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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희, 성경적 개교회주의자 - 정정숙 교수

일반소식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21.11.17

총신대 상담신학의 정정숙 전 교수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정 교수님은 서영호 목사님 부부와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8-94<성경적 개교회주의자 백영희 목사>


한국교회사에서 백영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대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극보수적인 신앙공동체의 지도자라고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백영희의 삶과 사상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외부로 나타내기를 싫어하는 그 공동체의 특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백영희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한 책이 두 권이 있습니다.
생애를 다룬 전기로는 박선혜,이 시대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사람 백영희 (상)(하)(여수 :백영희목회연구소, 2014)가 있고,
사상을 연구한 책으로는 김남식,백영희 연구(서울:도서출판베다니, 2015)가 있습니다.


1.백영희는 1910년 7월 29일 경남 거창군 주상면 도평리 1045번지에서 백남칠과 정판임의 7남매 중에서 2남으로 태어났습니다.

2.백영희는 9세 때(1918년)부터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고, 11세 때에 야학에서 2개월간 신학문을 배우다가 웅양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5학년 2학기까지 공부하고 가정 사정으로 중퇴했습니다.

3.그는 1926년에 일본으로 가서 3년간 탄광,공장 등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1928년 11월에 귀국하여 개명리의 이경순과 결혼했습니다. 1920년 9월에는 탁주제조업 면허를 받아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4.백영희가 신앙을 접하게 된 것은 1936년 6월에 부인 이경순이 농산교회에 출석하게 되자 그도 따라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1937년 1월 31일에 호주장로교 선교사 토마스 코드렐(한국명 고도열, 1903-1982)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5.그는 성경을 배우고 싶어서 진주성경학교에 입학하여 예과와 본과 1학기를 공부한 후 건강 문제로 중단하게 되었습니다.이 짧은 기간에 최상림 목사와 권임함(Frank William Cuningham)선교사의 감화를 받았습니다.

6.신사참배 강요의 바람이 불자 그가 나가던 농산교회에서 목회자로부터 교인들까지 모두가 신사참배를 하였습니다.믿은 지 얼마되지 않는 그는 무어라고 말할 처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7.그가 살고있는 동리에서 전도한 10여명이 교회까지 20여리 길을 가기 어려워서 1939년에 개명교회를 개척하고 그가 목회를 시작했습니다.그때 장년이 남녀 8명이었습니다.이들은 신사참배의 강요에도 백영희부터 주일학생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승리했습니다.

8.백영희의 신앙 형성과 헌신에는 주남선 목사(수진성도,거창읍교회)의 영향이 컸습니다.백영희는 1949년 5월 1일 위천교회에 부임했습니다.여기서 ‘위천교회 주일학교의 국기배례 환란’을 겪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교회사의 중요한 사건입니다. 1948,9월 - 1950,4월 기간에 국기배례를 강요하자 위천교회 소속 주일학교 학생들이 거부하자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은 후 1950년 4월 25일 국무회의에서 국기배례를 ‘국기에 대한 주목으로 바꾸고’ ‘관보 제355호 국무총리 훈령 제430호’로 발표했습니다(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이영인,위천교회 주일학교의 국기배례 환난:국법을 바꾼 주일학교(n.p.:도서출판 명법,1997)과 김남식,교회와 국가의 갈등 :국기 문제를 중심으로(서울:도서출판 베다니, 2018)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9.백영희는 1950년 6월 고려신학교에 입학하고, 1952년 7월에 부산서부교회에 부임하여 새로운 사역의 장을 열었습니다.

10.그는 1954년 6월에 고려신학교 제8회로 졸업하고 강도사 인허를 받았습니다.그는 성도간의 세상 법정소송을 반대하여 고신 측 교회 지도부와 갈등이 노골화되고, 1959년 4월에는 강도사 해임,이어서 서부교회 해임,고신 측에서 제명되었습니다.

11.백영희는 ‘개교회주의’를 지향하였고 이것을 발전시켜서 ‘예수교장로회 총공회’라는 독특한 교회정치 형태를 형성했습니다.서부교회가 발전하자 이단 시비에 휘말렸습니다. 백영희가 ‘한번 중생 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이 흔들릴 수 없다’고 하자 그의 제자중 한 사람인 한종희가 이단이라고 주장하자 그 파장이 컸습니다.그러나 한종희는 후에 친필 사과문을 보내어서 지난 날의 주장을 취소했습니다(그 사과문의 사본이 우리 한국상담선교연구원 연구실에 있습니다).

12.백영희의 사역은 확장되어 나갔습니다.지리산의 여름수련회에는 매회 4~5천 명이 참석하였고,주일학교는 매주 2만명이 모이고 교통순경이 교통 정리를 할 정도였습니다(이 사실을 조갑제 기자가 국제신문에 보도했습니다).

13.백영희는 1989년 8월 27일 주일 새벽 5시에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다가 한 괴한의 칼에 찔려서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백영희의 삶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하나님 중심주의였습니다. 시작도 하나님이고 마침도 하나님입니다.
그는 성경주의자였습니다. 성경의 권위에 따르고 말씀만을 선포하였습니다.
184권으로 출간된 <목회설교록>에서 그의 성경중심 신앙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정치를 싫어하였고, 성도간의 법정 송사를 반대했습니다.
그의 검소한 삶은 헌신의 징표였습니다.

그러나 오해도 받고 이단시비도 당했습니다.

그는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일획이 천지보다 무거운 권위를 가진 말씀!

인생구원에 유일이 되는 말씀!

이 가치를 누가 알대로 알고

이 땅을 통과하는 자 있으랴

다 알다가 갔고 다 알고 가신 분은 한 분 뿐이셨다.

 

(출처: 좁은 길을 간 사람, 정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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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20 14:08
    몇 곳의 오류를 정정합니다.

    * 백영희 신앙 출발
    4.부인 이경순이 농산교회에 출석하게 되자 그도 따라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 부인을 '먼저 보내 놓고' 뒤 따라 나갔습니다.

    * 신사참배 거부 숫자
    7.그때 장년이 '남녀 8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신사참배의 강요에도 백영희부터 주일학생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승리했습니다.'
    ->교회 출발은 10명 안팎이지만 신사참배 탄압의 기간에 장년반 40명에 주교생이 많았으나 모두 참배하지 않았습니다.

    * 출간
    '184권'으로 출간된 <목회설교록>에서 그의 성경중심 신앙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 182권을 간행했습니다.

    * 집회
    12.백영희의 사역은 확장되어 나갔습니다. '지리산의' 여름수련회에는 매회 4~5천 명이 참석하였고
    -> 덕유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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