고 듣고 싶은 심정이라야 자라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일 것이고

적어도 잔소리로는 듣지 않아야 신앙의 성장이 효율적으로 되어집니다.


이렇게 지행합일의 신앙이 하나씩 자라가다 보면 어느날 독립하는 신앙과 번식하는 신앙이 되어집니다.



​결론


모든 것이 효율을 쫓는 시대입니다.

삼성 같은 기업은 세계 1등 제품들이 많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정복을 해 본적이 있었던가?

효율을 쫓다보니 극단적 건설은 되는 것 같은데... 생명이 자랄 틈이 없는 때가 되었습니다.

국가적으로 출산율이 0.8명시대가 되어서 몇십년 이내에 나라가 사라진다며 세상 국가도

 위기의식을 많이 느낍니다..

세상의 효율은 딱딱하고, 힘들고, 치열하고, 마지막에는 돈밖에 없습니다.

신앙의 효율은 부드럽고, 기쁨이 있고, 생명과 길러나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너무 바쁘게만 사는 '자기'를 돌아 볼 필요가 있는 때인것 같습니다. 

천하 사람들이 다 따라가는 세상의 효율을 우리까지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5월의 집회를 앞두고 집회 참석의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체 2

  • 2022-04-15 05:57
    글을 처음 쓰다 보니 텍스트 정리가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미리 보기 기능 같은 것이 있으면 처음 쓰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2022-04-15 12:43
    공감합니다.

    비타민A,B,C,D,E... 오메가3, 고단백 저칼로리 캡슐, 칼슘제, 등등 알약 하나로 웬만한 영양 보충은 다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00년전만 하더라도 음식, 식사가 식생활에 기본이었습니다. 이는 치아를 주시고 저작 운동을 통해 머리 두뇌가 발달하는 면은, 알약의 편리함이 못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시대적인 '보편성' 원리를 적용해 보면 시간 단축을 시켜 주는 면도 필요하나 그 편리함보다는 우선적으로 창세기 1장에 생명을 기반한 창조 원리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글 같아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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