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허송 - 불신자는 억울해 한다. 우리는 감사한다.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04.02

(진실된 분들께 드렸던 안내)
나만큼이나 또는 나보다 더욱 열심히 자기 믿는 한 길에 세월을 모두 쏟아 넣은 분들과 최근 직간접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

언론과 인터넷에서 몹쓸 곳이라고 비판하는데 그 비판을 들을수록 그 속에 들어 있을 보배들이 무척 많아 부러울 정도였다.

우리를 비판하려 든다면 그들보다 더 비판 받지 않을까? 그들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 있기나 할까?

중앙과 지방의 방송 신문 인터넷이 비판으로 도배를 하지만 몇 가지는 좀 과하다 싶고 나머지는 딱히 잘못이 보이지 않는다.

종교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종교가 도덕이라면 그 비판은 거의 다 맞다. 죽은 종교와 죽은 교회에 비교를 하다니!

나도 우리도 누구도 완전이란 없고 늘 배우며 고치고 자라 간다는 의미에서 나는 그 분들과 대화 중에 전환기를 말씀드렸다.
모세는 바로 왕궁 40년, 미디안 광야 40년, 그리고 나서 가나안을 향해 이스라엘을 이끌고 40년의 소중한 세월을 사용했다.

왕궁 40년에는 신앙의 생명을 뺏기지 않는 것이 전부다. 달리 배울 것은 없다. 미디안 40년은 아무리 봐도 허송처럼 보인다.

오늘 우리는 모르고 지나 온 세월이 왕궁 40년이고, 오판하여 허송한 세월이 미디안 40년이다. 아무리 봐도 오판의 결과다.

그런데 모세의 생애를 살펴 보면 미디안 40년은 정말 제대로 된 훈련이었다. 말하자면 이 시기에 모세는 이제 사람이 되었다.

제대로 믿어 보려고 하면 모세처럼 위대하지는 않으나 모세처럼 3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신앙 원리다.
모르고 지나는 세월이 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선택한 방향에서 허송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나서야 방향을 정말 잡는다.

모세도 그렇고 내가 연구해 온 백영희도 그렇다. 나도 그렇다. 이 글은 나를 돌아 보기 위해 적다가 생각이 나서 적어 봤다.

(백영희의 생애를 분석한다.)
백영희는 불신자로 26년을 보냈다. 1936년에 믿었고 처음부터 바울처럼 평생을 달려 갔다. 그런데 1970년경이 전환기다.

연도를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으나 1936년부터 전력 질주한 백영희의 궤적을 보면 70년대가 되면서 최종을 향하게 된다.

나는 그 분이 믿은 첫 날부터 기록한 일지부터 일제 때 모든 기록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기록들은 모두가 준비였었다.

1970년에 들어 서면서부터 그의 교훈과 교리와 목회는 훗날이 될 우리의 오늘을 위해 본격적으로 정리가 되기 시작을 했다.

그는 믿는 처음부터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뭐든지 방향과 내용과 자세가 늘 일관 되었다. 그러나 구성은 늘 자라 갔다.

그래서 그의 초기나 중기 기록을 자료화 한다면 누구라도 혼란스러울 듯하다. 70년대부터 자료는 구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금 50년대 자료를 매일 들여다 보고 있다. 70년대와 80년대에 나왔던 교훈을 다 담고 있다. 그러나 정리 된 상태는 아니다.
백영희 설교의 녹음 자료가 1979년 이전 것까지 모두 있었다면 연구자에게는 좋으나 일반 교인에게는 혼란을 줬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79년부터 10년치 설교가 5천개로 전부 남겨 진 것은 우리 모두에게 효율성까지 고려할 때 참 복되다 하겠다.

이전에는 1979년 이전 녹음을 애타게 찾았다. 지금은 노트로 남겨 진 것이 감사하다. 물론 연구 보관용 테이프는 수백 개다.

백영희는 불신자로 1910-1936년까지 26년을 살고, 1936년부터 전력으로 믿고 가르쳤다. 그런데 그 기록은 없다 할 정도다.
백영희 숨 소리 하나까지 행동 하나까지 잘 보관 된 것은 1979년부터 1989년까지 10년이다. 나는 이 부분을 정리하고 있다.

최후의 10년이 열매이며 전부이며 핵심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 그 전 자료도 말할 것이 내게는 필요하다.

(나와 연구소를 돌아 본다.)
백 목사님 생전에는 매일 쏟아 지는 설교의 은혜와 교회의 직책에 충성하는 과정 때문에 다른 일을 할 틈이 전혀 없었다.

1989년 장례 후에는 이제 마음껏 이 노선의 역사와 전기와 교리와 행정을 체계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평소 모든 자료를 모아 두었고 1994년에는 집중적으로 생존자들의 면담과 자녀들의 호적과 학적까지 전부 확보를 했다.

그래서 자료와 정리만을 두고 말한다면 장례 후 5년에 전기를 출간하고, 그의 교리도 비슷한 시기에 출간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단순히 연구 발표라면 그렇게 하겠으나 워낙 중요한 사안이다 보니 완성도를 고려하여 세월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30대의 나와 40대의 내가 정리하는 것이 다르고 50대가 되어 정리하는 것이 다를 듯했다. 내게 다른 눈이 생길 것으로 봤다.
모든 것을 내면으로는 확정을 짓고 있었으나 세월이 10년씩 지나 가면서 같은 자료를 보는 시야가 확실히 달라 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노선을 연구하는 분들을 위해 이미 가진 자료를 그냥 묻어 둘 수가 없어 1998년부터 사이트를 통해 공개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백영희 전기는 2015년에 출간하고 교리의 체계화는 2004년에 발표를 했다. 그러나 모두 '요약본'이었다.

전체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게 되는 내가 더 자라고 밝아 졌으면 했다. 그리고 외부의 우선 비판과 의견을 듣고 싶었다.

전기의 경우, 나를 고소한 자녀분들 전체가 왜 출간을 했느냐 문제였지 그 안에 구체적 내용을 두고는 어떤 비판도 없었다.
이 정도라면 전기의 사실성은 대단하지 않을까? 교리서도 마찬 가지도 토씨 하나로 이단이 되는 책이나 어떤 지적도 없다.

단순 오자야 있겠지만 공회와 목사님의 자녀들이 어떤 수준인가? 그렇다면 책의 방향과 내용은 이 정도면 되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나의 눈이 더 밝아 지고 나의 신앙이 더 자라게 된다면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을 보며 더 낫게 발표할 수 있지 않을까?

(허송의 세월, 불신자는 억울하고 우리는 감사할 뿐이다.)
모세의 미디안 40년 시기에 애굽의 이스라엘 민족은 얼마나 죽고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 모세는 할 일 없이 세월만 보냈다.

이렇게만 본다면 모세가 40세 때 청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서툴게 나선 댓가가 너무 아프고 많다. 40년 세월이 허송이다.

그러나 미디안 40년을 통해 모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마음대로 쓸 수가 있도록 자기를 고쳤고 길러 나갔다.

그리고 80세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모세를 자유롭게 쓸 수 있었고 이렇게 된 모세라야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었다.

백영희의 신앙 출발 26세 이후를 보면 그 이상이 없을 만큼 열심이고 능력으로 살았고 전도와 설교로 많은 이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오늘 어떤 교회라도 안심하고 주력할 수 있을 정도의 신앙 노선과 교훈과 교리 체계는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26세와 그 이후의 모든 활동은 우리들이 5백 년 전의 칼빈 이후에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는 훗날을 위한 준비였다.

50년대 설교와 기록들, 60년대의 목회와 공회 형성 과정과 교계와의 수 많은 마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 진 것이 있다.

이 모든 것은 그 당시는 그 당시에만 필요했고 그 당시 기록과 활동은 오늘 우리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냥 역사다.

그런데 그가 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충성하고 달려 가며 스스로 배우고 고치고 자라 간 결과는 그의 80년대를 만들었다.

백영희의 80년대, 그 80년대를 위해 뒷받침이 된 70년대, 그 70년대 80년대를 위해 그의 지난 30년대 이후는 준비였었다.

불신자는 지난 세월을 돌릴 수 없으니 지난 날의 준비는 짧을수록 좋다. 불신자에게 주어 진 것은 세상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믿는 우리는 지난 날의 준비가 비록 오판이나 실수로 인해 잘못 된 길을 걸었을지라도 돌아 서면 전부 복이 된다.

자라 가는 과정에 어리고 잘 알지 못해서 둘러 갔다고 해도 그런 것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더 가까이 잘 알 수가 있게 된다.

불신자에게는 이런 과거는 하나의 회한이며 앞 날에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사용할 정도에 그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날 잘못이든 비효율이든 상관 없이 그 때를 통해 하나님과 가까와 지고 하나님이 쓸 사람이 되면

다시 주시는 기회에 지난 날의 허송이 과거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전능이기 때문이다. 앞 날을 위해 미리 주신 것이다.

가을에 열매가 맺어 진다 하여 그 나무의 지난 겨울과 봄과 여름은 허송이었던가? 그 것이 가을의 열매를 위한 준비였다.
봄을 뺀 가을의 열매는 없다. 지난 해 겨울을 배제하는 가을의 열매는 없다. 겨울과 봄과 여름이 알고 보면 열매인 것이다.

모세의 80세 이후 활동은 모세의 40세 이후 미디안 40년이 만들 열매다. 미디안 40년은 허송이 아니었다. 귀한 과정이다.

(연구소의 각종 연구와 출간물)
지금 백영희 사후 33년째다. 그 분의 마지막 부탁을 받은 것 중에 몇몇 가지 과제를 이제야 대략 파악을 할 수가 있을 듯하다.

나는 1982년부터 40년째 '백영희 신앙 노선'만 들여다 보고 있다. 다른 것은 이 주제와 연관이 있을 때 최소한만 보는 정도다.

백영희 교리는 2004년에 또 그의 전기는 2015년에 출간했다. 그러나 기본 자료는 이미 1998년에 사이트를 통해 모두 적었다.

일찍 출간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여러 이유로 늦어 졌다. 또 조심을 하고 더 살피다 보니 늦어 졌다. 늦은 세월이 허송인가?

30대에 모든 출간을 끝낼 수 있었다. 그 때 출간했다 해도 지금 것과 별 차이는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수십 년이 허송인가?

최근에 와서 이 면을 두고 지난 날의 허송까지를 모두 귀한 열매로 사용하는 역사에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의 인도가 그렇다.
모세처럼 내가 잘한다고 선택하고 달려 간 것이 오판이 되고 허송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것은 몰라서 그냥 허송도 하게 된다.

그런데 믿는 우리에게 주신 특권이 무엇인가? 회개다. 돌아 설 수 있으니 특권이고, 또 돌아 서게 되면 허송까지 보배가 된다.

* 총공회 조직신학
눅1:1은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는 사람이 많았다고 2절에 말씀했다.

칼빈 이후 5백년 과제인 중생과 성화의 관계를 중생된 영으로 해결한 백영희 교리계도, 70년대부터 붓을 든 사람들이 있었다.

백 목사님은 70년대부터 당시 목회자들에게 부탁을 하다가 1984년에는 내게 직접 부탁을 했고 87년부터는 밀어 붙인 정도다.

아마 홍순철 전성수 정재성 이병준 송종섭 송용조 등이 1세대가 되고 김영채 이병철 유재룡 등이 2세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가 듣고 아는 경우만 이렇고 실제로는 더 많을 것 같다. 나는 1987년 백 목사님께 서영준과 함께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987년에 조직신학을 부탁하였으나 그 해 여름에 서영준 목사님은 돌아 가시고 나만 남았다. 혼자할 수가 있기는 한가?

그런데 그 분의 평생, 최소한 내게 언급한 것은 될 것처럼 보였든 안 될 것처럼 보였든 결과적으로 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된다는 소망은 가졌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나의 영안이 밝지를 못했고 이 일은 너무 높은 일이어서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한다고 나선 사람들은 돌아 가셨고, 실제 하고 계신 분들은 방향 자체를 잘못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10점짜리라도 해야 했고 그 것이 50점이 된다면 다행이고 그 이상이라면 말할 것 없이 큰 복이 된다고 생각했다.

2004년에 출간한 조직신학의 실제 내용은 426쪽이다. 지금 조직신학의 본편을 적는데 다 적으려면 수천 쪽이 넘을 듯하다
2015년에 백영희 전기를 출간했다. 요약본으로 간단히 출간했으나 실제 내용은 1천 쪽이 넘는다. 앞으로 더 추가 될 것이다.

제목을 '요약본'으로 잡는 것은 독자 전체를 향해 이 책의 방향과 내용을 두고 마음껏 비판해 달라는 정중한 부탁이다.

* 백영희 성경신학
백 목사님의 위대성은 조직신학에 앞서 성경 주해다. 배우지 못해도 어떤 교인이라도 성경 전체를 직접 살필 수 있게 한다.

박윤선 주석처럼 원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역사의 유명한 책들을 인용하지도 않는다. 배우지 못한 사람은 읽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전문성과 성경 집중에 약하지 않다. 오히려 성경의 본문에 대하여 이 정도로 깊고 완벽한 사례는 아직까지는 없다.

나와 연구소 직원들은 백영희 사후 30년을 그 분의 설교만 재독해 왔다. 2018년부터 그 분의 자녀들 때문에 이제는 막혔다.
이 막은 것이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가는 것처럼 체포령이며 추방령이라고 모두들 봤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유학이 되었다.

주님만 모시고 성경 하나만 붙들고, 66권 전부의 공회적 해석과 교리적 정리 편찬이 과연 가능할까? 그렇게 진행 되고 있다.

모든 교인들에게 성경 하나만 가지고 어떤 말씀 하나라도 자기 현실에 말씀으로 살 수 있게 알리고 실제 걸어 가게 한 분.
오늘 우리에게 이런 길을 실제 펼쳐 놓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세월을 많이 지낸 후에야 이제 이 길을 더 잘 보게 되었으니

내가 불신자였다면 현재 가진 이 세계를 미리 가졌다면 평생이라는 세월이 허송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억울해야 하는데

내가 믿는 사람이므로 지난 날 허송으로 보이는 세월과 노력과 모든 일들이 전부 아가서 4장의 석류 한 쪽처럼 감사하다.

감사가 진정 많다 보니 이런 감사를 함께 가지자는 뜻으로 적어 본다.
현재 우리에게 아마겟돈의 이름으로 닥쳐 오는 말세의 최악 상태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이미 들이 닥친 상태다.

오늘의 세상과 우리 주변과 교회 안팎과 우리 내면을 살펴 보면 아마겟돈이 이보다 심각할까? 극단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백영희 신앙 노선을 알게 되어 이 세상, 이 현실, 내 주변의 만사를 편한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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