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미국의 서부개척사, 한국의 흰죽배미사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19.02.22
1. 서부개척사
청교도의 작은 정성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린 복은 많지만 1862년의 정착법(Homestead Act) 하나만 예를 든다. 5평 짜리 나무 집을 하나 짓고 5년을 살면서 농사를 지으면 20만평까지 무상으로 자기 토지가 된다. 16세기에 미국으로 건너갔고 19세기 말까지 이런 상황이었으니 초기에는 어느 정도였을까? 먼저 표시하고 선포만 해도 자기 땅이 되던 때도 있었다. 실제 조사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웃끼리 서로 대충 봐 주고 정부의 조사도 증인 사인 정도만 첨부해서 그렇게 인정했다. 장마에 논물 대는 것처럼, 땅이 넘치니 땅 인심이 그렇게 되었다. 뒤에 그 땅에 석유가 나오면 석유 재벌이 되고, 도시 개발이나 철도가 지나 가면 돈으로 계산도 어렵게 되었다.

설교록에서는 이런 상황을 두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욕심끼리 대결하면 서로 뺏기 위해 약육강식의 투쟁을 끝없이 해야 하는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위에서 부어 주시면 주변에 마음껏 주면서도 자기는 늘 새로운 것을 받아 갈수록 더욱 번성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2. 흰죽배미사
미국의 천분의 1도 되지 않으나 우리에게도 같은 식의 이야기는 가끔 있다. 흰죽배미라는 말이 전국에 더러 있다. 배가 고플 때 죽 한 그릇을 먹었다. 훗날 성공하고 돌아 와서 그 집에 논 1마지기 2백평을 사줬다. 미국의 20만평에 비하면 천 분의 1이다. 확률로 보면 1만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성격은 같다. 어느 날 벼락 횡재를 한 것이다. 그 때는 몰랐다는 점에서 미주 대륙의 서부개척사와 같다.

설교록에서는 이런 상황을 두고, 말씀으로 살 때 받는 복의 성격을 그렇게 설명한다. 한 번 순종을 했으며 그 순종은 믿는 사람으로 당연히 해야 할 작은 일이었는데 그 것이 그렇게까지 큰 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25:40에서 지극히 작은 물 한 컵이 그렇게 큰 복이라 가르친다.



3. 실감하는 일들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신 뒤, 주남선 목사님의 자녀들과 여러 일로 직접 연결이 되었다. 무릎을 마주 대하며 자세히 대화할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 유가족의 가장 기둥 역할을 하는 분, 그리고 신앙의 대표가 되는 분의 장례에 '총공회'를 대표하여 부조를 할 수 있었다. 다른 공회가 한다면 연구소가 나설 일이 아니다. 다른 공회가 아예 모르고 있거나 외면을 하기 때문에 가신 목사님을 생각해서 해야 했다. 하고 보니 가족들은 신풍 시골까지 직접 와서 인사를 하겠다고 하여 극구 사양을 한 적이 있다. 다른 곳에서 했다면 그 때 말이 나왔을 것이고 그렇게까지 인사를 하러 오겠다 하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심지어 백 목사님 돌아 가시기 직전에 고신대학에 기증한 성경의 향방 문제가 나왔을 때도 장손 가족과 연락하여 해결을 했다. 왜 200개 전국의 총공회 교회 중에 전남 여수의 시골 교회가 총공회 대표가 되어야 하나? 미국의 개척 시대 때 혼자 달려 1등을 하고, 보이는 대로 전부 다 자기 것을 삼던 때와 비교해 본다. 하늘의 복이 그렇게 될 듯하다. 흰죽배미가 늘 피부에 와 닿는다.

2월 11일 11시 40분 경, 서부교회가 단체로 손양원 기념관에 방문 행사를 보낸 모양이다. 손 목사님 가족에게 예약을 했고 1시간이나 직접 안내를 받았다 한다.

그리고 ?


그런데 !


그렇게 ?


세상에 !


안에서 새는 바가지 어디 가선들 새지 않을까.
한 동네 살면서 총공회 간판을 붙이고 있는 신풍교회가 대신 가족에게 수고비를 지출했다. 손양원 기념관을 왔다 가면서 공회 표시를 내되 공회의 대표성이 있는 이름을 사용하고도 쓰레기를 버리고 가면 신풍교회가 백영희와 총공회의 이름 때문에 얼른 가서 치우고 온다. 한국 기독교 사회의 오늘 상식에서 지출할 최소한의 비용조차 떼먹고 가면 신풍교회가 기념관의 주소지에 살기 때문에 얼른 가서 해결을 한다. 백 목사님 생전에 공회 소속 목회자가 아닌 분을 강단에 세우면 공짜로 세운 적이 없다. 목사님은 배우는 제자와 내부는 엄하게 한다. 그러나 외부 남에게는 그 쪽의 기준으로 반드시 응대를 한다. 모두 배웠다 하지만 배운 흔적도 없다. 이래저래 신풍교회와 이 연구소가 그런 일까지 하다 보니 미국의 개척시대에 횡재처럼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일이 많다. 참으로 많다. 많은데, 왜 이 글을 적는가. 자랑인가, 비판인가? 사람 된 대로 읽지 싶다. 손양원 기념관에는 새는 바가지 그대로 왔다 가도 부디 다른 곳에 가서는 그러지 말았으면.

얼마 전에는 1천만원 이상 되는 돈을 부공3 몇 교회가 함께 모아 대신 지출한 적도 있다. 그냥 두면 '백영희' 이름에 욕이 들어 가거나 하나님 앞에 청구서가 들어 갈 일이다. 이럴 때는 총공회에 주인이 없다. 서부교회는 아예 그런 교회도 없다. 남겨 진 건물과 조직과 인원으로 인해 부산 서구의 지역 사회에 덩치값을 해서 헤택을 볼 때만 서부교회에는 주인이 많다. 누가 한국교회사적으로 의미를 알고 물어 보면 서부교인 아마 거의 전부는 그가 제일 권위자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소리 없이, 또는 당연히 지출해야 하는 서부교회나 총공회의 이름 값을 지출해야 할 때는 주인이 없다.

목사님 생전부터 서부교회 안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나 이름을 가진 분들, 일반 교인들에게 어른처럼 되어 있는 분들...로부터 늘 들어 온 말이 있다.

'공회 교인은 예절을 모른다.'
'공회 사람은 사회성이 없다.'
'젊은 조사들이 설교록으로 하늘을 논해도 기독교 윤리와 상식이 없다.'

심지어 지금 총공회 전체의 최고 지도자 가정에 어느 반사가 그 집의 주일학생을 새벽예배 때문에 전화를 하자 '불신자도 남의 집에 새벽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고등 윤리를 가르치면서 어떻게 불신자도 하지 못할 일을 하는가'라고 격노하는 글을 보냈다. 그 아이의 손에. 그 때 그 반사는 그 집의 어른은 교회 월급을 받는 목사 부인이니 마땅히 예배당에 있고 그 집 아이는 깜빡하고 혼자 잠을 자는 것으로 알았다. 그 집의 전화 번호는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새벽예배를 맡는 선생님들이 전화를 해야 할 명단에 올라 가 있었다. 그 글을 받고 백 목사님께 이런 글이 왔다고 보여 드렸다. 마침 그 편지에는 이름이 없었다. 목사님은 '불신자가 그렇게 말하지 않겠나!' 무덤덤하게 그냥 넘어 가셨다.




생전에 백 목사님은 국제시장의 제일 큰 도둑ㄴ들은 전부 장로들이다. 이북에서 피난온 교인들이다... 그렇게 말을 했다.
이제 그 표현을 기준으로 목사님 사후의 공회들과 서부교회에 대해 한 소리를 만들어 본다.

공회들은 기독교의 역사성을 전혀 모른다.
서부교회는 백 목사님 사후에 사회성이 없다.
개인적으로 불국사를 입장하면 대문에서 싫어도 입장료는 내지만 알아서 내야 하는 곳에 서부교회라는 이름을 걸고 가면서도 교회의 이름이 걸려 있고 백영희 이름이 따라 갔는데도 수고비조차 낸다는 개념이 없다. 기독교라는 고차원의 윤리를 강조한 지도자 밑에 조직인데...
전체 8

  • 2019-02-24 11:55
    서부교회가 모교회입니다. 서부교회가 낼 돈을 조금이라도 대납하고자 합니다. 연구소 계좌로 보내면 될까요?

  • 2019-02-24 13:15
    갓난 한살 자녀의 똥은 부모가 치우는 것이 당연하고 나중에 부모가 치매로 노망 들어 벽에 똥칠하시는 그 모습을 보고 말없이 잠자코 뒷처리하는 그 자녀는 누군고? 부모는 자녀의 철없음을 보고 울고 자녀는 부모의 자기 중심을 보고 또 울고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 하나님 나라의 심판 앞에서 누가 원고며 누가 피고입니까?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억울한 세상이며 피고 같으나 실제는 원고며 원고 같으나 실상은 피고인 이 세상이지만 심판의 그 날이 되면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처럼 다 드러나리라 신앙의 동지들이여. 억울해하지 말지어다 무언의 용사로 맡겨진 사명만 잘 감당하게나 네 어깨에 멘 대 사업만 온전히 다 충성하려 해도 24시 하루가 부족하다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되 지극히 사소한 일에 매여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지 말기를 바래네 친구여 내 마지막 진심일세

    • 2019-02-24 19:54
      나팔수의 사명은 '적군이 온다,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고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나팔을 불지 않아서 당한 책임은 나팔수에게 있다 하셨습니다.

      말세지말의 세상을 향해,
      어두움 속에 헤매고 있는 우리를 향하여,
      마지막 남은 최후의 시대의 나팔수, pkist의 사명과 그 본심을 헤아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2019-02-25 05:43
    잠언 26:4-5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언행)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언행)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서부교회는 이미 제 갈 길을 가고 있나이다 우리 갈 길만 가사이다 아니라 그들도 우리 형제라 지금은 비록 속화 타락 인본의 모습이나 내일이라도 당장 회개의 은혜 주시면 우리와 같이 갈 수 있는 그들이기에 경고의 나팔 불기를 멈출 수가 없다네 아니라 이미 그들은 우리와 가는 길이 다르네 지난 수십년 걸어온 길을 보고도 모르겠는가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 주게나 우리의 범위를 넘어서 버렸네 아니라 그래도 그들의 언행으로 백목사님 얼굴에 똥칠을 지금 칠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그만 둘 수 없네 이것이야말로 구원의 유익을 위해 꼭 말해 주어야 한다 생각하네 나는 그리 생각지 않네 이제 그들을 향한 소망은 기도로 충분하니 입으로 그들에게 소망을 전하거나 사랑의 경고나 주홍글씨를 그들의 가슴팎에 계속 새기는 것은 한번 더 생각해 봄이 좋다고 보네 그러면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보다 바로왕에게  하신 말씀처럼 더 강퍅해질 수도 있다 생각하네 그래도 그들이 불쌍하지 않나 저리 살면 어찌 된다는 사실을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나는 나팔불기를 멈출 수가 없다네 친구여 주님이 주시는 내 생각은 말일세 그들은 둘째 아들 탕자처럼 먼 나라로 아주 먼 길을 떠난 이들일세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곧 묵언의 나팔이라 생각하네  지금은 그들의 언행을 위해 말할 때라기보다 묵묵히 기도할 때라고 보네 그들을 향한 나팔은 지난 30년 세월로 충분하다고 보네 마태복음 5장 37절 말씀처럼 지나치면 악으로 좇아나와 나중에 돌아올 자까지 길을 막아버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네 스승의 뼈저린 경험담을 들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진정 그들을 위한다면 또 병약한 우리를 위해 어떤 길이 옳을지 다시 한번 더 기도하며 함께 생각하고 연구해 보세 그래 알겠네 자네가 그리 말하니 그럼세 그래도 나팔을 계속 불어야 한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네 친구여 그들에게 나팔을 불 가치가 있는지 확신이 나는 안드네 길이 너무 다르네 너무 멀리 와 버렸네 지금은 기도해 주는 것이 곧 나팔을 부는 것이라 생각하네 나는 그리 생각지 않네 자네 뜻 잘 알겠네 그러면 함께 기도해 봄세. 그러세.

    • 2019-02-25 09:37
      외부인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pkist와 어떤 친밀한 관계이시길래, 이런 다소 상스러운 어투로 계속 글을 올리시는지 대단히 궁금합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이런 어투는 삼가 조심해야 할 표현이 아닐까요? 제가 아는 공회는 아무리 자기보다 낮은 사람에게라도, 이런 식으로 글을 써서 가르치고자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부족한 소견으로는, 이런 글들이 똑같은 한 사람이 이름과 글쓰는 방식을 달리하여, 계속해서 같은 내용의 글을 올리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도대체 이렇게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궁금할 뿐입니다. 분명히 안 그러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만약 진정 다른 분이시라면 제가 추측한 것이니 미리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길이 다르다하셨습니까? 길이 다른 상대에게 계속 나팔을 부는 것은, 그를 강팍케 될까 염려된다고 하셨습니까?
      나머지는 각설하고라도, 그 말씀대로 보더라도 pkist는 pkist의 길과 서부교회는 서부 교회의 길은 다릅니다.
      각자 그 길을 갑니다. 가는데, 필요하면 각자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그 나팔의 목적은 표면으로는 상대방이나, 그 이면에는 그 안의 회원들이 다시 그 전철을 밟지 말라는 내부 충고용입니다. 그 길이 싫으면, 거기서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pkist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신 것은 예전부터 정말 많이 느꼈습니다. 신앙도 깊으신 것 같습니다. 부럽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감정을 가라 앉히시고, 어떤 무익한 말도 주님 앞에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을 먼저 상기하시어, 차분하게 냉철한 이성으로, 혼란의 말들과 혼란의 행위를 멈추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2019-02-25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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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 하루도

    내게 주어진 하루를 감사합니다
    내게 또 하루를 허락하심을
    이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며 살기 원합니다
    이런 은총 받을 만한 자격 없지만
    주의 인자하심 힘입음으로
    이 하루도 내게 주어졌음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이 하루도 정직하게 하소서
    이 하루도 친절하게 하소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이 하루도 온유하게 하소서
    이 하루도 겸손하게 하소서
    나의 걸음을 지치게 만드는 이들에게
    용서를 베풀게 하소서

    내게 주어진 하루를 감사합니다
    내게 또 하루를 허락하심을
    즐거운 일이든 혹 슬픈 일이든 감사드립니다
    비록 이 하루가 나를 울린다해도
    원망의 맘 품지 않을 이유는
    나의 주님 이 모든 일을 주관하셔서
    선(善)을 이루심이라

    이 하루도 평화롭게 하소서
    이 하루도 강건하게 하소서
    험한 폭풍이 몰아치는 중에도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이 하루도 성실하게 하소서
    이 하루도 순종하게 하소서
    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이들에게
    은총을 베풀게 하소서
    행복을 빌게 하소서
    축복을 베풀게 하소서

  • 2019-02-25 08:45
    외부인님은 왜 자기일에 온전히 다 충성하지 않고 글을 올리시는지? 외부인님은 왜 이처럼 지극히 사소한 일에
    매여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시는지?

    외부인님도 이제 그만 글을 멈추시고..여기 홈페이지에 어떠한 글이 올라오던
    글을 멈추어 주시고 조용히 기도해주시는 것이 맞지 않으신지?

    궁금해서 외부인님께 질문합니다.

  • 2019-02-25 12:35
    You(공회교인님) and me(외부인).

    1. 결혼생활.
    2. 직장생활.
    3. 교회생활.
    4. 새벽예배.
    5. 전도생활.

    공회교인님의 말씀이 전적 옳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매여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고 있었던가?
    눈이 멀어 몰랐고 귀가 둔해서 듣지 못했으며 마음이 강퍅해서 잘못 판단했고 어제까지만 해도 자복하다가 다시 의분이 나서 또 글을 쓰고 또 다시 눈물로 회개하다가 또 반대하는 무익한 말로 심판을 자처한 말들을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마음속으로 반복했는데 오늘 아침 눈을 떠서 공회교인님의 말씀을 찬찬히 여러 번 읽고 보니 점심 때가 된 이제서야 때가 차매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앞으로는 입은 닫고 귀만 열어둔 채 불충했던 지난날의 제 일에 더욱 충성하고 지극히 작은 일, 특히 정리 정돈하는 습관, 생활면의 부족한 면부터 고쳐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위 5가지 면을 돌아보며 고치겠습니다. 고칠 수 있는 현실을 온갖 사람까지 다 동원시켜 이 소자 하나 사람 만들려는 그 사랑과 은혜와 범사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공회교인님과 외부인과의 대화였는데 다른 분들에게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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