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발언/연구

새로운 길, 찾아서 가는 길

발언
작성자
"
작성일
2021.08.18

새로운 길, 찾아서 가는 길

 

1. 좁은 문, 좁은 길

성경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좁은 문을 열고 좁은 길로 가라 합니다. 넓은 문 넓은 길은 찾기 쉽고 가기 쉽고 편하고 수월하여 찾는 사람 많으나 멸망으로 가는 길이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 좁은 길은 찾기도 걸어가기도 어렵기 때문에 찾는 이가 적다 했습니다.

문이란 새로운 시작, 새로운 출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고, 길은 그 생활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평생은 문이며 길입니다. 선택이며 선택한 그 길을 계속 가는 것이 문이며 길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은 ‘하나만 되는 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구별하고 따지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계산하고 살펴서 거기에, 그것에, 그때에 해당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찾는 것이 좁은 문이고, 찾은 그 생활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좁은 길입니다.

 


2. 신앙 노선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걸어가는 길입니다. 이 길에는 문도 있고 길도 있습니다. 현실을 살아갈 때 그 현실에 해당된, 성경 속에 담아 주신, 신앙 양심을 통해 알려주시는 하나만 되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건설구원 성화구원은 그렇게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걸어가는 신앙생활을 신앙 노선이라 합니다.

노선이란 길이라는 말이니, 길은 넓은 길도 있고 좁은 길도 있습니다. 넓은 길은 쉽고 편하기 때문에 가는 사람이 많고, 좁은 길은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찾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많지 못합니다. 좁은 길이 생명 길인 줄 알지만 우선 현실의 어려움, 수많은 형편 입장 사정 때문에 알면서도 못 가고 몰라서도 못 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럴 때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대개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과 마찰이 되어집니다. 천주교에서 루터 칼빈이 그러했고, 장로교에서 총공회가 그러했고, 백 목사님 사후 총공회 내에서의 노선들이 그러합니다. 부산공회 1, 2, 3, 4, 대구공회, 서울공회 등이 있습니다. 어느 길이 좁은 길일까? 30년이 넘었으니 환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모르는 사람은 안타깝지만 관심이 없거나 부러 모르려고 하는 것이고,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양심을 속이는, 성령을 소멸하는 훼방 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3. 새로운 길

기존의 깨달음으로 익어진 신앙의 길, 기존의 신앙 노선은 세월 속에 알려지고 많은 사람이 걸어 익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을 사는 동안 그들은 소속은 이스라엘 하나님 백성이지만 자손 대대로 애굽에서 나서, 애굽 땅에서 나는 음식을 먹으며, 애굽의 물과 공기를 마시고, 애굽의 문물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애굽 사람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일본 식민지로 불과 36년 살았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고, 지금은 일제 청산, 일본 잔재를 청산한다고 사력을 다하고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도 곳곳에 일본적인 것은 남아 있습니다. 하물며 430년을 애굽에 살았으니 아무리 유대인들이라도 그들은 뼛속까지 이미 애굽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서기관 바리새인, 대제사장으로 대표되는 그들은 이미 기존의 율법주의에 젖어 예수님을 도무지 알지 못했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기존 세력, 기득권, 환경에 익어지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천주교에서 개혁하고, 기존의 장로교에서 총공회로 새로 출발했으나 백 목사님 가신 후 30년이 지난 이 시점을 보면 꼭 같이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개혁교가 천주교를 닮아가고 있고, 총공회가 기존 장로교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기존의 신앙 노선에서 새로운 길을 가게 되면 모르는 사람들은 없는 길을 가는 것으로 봅니다. 기존에 없던 길을 가니까 의아해하고, 이해를 못 하고, 반대하고 핍박을 합니다.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 가는 것으로 봅니다. 혼자 잘났냐고 흉도 봅니다. 왕 되려고 한다고도 합니다. 영웅심이라고 욕도 합니다. 별별 오해와 곡해와 핍박이 있어도 깨달은 종들은 끝내 그 길을 갑니다. 사람과 환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 보기 때문입니다.

 


4. 찾아서 가는 길

그런데, 새로운 길을 가는 그 길은 없는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일까? 세상에 없는 것은 사람이 만들 수 없습니다. 없는 것을 만들면 창조라고 하는데 창조는 하나님만 할 수 있고 한 번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도, 모든 활동도 이미 하나님께서 만들어 두신 것이고, 따라서 세상에 발명이라는 말은 인간들이 쓰는 수식어일 뿐이고 내면을 보면 모든 발명은 발견일 뿐입니다. 신앙의 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교리는 이미 성경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성경에 담아 주셨고, 필요할 때마다 참된 종들을 통해서 밝히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교리, 깨달음은 성경에 이미 있는 것을 찾아낸 것이고,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걸어가는 신앙의 길, 신앙 노선 역시 이미 있는 길을 찾아낸 것입니다.

수많은 길이 있는 중에, 세월 속에 타락하여 변질된 것을 그냥 따라가지 않고, 옳은 길 바른 길을 구별하고 살피고 따져서 진실하게 찾다 보니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게 되고, 아무도 가지 않은 그 길은 없는 길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두신 길인데 아무도 가지 않아서 잡초가 우거지고 숨겨져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찾아보니 발견되고, 가니까 길이 되어져서 다음 사람들은 알려진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총공회라는 노선은 이렇게 발견된 것이고,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길도 이렇게 찾고 찾아 발견해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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