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공회의 국가관 - 3.1운동 백주년 행사에 대한 교계와 비교하며

작성자
회원
작성일
2019.03.13
(교계에 대한 평가)
교회의 성향을 말할 때 보수와 진보라는 표현이 늘 사용 된다. 닫혀 있는 보수, 열려 있는 진보, 이렇게 요약한다. 고신 교단은 너무 갇혀 있고 합동 교단은 중간쯤이고 통합 교단은 WCC라는 이름으로 알려 진 정도니 너무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공회 우리는 고신보다 훨씬 더 닫혀 있겠다는 교회다. 교회가 닫혀 있다는 뜻은 좋게 말할 때 세상과 교회를 잘 구별하여 교회의 바른 길을 지켜 낸다는 뜻이다. 닫혀 있다는 말을 나쁘게 사용하면 신앙을 핑계 삼고 인간이 자기 생각을 관철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닫혀 있고 열려 있다는 표현은 같아도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와 기준에 따라 욕설이 될 수도 있고 칭찬이 될 수도 있다.

(3.1절 백주년과 교회)
한국 사회가 3.1절 100주년이라고 떠들썩하다. 교회는 더욱 그런 것 같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점이 있어 교회라고 하는데 교회가 세상과 달라야 하는 것까지 같아 지면 그 때는 교회가 속화 됐다고 한다. 건축법과 건축 기술은 세상과 교회가 같다. 불교와 천주교는 건축 그 자체를 종교의 일부로 본다.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세상 속에 살며 세상과 같아야 하거나 같아도 되는 것은 무수하다. 입으로 밥을 먹고, 옷을 입어 몸을 보호하는 것도 같다. 그러나 돈이 무엇이며 생명이 무엇인지를 두고는 세상과 아주 다르다. 다를 수밖에 없다. 국가와 직장과 가정에 대한 가치관도 전혀 다르다.

한국의 독립을 열망했던 3.1절 독립 정신은 교회와 세상이 밥처럼 건축처럼 같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결혼이나 인생관처럼 같을 수가 없는 것일까? 쉽게 판단이 내려 질 듯하다. 국민으로서 이 나라의 기독교인은 3.1절을 두고 이 나라 일반 국민들 중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인으로서 우리의 신앙은 3.1절이 마치 남의 나라 일인 듯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믿는 사람의 본적은 천국이고 이 땅 위에 거주하는 국가는 주민등록지일 듯하다. 성경은 우리의 본향을 천국으로, 그리고 세상에서 우리는 나그네라 했다.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세상을 향해 교회의 바른 위치를 가장 잘 견지해 왔다고 자부하는 고신에서 나왔다. 고신 내부도 여러 가지인데 그 속에서 인간에게 갇힌 잘못된 보수를 탈피하고 바른 보수로 교회를 바르게 세우자는 운동의 중심지라고 생각하는 곳의 글이다. 3.1절 백주년을 맞아 수도 없는 교계의 발표문 중에 우리 공회를 빼고는, 가장 건전하며 일반적이며 대표적인 모범 글로 보여 이 글을 가지고 한국교회의 대표적 입장으로 삼고, 그리고 공회의 입장에서 비교를 해 본다. 읽어 보지 않아도 이 글은 교계 입장에 대한 비판이 되겠지만 신앙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현재 교계는 공회가 벌써 그렇게 되어 버린 모습이거나 앞으로 그렇게 될 모습이다. 그렇게 되어도 되는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가. 미리 잘 살펴 두는 것이 옳을 듯하다. 환경에 휩쓸려 어느 날 그렇게 되었다 하지 않고, 잘 살펴 보고 책임을 지고 가야 하는 것이 이 노선이며 신앙의 본질일 것이다.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전반적으로 살필 기회로 삼는다.


인터넷에 수 없이 공개 되는 관련 자료가 많으나 거의 비슷하여 가장 대표적인 표현을 하나 인용하며 우리 입장을 본다.

■ 표시는 고신의 입장이고
□ 표시는 공회 입장이다.





■ 제목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에 나타난 기독교 정신 - 박명수 교수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은 대한민국 건설과 하나님 나라 건설을 연결

□ 의견
국가가 기독교 정신을 반영해 주면 교회로서, '눈치 있는 국가'라고 짐작만 해야 한다. 교회가 국가에게 다가 갔다가 국가가 변심을 해서 삼키면 그 때서야 교회가 '왜 변심을 했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세상 나라는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다. 교회가 교회로 바로 살아 가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교회가 세상을 싫어 하는 속 마음을 모르고 부러워 할 수 있다. 그래서 본 받으려 할 수도 있다. 교회는 세상이 교회를 환영할 때 세상의 호의에 다가 서면 이미 호의를 내세운 미끼를 문 물고기 신세다.




■ 죠지뮬러 아카데미
국가기도운동이 주최하고 죠지뮬러바이블아카데미가 후원하는 3.1절 100주년 기념 세미나가 지난 3월 10일 서울신대 10주년 기념관 512호에서 열렸다. 홍성철 박사(죠지뮬러아카데미 교수)의 인도로 경건회를 마친 후 연이어 “3.1운동 임시정부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교회사)의 강의가 이어졌다.

□ 아쉬움
칼빈 연구소, 스펄젼 연구소.... 우리 나라 일반 교인들이 잘 모르거나 이름 정도만 아는 외국의 신학자나 목사님의 이름을 따고 그들의 신앙을 연구하는 곳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배워야 하는데도 우리에게 없는 분들이라면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 맞다. 만일 우리 주변에 그 정도의 신앙가나 신학자가 있다면, 그런데도 남들이 잘 모르는 먼 곳의 이름과 소식을 전해야 뭔가 있는 듯이 보이겠다는 저의로 그렇게 한다면 이 것은 신앙의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역사적인 칼빈의 위대함은 말할 수 없이 위대하다. 그러나 5백년이 흘러 가면서 오늘은 칼빈 이상의 신학자가 무수하다. 이제는 칼빈의 가르침으로 실제 살아 볼 때 한국 사회를 현실로 살아 가는 한국의 우리 교회와 우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발전일 것이고 그래야 복음이 우리 복음이 될 듯하다.

한국 교회의 기도 운동은 많고도 깊고 그리고 그 응답의 유명한 사례가 한도 없다. 죠지 뮬러의 기도를 연구하고 그 사례를 살펴 봤자 그가 살았던 1-200년 전의 영국 현실 때문에 우리는 참고하는 것은 두고 파악조차 어렵다. 선교 초기는 선교사들에게 배웠고, 그들에게 배운 한국 교회는 지금 세계 기독교의 중심에 섰다. 한국 교회는 기도의 유명한 종들이 교파를 막론하고 허다하다. 죠지뮬러 아카데미를 전혀 모른다. 그 아카데미가 그 이름을 사용할 때는 다른 이름을 사용할 여지가 없어 그랬을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런데 하도 많은 외국 성도의 이름이 사용되면서 그 내용은 너무 이상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입장에서 멀리 있고 잘 모르는 유명인보다 내게 현실 속에 더 가깝고 절박하게 필요한 인물과 그런 신앙을 통해 우리의 부족한 점을 먼저 배우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에서 단상을 적어 봤다.




■ 민주주의에 기여한 기독교
박명수 교수는 “기독교가 어떻게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형성하게 했는가?”를 한국 근현대사를 개관하며 설명했다. 박 교수는 대한민국의 기독교적 기원을 다음과 같은 4가지로 측면에서 살폈다. 1) 개항기부터 도입된 기독교와 민주주의, 2) 3·1운동과 임시정부에 나타난 기독교와 민주주의, 3) 임시정부와 좌익 사이에 국가건설에 대한 논쟁과 기독교, 4)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나타난 기독교와 민주주의.

박 교수는 “3.1운동 이후 상해가 임시정부의 중심지가 되었다”며 “이들 중 많은 수가 기독교인이었으므로 이들은 상해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상해임시정부를 만들었다.”고 했다. 또한, 그는 미국의 ‘대한인국민회의’가 상해에 안창호를 파견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후원했고 그 배후에는 상해에서 활동하던 YMCA의 선교사들이 있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독교적 기원의 결정적 근거를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내용을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아쉬움
1919년에 3.1운동을 말할 때마다 임시정부가 출발되는 계기가 되었다며 두 사건을 함께 묶고 그 배경에 한국 교회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음을 여러 수치와 근거를 제시한다. 1910년에 우리는 나라를 뺏겼다. 일본에게 어느 나라를 뺏겼는가? 전주 이씨 고종의 나라를 뺏겼다. 그렇다면 되 찾는 운동을 할 때 일본을 대상으로 투쟁하는 것이 맞고, 그 투쟁의 방법은 많겠지만, 기본적으로 전주 이씨 고종의 자자손손의 나라가 되도록 되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3.1 독립선언문의 내용과 바로 이어진 임시정부의 기본 방향과 사상과 글들은 오늘의 민주제 국가인 대한민국을 향한 걸음이다. 감정에 치우쳐 열변을 쏟기 전에 A 나라를 B 나라가 뺏었다. A 나라의 국민이 투쟁을 해서 A 나라를 되찾았는가, 아니면 A 나라의 국민이 C 나라를 새로 만들기 위해 A 나라를 뺏은 B 나라를 상대로 투쟁을 했는가? 전자가 아니라 후자가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3.1 운동과 임시정부는 일본에게도 반역이 되지만 그 반역은 뺏은 식민지에 국한 된 투쟁이나, 고종의 자자손손이 다스릴 A 국의 입장에서 보면 A 국을 상대로 벌인 역적 행위가 되지 않을까? 국가의 요소를 국민과 영토로만 본다면 이런 설명은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국가의 요소에 주권이 들어 가야 한다면 고종과 순종이 가진 주권을 다른 세력이 뺏어 간 것은 일본에게 나라를 뺏긴 대한제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왜놈이나 다를 바가 있을까?

역사와 정치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으로서 이 정도는 누구라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상식이 아닐까? 나의 여자를 옆 집에서 뺏어 갔는데, 뒷 집에서 내 여자를 다시 뺏어 가서 둘이 잘 먹고 잘 산다면, 첫 남자는 뭔가?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는 것은 나쁘고,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뺏은 것은 틀렸고, 고종과 순종을 황제로 알던 조선의 인민이 고종과 순종을 일본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종이 호랑이를 만들어 버렸다면, 역사와 정치학에서 보면 일본과 임시정부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일본과 대한민국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영토와 국민은 그대로다. 주권만 바뀌면서 한반도는 수천 년 내려 오고 있다.

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교회가 거주하고 신세 지고 있는 주소지에서 정권 쟁탈이 일어 날 때 교회는 누구 편에 설 것이며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 때문입니다. 국민이 주권을 가진 민주제도의 국가라야 교회가 옳게 받아 들이고 이런 나라를 세우는 것이 교회라면 3.1운동과 임시정부 및 해방 후 대한민국의 수립 과정에 교회가 맡은 역할은 지대하며 복 받을 일이다. 그렇다면 선교사들은 구한 말에 들어 와서 고종을 상대로 독재 타도를 위해 움직여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일제 초기의 선교사들은 일제 통치를 반대하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총독부에 적극 협조적이었다. 신사참배 문제가 생기게 되자 비로소 저항이 시작 된다.

교회가 3.1운동과 임정과 대한민국 정부의 주체적 위상을 자랑하려면, 당연히 정부의 기본을 지키기 위해 또 노력을 해야 했다. 좌파 또는 진보 교단은 자유 민주주의에 대해 저항을 하고 체제를 바꾸는 데 사력을 다한다. 반대로 우파 또는 보수 교단은 그 반대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는 정통의 입장은 양쪽에 의해 함께 사라졌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는 3.1절과 임정과 독립 정부에 대해 또 오늘의 모든 정치 견해에 대해 어떤 활동도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이 들어 가는 언행과 '교회'나 '성직'의 이름은 좌우를 막론하고 그런 곳에 직접 사용하면 안 된다. 이 것이 공회의 입장이다. 그래서 공회는 3.1운동이나 8.15광복절 행사를 하지 않는다. 공회는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오늘의 세계 최고의 나라를 만들었다는 점을 좋게 평가한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이 세상 기준에서 좋아지면 교회와 교인은 스스로 자기들의 신앙을 다 없애 버린다. 그렇다고 신앙을 위해 굳이 가난해 지기를 노력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 것은 각자의 신앙 역량에 따라 각자가 결정할 일이다. 교회가 세상에 어떤 형태로든지 발을 담그게 되면 그 세상에서 대학, 대학병원, 그 어떤 활동을 해도 이미 사단의 미끼를 물어 버린 고기와 같다. 공회는 바로 이런 점을 역사에서 보고, 우리 생활 속에서 체험을 하며, 눈치로 알고 피한다.
전체 0

전체 84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
이용 안내문
담당 | 2018.04.11 | 추천 0 | 조회 544
담당 2018.04.11 0 544
77
New 공회 신앙과 교회 윤리 - 방문할 때 대표 기도
담당 | 2019.05.18 | 추천 0 | 조회 87
담당 2019.05.18 0 87
76
사회주의가 꼭 망하는 이유, 출22장
담당 | 2019.05.12 | 추천 0 | 조회 126
담당 2019.05.12 0 126
75
환란 때 대처하는 모습들 - 설교 사용 금지를 두고
담당 | 2019.05.08 | 추천 0 | 조회 164
담당 2019.05.08 0 164
74
세상적으로 남다른 은혜를 받은 경우 - 예능을 중심으로
담당 | 2019.05.05 | 추천 0 | 조회 147
담당 2019.05.05 0 147
73
교회의 제도와 내용, 그 균형론
담당 | 2019.04.28 | 추천 0 | 조회 142
담당 2019.04.28 0 142
72
백영희 '목회자 양성'의 방법론 (1)
담당 | 2019.04.24 | 추천 0 | 조회 204
담당 2019.04.24 0 204
71
보지 못한 총공회, 보지 않은 총공회 (9)
담당 | 2019.04.19 | 추천 0 | 조회 364
담당 2019.04.19 0 364
70
요동치는 세상의 좌우 물결 속에서
담당 | 2019.03.31 | 추천 0 | 조회 250
담당 2019.03.31 0 250
69
공회의 국가관 - 3.1운동 백주년 행사에 대한 교계와 비교하며
회원 | 2019.03.13 | 추천 0 | 조회 244
회원 2019.03.13 0 244
68
사람을 만들어 봐야, 비로소 사람이 되는 법
담당 | 2019.03.01 | 추천 0 | 조회 303
담당 2019.03.01 0 303
67
미국의 서부개척사, 한국의 흰죽배미사 (8)
담당 | 2019.02.22 | 추천 0 | 조회 379
담당 2019.02.22 0 379
66
법치의 제도식, 인치의 지도식, (10)
" | 2019.02.17 | 추천 0 | 조회 357
" 2019.02.17 0 357
65
'류차연 회고록'
담당 | 2019.01.25 | 추천 0 | 조회 350
담당 2019.01.25 0 350
64
복음의 중앙을 타격하게 되면. (1)
회원 | 2019.01.09 | 추천 0 | 조회 405
회원 2019.01.09 0 405
63
내계 (7)
회원 | 2018.12.30 | 추천 0 | 조회 649
회원 2018.12.30 0 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