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참고

교계 기사로 본 ‘백영희’

교계와 일반 언론에 소개된 많은 기사 중 일부만 소개합니다.

9. 기독신문

합동 교단 백주년대회 첫 강의

성경을 정확하게, 깊고 많이 읽는 것이 설교 비결

(박희천의 백영희 평가)


홈페이지 게재 2012.5.18
통권 제    호


(‘명설교자 백영희’ – 합동 교단 백주년대회 첫 강의)

이미 두 달 전에도 교계의 큰 뉴스를 이 게시판에서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1796번, [외부] 박희천의 백영희 평가 – 크리스찬투데이 (제,관) [2] 김성도목사 2012-03-22
박희천 목사님은 평생 ‘백영희의 성경적 설교는 세계적 역사적’이라고 소개한 분입니다. 그 제자들이 국내 최대인 합동교단과 교계에 중진으로 다 자리를 잡게 되자 이제는 합동교단의 기관지도 지면의 제일 위에 큰 제목으로 관련 내용을 뽑고 상세하게 보도했습니다. 1968년 합동교단의 경북노회가 이단으로 정죄하고 합동교단과 교계가 상식처럼 인용한 것을 전면 취소하는 결과입니다. 열매로 나무를 아는 법입니다. – 행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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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신문 1면, 10면, 11면 – 2012.5.23.

(10면)

“성경을 정확하게, 깊고 많이 읽는 것이 설교 비결”

전국목사장로대회 트랙별 세미나 중 ‘설교’를 주제로 총 4편의 강의가 진행됐다. 목회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반증하듯, 박희천 원로목사(내수동교회)를 비롯해 김지찬 교수(총신대) 주승중 교수(장신대) 송태근 목사(강남교회)가 진행한 강의는 500명이 넘는 참석자들로 가득찼다.

참석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강의도 알찼고 수준 높았다. 처음 설교를 주제로 강단에 오른 박희천 목사는 ‘말씀 사랑과 좋은 설교’란 제목으로 강의했다. 박 목사가 제시한 설교 잘하는 비결은 “오직 성경을 끊임없이 읽는 것”이다. 박 목사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지만 오직 ‘성경읽기’를 통해 명설교자로 알려진 백영희 목사를 예로 들며 “성경을 정확하게 깊이 많이 읽는 것이 설교를 잘하는 비결”이라고 제시했다.

(11면)

“예수생명 회복 소망의 100년 만들자”
총회설립 100주년 전국목사장로대회 16일 폐회

2012년 05월 22일 (화) 12:01:12 강석근 기자 harikein@kidok.com

연인원 3만 1000명 참석, 통렬한 회개
22개 트랙세미나 호응 “교단 희망 봤다”

▲ “불씨가 되어 타오르게 하소서” 총회설립 100주년을 맞아 열린 목사장로대회는 총회가 새롭게 도약하는 디딤돌이 되었다는 평가다. 특히 참석자들은 다가올 100년의 소망을 바라보며 다음세대에 올바른 신앙을 물려줄 것을 다짐했다.

“우리가 불씨가 되어 불길이 타오르게 하소서. 예수생명이 우리의 비전이 되게 하소서”

제49회 목사장로 기도회 및 총회설립 100주년을 맞아 수영로교회(이규현 목사)에서 열린 전국 목사장로 대회가 5월 16일 2박 3일간의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6500여 명의 참석자들은 15일 저녁집회와 기도회에 참여하여 ‘내가 죄인이다’고 고백하고, 지난 100년의 회개가 없으면 다가올 100년의 소망도 없다면서 명예와 물질을 좋아했던 것을 깊이 반성했다. 또한 주일학교와 신학교 그리고 청장년 모임 등을 활성화 시키고, 선배들이 피 흘려 세운 한국 교회를 다음 세대에 바르게 물려줄 것을 약속했다. 특히 한국 교회의 소망은 북한 땅에도 복음이 전래되는 것이라는데 뜻을 같이하고, 주님의 도구가 되어 남북 평화통일에 기여하기로 했다.

이어령 박사(이화여대·명예석좌)는 ‘21세기 문화와 기독교’란 특강에서 “헛된 지식을 추구하지 말고 참된 지혜를 찾아 믿고 실현해야 한다”며, “머리로 생각하는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발로 이어지는 실천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피터 릴백 총장(웨스트민스터신학교)은 ‘21세기 세계선교의 새로운 지평’이란 강의에서 “우리가 증거할 것은 십자가 중심의 복음의 메시지로서 세상과 결코 타협해서는 안된다”면서 “미국 교회의 실용적인 면을 배우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사역을 감당하라”고 권면했다.

또한 둘째 날 오전부터 진행된 말씀, 목회현장, 선교통일, 문화, 다음세대 등 5개 소주제 22개의 트랙세미나는 연인원 9500명이 참석하여 매 강좌가 차고 넘쳤다. 성경을 정확하게 알고 바르게 설교하려는 말씀 강좌와 북한 관련 강의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미래 목회를 진단하는 강좌에도 참석자들이 만원이었다. 이와 같은 트랙세미나를 듣고 교단의 희망을 보았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나타내는 참석자들도 많았다.

저녁집회에서 권성수 목사(동신교회)는 “예수 회복이 없으면 100년 후가 없다”며, “뼈를 깎는 각오로 예수생명의 열정을 회복하여 복음의 생명수가 유유히 흘러가는 교단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특히 둘째 날 저녁집회 후 참석자들은 박성규 목사(부전교회) 인도로 기도합주회를 갖고 장자교단의 교세만 자랑하고 허세를 부린 것을 통렬히 회개하며 세상 쾌락을 버리고 주만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또한 목사장로대회를 계기로 새 생명이 되어 한국 교회에 소망이 되고, 북한과 세계선교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는 청지기가 될 것을 다짐했다.

또한 참석자들은 2013년 부산에서 열리는 제10회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개최를 반대하는 교단의 입장을 밝히고 성명서를 채택하여 발표했다.

농어촌교회와 개척교회 목회자 초청 일환으로 마련된 누리마루 만찬과 대마도 선교기도회도 성황을 이뤘다. 360여 명이 참여한 대마도 미우라 해변 기도회에서 일본 나가이 아끼라 목사는 “일본 복음화를 위해 한국 교회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요청하고, “동북아 국가가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여 세계로 나가자”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일본을 미움의 대상이 여길 것이 아니라 사랑의 나라로 생각하고 복음의 꽃이 만발하도록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한편 총회설립100주년 전국목사장로대회는 강사 29명, 순서자 103명, 연인원 3만 1000명이 참석하는 기록을 세웠다.

8. 크리스챤 투데이

[설교를 말하다 ⑧] 내수동교회 박희천 원로목사
65년간 성경 670번 읽어도… “알 수 없더라”는 고백

(박희천의 백영희 평가)


홈페이지 게재 2012.3.22
2012.3.28 통권 제514호


발췌문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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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께서 최고로 꼽는 설교자는 누구입니까?

“고 백영희 목사님 말 못 들어봤지요? 저는 신학생들에게 백영희 목사 설교를 모르고 설교학을 논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세상 뜬 지 20~30년 됐는가. 거창의 시골에서 자라신 분이고, 이 분은 초등학교도 못 나온 분입니다. 고려신학교 밖에 못했지요. 그런데 예수 믿고 나서 거창 산골짜기에서 한글 성경을 죽어라고 읽은 거에요. 나는 백영희 목사님 설교를 많이 들었는데, 백영희 목사님 설교는 전국적이 아니라 세계적입니다.

그분의 설교는 무엇인고 하니 오늘 목사들의 설교가 나는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제 소원은 ‘설교는 자살을 하러 가던 사람이 자살을 하러 가다가 마지막으로 예배당을 들려보고 가자. 예배당에 들렀다가 설교를 듣고 내가 왜 죽어? 이렇게 만들어야 된다’는 그겁니다. 백영희 목사님 설교가 바로 그런 설교였습니다. 설교는 약장사가 아니거든요. 인생을 살려야 하는 것이거든요.

백영희 목사님 설교마다가 그런 설교입니다. 그 분이 하도 유명해서 내가 53년도 7월 달에 물었어요. ‘설교 잘하는 비결이 뭡니까?’ ‘비결이고 목딱이고 뭐 있냐 말이야? 본문 많이 읽으면 다 해결된다’ 그 때 ‘아멘’하고 받았습니다. 그 말씀 듣고 60여년 지났는데 지날수록 백점 만점 대답이에요.

박 목사는 “고 백영희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다른 설교는 듣지 못할 정도”라며 백 목사의 설교를 높이 평가했다. 백 목사는 고신 교단 출신이지만, 1959년 6월 제명을 당하고, 이단 시비 등으로 한 차례 아픔을 겪었다. 백 목사가 부산서부교회 담임 시절이었던 1979년 한 일간지의 특종 보도로 ‘세계 최대 주일학교’로 소개되어 당시 10여년간 기독교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다 1989년 8월 27일 백 목사는 주일 새벽예배 설교 도중 괴한의 칼에 찔려 순교했다. 그의 명맥은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백영희 목사 창립) 교단이 잇고 있다.

매서웠다. 한국교회 설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얼음장이 되어 사방으로 튀었다. “건방지지만”으로 시작해 “맞아 죽을 각오로”로 끝나는 비판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내수동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봤다.

-내수동교회 대학부는 대단했죠?

“80년 그 무렵에 저는 행정을 할 줄 몰라서, 사람 끌어 모으는 재간이 없었어요. 교인이 450명이었는데 그 중에 대학생이 150명이었죠. 당시 예장 합동 교단에서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일 때였어요. 그 때는 왜 이렇게 많이 모이나 몰랐어요. 그런데 제가 은퇴하기 1년 전에 송인규 목사(합동신학대학원 교수)가 그러더군요. ‘설교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 그 때서야 그런가? 했어요. 어설프게 회상이 떠올라요.”

당시 내수동교회 대학부의 멤버들은 현재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이 됐다. 박 목사의 영향이었을까? 대부분 설교에 일가견이 있는 목사들이다. 오정현(사랑의교회), 김남준(열린교회), 오정호(대전새로남교회), 박성규(부산부전교회), 화종부(제자들교회), 송태근(강남교회) 목사 등이 내수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박 목사의 영향을 받았다.

-지금 제자들을 생각하면 어떤 마음입니까?

“내사모라고, 내수동교회 사역자 모임을 1년에 한 차례씩 갖습니다. 같이 식사하고 교제 나누는데, 갈 때마다 하는 말이 ‘여러분 미안스럽다. 태평양을 누비는 고래들인데, 실개천에 가둬 놨으니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무슨 뜻인가요?

“오정현, 김남준이 다 거물들 아닙니까? 나는 속이 좁은 사람인데, 나하고 일할 때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말이야. 그 말을 해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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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뉴스 메이커

Mission & People

‘개척교회 선구자 백영희 목사 탄생 100주년’


2010년 9월호, p90, 전면 {월간}


위기의 한국교회 해답 백영희 목사에서 찾는다

계속되는 종교편향 논란 속에 한국 기독교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동시에 타종교와의 공존, 교회 이미지 개선 등을 위한 논의를 지속해 왔다. 이러한 기독교 내 자성의 목소리 덕분에 그간 열린 마음과 섬김의 방법으로 한국교회의 도덕성과 사회봉사의 실천성을 높여온 교회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김종필 기자 jp2707@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해 말한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교회들의 각고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개혁교회 개혁의 선구자로 알려진 백영희 목사(1910-1989년)의 신앙이 주목을 받고 있다.

생전에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 보유, 10만 페이지 설교(전 182권) 중 111권째 설교록이 출간되어 교계에 잘 알려진 백영희 목사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올해는 백영희 목사의 신앙연구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백영희 목사는 서울을 제외하면 전국 최대였던 부산서부 교회를 목회하면서 평생 주보 한 장을 발행하지 않을 정도로 교회의 외부 홍보는 일절 없애고 내면의 하나님 인도만을 좇아 기도와 말씀 연구에만 주력해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나 신학자들에게 있어 숨은 신령한 지도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1910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한 백 목사는 1936년 신앙생활을 시작해 1939년부터 시작된 일제의 신사참배 기간에 개척한 교회 교인 전체를 이끌고 교회적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해방 후 장로교 고신 목회자로 재직하면서 교계의 예배당 소송건을 반대하다 제명된 후 목회하던 교회를 개척해 오늘날 200여 개의 총공회 교단을 형성했다.

특히 1970년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목회자가 교회탈선의 원인임을 절감해 교단 전체 목회자가 매 2년 주기의 시무 투표를 받아 연임 여부를 결정하도록 제도화를 이끌어 소속 목회자들의 충성과 성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후 2년마다 각 교회는 중학교 1학년 이상의 출석 전체 교인이 무기명으로 찬반을 투표하고 25%가 반대를 표시하면 담임 목회자가 현직에서 조건 없이 즉각 퇴직하는 전통을 유지하며 부분적으로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현재는 이 제도가 완전히 정착한 상태다.

백영희신앙연구회 측은 “개혁교회는 바른 것은 유지 계승하나 잘못된 것은 즉각 개혁한다는 취지로 출발, 세월 속에서 이런 초심이 퇴색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목회자의 탈선이나 불충문제는 초기 한국교회에서 일부의 문제였지만 현재는 덮어둘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 목사의 목회자 시무투표 제도화는 한국교회를 향해 큰 과제를 던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연구회 측은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회자도 사람인 이상 자유 상태가 된다면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불충이나 부덕한 일이 생기게 되면 하나님의 교회와 교인들의 신앙이 전반적으로 붕괴된다는 점에서 교회를 책임진 목회자라면 이러한 종류의 제도시행을 자청해야 한다”면서 “그러한 이유에서 목회자 모임인 교역자회의에서 교역자들의 전원 일치로 이 제도를 출발시킬 때 그들 전체를 지도했던 백영희 목사의 역할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NM

6. 港都日報

港都日報


4만5천 신도의 신앙지도자이며 항도부산 최고의 종교지도자로 칭송받던 백영희 목사(서부교회담임, 예장총공회장)가 설교도중 칼에 찔려 순교하여 한국기독교계의 순교사를 빛나게 하였다.
설교강단은 최후까지 지킨다는 신앙에 따라 범인을 보고도 끝까지 사수한 것이 예배참석신도들의 목격담을 통해 확인되어 한국교계 목회자들의 신앙자세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특히 20cm나 되는 칼이 가슴을 꿰뚫어 피를 다 쏟았으나 얼굴의 평안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범인의 신변을 걱정하였다고 한다.  또 예배당안을 조용히 시킬 것을 말하며 숨을 끊어 주위의 모든 신도를 감동시켰다.
백목사는 일제의 신사참배강요에 자신뿐 아니라 소속 전신도들까지 굴하지 않게 하고 6,25동란 중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예배를 인도한 신앙의 거목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앙의 正道를 고집한 진리의 파수꾼이기에 그에게 항상 생명의 위협이 계속된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백목사의 신앙과 설교에 정통한 교계의 인사들은 한결같이 이번 사건을 한국보수교단에 미친 심대한 영향을 두려워한 배후세력의 소양으로 보고 있다.  최근 그가 교회의 잘못된 정치관과 불건전한 종판에 대한 경각심을 남달리 강하게 외쳐왔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를 이룬 그의 목회, 수많은 제자를 일일이 지도하여 전국과 해외까지 1백 수십 교회를 개척시킨 후배양성, 1백 수십을헤아아리는 방대한 그의 설교집, 성경전체를 달통하여 많은 기독교의 교리적 문제점을 보완함으로써 한국신학계의 주목을 받아온 경력은 한국기독교사를 빛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수많은 신도들이 참여한 백목사의 장례식은 부산이 낳은 위대한 종교지도자를 역사를 인물로 아쉽게 보내야 하는 한국기독교계의 장엄한 환송식이었다.

5. 소년동아일보

어린이 신자만 2만 5천명

세계서 깜짝 놀랄 부산서부교회규모

416학급의 주일학교 선생님 500명이나


1981년 2월23일 (월요일) {일간}


화제의 샘

어린이 1만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서 예배를 본다.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에
자리잡고 있는 서부교회 (목사백 영희)에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국민 학
생수보다 많은 어린이가 모이고 있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만12살 미만의
재적 인원이 2만 5천명이나 되는 이교회는 단일 교회의 어린이 수로는 세계
제1이다.  멀지 않아 기네스 북  (세계의 진기록을 모은 책)에 기록될지도
모를일이다.

매주 일요일 오전 8시가 되면 동대신동 일대는 성경을 든 어린이들의 행렬로 뒤덮인다.  일반행인들의 발길이 뜸한 일요일에 교회를 찾는 어린이 들의 무리가  물이 흘러 가듯 교회 속으로빨려 들어간다.  9시가 되어 주일학교 예배가 시작되면 거리는다시  조용해지면서 일요일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한편, 예배가 끝나고 퇴장하는데만도 30분이 걸린다.  그래서 이곳에는  어른80명으로 이루어진교통 정리반이 따로 있다.
34년전에 세워진 이 교회는 총재적 인원 3만 4천 796명중 3분의2인 2만  5천 296명이 국민학교 어린이들로 이루어 졌다.  이 중에서 매주평균 1만명 가량의 어린이들이 참석하고있다고 하는데, 3천 8㎡ 의 교회건물로는 1만명 으로는 1만명의 어린이가 한자리에 모이기에에는 비좁다. 그러나 이들은  질서를 지키면서불편함을 이겨 나가고 있다고.
이렇게 많은 어린이가 참석하고 있는데 대하여 백 목사는 “우리는 교회 설립당시부터 어린이들을 위주로 성경 공부를 시켰고 어린이들을 나라의 주인으로 대접해 왔지요.  또,  이 어린이들이 자라서,새로운 어린이들을 인도한 결과 어린이 교회가 된 것이지요”하면서 “여기서 자라난 신자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단순히  입으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어린 학생들에게
많은 감화를 주고 있다.”고 했다
또한 416개의 학급으로 이루어진 주일학교의  부장 정 영덕 (37살)씨는 “일반적으로 교회에서선물을 줌으로써 어린이들을 끌어 모으은데, 여기서는  한 번도 그러한 일이 없이 오로지 성경에대한 공부만 가르치고,  선생님 자신이 인간적인 모범을 보여 온 것이 오늘과 같”은 결과로 발전된 것 같다.고했다.
한편, 416개 학급 (남자 211개반, 여자 25개  반) 으로 이루어진 주일학교 학생들이 교회에서 마시는 물만도 3드럼이나 되며,주일학교 선생님 수도 500명 이나되어 또 하나의 기록을 만들고 있다

4. 신앙계

신앙계


1983년 5월호 통권 제194호 값800원


세계 최대의 어린이 교회세계 최대의 어린이 교회라 불리는 부산 서부교회를 찾아가 보았다.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 1가 381의 1번지에 자리한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 서부교회는 한창 4층 건물 증축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어린이 성도들을 수용하기 위한 대책이 바로 증축의 이유였다. 구덕 공설 운동장의 1킬로미터 남쪽이면 간선 도로와 지선 도로가 복잡하게 뒤 얽혀 있는 곳에 서 있는 이 교회에는 주일 아침이면 7천5백여 명의 어린이들이 일시에 몰려 들었다가 일시에 흩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되곤 한다. 더구나 각종 차량과 일반 행인들이 복잡하게 엇갈리고 있는 속에서도 너무나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이들 어린이들을 목격한 어떤 이는 마치 “철새 무리들이 군무라도 벌이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고 했다.

이 교회의 만 12세 이하 어린이 재적 숫자는 2만5천여명이며, 해마다 어린이 성도 숫자가 3천명씩 늘어나고 있다. 중간반의 평균 출석 숫자가 1천8백명, 장년반이 3천2백명 정도로 전체 교인 숫자의 약 80퍼센트가 어린이들이다. 30여년 전에 설립된 이 교회는 당회장 백영희 목사(74세)의 뜻에 따라 주일학교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이는 명실 상부한 어린이 교회이다. 한편 장년 성도의 경우에는 숫적인 면에선 부산 제1의 교회이다.

출옥 성도 주남선 목사의 권유로 목회자 되다

고희를 넘긴 백영희 목사의 구술에 의하면 이 교회의 내력과 그자신의 목회 동기는 대개 이러하다. 이 교회는 원래 1948년 손 이원 목사(손양원 목사 동생)가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다. 그후 김창인 목사(현 서울 충현교회 시무)가 잠시 목회한 뒤 1951년에 백 목사가 부임하여 왔다. 올해로서 부임 33년이다.

백 목사는 경남 거창군 주삼면 도평리에서 유교적 가풍의 부모 밑에서 출생하였다. 12살 때 등교시 우연히 이웃의 고운서 권사가 지나가면서, “예수 믿고 하나님을 공경하십시오.”하며 전도하는 말이 마음에 찔려 그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때 비록 어린 마음이었지만 “아, 인생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면 그것보다도 더 귀한 것이 또 있겠는가!”생각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늘상 마음 속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동경과 호감이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겉으로는 괜히 기독교를 핍박하려는 철부지 심술이 나타나곤 했다. 그래서 꽤나 예수 믿는 친구들을 못살게 굴기도 했다. 그의 나이 25살 때의 일이다. 그는 당시 양조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상점을 하고 있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물건을 사러온 고운서 권사의 아들의 인품에 큰 도전과 감동을 받게 되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 학생이 물건을 사는데 예의 바르고, 겸손해 하고 의젓한 것이 여간 인상 깊게 느껴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찌나 그 학생에게 마음이 쏠렸던지, “저 집 개라도 한 마리 가져다가 길렀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고 그것은 곧 이뤄져 그 집 양 한 마리를 달라는 대로 댓가를 지불하고 사다가 키우기 까지 했다. 그만큼 그 학생에게서 풍기는 예수의 채취를 충분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그는 “기회만 있으면 교회에 나가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나 양조업을 하는 그에게 전도하는 이가 없었다. ‘저런 사람이 뭐 예수를 믿겠느냐?’는 식의 전도자들의 성급한 판단 때문이었다. 전도인들이 자신의 상점앞을 자주 지나가도 전도를 하지 않자 어느 날 이내 그는 한 전도인을 붙들고“왜 내겐 전도하지 않소?”하고 섭섭해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평소 예수 믿을 것 같지 않던 그가 의외의 태도를 보이자 전도자는“그래요 오늘 전도 강연이 있으니 참석하세요”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가 “이왕이면 오늘 저녁엔 우리 집에서 하면 어떻겠습니까?”하고 뜻밖의 제의를 했다. 전도인은 감격했고 쾌히 승락하여 그날 그의 집에서 대 전도 강연이 벌어졌다. 이때 그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예수 믿기로 작정했다.

주님을 영접한 후는 그는 주일 다가오기를 고대했다. 첫 주일을 맞아 교회에 참석하자 마침 설교하는 장로님이 창세기1장의 창조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어 평소 품었던 궁금증을 일시에 풀기도 했다. 예수 믿기로 작정한 나흘만에 그는 술, 담배를 끊었고, 더우기 17일만에 양조장을 정리하여 전업하는 결단을 보였다. 또 인근에 교회가 없자 가족을 이끌고 매일 아침 산에 올라가 새벽기도회를 갖는 열심을 보여 주기도 했다. 정말 그의 변화된 모습은 많은 주의 사람에게 감명을 주었다. 특히 일정 말기엔 신사참배 거부로 곤욕을 치루기도 했지만 주님께서 어려울 때마다 건져 주셔서 그 자신 뿐아니라 그가 출석하던 교회의 교인 어느 한 사람도 신앙의 절개를 저버린 자가 없었다.

해방 후 그는 거창을 중심으로 한 4개처의 교회에 집사로서 교회 봉사를 했다. 교역자가 절대 부족한 시절이라 그는 교회를 순회하며 예배를 인도하곤 했다. 그러던 중 출옥 성도인 주남선 목사가 그에게 유급 전도사가 될 것을 권유했다. 평소 교회 봉사하는데 유급으로 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던 터라 그는 거부했다. 그러했던 그가 유급 목회자로 목회 일선에 뛰어들게 된 사유는 이러했다. 어느 날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그의 둘째 딸이 기계에 의해 팔에 상처가, 다리에는 부러지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이것이 유급 전도사가 되라는 권유를 거부한데서 온 교만의 죄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곧 바로 엎드려 기도드렸다. “주님! 제가 잘못해서 이런 결과가 왔습니까? 지금 제 딸이 피투성인데 저 아이가 병신이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인줄 알고, 순종하겠습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서서히 치료되고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된다면 저의 유급 전도사의 사전과는 별개의 것으로 알겠습니다.”이런 일이 있는 후 두 주간 동안 부흥 집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그의 눈 앞에 둘째 딸이 고통이 없다며 마당에서 걸어다니는 것이었다. 그는 즉시로 주님의 섭리로 깨닫고 유급 전도자가 될것을 결심했다. 며칠 뒤엔,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정리하여 구제도 하고, 당시 성서공회 등 선교 및 복지기관에 희사했다. 맨 몸으로 주님의 목회 일선에 뛰어들 결의의 표시였다. 이후 거창의 4개처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중 당시 고신교단의 중진들의 추천으로 오늘의 교회에 부임하기에 이르렀다.

성경말씀 외에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백 목사의 목회지론은 “아직 세속에 때묻지 않은 순진 무구한 어린이일 때부터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신앙심을 심어줌으로써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한다.”이다. 따라서 주일 학교 성장에 큰 관심과 비중을 주어왔다. 그 결과 오늘의 내 놓을 만한 교회 성장을 가져 왔는데, 요사인 거의 1만명에 가까운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1층과 2, 3층(극장 계단식), 그리고 지하층의 세 곳으로 나뉘어져 따로 예배를 드린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서부교회는 지난 1970년대 이후 급격하게 늘어나는 어린이 성도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네 차례의 증축 공사를 해 오고 있다.

주일 아침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드리는 주일학교 예배는 층별로 각 부장 선생이 인도한다. 우선 부장 선생이 기도를 한 뒤, 찬송, 질문과 대답, 기도순으로 예배가 이어진다. 분반 공부와 질문과 대답은 반 별로 하는데 부장의 강의 내용을 반사들이 다시 복습시키는 것이다.

이 교회의 반사만도 자그만치 7백명(원반사 470명, 보조반사 230명)에 이르고, 1명의 반사가 맡고 있는 어린이는 평균 100명을 웃들고 있다. 주일이면 어린이들을 위해서 교회 주변의 도로 교통 정리에 동원되는 어른이 80명, 물 당번 어른이 50명, 미아 담당 어른이 10명씩인데, 여름철에는 식수가 수십 드럼씩 소요 된다.

서부교회에 출석하는 어린이들은 인근 지역의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태종대, 해운대, 구포, 다대포, 온천장, 수영 등과 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부산시내 전역에서 골고루 퍼져 있다. 그러면 이처럼 어린이들이 많이 모이는데는 특별한 혜택이 있어설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이 교회의 첫째 특징이 바로 어린이들에게 일체 선물을 주지 않는 것이다. 다른 교회처럼 노트나 크레용, 연필도 주지 않는다. 성탄절 때 사탕 한알씩 주는 것이 고작이다. 둘째, 어린이들을 유치반이나 학년별로 반을 구분하지 않고 코흘리개부터 국민학교 6학년 학생까지 한반에 통합시켜 두고 있다. 따라서 꼬흘리개나 학년별 주일학교 교재를 쓰지 않고 독자적으로 만든 ‘공과’로 성경을 가르친다. 이 ‘공과’란 1주일 앞서 중간반, 장년반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했던 목사의 설교 내용을 그대로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시 정리한 것이다. 셋째, 다른 교회의 주일학교들이 성경 내용을 동화나 성극, 노래, 그림 등으로 각색하여 흥미롭게 가르치는 방식을 전혀 채택하지 않고 있다. 이 세가지 특징이 다른 교회와 좀 달라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으나 결과론 적으로 볼 때 꼭 그렇게만도 생각할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전인 교육을 지향하는 주일학교 교육에 있어서 시청각 교육의 도입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 주일학교 성장 비결은 교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무엇보다 이 교회의 주일학교는 강력하고 열성적인 반사 운영 체제가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 반사들은 첫째 신앙, 둘째 기도, 셋째 심방을 그들의 본질적인 지침으로 삼고 열심히 뛰고 있다. 그들은 뜨거운 신앙을 바탕으로 주일학교를 위한 기도와 어린이를 위한 심방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다 바치고 있는 것이다. 주일은 두말 할 나위 없고 평일에도 반사들이 하는 일은 태산처럼 많다. 날마다 자신의 반에 적을 두고 있는 어린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하며, 토요일 하오와 주일 아침의 어린이 집 심방은 필수적이며, 거기에다 반원의 숫자를 한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한 전도도 쉬지 않고 펴야 한다.

1명의 반사가 350명의 어린이를 자기 반원으로 확보한 것이 최고 기록인데 지금까지 이만한 수준의 성과를 올렸던 반사가 200명쯤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수고한 반사들에게 수고의 댓가를 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교회에선 반사들에게 단 한푼의 재정적인 보조도 하지 않고 있다. 반사들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어린이들의 버스표를 사주기도 한다.

행정실의 장영목 총무는, 백 목사가 항시 강조하는 반사의 지침에 대해 첫째 어린이가 오는 것은 반사 자신의 신앙이 있어야 한다. 둘째 교회로 인도하는 어린이를 위해 날마다 한 차례씩 기도할 것. 세째 토요일과 주일 심방은 어떤 일이 있어도 빠뜨리지 말 것 등이라고 말한다. 700명의 반사들은 중학교 3학년 학생부터 칠순 노인까지 참여하고 있다. 직업도 다양하다. 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는 물론이고 대학생, 중고교생, 회사원, 상업, 의사, 가정 주부 등이다.

서부교회가 오늘의 세계 최대의 어린이교회로 성장한 데는 백 목사의 의도적인 교회 운영과 뒷받침, 즉 교회의 행정, 사무 설교, 인적 구성까지 주일학교를 중심하고 있는 것과, 일반 사람들로선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헌신적인 반사들의 노고와 기도의 결실임에 틀림 없다.

한편 서부교회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국 70여 지교회를 설립하였고, 현재 교회 내의 276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모두가 앞날의 교회를 위해 투자하는 인재들이라고 한다.

3. 마당

국토기행/금강산

세계 최대 어린이 교회를 가다


1983.2
마당통권제18호, 1983년2월1일펴냄.
1981년5월1일등록, 등록번호라-2561
서울종로구관철동12-19, 우편번호110
값2,750원


재적 어린이 3만 2천 지난해 12월 25일 아침.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 1가 381의 1번지에 있는 예수교장로회 한국 총공회 서부교회에는 1만1천3백 명의 어린이들이 일시에 몰려 들었다가 일시에 흩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구덕 공설 운동장의 1킬로미터 남쪽이며 간선 도로와 지선 도로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곳에 있는 이 교회로부터 코흘리개 어린이들은 마치 팔방으로 뻗은 거대한 부챗살처럼 퍼졌다가 오므러들었다가 하는 것이다.

더구나 각종 차량과 일반 행인들이 복잡하게 엇갈리고 있는 속에서도 이들 어린이들만은 너무나 질서 정연하게 움직여 마치 철새 무리들이 군무라도 벌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1년 전의 81년 성탄일에 이보다 더 많은 1만3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한꺼번에 이 교회에서 예배를 보았었다.

많은 어린이들이 몰려드는 것은 굳이 성탄일만이 아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 8시30분에 열리는 이 서부교회의 주일학교에는 평균 7천5백 명의 어린이들이 출석하고 있다. 봄 가을 철에는 평균 8천~9천 명으로 더 많은 어린이들이 몰려든다.

이 교회의 만 12세 이하 어린이 재적 숫자는 3만2천여명이며, 해마다 어린이 신도 숫자가 3천~4천 명씩 늘어나고 있어 세계 최대의 어린이 교회임이 분명하다. 어린이 신도 숫자로 본다면 보통 교회의 50~100배이며, 일반 신도 수로는 국내 최대인 순복음 교회나 영락 교회를 훨씬 앞지르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도 이만한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30여 년 전에 설립된 이 교회는 백 영희 목사 (74)의 뜻에 따라 주일 학교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있는 명실 상부한 어린이 교회이다. 중간반의 평균 출석 숫자가 18,000명, 장년반이 3,200명 쯤으로 주일 학교 보다 훨씬 밑돌고 있다. 전체 교인 숫자의 약 80퍼센트가 어린이들인 만큼이 교회는 어린이 신도들의 왕국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반사만도 700명, 미아 담당 10명 거의 1만명에 가까운 주일 학교 어린이들은 1층과 2, 3층(극장계단식), 그리고 지하층의 세 곳으로 나뉘어져 따로 예배를 본다 서부 교회는 지난 70년대 이 후 급격하게 늘어나는 어린이 신도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세 차례의 증축 공사를 해 왔다.

강당의 크기는 1층 270평, 2층 270평, 3층 170평,

재적 어린이 32,000명, 반사가 700명. 교회 주변 교통 정리에 동원되는 어른이 80명, 물 당번 어른이 50명, 식수가 하루 수십 드럼씩 쓰여진다.

저녁 5시의 수요 어린이 예배에는 400명쯤이, 일요일 새벽 5시 30분의 어린이 기도 시간에 200명쯤이 출석하고 있다.

서부 교회에 나오는 어린이들은 인근 지역의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태종대, 해운대, 구포, 다대포, 온천장, 수영과 같이 교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부산시내 전역에 골고루 퍼져있다. 먼 곳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시간만도 1시간 30분이상이나 걸린다.

아무 것도 주는게 없는데도 지하층이 87평인데 어린이 숫자에 비해서 너무 비좁기 때문에 1층은 의자 없이 마루바닥에 수용한다. 그것도 모자라 네번째의 대대적인 증축 공사를 하고 있다. 오는 5월 어린이 달에 이 증축 공사가 완료되면 1층은 440평, 2층 440평, 3층 220평, 지하층 190평으로 늘어나 1, 2층의 강당은 웬만한 운동장만큼 넓어진다.

일요일 아침 8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갖는 주일 학교 예배는 층 별로 부장 선생이 주제를 한다 1층은 정순한 장로(브니엘 고교 교사), 2. 3층은 서분행(영신여객 근무), 지하층은 이춘영 장로(개인 사업)가 부장이다.

맨 먼저 부장 선생이 기도를 한 뒤, 찬송, 질문과 대답, 기도순으로 예배가 이어진다. 분반 공부와 질문과 대답은 반별로 하는데, 부장의 강의 내용을 반사들이 다시 복습시키는 것이다.

이 교회의 반사 만도 자그만치 700명(원반사 470명, 보조 반사 230명)에 이르고, 1명의 반사가 맡고 있는 어린이는 평균 1백명을 웃돌고 있다. 주일 학교가 열릴때 어린이들을 위해서 교회 주변의 도로 교통 정리에 동원되는 어른이 80명, 물 당번 어른이 50명, 미아 담당 어른이10명씩인데, 여름철에는 식수가 수십 드럼씩 소요된다.

주일 아침 학교 밖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주일 오후예배가 하오5시30분부터 열리는데 평균700명이 출석한다. 또 수요일 주일학교가 열리는 일요일 아침에는 교회를 중심으로 골목길은 골목길대로 떼를 지어 걸어가는 어린이들로 넘쳐나고, 시내 버스는 버스대로 어린이들로 만원을 이룬다. 이들 어린이 가운데는 유치원에 다니거나 미취학 아동들도 적지 않게 포함돼있는데, 모든 어린이들은 주일 학교의 반사들이 집에서 교회까지 데리고 오고, 또 교회에서 집까지 일일이 데려다 준다.

서부교회가 세계 제일의 어린이 교회로 성장한 데는 물론 백 영희 목사의 의도적인 교회 운영과 뒷받침이 있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교회를 행정, 사부, 설교, 인적 구성까지 주일 학교를 중심으로 하고있다.

백 영희 목사는 ‘아직 세속에 때묻지 않은 순진 무구한 어린이일 때부터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신앙심을 심어 줌으로써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한다’는 뜻에서 주일 학교의 어린이 신도들을 늘리는 데 주력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주일 학교에 주력을 하고 있다는 세계 최대의 이런이 교회가 놀랄 만큼 어린이들에게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고 있으며, 겉보기로는 신앙을 심어 주는 교육방식도 아주 단순하고 딱딱한 느낌을 준다.

이 교회의 첫째 특징은 어린이들에게 일체 선물을 주지 않는 것이다. 다른 교회처럼 노트를 주지도 않고 크레용도 주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때 사탕 한 알씩 주는 것이 유일한 선물인 셈이다.

둘째, 어린이들을 유치반이나 학년 별로 반을 구분하지 않고 코흘리개부터 국민학교 6학년 학생까지 한 반에 통합시켜 두고 있다. 따라서 유치반 교재나 학년별 주일학교 교재를 쓰지 않고, 이 교회가 독자적으로 만든 “공과”로 성경을 가르친다.

이 “공과”란 1주일 앞서 중간반, 장년반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했던 백목사의 설교 내용을 그대로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시 정리 한 것이다. “공과”는 강당의 층별 부장 선생이 1차로 가르치고, 그것을 다시 반사들이 반별로 복습을 시키게 된다. 어린이들은 찬송가를 부르기는 하나 따로 찬송가를 배우는 시간은 갖지 않으며, 오로지 성경을 중심으로 한 목사의 설교 만을 배우는 셈이다.

성장의 비결 – 다른 교회의 주일 학교들이 성경의 내용을 동화나 동극, 노래, 그림 등으로 각색하여 흥미롭게 가르치는 방식을 이 서부 교회에선 전혀 채택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외관적으로는 서부 교회의 주일 학교가 건조할 만큼 획일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 어린이들에게 성경 공부를 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교회는 1만명에 이르는 어린이들을 수용하는 것에 비해서 부지가 비좁아 어린이들이 뛰 놀만한 뜰도 없고 꽃나무를 가꾸는 화단 조차 없다. 특별한 놀이 기구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도 엄청나게 많은 어린이들이 굳이 자기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교회를 마다하고 이곳 서부 교회의 주일 학교를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교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무엇보다 서부 교회의 주일 학교는 강력하고 열성적인 반사 운영 체제가 절대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한다.

이 주일 학교에서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 반사들은 1.신앙 2.기도 3.심방을 그들의 본질적인 지침으로 삼고 초인적이다시피 뛰고 있다. 그들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주일 학교를 위한 기도와 어린이를 위한 심방 활동에 일반사람들로선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많은 시간과 정성을 다 바치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의 이 반사들의 일과 새벽 4시 기상하는 순간부터 눈 코뜰새 없이 분주하게 계속된다.

자기 반의 어린이 집을 일일이 방문하여 그들을 안전하게 교회로 인도한다. 주일 학교 예배가 끝나면 다시 어린이들을 그들의 집까지 하나하나 데려다 준다. 다시 교회로 돌아온 반사들은 상오 10시~11시의 장년 예배를 보아야 한다.

점심 식사를 한 뒤에 하오2시부터 오후 예배를 본다. 이 예배가 끝난 하오 3시30분부터 반사 회의가 열린다. 반사 회의에서 반사들이 고쳐야할 일, 반성해야 될 사항들이 주로 논의된다. 더 훌륭한 반사가 되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기도가 이뤄지고, 새로운 지시 사항들도 전달된다.

반사 회의가 끝나면 곧 하오 5시 부터 오후 예배를 보고, 저녁 식사를 끝낸 7시부터는 산상 기도회에 가거나 교회 기도를한다.

평일에도 반사들이 하는 일은 태산처럼 많다. 날마다 자신의 반에 적을 두고 있는 어린이 한사람 한사람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하며, 어린이의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주어야 한다. 토요일 하오와 일요일 아침의 어린이 집 심방은 필수적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어느 날이거나 어린이 집을 찾아가는 심방 활동을 계속하게된다. 거기에다 반원의 숫자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한 전도 업무도 쉬지 않고 펴야 한다.

반사에게는 급수가 있다. 어린이들 인도해 온 숫자에 따른 능력별 급수이다. 급수는 1. 우승반사(150명 이상의 어린이를 확보했을 때) 2. 1등 반사(60명이상) 3. 2등반사(45~59명) 4. 3등반사(30~44명) 5. 등외 반사(29명 이하)로 나뉘어진다. 현재 1등 반사가 10여명이고, 2등반사는 50명, 3등 반사가 80명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기도와 봉사, 1명의 반사가 350명의 어린이를 자기 반원으로 확보한 것이 최고의 기록인데, 지금까지 이만한 수준의 성과를 올렸던 반사가 200명쯤 된다고 한다.

어린이들을 교회로 인도하기까지 반사들이 겪은 애로 사항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어린이의 부모가 불교를 믿고 있거나. 교회를 거부하여 한사코 못데려 가게할 때도 있고, 애써 인도한 어린이가 멀리 이사를 가버려 심방을 가거나 교회로 어린이를 데려 오고 집으로 보낼 때의 어려움을 떠맡게 될 경우도 있다.

만일 반사 한 명이 100명의 어린이를 반원으로 확보하고 있다면, 100명의 어린이를 위한 기도를 그 반사는 날마다 해야한다. 그는 비록 보조 반사의 도움을 받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토요일 하오와 일요일 아침에는 1백명의 어린이 집을 심방해야 한다. 일요일 주일 학교가 열릴 때 그는 보조 반사와 함께 100명의 어린이를 한 명도 빠짐 없이 그들의 집에서 교회까지 데려 오고 다시 교회에서 집까지 데려다 주게 된다.

이렇게 뛰어 다녀야 하는 반사들이지만 그들에게 교회는 어떠한 보상이나 대가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단지 우승 반사 또는 1등 반사에게는 반사회의를 할 때 ‘박수’를 한 차례 쳐주는 것이 유일한 보상이라면 보상이다.

우승 반사나 1등 반사가 되는 길은 한 두 주일 정도는 영웅 심리나 명예욕으로 찾아볼 수가 있다 하더라도, 진정한 신앙심의 바탕이 없으면 한 달 동안이라도 계속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많은 반사들은 1년이 아니라 10년을 하루같이 꾸준하게 우승 반사, 1등 반사의 자리를 훌륭하게 지켜 오고 있다.

반사들은 거의 누구나 끊임없이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채찍질을 한다고 한다.

1.어린이를 위해 기도를 하자.

2.성경을 많이 읽자.

3.심방을 열심히 다니자.

4.아침 일찍 산 기도를 가자.

5.어린이의 애로점을 풀어 주자.

6.한명의 어린이라도 더 많이 교회로 인도하자.

단 한명의 어린이를 교회로 인도하기까지 반사들은 때로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노력과 정성을 바치기도 한다. 몇일이고 몇 주 동안이고 한 어린이와 친분 관계를 맺고, 신뢰감을 갖게 해주며 교회를 다녀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게 된다.

일요일 아침마다 집에서 신나는 어린이용 텔리비전 만화를 즐겨 보던 어린이가 그 시간에 딱딱한 교회의 마루바닥에 앉아 설교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하게 만들기까지의 반사들의 고충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교회에서 반사들에게 단 한 푼의 재정적인 보조도 하지 않고 있지만, 반사들은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어린들의 버스표를 사 주기도 한다. 한 두명도 아닌 수십명, 수백명의 어린이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심방하며, 또 새로운 어린이를 찾아나서는 이들 반사들의 업무야 말로 신앙심의 발로가 아니고선 해낼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 반사들은 자신의 생업이나 일상 업무, 학업이나 가사에 종사하면서 그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질서에서도 최고일까? 기록적인 숫자라고 할 수 있는 350명의 어린이를 한꺼번에 교회로 인도한 바 있는 반사들 가운데 한 사람인 현재의 주일학교 총무 장영목씨(30)는 개인적으로 사업에 종사하면서도 거뜬하게 그 일을 해냈다고 말한다. 그는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교회에 가본 일조차 없었는데, 폐결핵을 앓아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다가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의 은혜로 완쾌되어 그때부터 교회와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350명의 어린이를 교회로 인도할 때는 보조 반사만도 7명을 두었고, 토요일 심방을 할 때는 350명의 어린이 집뿐만 아니라, 자신의 반 재적 어린이 800명의 집까지 일일이 찾아 갔다고 한다. 그 심방 시간은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래도 그는 신앙의 힘 때문에 한번도 지쳐 본 일이 없고, 할 일을 빼 먹은 일 또한 없다고 한다.

장영목씨의 아내 음승희씨도 반사이며, 행정실에서 총무를 보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장영목 총무는 백영희 목사가 항시 강조하는 반사의 근무 지침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라고 말한다.

첫째, 어린이가 오는 것은 반사 자신의 신앙이 있어야 한다.

둘째, 교회로 인도하는 어린이를 위해 날마다 한 차례씩 기도할 것.

셋째, 토요일과 주일 심방은 어떤 일이 있어도 빠뜨리지 말 것 등이다.

700명의 반사들은 중학교 3학년 학생부터 7순 노인까지 참여하고 있고, 직업도 다양하다. 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들은 물론이고 대학생,중고교생, 회사원, 상업 종사자, 의사, 가정 주부 등등인데, 부부 반사들도 적지 않다. 학생의 경우 원반사가 130명, 보조 반사가 150명쯤 된다.

김두환군(20. 동아대 법학과 2년)은 이 교회 주일 학교 어린이 출신으로 지금 주일 학교 반사가 되어 일하고 있다. 그는 신앙의 깨우침으로 반사 일을 보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애로점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오는 3월에 동아대 영문과에 복학한다는 이기철군(24)도 제대하기가 바쁘게 주일 학교 반사로 봉사하고 있다. 그는 반사로서 빼앗기는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 놀러 다니거나 필요 없는 일에 허비하는 시간에 비하면 우리 반사들이 교회에 봉사하는 시간이 결코 많지가 않다. 학생들이 반사를 해도 학업에는 지장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부산 대학교를 졸업한 김정란양(23)은 여고 2학년 때부터 반사를 해왔다. 그는 반사를 그만 두고 싶어도 어린이들과 맺어진 두터운 정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도를 게을리 하면 당장 교회에 나오는 어린이가 줄어든다. 기도를 소흘히 한 채 심방 가보면 아픈 어린이가 있게 마련이다’라고 증언해 준다.

이처럼 반사들의 신앙과 기도, 심방에 대한 신념은 너무나 절대적이어서 여느 사람들에겐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가 않다.

부산 서부 교회의 주일학교는 이렇게 하여 세계 최대의 어린이 신도를 확보했다. 물론 양적 팽창에 주력한 나머지 원래 교회의 직분인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는 법하다.

한창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믿음의 품속에서 전인으로 육성 시키는게 주일학교의 할 일이라면 연극,동화, 미술, 캠프 생활 등을 일체 배제시킨 설교 중심의 신앙 교육 방식에 제고의 여지가 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겠다.

이 교회는 현재 중축 공사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건물의 면적에 비해서 어린이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강당 이외에 어린이들의 특별 활동을 위한 시설이나 놀이터가 없는 것도 주일 학교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교회의 특징으로 본다면 상당한 의외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주일 학교를 거쳐 나간 어린이들을 얼마만큼 중간반과 장년반으로 이끌어 올려 참된 신앙 생활을 하게 하느냐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지금까지 주일 학교를 거쳐 나간 많은 숫자의 어린이들에 비추어 본다면 중간반과 장년반의 재적 숫자는 더 늘어나야 할 여지가 많은 것 같다.

세계 최대의 주일 학교가 숫적으로만 최대가 아니라 내용에서도 어린이 신도들에게 가장 훌륭한 믿음과 가르침의 전당이 되기를 바라고 싶다. (마당)

2. 코리아 라이프

창간14주년특집호 6.25에 부친다.

 하나님의 백성 한사람 참신앙이 튼튼한 국방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소망의 교회

 (예수교 장로회 총공회장 서부교회 백영희 목사)


月刊 VOL 15 NO.6 通卷 162 互


이 시대에 어떻게 기필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이루는 교회로 주님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사명을 평생의 과제로 항상 민족과 국가, 지역사회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때마다 역사하는 종 서부교회 백영희 목사. –

국내는 물론 세계 종교계의 이목이 집중된 본교단은 지난 5월 5일간 경북 대구 팔달교 기슭에서 봄철 대 집회를 가져 매 시간마다 참석한 수천 교인들은 물론 대구 근교의 신앙인들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신 축복의 은사를 맛보게 되었다고-

먼저 우리 성도들이 집회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하나님 안에서 바로살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를 지켜준다는 신앙의 확신을 갖게하고자 함이 본 집회의 의의라고 전한다.

무엇보다 성경대로 살기를 증거하는 총공회장 백목사는 다니엘서 이사야서를 강론하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의 그 무었을 의지할 때 분명히 하나님의 노를 면할 수 없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전하기도.-

특히 하나님의 백성 한사람 한사람의 참 신앙이 엘리야 그 시대의 튼튼한 국방이 되었다고 강조하면서 신앙의 무장을 힘주어 전한다.

본 대집회는 1년에 두번씩 거창 대구지방에서 교단 전체가 합심하에 모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장막 생활을 연상하게 할 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는 모습이 필자로 하여금 감동케 하기도.-

특히 본문 이사야 36장 37장 말씀에 의지해서 민족과 국가를 위한 메세지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욕망을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만들어 영원 무궁토록 우주 만물에게 이 세가지를 이루어진 사람 곧 교회에 맡겨 하나님 은혜의 충만으로 만물들에게 은혜기관이 교회인고로 인생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며 잘되게 하신다고 역설하기도.

이 길이 이탈될 때에는 가시와 담으로 막아 줘서 이 일을 도와주어 이것이 이루어지는 개인이나 단체나 민족이나 국가나 높이 들어 세상에 빛이 되게 하시고 이것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세상에 보여 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이 이 세가지를 어겼을때 아수로는 이스라엘을 치는 몽둥이가 되었고 되찾았을 때 18만 5천명은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시체되게 하여 승리의 증거가 되었다고 전한다.

총공회장 백목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민족에게 시기시기마다 말씀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사명자로서 전하고자 하는 안타까움에 복음의 사역자로서 헌신봉사하는 겸손한 충성과 장유간의 서부교회 위에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의 은총이 항상 역사할 줄 믿어 의심치 않는다.

1. 크리스챤 라이프

제목 : 韓國의 敎會씨리즈

부산서부교회 세계최대규모의 어린이 천국잔치

(어린이 1만 3천명이 모인 가운데 여름성경학교가 개최되고 있는 부산서부교회)


통원 219호(8월)-1986년 8월 1일 발행.
1972년 8월 17일 제 3 종우편물 (나)급인가 (우편번호 140)


절대 福音, 절대 聖潔 겸허하며 청빈한 生活사는 백영희牧師

1만3천명 어린이가 일시에 모이는 최대규모의 천국잔치가 7월24일~27일 부산서부교회당에서 개최되었다. 평소 주일예배에 8,500명 내외 모이던 어린이가 서부교회가 베푸는 여름성경학교에 이렇게들 많이 모이고 있는데 사방에서 그토록 많이 모여들고 있는 어린이의 인파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모이게 하는 것일까, 신기한 생각이 든다.
6.25직후부터 본교회에 부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당회장 백영희목사. 목회생활 50년, 온화한 표정에 백발이 외길 성직자의 인품을 더욱 짙게 풍긴다.
언제부터 저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모이게 되었습니까, 하는 질문에 백목사는 ‘6.25직후 서부교회에 부임하면서 부터 주일학교에 관심을 쏟은 것이 해마다 증가하게 됐다’고 말한다.
저들이 무었때문에 저렇게 모이나 참으로 신기하다는 말씀을 드리자 백목사는 ‘어린이들에게 하나님 말씀만 가르치기 때문이며 이것은 곧 성령의 인도하심일 뿐’이라고 말한다.

사실 서부교회 주일학교운영은 주경설교로 장로교 신조와 교리를 골자로한 장년반과 똑같은 설교, 똑같은 찬송과 예배순서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뜻을 위주로 하지 학생들이 기뻐하는 아동심리 위주로 하지 않는다. 이 교회주일학교 순서에는 동화나 연극, 영화, 미술, 오락, 시청각교육등은 없다. 장년예배와 같이 주보도 없다. 그러나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재적 25,563명 매주일예배 평균출석 8,500명 내외에 반사(교사) 915명으로 규모면에서는 과히 세계최대의 어린이 주일학교라 할 수 있겠다.

韓國敎會元老탐방②=釜山西部敎會 백영희목사

거창에서 주남선목사의 신앙적 감화와 남다른 사랑을 받으며 목회 생활을 시작한 백목사는 목회에 있어 절대 복음, 절대 성결주의이며 겸허하며 청빈한 생활을 하는 목회자로 알려져 있다.
순교자 주기철목사와 주남선목사의 신앙, 그분들의 성별된 생활, 나아가서는 그 당시의 예배까지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주기철목사가 쓰시던 성경책을 백목사는 지금도 쓰고 있다.
현재의 교세가 주일예배 참석자 기준 장년 3,500명, 청년학생 2,000명, 주일학교 8,500명으로 지하를 포함한 5층 건물과 인접한 4~5개 부속건물을 모두 예배처로 개방 예배를 드리고 있다.

福音으로만 자라고 있는 1만 3천 어린이가 소망중의 소망

그러나 서부교회는 우선 분위기에서 부터 타교회와 일신한다. 우선 주보가 없고 성가대도 없고 찬송가는 여전히 합동, 개편, 새찬송가를 쓰고 있으며 더욱 히안한 것은 대예배실의 모습이 흡사 피난교회 같다. 넓디 넓은 공간에 미장되지않은 기둥들, 세멘계단 그대로의 강대상에 6.25직후에 만들었다는 낡은 강대상과 의자가 있고 사회자는 마루바닥에 앉은 채 순서때마다 일어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외부에 알리기를 꺼리는 뭔가 폐쇄적인 교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왜 주보를 않하며 성전이 남루할 정도로 장식을 않은것 일반 교회들과의 교류관계 등을 물었다. 이에 백목사는 주보를 않는 것은”교훈(설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어떤 때는 예배임박해서 주시기도 하기 때문에 주보를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설교는 내 마음대로 하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란 것이다. 교회 치장을 않는것은 교인 대부분이 가난한데 그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정도면 될 일이고 요즘은 커텐도 하고 선풍기도 달았으며 함께 보기위해 V.T.R 시설도 했지만 교회의 헌금은 전도, 사람구원에만 써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회재정이 집행되다 보니 그런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타 교회와의 관계는 근래에 와서 많은 교회들이 시찰을 오고 있는데 그 숫자만도 600여 교회에 이르고 있고 어느 교회든지 상호 청빙하면 갈수도 있고 올수도 있다고 말한다.

고신 1회에 들어갔다가 일시중단, 8회에 다시 들어가 졸업해 목사안수는 다소 늦었지만 70을 넘어선 고령으로 한국교회의 원로급에 속하는 백영희 목사. 백목사는 죽는 날까지 이 사명을 다하겠다는 신념으로 지금도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으며 새벽기도가 끝나면 곧바로 천막으로 된 기도원에 들어가 성경보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으로 일과를 보낸다. 수만에 이르는 성도들을 목회하는 교회행정은 일주일 중 화요일 하루 그것도 잠시 행정책임자의 보고를 받는것이 전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 방만한 교회살림과 교인심방 기관운영 등만 해도 24시간이 모자라겠지만 백목사는 기도로, 말씀으로 주의 종이 맡은 사명만 완수하면 성령께서 만사는 형통하게 이루워 주신다는 것을 믿고 있다.

현실의 한국교회가 인적인 노쇄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중에 서부교회만은 정반대로 장년보다 젊은 층이 젊은 층보다 어린이가 배나 더 많은 현상을 들어 백목사는 “서부교회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 “어린이들이 성경으로 중무장되어 있어 환난이 닥치면 제일먼저 순교할 사람이 저 어린이들 일 것”이라고 백목사는 서슴없이 말한다.

백목사는 서부교회의 가장 강한 바탕은 1천명에 이르는 주일학교 반사(교사)에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주일 오전 오후예배는 물론 삼일예배, 5일예배(금요예배)에 필수적으로 참석해야 하며 백목사로 부터 하나의 본문 말씀에 의한 다각적인 주경설교를 4~5차례 반복들으므로 말씀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한 다음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모두가 복음에 중무장된 교사들이 되며 이들 교사는 1개반을 중심으로 원반사, 보조반사, 심방원 등 조직적인 분반관리를 하는데 이들의 사명감이 그 누구 보다도 투철하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주기철, 주남선목사 생전의 목회상을 실천에 옮겨 놓은것 같은 백영희목사의 목회가 부산서부교회에서 기반이 굳혀지자 교회를 수없이 개척하여 20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 숫자가 105개 교회, 따라서 조직된것이 “예수교 한국총공회” 산하에 신학교를 두어 경건한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으며 특히 1년에 한차례 여름이면 거창 장생골에서 은혜넘치는 집회를 가지는데 이번집회에는 25,000명이 모여 산야가 온통 복음의 물결로 덮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한국교회에 대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없으실까 물으니,

“하나님 말씀만 가르칠 뿐 재주라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노종일 뿐입니다. 내가 한국교회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라는 말로 말을 맺는 백영희목사.

사진촬영을 부탁하자 “생전에 두번 (도민증과 주민등록증사진)밖에 사진을 찍은 일이 없는데”하면서 참으로 귀한 사진을 이때만은 스스럼없이 찍어주었다.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는 86, 거창장생골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주최25,000여명 집회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공회(총회장, 백영희목사)가 주최하는 86 거창집회가 86. 8.4 ~ 8.8까지 장생골 기도원에서 개최되어 총공회 산하 105교회와 타교단 목회자와 평신도들 25,000여 명의 산골과 등성이는 우거진 숲과 함께 텐트와 천막의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산 등성이 너머에까지 텐트의 임시촌락이 형성되었다.
26년전 거창군 고제면 삼봉산에서 시작된 여름집회는 22년전 이곳 장생골로 옮기면서 정착하여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는데 온가족이 모두 함께 참석하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기도원 본당은 매년 회집인 수가 늘어남으로 매년 증축을 계속하여 지금은 지하 1층 400여평, 3층 본 강당은 1,200여평의 대강당으로서 동시에 2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기도원 전체내에 음향시설이 대단히 잘되어 있어 어느 숙소, 어느 위치에서나 본강단의 집회내용을 잘 청취할 수 있었다.
집회는 매일 오전 4시 10시 오후 3시에 있고 강사는 백영희 목사이며 참석한 많은 성도들은 편집실에서 강의내용이 담긴 녹음테프를 구입 쉬는 시간에 재독하며 충분히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온 가족이 어린아이와 함께 모두 참석하여서 집안걱정이나 세상걱정을 완전히 잊고 오직 집회에만 몰두하므로 은혜를 충만히 받는 귀한 집회 였다.

거창 집회 준비부서는 19개 부서로 조직되어 200여명의 준비위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질서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총 책임자 정재완 목사(위산교회)는 26년간 계속되어온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집회이지만 아직 1건의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모두가 스스로 자진하여 움직인다고 설명하였다.

산 전체 구역을 교회별, 구역별, 가족별, 개인별로 분류하여 본인들이 스스로 천막이나 텐트를 마련하고 식사 준비를 하여서 저녁이 되니 밥짓는 연기가 온 골짜기에 자욱히 번져났다.

집회기간동안 기도원측에서 일반 주민 상인들에게 장소를 제공 영업을 허락하여 100여개의 임시 점포가 세워져 시장을 형성하여 성도들이 필요한 생필품을 구입할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기도원 입구에 있는 주상국민학교 운동장은 완전히 주차장으로 변해있었고 이외에도 전국에서 100여대의 관광 버스가 인원수송에 사용되었다 한다. 지하에 설치된 어마어마한 3개의 물탱크로도 식수가 모자랄 지경이라는 이 특별하고 매머드한 집회는 집회장에서 최고의 절정을 이룬다.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인 무리는 목사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로 1시간 30분의 강의를 흩으러짐 없이 그대로 듣고 응답하여 모두가 말씀가운데 하나로 통일되었다. 집회의 주제라든지 그 흔한 팜플렛 한장도 보이지 않는 이 집회는 철저한 말씀중심 이었고 자기의 문제는 자기 스스로 책임지는 봉사의 자기 중심이었다. 찾아간 기자에게도 1끼의 식사도 제공하지 않는 누구나 스스로 해결하는 집회는 모인 사람들에게 신앙의 재점검, 생활의 수련, 교단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만나본 대부분의 성도들은 내년에도 또 그다음에도 계속적으로 참석할 것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하여서 앞으로 이 집회는 계속 발전하여 기도원 본당을 계속 증축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거창에서 박재한 부산지사장 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